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상륙을 막아라! 독일 기갑부대 배치 논쟁, 과연 누가 옳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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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21. 01. 2022
  • 1944년 6월 6일,
    마침내 유럽본토 탈환을 위한
    연합군의 작전명 오버로드 (절대군주) 노르망디상륙작전이 시작된다.
    막강한 연합군의 물량.
    이런 연합군의 전력으로부터 프랑스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12SS 판저사단과 기갑교도사단 등 독일 최정예 기갑부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했다.
    그러나 서부전선 독일 지휘부에서는
    이 최정예 기갑부대를 누가 지휘하고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를 놓고
    1944년 초부터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논쟁의 대표주자는 롬멜 과 슈베펜부르크 두 사람.
    롬멜 은 연합군을 저지하는 것이 급선무이므로 기갑부대 변칙전술을 쓰자는 거였고
    슈베펜부르크는 독일 기갑부대 전술의 기본을 지키자는 거였다.
    마침내 기습적으로 시작된 노르망디 상륙작전.
    과연 상륙작전이 벌어졌을 때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두 사람 중 누구의 말이 더 맞았을까?
    또한 연합군 상륙을 저지할 독일 최정예 기갑사단은
    이 급박한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리고 우리가 흔히 들었던 것은 독일 기갑부대가 제때 출동하지 못한 것이
    히틀러의 잠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이 모든 것이 대한 답이 이 영상에 있습니다.
    #노르망디상륙#롬멜#디데이

Komentáře • 124

  • @만물상자TV전쟁의신

    재미있고 유익하게 보시고 모두 구독/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 @ttp6374
      @ttp6374 Před 2 lety

      오늘 영상 잘 보았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독일 특수부대 오토 스코르체니에 대해서도 영상으로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ttp6374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차세계대전이라는 드라마틱한 대 전쟁. 이 대 전쟁에 관련된 인물만 2차대전 인물열전 재생목록에 분류해놓은 것이 20명이 넘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잘 모르거나 알아도 깊게 알지 못하는 인물이 많네요.

    • @user-sc9bz3cb6y
      @user-sc9bz3cb6y Před 2 lety +1

      @@만물상자TV전쟁의신 롬멜 군사적 지휘능력 재능 할약 인품 성인군자
      다른 지휘관 명장들은 전부 인품 잔혹성 호불 호가 갈리는데 특희 발터모델 인간적인 면이너무 씁쓸한데 ?

  • @jsgrandpa9878
    @jsgrandpa9878 Před 2 lety +4

    귀한영상 감사 합니다

  • @user-ge5vt1cv6s
    @user-ge5vt1cv6s Před 2 lety +5

    오늘도 좋은 정보감사드립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user-ge5vt1cv6s
      @user-ge5vt1cv6s Před 2 lety +1

      다음에는 망국의 한 자유폴란드군 애기도 해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40만명 넘는 병력을 투입하고도 버림받은 전후 대접을 못받은 군대에 대해서...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user-ge5vt1cv6s의견 감사드립니다. 자유폴란드군의 활약은 미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확실히 기억납니다. 몽고메리가 자유 폴란드군에 대해 한말. "우리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줬는데 그들을 언제까지 놀게 할건가? 라는 말이요.

  • @user-jt8xr6th8i
    @user-jt8xr6th8i Před 2 lety +2

    만물상자tv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귀한영상 잘보고 갑니다

  • @user-ph4ke1dj7y
    @user-ph4ke1dj7y Před rokem +1

    지금까지 영상 계속 보면서 이 영상을 보니까
    더욱 재미있습니다. 재미만 있는게 아니라
    보이는게 더 많아졌다 할까요.
    선생님의 소중하고 정성스런 영상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lamoking647
    @lamoking647 Před 2 lety +7

    동부전선에서 활약한 단 2개의 SS사단이
    있었다면,좀더 멋진 일화가 만들어질수 있었을거 같은데
    이거는 아쉽네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5

      좋은 소감 감사드립니다. 오버로드작전 관련 자료를 충분히 조사한 후 컨텐츠 제작이 되었으며 연합군 상륙지점이 어디가 될지 모르기에 소규모라도 기갑부대를 해안 방어부대와 함께 두자는 롬멜의 전략과 롬멜의 말대로 되었다면 어찌되었을지 그리고 히틀러 늦잠 전설에 대한 명확한 결론, 수많은 영화, 게임에서 보듯이 왜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독일이 자랑하는 기갑부대가 현장에 오질 못했는지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 이해되실 것입니다.

  • @jsgrandpa9878
    @jsgrandpa9878 Před 2 lety +5

    독일과 연합군싸움 속에누 참으로 비하인드스토리가 많군요ㅡ점점 재미를 더해갑니다

  • @user-ov4oz8pz7t
    @user-ov4oz8pz7t Před rokem +1

    오늘도 잘보고갑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운영자님 ^^❤❤❤❤❤❤❤

  • @goldeneagle3218
    @goldeneagle3218 Před 2 lety +12

    롬멜 장군은 압도적인 공군력으로 전선을 지배하는 미,영군의 전술과 실력을 누구보다도 직접 체험한 장군 입니다. 다른 독일군 장군들은 롬멜 장군의 전략 과 전술을 존중 했어야 했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네. 그렇죠. 1944년 6월, 당시 유럽본토에 연합군이 상륙하기 전에 롬멜 외에 영미 연합군과 붙어본 장군은 케셀링 원수 정도 외에는 전무했죠.

    • @goldeneagle3218
      @goldeneagle3218 Před 2 lety +2

      @@만물상자TV전쟁의신(Albert Kesseling) 앨버트 케셀링 공군 원수는 아프리카 전선 부터 이탈리아 전선까지 경험 하면서 미영 공군력의 파괴력을 잘 알고있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goldeneagle3218 롬멜이 케셀링보다 앞서는 것이 하나 더 있죠. 롬멜은 2차대전 거의 시작시점인 1940년 프랑스전부터 1944년까지 4년간 계속해서 영국, 미국하고만 싸워왔으니 케셀링보다 더 경험이 많았죠.

    • @goldeneagle3218
      @goldeneagle3218 Před 2 lety

      @@만물상자TV전쟁의신 놀라운건 공군 원수인 케셀링은 소수의 육군, 공수부대, 헤르만 게링 강화 기갑사단으로 이탈리아 지형을 교묘히 잘 이용해서 미,영, 폴란드, 인도, 뉴질랜드군에게 지속적으로 출혈을 시켰습니다. 압도적인 미,영 공군력을 피하면서......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goldeneagle3218 케셀링이 공군이면서도 발터모델처럼 방어전에 재능이 특출났지만 이태리 전선은 어디까지나 영미 연합군에게는 부차적 전장이었습니다. 연합군 최정예부대에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주전장이었지 이태리는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연합군은 노르망디에서 목숨걸고 덤빈 것이지 이태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예행연습 성격이었죠. 또한 이태리는 지형때문에 방어자인 독일에게 유리했던 면도 매우 컸습니다.

  • @kml565
    @kml565 Před 2 lety +10

    롬멜이 정말 뛰어난 장군이었군요 저걸 다 꿰뚫어 보다니. 그리고 16일 뒤인 22일에 소련군이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발트해, 카렐리아 등 전 전선에서 공세를 감행하고 독일은 완전히 나락으로 갔죠.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7

      독일로서는 운이 너무 안따라줬습니다. 날씨가 하도 오락가락 하는 통에 롬멜도 안심하고 부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독일로 갔고 21기갑사단이 유일하게 빨리 공격할 수 있었는데 21기갑사단장은 파리로 연인과 놀러 갔었다고 합니다. 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은 역시 노익장 룬트슈테트 뿐이었는데 노르망디 후방으로 공수부대가 강하하자 아무래도 이상하여 노르망디로 정예 기갑예비를 출동시키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전문을 날렸는데 그 전문을 뜬금없이 명령 출납업무만 하던 요들이 자체판단으로 보고도 안해버리니... 롬멜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던 상륙작전 개시일 첫날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롬멜이 옳았다는 겁니다. 자기계획대로 안하면 독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거라고 했는데 실제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44년 초만 하더라도 동부전선에서는 그럭저럭 막아내고 있었고 서부 유럽은 아직 독일차지였으니 전쟁에 패배까진 안하겠다 싶었겠지만 44년 6월이후 말씀대로 바그라티온 작전까지 동부전선에서 터지는 바람에 독일의 상황은 급전직하로 떨어지게 됩니다.

    • @kml565
      @kml565 Před 2 lety +3

      @@만물상자TV전쟁의신 경험자의 조언을 무시하면 안된다는게 저런 경우네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5

      @@kml565 2차대전 당시 오바하 해변의 미군을 묘사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를 보면 어떻습니까? 미군답지 않게 인해전술처럼 보병들이 돌격 앞으로 하잖습니까? 상륙작전 시작은 원래 그렇습니다. 미군은 분명히 독일이 전차가 있을 줄 알고 셔먼dd라는 수륙양용전차까지 준비했는데 상당수가 파도에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독일군 벙커에서 MG42 기관총이 불을 뿜죠. 이것이 영화나 게임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일지라도 판터나 티거가 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알보병 연합군 대량학살 되겠죠. 바로 이것이 롬멜의 주장이었습니다. 간단히 답이 나오죠.

  • @user-jb2ht8jm8t
    @user-jb2ht8jm8t Před 10 měsíci +2

    선따봉 하고 시청합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10 měsíci

      감사합니다.
      관련 컨텐츠로서 czcams.com/video/J1LnTOH_M1c/video.html 을 같이 보신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롬멜의 대응에 대해 샅샅이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 @user-uj3zs6wj5g
    @user-uj3zs6wj5g Před 14 dny +1

    결론은 운칠기삼이네

  • @user-wc7nl6xy5u
    @user-wc7nl6xy5u Před 2 lety +1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은 바빠 자주 못보네요. 조언 하나 하면, 영상 엔딩에 추천영상 뒤에 노랑,검정 바탕들은 그냥 빼는 게 자연스럽고 이쁠 것 같네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바쁘신데도 관심갖고 봐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좋은 피드백도 감사합니다!

  • @goldeneagle3218
    @goldeneagle3218 Před 2 lety +5

    슈베팬 장군의 팬저 전술은 독일 공군이 제공권을 잃지 않은 전제 하에서 가능 했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맞는 말씀입니다. 제공권이 확보되어야 파리 근교에 갖다둔 기갑부대가 이동할 수 있겠죠.

  • @dimmorashuvant3784
    @dimmorashuvant3784 Před 2 lety +7

    그 21사단의 차량들 보면 가관인게 4호 D형 단포신(훈련용) 호치키스전차 개조 자주포, 마르더, 포병차량, 로켓발사차량, 소뮤아중형전차, UE경장갑차, 소련경전차(내가 알기론 t-36) 등등 독일군 기갑차량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하찮은 놈들만 있음,,,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4

      좋은의견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노르망디 상륙관련 영화나 게임을 할 때 항상 독일기갑부대는 나타나지 않았죠. 바다에서 들어오는 연합군조차 수륙양용셔먼 DD까지 끌고 오는데 왜 육지에 있는 독일군은 본인들이 자랑하는 탱크를 1대도 끌고오질 못했는지가 이 영상을 보시면 명쾌하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히틀러가 오후 4시에 일어나자마자 기갑교도사단과 12 SS를 당장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4시도 이미 늦은시간인데 그마저도 움직이질 못했습니다. 레지스탕스가 철도를 다 파괴해버렸거든요. 그래서 자력으로라도 이동하려고 했는데 자력으로 이동하면서 너무나 전력손실이 컸습니다. 롬멜은 그렇기 때문에 소규모라도 기갑부대를 쫙 해변에 깔아놓자고 했던 것입니다.

    • @user-awesome_oroi
      @user-awesome_oroi Před 2 lety

      오호~ 백두산부대

  • @user-sh8ut6rd4o
    @user-sh8ut6rd4o Před rokem

    그동안 이해 할 수 없었던 것을 여기에서 알고 갑니다

  • @SsoriM
    @SsoriM Před rokem +3

    16:20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군요 ㅋㅋㅋㅋㅋ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라이언 일병을 봐도 알 수 있죠. 마지막 티거 씬 직전, 밀러 대위가 부하들에게 독일군 탱크는 반드시 올거야. 라고 말하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만약 롬멜의 계획대로 됐다면 밀러 대위 일행은 아마 상륙하자마자 독일 탱크에 의해 몰살을 당했을 것입니다.

  • @dda176
    @dda176 Před 10 měsíci +3

    독일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진않지만 개인적으론 과연 저 히틀러유겐트 사단과 교도사단 둘 중 하나라도 움직였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결과가 어쩌면 몽고메리의 망작처럼 되었을지도...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10 měsíci

      당시 노르망디에 있었던 가장 강력했던 부대가 바로 기갑교도사단과 12SS 히틀러 유겐트였습니다.
      두 부대가 적시에 해안으로 갔다면 아니 아예 해안에 배치되어 있었다면 연합군은 엄청난 피해를 봤을 것입니다.
      czcams.com/video/J1LnTOH_M1c/video.html (롬멜은 언제나 옳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의 마지막 승리) 를 관련 컨텐츠로서 추천합니다.
      오마하 비치에서 독소전에서 경험많은 알보병에게도 어려움을 겪었던 미군.
      만약 이들이 기갑부대였다면 연합군은 상륙에 실패했을 것입니다.

  • @user-kz1sv1lv8e
    @user-kz1sv1lv8e Před 29 dny +1

    10:05 SS사단 하나정도는 롬멜한테 줘야지 너무 밸런스붕괴아닌가여 ㅋㅋ 근데 아무리 새벽에자도 오후4시 기상이 가능한가 ㄷㄷ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9 dny

      SS기갑사단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히틀러의 명령 밖에 없었습니다.
      히틀러은 주로 야간에 업무를 봤습니다.

  • @user-hk9gr7sx5h
    @user-hk9gr7sx5h Před 2 lety +4

    최고의 분석가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감사합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방어를 위한 독일의 전략과 실제 벌어지는 상황을 전문적이지만 많은 자료를 통해 이해가 확 되도록 설명드렸습니다.,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2 lety

      롬멜전략은 이미 몇 수 앞을 내다보고 계산된 전략적 전차사단 베치였습니다.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2 lety

      세계최초의 수륙양용전차는 2차 대전 당시 독일 판처3호 돌격포 중 에서도 강과 바다에서 상륙작전에 용이하도록한 수륙양용 돌격포가 현 전세계 수륙양용전차의 최초의 기본 모델입니다. 연합군보다 가장 진보하고 앞선 디자인입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pedrogim6952 롬멜의 말대로 기갑부대를 해안 가까이에 배치했다면 오바하 비치에서 미군은 4배 이상의 희생을 치뤄야 했을 것입니다. 그 희생을 치룬다고 해도 상륙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만약 연합군이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면 아마도 아이젠하워는 상륙작전을 취소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롬멜이 노렸던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연합군이 상륙을 할 때 최대한 피해를 줘서 연합군이 먼저 평화협정 제의를 하게 하겠다는 계획말입니다.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2 lety

      @@만물상자TV전쟁의신 롬멜의 전략은 연합군을 바다로 되쓸어처넣을 계획이었어요.
      만약 그대로 했었다면, 궤멸상태가 되고 독일이 후방을 한층더 튼튼하게 업그래이드 한 다음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정비하여, 소련군의 바그라치온 작전을 상쇄하여, 포위섬멸시킬 공세를 취하는 시간을 벌었을겁니다. 여기서 좀더 생각하면, 전쟁이 1~2년정도 더 길어졌을겁니다.
      오버로드 작전을 위해 연합군이 4년의 시간을 필요로하며, 이 4년의 시간은 독소전쟁으로 독일군의 막강한 전투력을 지닌 군사력이 어느정도 삭감되리라고 계산한 서방 연합군 합참의 전략적 계산이었을 겁니다. 소련군역시 바그라치온작전실행에 큰 차질이 생겼을 것이며,
      기동방어전을 펼치며,
      후퇴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느라 극심한 병력손실을 입고 지칠대로 지친 소련군에게는 전전선에서 독일군의 역공으로 포위될 위험성이 존재했으며, 병력과 전투장비와 부품, 탄약, 연료, 식량등등의 군수전략물자를 제보충 할 시간도 없었으며, 병참보급선이 길어저
      자칮 독일군이 그길어진 병참보급선의 공백을 끊어버리고 포위해버리면 바투틴과 주코프가 이끌던 소련군은 대군이 전멸당할 위기 놓여 진격상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 4년이라는 시간은 그동안 서방 연합군이 훈련시켜놓은 서방 연합군의 병력이 세상에서 가장 긴 하루에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을 위한 해군전단과 육군과 해병대 상륙작전 실행 몇시간전 투하된 공정대 사단이 일거에 포위 섬멸될 가능성이 메우컸으며, 미,영국등 서방 연합군과 소련군 장성들
      적국인 독일의 장성들 모두 아이젠하워 이 자가 완전히 미친거 아닌가? 이 작전은 적이 보아도 무모하리 만큼 도박적이라고 판단하여, 아이젠하워가 실패하면 군법으로 총살형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하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던적이 실화로 있었으니 이 작전을 입안하고 총괄 지휘하였던 서방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합참모장 아이젠하워 또한 말 그대로 사형인 총살형을 받았을겁니다.

  • @user-ii4ji8sh3s
    @user-ii4ji8sh3s Před rokem +1

    군 군단 사단급 병력은 기갑과 보병으로 나눈다면 얼마정도 규모인가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독일군 편제가 참으로 특이하게도 현재의 한국군과 규모가 비슷합니다.
      무슨말이냐면 독일군 사단과 소련군 사단은 같은 사단이지만 독일군이 훨씬 크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국군도 마찬가집니다
      1944년 기준으로 독일 보병사단은 인원이 11,000명 정도이며 기갑사단은 전차 110대 정도입니다.
      이것이 1개 보병사단 또는 기갑사단이며 이런 사단이 최소 3개 이상 모인 것이 군단이고 이런 군단이 3개 이상 모인 것이 기갑군 또는 1군, 2군 ,3군으로 불리는 군급 부대가 되는 것이죠.

    • @user-ii4ji8sh3s
      @user-ii4ji8sh3s Před rokem

      @@만물상자TV전쟁의신 감사합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 @user-du1we1no2i
    @user-du1we1no2i Před 2 lety +2

    작은 전투 승리에만 흥분하고 큰 전략의 대세는 관심도 없고 아예 볼줄 모르던 히틀러

  • @No_war_let_me_peace
    @No_war_let_me_peace Před 2 lety +6

    어이가 털리는건 저런 유능한 롬멜을 암살미수 연루 되었다고 히틀러가 반 강제로 자살시킨거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아돌프 히틀러의 뇌구조를 알면 어이없는 의문이 조금은 풀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매우 자존심이 강했습니다. 자기가 구워삶아놓아 주축국이 되기로 했던 유고에서 정권이 뒤집어지자 독소전도 미루고 유고를 공격했죠. (czcams.com/video/EVeeorgx9jw/video.html) 분노 때문에 일으킨 유고슬라비아 침공, (czcams.com/video/dF52u-pwFMg/video.html) 롬멜 마지막 3개월의 비밀 등을 보시면 히틀러가 분노하면 이성을 잃는다는 것을 아실 수 있고 자존심이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라는 것도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자기가 자살을 강요 해 놓고 짐짓 모르는 척 롬멜 부인에게 위로 전화까지 한 사람입니다.

  • @user-ew5uk1do4u
    @user-ew5uk1do4u Před 2 lety +4

    뭐.. 롬멜이 하자는 대로 해도 며칠간은 독일군이 우세했겠지만.. 제공권 상실로 인한 문제와 함포 사격으로 인한 문제로 정말 순간적인 우세 정도로 바뀌었을 것이고, 며칠이 지난 다음에는 똑같이 진행되었을 겁니다. 희생을 각오하더라도 바다로 밀어낼 정도의 전력이 노르망디 앞에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단순 지연시킬 정도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와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뿌리깊은 나무님이 말씀하신대로 시간이 지나면 마치 해일에 저항하는 약한 몸짓처럼 독일은 결국은 패퇴하게 될 거라는 것은 제가 본 자료에도 나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롬멜이 기대했던 것은 이런거 같습니다. 오마하 비치에서 미군의 희생이 하도 크니까 아이젠하워는 순간 작전 취소까지 생각을 했었다고 합니다. 만약 롬멜말대로 기갑부대를 해안에 깔아뒀다면 탱크 1대도 없었는데도 희생이 컸던 미군에게 더 큰 희생이 있었을 것이고 연합군 지휘부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 가능성을 노렸던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user-ew5uk1do4u
      @user-ew5uk1do4u Před 2 lety +3

      @@만물상자TV전쟁의신 네 만약 거의 전멸했다면 프랑스 전역에서 상륙하는 작전 대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쪽에서 올라가는 작전으로 대체했을 것이고 좀 더 시간이 걸릴 뿐이지 .. 그리고 이미 다른 해변가에서는 문제없이 상륙했기에 교두보가 확보되었고 정말 아주 최상의 결과를 정해두고 봐도 44년 제공권이 상실된 지점에선.. 시간을 늦추는 이외에는 별 의미가 없을듯합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user-ew5uk1do4u 그렇죠. 어택+땅 찍어도 이길 수 있는 물량을 가진 연합군의 대세를 거스리기는 불가능하죠. 단지 막대한 희생을 강요하여 민주주의 국가들인 연합국이 전쟁회의론에 빠지게 하는 방법 외엔 아무리 좋은 전략도 소용이 없었죠.

    • @hawk8873
      @hawk8873 Před 2 lety

      @@user-ew5uk1do4u /그렇죠, 4개 주요 상륙지 중 오마하 해변만 악전고투였지 나머지는 거의 무혈 입성에 가깝게 상륙에 성공하고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설령 탱크를 조기 투입하였더라도 한개의 교두보만 확보해도 어떻게든 교두보를 유지, 확대 시킬 수 있긴 했습니다. 게다가 영국군 상륙지에는 다행히 셔먼 DD전차들도 다수 상륙에 성공했기 때문에 기갑 전력도 꽤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 @user-cr9zq8lg1p
    @user-cr9zq8lg1p Před 2 lety +8

    노르망디 상륙잔적은 연합군의 운이 정말 좋았군요. 하나의 요소라도 어긋났으면 큰 피해를 봤을듯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4

      이 영상을 통해 말로만 듣던 롬멜의 방어 계획에 대해 정말로 자세하게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어디로 올지 모르니까 방어부대와 적은 기갑부대라 할지라도 같이 배치하자는 롬멜의 계획. 우리가 영화나 게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렇게 했다면 연합군은 절대로 상륙이 성공한다고 장담하기 어려웠습니다. 탱크지원 없이 MG42 2정에 의해서 천명이 넘게 미군 사장자가 난 것을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 @user-dq6tf9ms6q
    @user-dq6tf9ms6q Před 2 lety +2

    제 짧은 생각에는 독일이 이미 오래전부터 상륙작전을 예상허면서도 이런 역사적인 엄청난 규모의 상륙작전이 영국에서 개시될 시점까지도 상륙지점도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는게 패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ㅎㅎ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그 말씀이 정답이네요. 연합군은 호시탐탐 영국에서 대량으로 물량을 확보하며 유럽을 해방시키려고 준비중이었고 독일도 어느정도 다 눈치를 채고 있으면서도 우왕좌왕했죠. 그나마 히틀러가 행동으로 옮긴 것은 동부전선에서 싸우던 SS기갑부대를 서부전선으로 옮겨다놓고 기갑교도사단이라는 최정예부대를 서부전선에 배치한 것이었죠. 히틀러도 나름 준비는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기갑부대를 누가 틀어쥘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죠. 롬멜은 히틀러의 친분을 이용해서 자기가 다 가져가려고 하고 룬트슈테트와 에버바흐도 자기쪽이 다 가져가려고 논쟁하게 되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히틀러는 1944년 6월 이 시점에서 확실하게 누구의 손도 들어주질 않고 양측을 다 만족시키려고 똑같이 의견을 반영한다고 배려(?)를 하게 되는데 완전한 패착이었죠. 거기다가 요들의 어이없는 짓까지... 사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만 봐도 나오는데요. 부하들이 톰 행크스에게 묻죠. 그런데 왜 독일군 탱크는 안오는거죠? 그러자 톰 행크스가 독일군 탱크는 반드시 온다!라고 대답하죠. 이 컨텐츠를 보신다면 왜 독일군 탱크가 그렇게 늦게 왔는지에 대한 답을 아실 것입니다!

  • @user-is1xk9zv5k
    @user-is1xk9zv5k Před 2 lety +4

    그런데 독일군 기갑부대를 해안에 배치하면, 연합군 함포사격에 초토화되지 않을까요? 그냥 제 짧은 생각입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4

      아. 너무 좋은 질문을 해주셨네요. 말씀하신것처럼 해안가까이에 두면 함포사격에 아작이 난다. 라는 의견이 당시 독일 지휘부에 있었습니다. 특히 안지오 작전, 시실리 등 이태리 전역에서 그런일이 있었거든요. 본 컨텐츠는 귀한 해외 사료를 참조하여 제작된 팩트입니다. 15:10에 이미 질문하신 것에 대한 답이 있는데요. 공교롭게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악천후가 계속되던 시기에 잠깐 날씨가 개었을 떄 이뤄졌습니다. 작전도 몇번이나 취소와 개시가 반복되다가 막판에 실시가 되었기 때문에 연합군 해군의 함포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롬멜 말대로 정예 기갑사단들이 해안가까이에 있었다면 연합군 피해가 엄청났을 것입니다.

    • @user-zd2gi4ux4l
      @user-zd2gi4ux4l Před 10 měsíci

      오,
      제대로 핵심을 지적하시는 분이네요^^
      다들 그저 남이 이렇다, 저렇다 하면 그런 줄만 알거든요.
      롬멜 주장대로 했으면 더 개박살 났습니다.
      시칠리아, 살레르노, 안지오에서 이미 독일이 자랑하던 독일 기갑부대가 함포 포격만으로 개박살 났었고,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했다가,
      우크라이나 포격으로 개박살 나기도 했었죠.
      롬멜 주장대로 기갑부대를 전진 배치했으면,
      상륙작전 이전에,
      이미 어마어마한 폭격으로 남아가는 것이 없는 지경이 됩니다.
      설령,
      기갑 사단 10개가 다 살아 있다고 해도,
      대낮에 기갑부대가 밖으로 돌격하면,
      그냥 개박살 납니다.
      함포 포격도 무지막지 하지만,
      하늘에는 1만대가 넘는 대규모 항공기들이 먹이를 노리고 있었지요.
      실제로 당시 제일 뻘짓을 한 것은 미군이었습니다.
      첫 날,
      오마하 해변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냥 무혈입성했고,
      바로 그대로 쾌속 진격을 해서 빌레 보카쥬를 돌파하고 프랑스 깊숙이 진격할 수 있었는데,
      "상륙하느라 수고했다.
      적의 반격은 없을 테니까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영국에서 교대 병력이 오면 인수인계하고 고향으로 가서 푹 쉬어라!"
      요런 병신 짓거리를 하면서,
      독일군이 빌레 보카쥬에 강력한 방어선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을 줬었죠.
      첫 날 상륙 병력만 약 16만 명입니다!
      빌레 보카쥬에서 시간을 번 독일군은,
      최정예 최강의 SS 기갑군을 총동원해서,
      독일에서 가장 최강이라는 SS 1 기갑 사단,
      SS 2 기갑사단을 선두로,
      "뤼티히 작전"의 시작인 "모르텡 반격"을 했었지요.
      독일이 자랑하는 최강의 전차라는 티거 그냥 개박살 났습니다.
      독일이 자랑하는 최정예 SS 기갑군단 그냥 하루만에 증발해버렸지요.
      200여대의 최강의 티거 전차들을 앞세워서 밖으로 나가자 마자,
      하늘에서 마구 쏟아져 내려오는 전폭기에,
      그냥,
      160여 대의 탱크가 단 하루만에 사라졌어요.
      이게 200여대 였으니 저 정도지,
      2000여 대였다면 1600대,
      있지도 않은 2만 여대였다면,
      16000여대가 사라지는 거죠.
      롬멜의 주장대로 했으면,
      빌레 보카쥬에서 버틸수 있는 병력마저 다 날려먹고,
      프랑스 전체를 훨씬 일찍 날려 먹었습니다.

  • @libertybellliberty6096
    @libertybellliberty6096 Před rokem +2

    당시 동부전선에서 모든 전력을 소모한 독일은 공군력도 이미 전멸된거나 다름 없을 정도로 소진되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동원된 연합군의 공군력과 물자 수송 능력을 감안한다면 공군 지원 없는 독일 기갑사단이 노르망디에 신속하게 도착 공격해서 보병으로 상륙하는 연합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을지도 모르나 결국 연합군의 공군에게 괴멸될 가능성이 높고 독일이 승리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을 겁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1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에르빈 롬멜의 목적은 어짜피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연합군에게 최대한 많은 인명피해를 가한 후 평화협정을 맺어 연합국과 무승부라도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컨텐츠를 제작한 바 있었습니다.진주만 공습을 계획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그리고 롬멜, 만슈타인의 기막힌 진짜 목적은? czcams.com/video/4Vx6BdDesYI/video.html
      롬멜도 만슈타인도 야마모토 이소로쿠도 어짜피 자국이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알면서도 싸웠던 것에 패전국 장군의 비애가 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둔 롬멜만 놓고 말하면 롬멜은 연합군에게 최대한 타격을 가하는 것이 목표였지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 @jongwookchoi7582
    @jongwookchoi7582 Před 2 lety +3

    롬멜의 말대로 했다해도 어차피 독일의 패망은 피할수 없었다고 하는데.... 대세가 기운것을 롬멜이 몰랐을까.... 어차피 맞을꺼 한대라도 더 패고 맞자...혹은 어차피 질꺼 덜 맞고 지자... 잘되면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조건으로 임할수 있지 않겠느냐.... 최선의 승리가 어차피 불가능하다면 최선의 패배를 택하려는 전략이 아니었을지...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지금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채널 재생목록에 롬멜에 대한 재생목록이 있는데요. 이중에서 (czcams.com/video/vKoAncIuMbc/video.html) 롬멜 완전정복 1부와 2부 (czcams.com/video/dF52u-pwFMg/video.html)를 보셔도 말씀하신 이야기를 했는데요. 다시 말씀드리자면 1944년 초, 롬멜은 B집단군 사령관이 됩니다. 바로 노르망디 지역을 방어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 당시 롬멜은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하는데요. 이미 히틀러에 회의감도 갖고 있었고 나치정권의 유대인 범죄도 알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도 연합군 상륙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해변에 지뢰를 깔고 장애물을 설치하고 기갑부대를 끌어오기 위해 노력한 것이죠.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히틀러에게 충성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서부에서 연합군 상륙만 막아낼 수 있다면 최소한 민주국가인 미국, 영국과 평화협정이라도 체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실제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 @jongwookchoi7582
      @jongwookchoi7582 Před 2 lety +1

      @@만물상자TV전쟁의신 미천한 댓글에 직접 상세한 댓글 달아주시니 영광입니다.
      님께서 올려주신 2차대전 독일군에 관한 컨텐츠들 너무 재밌게 잘 보고있습니다. 퇴근 후의 큰 낙이네요.

    • @PurpleCat9794
      @PurpleCat9794 Před rokem

      @@jongwookchoi7582 "퇴근 후의 큰 낙" 정말 맞습니다. "최선의 패배" 역시 롬멜 입니다. 요번주 엘알라메인 전투 80주년 기념일입니다. 진정한 용사 롬멜을 기억합니다.

  • @user-xv4ui1pp2f
    @user-xv4ui1pp2f Před rokem +2

    롬멜이 그렇게 말했어도.
    작전상 아네생일 핑계로 작전지역을 떠난것 아닐까요.
    연합군에 기회를 주어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하여.
    이길수없는 전쟁임은 다 아는 사길이니까.ㅋ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2

      아....유투브님의 뇌피셜 재미있네요. 그런데 역사적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롬멜이 노르망디를 방어하는 B집단군 사령관이 된 것이 1944년 1월입니다. 5개월 후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터졌죠. 그런데 롬멜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에는 최선을 다해서 연합군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터진 후에는 "아 내가 바보였어" 하며 미친듯이 프랑스로 복귀하게 됩니다. 때문에 일부러 자리를 피했던 것은 아닙니다. 롬멜조차도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에는 독일이 연합군을 막아낼거라고 믿었습니다! 제 채널 재생목록 중 (사막의 여우 롬멜의 모든 것) 재생목록에 롬멜에 대한 충실한 컨텐츠가 많습니다. 또한 롬멜은 정말로 히틀러를 죽이려 했을까? (czcams.com/video/6rJi7M6HtJ0/video.html) 라는 영상도 추천합니다.

    • @PurpleCat9794
      @PurpleCat9794 Před rokem +4

      아 진짜 보니까 부인의 생일이 그때가 아니더라고요. 한달이상 차이가 나더라고요. 정말 왜 자리를 비웠을까요?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javaxerjack
    @javaxerjack Před 2 lety +1

    그런데, 이건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누가 지휘했든 상황이 변했을까 하는 점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모든 독일 수뇌부가 노르망디만은 아니라고 판단했고 어느 군사 조직이든 그렇듯이 침공 발생 직후에 대한 시간벌기 대응은 계획을 짜 두었을 겁니다. 이건 누가 지휘를 하든 사전에 짜여진 계획으로 움직이는 것이니 누가 지휘하느냐는 상관없었겠죠. 반대로 침공이 확정된 다음에 대한 계획도 잡혀 있었을 터인데 그것도 제대로 작동 안되었단 이야기입니다. 지휘관이 위대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많은 부대를 일일이 명령으로 움직이게 할순 없고 사전에 짜여진 계획 중 어느 시나리오에 맞춰 움직이느냐 일 터인데 그게 안되었다면 그건 변명할 사항이 없어 보이네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최소한 영미 연합군하고 교전 경험이 그토록 많았던 롬멜의 의견을 존중하여 해안가까이에 기갑부대만 배치했더라도 연합군의 희생은 몇배로 커졌을 것입니다. 롬멜의 말이 맞다는 한가지 일화가 있는데 롬멜과 치열하게 논쟁했던 슈베펜베르크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롬멜에게 사과한다는 사과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롬멜원수님의 말을 듣지 않았던 자신의 옹고집을 자책하는 내용과 함께 말입니다.

  • @goldeneagle3218
    @goldeneagle3218 Před 2 lety +4

    인종적 편견을 보면 유럽이안 백인이 16세가 넘으면 성인과 거의 같습니다. 성숙함 과 육체적 능력이 타의 인종 보다 뛰어 납니다. 킹타이거 승무원으로 U-boat 잠수함 승무원으로 보통 사병 과 동일한 performance를 합니다. 죄송하지만, 6.25 나 태평양 전쟁을 보면 동양인 소년은 전선에서의 성숙함 과 피지컬이 받쳐주지 못 합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이것은 맞는 말 같습니다. 쿠르트 마이어가 12SS 히틀러 유겐트를 데리고 실전에 나섰을 때 걱정도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실전 경험도 없는 15-18세 소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영국군을 상대하면서 보니 이 소년들이 정말로 겁이 하나도 없이 사납게 싸우는 것을 보고 역시 히틀러 유겐트 이름값을 한다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 @goldeneagle3218
      @goldeneagle3218 Před 2 lety +2

      @@만물상자TV전쟁의신 유전적으로 호전적인 독일 게르만이 갖고 있는 특성을 무시 할수가 없습니다. 독일은 역사적으로 사방이 적 이였습니다. 전쟁은 그들의 삶 이였습니다. 히틀러의 선동 민으로 2차대전이 터진게 아닙니다. 호전적인 피가 있습니다.

  • @lee-qn3xh
    @lee-qn3xh Před 11 měsíci +1

    🎉😮😊😅😂❤

  • @user-un2le9od5h
    @user-un2le9od5h Před rokem +2

    삼면으로 포위되어서 조여지고 있는데 휴가갈거 다가고 수면 취할거 다취하고 ... ( 오후 4시에 일어나...?) 여자는 집에서 살림해야되니 공장에서 일하지말고.........우리나라도 이러려나....

  • @user-vv9ml5cs2w
    @user-vv9ml5cs2w Před rokem +1

    패전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패전에는 언제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 전쟁역사의 교훈입니다.

  • @user-hk9gr7sx5h
    @user-hk9gr7sx5h Před 2 lety +3

    님께서는 나무를 보지않고 숲을 보십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5

      다른 영상처럼 말로만 때우고 넘어가는 컨텐츠가 아니라 명확한 설명과 이해가 될 수 있도록 부가 자료를 활용하여 컨텐츠를 제작하기 때문에 제작에 다른 영상보다 2배는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것 같습니다. 시청자들의 성원이 없다면 못할 것 같습니다.

  •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Před 2 lety +5

    요들은 참모였지만 참 뛰어난 군인이었죠. 2차대전 대부분의 독일군 작전에 그가 관여돼 있고...그가 모신 상관에게 마지막까지 충실했고...회고록에서 히틀러에 대한
    비난을 퍼부은 만쉬타인과는 달리...구구한 변명을 하지 않은 남자!!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5

      히틀러 탓 안하고 당당하게 죽은 사람은 카이텔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영상에서 언급한 요들의 실책에 대한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해외 자료에는 내용이 잘 나와 있습니다. 동료 장군들이 요들때문에 우리는 1944.6.6 하루가 통째로 날아갔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 @user-yu1qn4ue4n
    @user-yu1qn4ue4n Před 2 lety +4

    함선에서 하선 하여 그 순간에 일제히 제압하여야 한다 이것이 상책인데 과연 그럴까요 이미 패색 짙은 상황에 물자도 병력도 부족한데 어떻게 영미 연합국을 압도하여 수비를 성공하겠습니까 설사 우주 방어 발터 모델이 온다고 하여도 실패입니다 그래서 대성양 방어선은 어느 한 곳만 구멍이 생겨도 뚫립니다 과거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침공했듯이 공백이 납니다 무조건 인원도 적지만 화력 약한 독일이 어떻게 수비를 합니까 물량과 최강 전략전술로 압도하는 영미 연합국 1944 6 6 빅토리 디데이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3

      천조국 님은 롬멜과 논쟁을 벌였던 서부기갑집단 슈베벤베르크 대장과 같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네요. 롬멜도 100프로 성공한다고 장담은 못했지만 소량이라고 기갑부대를 해안에 깔아놓는 것이 그나마 연합군이 맨몸으로 상륙할때 타격을 가해서 상륙작전 진행을 포기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Před 2 lety +4

    무대는 많이 달랐지만...1950년 9월 인천의 북한군 수비대가 가볍게 제압된 것도 미공군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런 저런 방법을 썼어도.. 독일군이 무시무시한 역할을 수행한 영미공군이
    온존하는 한...연합군의 역할을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의외로 북한군 수비대가 그 이후 13일간 압도적인 한미군을 상대로 악착같이 싸웠고...독일군이 8월 팔레즈에서
    큰 타격을 입을 때까지 노르망디일대가 혼전상태가 되었습니다. 독일군은 귀중한 기갑전력을 보존하여 두었다가 ..영미공군이 기상상태 등으로 활동할 수 없을 때를 포착, 결전을
    시도하는 편이 훨 나았습니다. 롬멜은 좁은 해안선방어에만 집착하는 완전히 사단장급의 사고를 했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어떤 수를 썼다해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해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오마하 비치 상륙 당시 미군의 희생자가 계속해서 늘어나자 아이젠하워 등 연합군 수뇌부에서는 순간이지만 아 접어야 하나? 라는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롬멜은 이것을 노린 것 같습니다. MG42 몇정으로 방어했는데도 그 정도 희생이었는데 판터나 티거가 존재했다면 더 희생자가 컸겠죠. 민주주의 국가인 영미 연합국은 막대한 희생자가 생길 경우 작전 전체를 틀어버릴 가능성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 @hawk8873
      @hawk8873 Před 2 lety +1

      상륙은 좁은 해안선, 일정 지정에 집중하여야 성공할 수 있고 그때 방어 가능한 교두보를 확보 하느냐, 마느냐로 작전 승패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상륙 초기, 상륙군이 제대로 된 교두보를 확보 할때까지가 반격을 가해 상륙을 거부할 수 있는 가장 적기이며 이 타이밍을 놓치면 사실 상륙 거부 작전은 실패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북괴군이 남침 개시후 꼴랑 3일만에 서울 점령을 한것에 비하면 인천 상륙작전 9.15이후 서울 탈환 9.28까지 무려 13일 동안 북괴군이 선방한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막강한 해공군의 지원 아래 화력 돌파전을 막기엔 역부족이였고 이와 같은 정면 공방전은 전력 차이대로 승패가 결정될 수 밖엔 없습니다.

    •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Před 2 lety

      @@hawk8873그간 만물상자님과 주로 얘기했는 데...새로운 고수가 나타나셨군요. 물론 북괴군 수비대가 한미연합군을 긴시간 저지할 수는 없었죠.
      그들이 빈약한 전력으로 13일간 버틴 효과는 다른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낙동강에서 많이 소모돼 거의 그로기상태가 된 북한군 주력 대부분이 중부와 동부쪽에서
      고스란히 북으로 탈출했거든요. 일부는 지리산으로 이동...전쟁내내 한국군을 피곤하게 했습니다.

    • @hawk8873
      @hawk8873 Před 2 lety

      @@user-tg2tn3ww3i/빈약하지는 않았고 당시 최용건 서울 방위 사령관 휘하에 3만 병력과 낙동강 전선으로 보내질 T34 대대 병력 30여대를 투입했으니 적은 병력은 아니였습니다. 이들이 바로 부천 소사 지구에서 미 해병대와 격전을 벌였던 것인데 일패도지 했었죠. 미군과 국군 화력이 훨씬 더 강력했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북괴군이 탈출한것은 맞지만 대부분 제대가 와해되어서 통일 직전 북괴군은 사분오열되었고 중공군이 파악하기엔 가용 병력이 꼴랑 1개 군단, 물자 대부분을 소실했기 때문에 초기 공세는 거의 대부분 중공군이 주도했어야 했습니다.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2 lety +4

    그걸 정확하게 알았다면 본국의 집에 있는 아내에게 편지에 급한 상황이라 어쩌면 내가 못갈 수 도 있소! 여보 사랑하고 미안해!!라고 적고 선물과 케이크를 부하를 시켜 대신 보냈을 수 있었을 것이 아닐까해요. 상황을 좀더 정확하게 예상가능했더면 말이지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4

      롬멜은 1944년 6월 6일 바로 그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할 것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노르망디로 상륙할 것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에리히 마르크스 장군만이 노르망디로 올 것이라는 사실과 그것이 6월 6일 이라는 것을 알았죠. 2차대전 인물열전 재생목록에 마르크스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czcams.com/video/ilfCoG1eVw4/video.html) 롬멜이 알았던 것은 연합군이 상륙하는 그 순간, 그들을 공격하는 것만이 막강한 연합군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가 연합군이 가장 약할 때이고 상륙을 저지할 유일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죠. 이것이 팩트입니다.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2 lety +1

      독일어로'Jugend'(유켄트는 청년,젊은이) 라는뜻이기도합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pedrogim6952 네. 그런 뜻이죠.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된 후 무려 1달이 넘도록 연합군을 노르망디에 잡아 둔 것은 12SS 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 덕이었습니다. 영국군은 이렇게 말했다죠. "저 히틀러의 애들은 그야말로 악마처럼 싸웠다" 라고요.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2 lety

      @@만물상자TV전쟁의신
      유켄트에서 학령기 지학 나이때 학생들을
      자원자(부모의 권유)들 모집과 입학하여 나치정권의 전투기계다운 면모를 갖추기위해 나치정권의 민간 준군사조직인 친위대 휘하에 소속되어 나치정권의 주입식 세뇌 교육의 영향도 컸다고 봅니다. 미래의 친위대 장교들이자 나치정권의 소년병들입니다.

  • @hawk8873
    @hawk8873 Před 2 lety +4

    롬멜의 주특기,,, 라고 버나드 몽고메리가 비꼬았었죠. 사실 그가 할 소린 아닌데, ㅋ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리 비우기. 엘 알라메인 전투 때도 공석이였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때도 다시 한번. 근데 사실은 롬멜은 북 아프리카에서 돌아와서 병 치료 하자마자부터 대서양 방벽과 서부 전선 방어를 총괄 책임하느라 동분서주 했었기 때문에 조금도 쉴틈이 없었고 딱 그 타이밍이 거센 비바람을 동반하는 폭우가 며칠 계속될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그 짬에 잠시 아내 생일 파티 참석을 위해 마실 간것인데 반대로 아이젠하워는 계속 악천후인데 6.6 하루 정도 날이 좀 나아질거란 예보 하나에 바로 작전을 개시하게 된것이 전장의 운명을 갈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죠.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던 기갑부대 해안배치 전략을 주장했던 롬멜. 그리고 롬멜도 에버바흐 기갑대장도 아닌 어중간한 판단을 한 히틀러. 그리고 지멋대로 판단하고 히틀러를 깨우지도 않았던 요들 작전부장.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 중요한 순간에 롬멜은 너무나 안일했습니다. 아내 생일이라니... 롬멜 그가 있었다면 히틀러 눈치 전혀 안보고 기갑교도사단을 당장 출동시켰을 것입니다. 그리고도 짤리지 않을 사람은 롬멜뿐이었고요. 흔히 우리가 히틀러가 낮잠 자느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대성공했다고 하지만 실제는 이렇게 복잡했던 것입니다!

  • @abcabc4219
    @abcabc4219 Před 2 lety +2

    정말 롬멜의 행동은 이해가 안되네요ㅋㅋㅋㅋ굳이 그 전시상황에서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독일을 가야했을까...본인에게 주어진 책무에 비해 너무 무책임한 행동을 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4

      제가 그래서 그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 장소와 시간을 모두 예상했던 사람은 오직 마르크스 군단장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롬멜이 모든 것을 다 예상했다라고 잘못 아는 사람이 많지만 롬멜 뿐 아니라 독일 장군 모두가 칼레로 패튼이 올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다만 롬멜은 독창적인 성격과 영국군과 싸워본 경험이 있기에 해안에 보병 부대만 지키게 하지말고 기갑부대를 조금씩 깔아 놓자는 변칙 전술을 제안했을 뿐입니다. 롬멜 말대로 했다면 연합군은 아마 더 많이 죽었겠죠. 그런데 롬멜의 진짜 대실수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 컨텐츠를 잘 보셨다면 독일은 꼬여도 보통 꼬인게 아니었습니다. 자리에 있던 사람은 룬트슈테트 뿐이었습니다. 롬멜이 해안 가장 가까이 빼낸 21기갑사단장도 파리에 애인보러 갔다고 합니다. 롬멜은 날씨가 하도 나쁘니까 악천후에 상륙을 안하겠지라고 방심하고 독일의 자기 집으로 가버린 겁니다. B집단군 사령관이 롬멜이었고 롬멜 담당지역이 노르망디입니다. 최고사령관이 연합군 상륙일에 자리를 비운 것이었죠.
      더 안타까운 것은 롬멜이 자리에만 있었어도 기갑부대 출동 바로 했습니다. 롬멜은 히틀러 허락 안받고 기갑부대를 출동시킬만한 위인이고 허락 안받았어도 안짤렸을 것입니다. 히틀러가 그때까지만 해도 총애했으니까요. 히틀러가 허락하던 안하던 무조건 저지르고 봤을 카리스마를 가진 유일한 사람이 자리를 비웠던 것입니다. 이번 컨텐츠를 통해 히틀러가 낮잠 자느라 독일이 제 실력 발휘를 못했다. 역시 돌아이다! 이것은 확실히 틀렸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 @hawk8873
      @hawk8873 Před 2 lety

      @@만물상자TV전쟁의신 /그러나 그나마 노르망디 쪽을 의심했던 사람은 히틀러와 롬멜이였고 실제 그가 대서양 방벽 공사를 했을때 네델란드 남부 해안부터 노르망디까지 거대한 해안 방어선 공사를 하면서 다른 지역 방어 설비 공사는 만족했지만 계속 노르망디 쪽은 불만을 표하고 늘 불안해 했다곤 합니다. 그래서 정확히 예측은 못했더라도 21기갑사단을 노르망디 근접 배치를 하는 결정을 한 것이죠. 적어도 전혀 노르망디 쪽을 생각 안한 건 아니였습니다.

  • @user-op1ph4wt9w
    @user-op1ph4wt9w Před rokem +1

    목소리가 구수하기 그지 없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감사드립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영화를 보면 상륙 첫날, 독일군의 자랑, 기갑부대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컨텐츠는 그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까지 독일군 내에서 연합군과 가장 많이 싸워본 사람은 롬멜이었습니다.
      그는 연합군 공격이 시작되면 벌떼처럼 날아다니는 연합군 공군기 때문에 독일군은 이동 자체를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해안 가까이에 전차를 갖다놓자는 그의 계획은 채택되지 않았고 그나마 해안에 있던 기갑부대도 롬멜이 없는 바람에 출동시기를 놓치게 됩니다.

  • @kingmaker0101
    @kingmaker0101 Před rokem +1

    롬멜 작전대로 해서 노르망디 상륙 막고 곧 발키리 작전이 성공해서 히틀러를 암살했으면 연합국에 항복 했을거고 그랬으면 수십만명 생명은 아꼈을텐데.....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롬멜은 최선을 다해 연합군을 저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해안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한 것은 모두 롬멜의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된 후 롬멜은 도저히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롬멜은 히틀러를 몰아내서라도 조국 독일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롬멜은 히틀러를 정말로 죽이려고 했을까? czcams.com/video/6rJi7M6HtJ0/video.html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kingmaker0101
      @kingmaker0101 Před rokem +1

      @@만물상자TV전쟁의신 저도 전쟁사에 관심 많아서 책도 나름 보고 했는데 귀중한 자료들을 많이 조사 하셨네요 구독하고 열심히 보겠습니다. 요 근래 2차대전 자료중에는 2차대전 인포그래픽이란 책이 정리도 잘되있고 많이 배웠습니다.

  • @user-pk9hi7sx5q
    @user-pk9hi7sx5q Před rokem +1

    탱크손실이. 우려되면 애초에 전쟁하지말구 집구석에 처박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