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체육관, 자전적 인생그림책, 그림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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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15. 01. 2024
  • 관악체육관
    글·그림 박연숙
    우리 집은 우리 동네에 가장 먼저 생긴 태권도장이다.
    아빠는 관장님이고, 오빠는 사범님이다.
    체육관은 민가와 산중턱에 있었다.
    우리집은 체육관과 붙어 있었고 드나드는 출입문만 양쪽에 나눠져 있었다.
    핸드폰이 없던 그 시절엔 하교 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따라오는 게 흔한 일이었다.
    나 역시 하교시에 남자아이가 따라오면 집 현관이 아닌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곤 체육관 사무실에 있는 오빠한테 일임한다.
    오빠는 여자 꽁무니나 따라다닌다고 남자아이를 혼낸다.
    그리곤 어떤 타협이 오갔는지 그 아이는 우리 체육관 관원이 된다.
    나도 관원 늘리는 데 한몫한 셈이다.
    집이 높은 지대에 있다보니 물이 안 나올 때가 자주 있다.
    그럴 땐 체육관 관원들이 모두 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 온다.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고 동창회에서 만난 그 친구들이 얘기한다.
    체육관 홍보 차 한 달에 한 번씩
    학교 운동장이나 공터 같은 데로 시범을 나간다.
    오빠는 2단 옆차기로 기왓장을 깨고
    아빠는 주먹으로 벽돌을 깨신다.
    모두 박수를 치며 부러워한다.
    나는 어깨가 으쓱해진다.
    시범이 끝난 다음날부터 엄마는 바빠지신다.
    새로 들어온 관원들의 도복을 만드시기 때문이다.
    난 엄마와 함께 영등포시장으로 광목을 사러 간다.
    엄마랑 영등포시장 가는 날이 가장 신이 난다.
    정해진 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천을 사고 순대를 먹으러 간다.
    그리고 물 좋은 병어를 산다.(엄마가 병어회를 좋아 하심)
    관원들이 많이 들어온 날이면
    엄마가 기분이 좋아 새 옷을 사주시기도 했다.
    그래서 시장 가는 전날은 소풍 가는 전날처럼
    마음이 들떠서 잠을 설친다.
    다음 날부턴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로 너무 시끄럽다.
    그치만 새 옷 덕에 참아야 했다.
    옷이 만들어지고 띠가 만들어졌다.
    흰띠 노란띠 파란띠 빨간띠 검정띠 옷이 다 만들어지면
    다음날 체육관에서 심사를 본다. 그리고 관원들은 띠 색깔이 바뀐다.
    사범님인 오빠는 키가 183cm에 생기기도 멋지게 생겼다.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한다.
    그래서 동네 언니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그 덕에 난 언니들에게 간식을 많이 얻어 먹었다.
    오빠는 소쿠리를 막대에 받쳐 놓고 쌀을 몇 알 넣어 참새가 들어오면
    막대에 묶어놓은 실을 잡아당겨서 참새를 잡기도 했다.
    촛불에 참새를 구워 다리 하나를 잘라 나한테 주어 먹기도 했다.
    또 체육관 뒷산에 가서 칡을 캐 와서 그걸 씹어 먹으면 입술이 시컴둥이가 된다.
    펄씨스터즈가 유명하던 시절에
    언니와 난 훨씨스터즈라고 하며
    체육관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꿈을 키워간다.
    세월이 지나 오빠는 태권도 사범으로 초청되어 스페인으로 가고
    아빠는 환자를 치료하는 카이로프랙틱으로 직업을 바꾸셨다.
    언니와 난 에어로빅 강사가 되었다.
    관악체육관을 없애고 그곳에 새로 집을 지었다.
    관악체육관은 없어졌지만 우리 체육관을 거쳐간 관원들이
    우리 고향에 호암체육관 선미체육관을 차렸다.
    그리고 지금은 더 많은 태권도장이 생겼다.
    오랜만에 고향에 가서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 인사를 드리면 누군지 못 알아 보신다.
    “저 관악체육관집 막내딸이에요”그러면 금방 알아보신다.
    지금은 관악체육관도 없고 엄마도 아빠도 안 계시지만
    난 여전히 관악체육관집 막내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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