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박물관을 다녀와서, 자전적 인생그림책, 그림은 기록이다

Sdílet
Vložit
  • čas přidán 23. 01. 2024
  • 석탄박물관을 다녀와서
    글·그림 김주영
    나는 탄광촌이 고향이다.
    내가 태어난 곳인 태백은 지금은 카지노로 더욱 유명하지만
    예전에는 눈도 까맣게 내린다는 탄광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흔히들 더 이상 갈 데가 없으면 오는 곳이 탄광이라고
    ‘인생 막장’이라는 표현을 쓴다.
    나의 아버지는
    학력도 초졸에 이렇다 할 기술도 없고
    이 일 저 일 전전하다가 내가 태어났을 무렵
    탄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십 개월 때 연탄아궁이에 떨어지는 화상 사고가 있던 날,
    엄마는 자식의 미래를 예견했는지 어쩐지
    그날은 뒤통수가 자꾸 당기는 기분이 들어서,
    재발 오늘만은 일을 가지 말아 달라고 사정 사정을 했더란다.
    그런데 평소에는 잘도 빼먹던 일을
    그날은 웬일인지 또 기를 쓰고 가더라고 하셨다.
    결국 그날 나는 사고를 당했고
    아버지도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가 나서
    죽다가 살았다고 한다.
    검은 석탄은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는
    진저리가 나는 것이 되었다.
    그 뒤로 태백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고향을 떠나와서 유년을 보낸
    인근 도시에는 진폐증 산재병원이 있었다.
    그곳에는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환자들이 참 많았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은 카지노와 스키장 때문에
    길이 뻥뻥 뚫렸지만
    예전의 태백은 드나드는 길이 한 길밖에 없었다.
    그 길은 언덕으로 되어 있어서 눈이라도 많이 오면
    길이 미끄러워 도시가 고립되기도 하였다.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힘들었다.
    폐가 망가지고서야
    그 도시를 나올 수 있었지만
    더 이상 갈 곳도, 더 이상 어딜 갈 수 있다는
    희망도 없었던 그 환자복을 입고 있던
    사람들이 새삼 떠올랐다.
    석탄가루의 먼지들이
    그 사람들의 폐 속에 눈처럼 쌓였던 것이다.
    그들은 단지 살기 위해서 숨을 쉬었던 것뿐인데
    숨을 쉬면 쉴수록 폐가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숨을 쉬었기 때문에 죽어간다니 너무 슬프다.
    석탄 산업은 높은 사망 산재율과 직업병으로 알려져 있다.
    1978년부터 1987년까지 10년 동안 산업재해로 사망한 수치에 따르면,
    이틀에 1명꼴로 사망하고 매일 15명 이상이 다쳤다고 한다.
    그래서 탄광을 삶의 전쟁터라고 했고 인생 막장이라고도 했다.
    광부는 되기고 힘들지만, 되어서도 더욱 힘이 들었다.
    탄광을 재현해 놓은 모형을 보고
    우리 딸아이가 개미굴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미처럼 열심히 삶을 살아가던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이리라.
    보령석탄박물관에 가면 틀에 석탄 가루를 넣고 망치질을 해서
    미니 연탄 만들기를 해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체험이고
    어른들에게는 아궁이에 연탄을 때던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그림책, #인생그림책, #그림은 기록이다, #보령 비읍미술관, #예소아카이브, #개인아카이브

Komentář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