나의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자전적 인생그림책, 그림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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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11. 04. 2024
  • 나의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글·그림 최윤희
    나는 아주 낡은 클래식 카세트테이프가 하나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일이다.
    부산에서 살던 외삼촌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 우리 집에서 살게 되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외삼촌이 나에게 카세트테이프가 들어있는 커다란 상자를 주셨다.
    그 상자 안에는 클래식 음악이 녹음되어 있는 카세트테이프가 들어 있었다.
    100개가 넘는 카세트테이프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하이든, 차이콥스키, 요한 슈트라우스 등 여러 작곡가의 주옥 같은 음악들이 녹음되어 있었다.
    나는 외삼촌에게 선물 받은 클래식 명곡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듣기 시작했다.
    그중에 요한 슈트라우스의 곡들이 제일 좋았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듣고 있으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듣고 있으면
    도나우 강의 풍경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중학생이 되어 친한 친구 덕분에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직접 볼 기회가 생겼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기념 음악회였다.
    오케스트라의 규모도 엄청났고, 바이올린을 비롯한 여러 악기를 직접 들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처음 나도 바이올린을 연주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바이올린은 부잣집 친구들이나 배울 수 있는 비싼 악기라서 엄마에게 배우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나는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해 넥타이 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지내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보령이란 낯선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갑자기 이사 간다는 말에 다니던 교회에서 보령에 있는 교회를 소개시켜 주셨다.
    그 교회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청라면 소재의 아주 작은 시골교회였다.
    서울에서 다니던 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고, 교인도 많지 않은 교회였지만,
    목사님과 사모님이 너무나 따뜻하게 나를 반겨 주셨다.
    내 또래의 젊은 사람이 없어 교회에 적응하기 어려워할 때,
    목사님이 내게 바이올린을 배워 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목사님께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사모님은 첼로를 연주하는 클래식으로 가득 찬 교회였다.
    목사님은 나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배워보고 싶은 바이올린을 공짜로 가르쳐 주신다니… 하지만, 막상 처음에 바이올린을 배울 생각을 하니 겁이 났다.
    악기는 어릴 때부터 배워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것이라서 걱정이 되었다.
    목사님은 어른도 처음 배울 때 바른 자세로 배우면 충분히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다고 했다.
    목사님은 초등학교 오케스트라단을 이끌고 있었고, 나를 가르칠 때도 초등학생을 지도하는 것처럼 정말 쉽게 가르쳐 주었다. 스즈키 바이올린 교본 일권으로 내가 처음 배운 곡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은 별(변주곡)’이다.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에 목사님이 가사를 붙여서 “자동차가 빵빵 자동차가 빵빵”하고 노래를 부르며 바이올린 활 쓰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바이올린 활 쓰기와 운지법을 배우고 나니까 욕심이 생겼다.
    나는 연습용 바이올린을 구입하고
    그때부터 열심히 배우고 연습도 정말 열심히 했다.
    하루 한 시간은 기본이고 어떤 날은 3~4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연습만 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보령에서 나에게 위안이 되어준 것은 바이올린이었다.
    날마다 연습을 하다 보니 진도가 빠르게 나갔다.
    바이올린을 배운 지 여섯 달 정도 되었을 때 스즈키 바이올린 교본 4권을 배우게 되었다.
    목사님이 쉽게 알려주셨지만, 내 손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쉬울지 몰라도 어른인 내게는 무척 어려웠다.
    바이올린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비브라토가 되지 않아 절망적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의 친구 같은 바이올린이 시들해질 무렵,
    목사님이 좀 더 전문적으로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실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다.
    그 선생님은 목사님 딸의 바이올린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내 손가락이 비브라토를 할 수 있게 여러 단계로 나누어 아주 세세하게 지도해 주셨다.
    나는 다시 한번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날마다 조금씩 연습을 이어나갔다.
    선생님은 쉬지 않고 날마다 연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한번 해보고 안 된다고 포기했던 일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배우면서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렇게 10개월 정도 연습하던 어느 날, 갑자기 비브라토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비브라토를 넣은 바이올린 소리는 훨씬 더 아름다웠다.
    바이올린을 배우던 중 나는 임신을 하였다.
    그동안의 바이올린 연습은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태교가 되었다.
    아이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어 학교 공부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치원 다닐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이를 통해 클래식 음악과 더 친숙해져서인지 아이는 지금도 가요보다 클래식 음악을 더 좋아한다.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오케스트라 지휘를 우리 교회 목사님이 하셨다.
    당연히 딸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목사님과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어느 날, 목사님께서 초등학교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딸과 함께 한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곡은
    내가 초등학교 때 클래식 카세트테이프에서 제일 좋아하며 들었던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서곡’이었다. 나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함께 할 수 있었고,
    연주하는 동안 더없이 행복했다.
    지금도 나는 시간이 될 때마다 집에서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딸과 함께 바이올린 연주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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