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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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역사 - 가왕열전 6 송창식
1947년~. 인천 출생
서울예고 중퇴 이후 말 그대로 풍찬노숙을 거쳐 쎄시봉 출연을 계기로 데뷔
70년대 전체를 관통한 유일한 스타 가수로 꼽을 수 있으며, 노래뿐만 아니라 연주와 작사, 작곡에서도 일가를 이룬 대중음악가
1. 이전 세대와 다른 정체성의 가수 등장: 하얀 손수건(조영호 사, Me T'aspro Mou Mantili, 1969년)
대학생인 듯 대학생 아닌 가수가 명문대생과 결성한 듀엣 트윈폴리오로 1968년 데뷔. 당초 쎄시봉 트리오를 기획했다가 트윈폴리오로. 포크라는 장르 이미지를 대표하는 가수이지만, 1970년대 한국 포크의 사회적 배경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개인적 배경. 그러나 서울예고 성악과 중퇴라는 배경은 범상치 않음. 2년이 안 되는 듀엣 활동 기간에 음반으로 발표한 곡 거의 전부가 외국 곡(번안 혹은 창작 가사)
2. 작사, 작곡, 연주까지 능란한 싱어송라이터(가족 필명을 쓴 몇 작품 외에는 대부분 본명): 피리 부는 사나이(송창식 사·곡, 1974년)
본명을 쓰는 가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가수 활동에 대한 자의식이 이전 세대와 달랐다는 것을 의미. 본명에서 더 나아가 작사·작곡은 물론 스스로 연주하며 노래하는, 가창 기술자가 아닌 작가로서의 의식을 지닌 싱어송라이터가 본격적으로 탄생. 1968년 한대수가 기점인 것으로 이야기됨. 음반 수록곡에서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1970년 뚜아에무아를 최초로 보아야 함. 이전에 김해송, 김용환 등에서 약간 보였던 싱어송라이터의 면모와 달리, 포크 시대에는 분명한 경향으로 정착. 따라서 이전 가왕들과 달리, ‘작품 세계’를 논해야 하는 가수
3. 청아하고 우수 어린 목소리의 사랑 노래(1971~73년): 창밖에는 비 오고요(이장희 사, 송창식 곡, 1971년)
1971년에 첫 솔로 음반. 몇 곡의 창작곡 수록. 범상치 않은 선율과 목소리. . 윤형주(티 없이 맑고 순수하며 때때로 명랑한 교회오빠 분위기)와 대비해 확실한 차별성을 가진 가수로 쌍벽을 이룸
4. 허허실실 인생관, 트로트의 실험을 통해 가수왕으로(1974~77년): 왜 불러(송창식 사·곡, 1975년)
첫 시기의 작품 경향이 한편으로 유지되면서(그리움, 그대 있음에 등), 송창식 특유의 세계관·인생관이 나타나기 시작. 우수와 슬픔을 넘어선 해학. 맨 처음 고백, 애들은 가라, 한 번쯤 등. 해학적 세계관과 결합하여 트로트 요소를 받아들임.
5. 트로트와 국악까지 소화한 대작을 향하여(1978~86년): 토함산(김현수 사, 송결 곡, 1978년)
: 앞서 본 경향의 노래들도 어느 정도 유지되면서잊읍시다, 한편으로 대작을 만드는 경향이 증가.
6. 마지막 신작인 1986년 앨범: 선운사(송창식 사·곡, 1986년)
7. 존재감 두드러진 창법: 가나다라(송창식 사·곡, 1980년)
송창식의 초기와 후기는 가창 방식이 천양지차. 1960년대 스탠더드팝과는 상당히 다른 가창 관습이 확립된 1970년대 포크. 조근조근 말하는 듯한 창법, 속삭이거나 중얼거리거나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듯한 창법, 맑고 순수한 소년 같은 목소리 등. 전반적으로 이런 큰 흐름 속에서 송창식의 목소리는 아주 맑으면서 큰 성량에 정확하면서도 느낌 풍부한 농음을 하는 가창으로 돋보였다. 독특한 비브라토와 어금니 깨무는 듯한 발음은 대중적 모창 대상일 정도로 독특한 창법이었고, 적지 않은 가수에게 영향을 주었다. 최백호, 정태춘 등. 마치 양희은 창법이 박은옥, 전영, 남궁옥분, 윤세원, 심지어 이수만 등으로 이어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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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역사 - 가왕열전 5편 최희준
zhlédnutí 229Před 19 hodinami
1936~2018년. 서울 출생 원래 본명이 최성준이지만, 개명해서 본명도 최희준으로 경복고, 서울대학교 법대 행정학과(55학번). 대학 재학 중 교내 축제에서 부른 노래로 주목을 받아 1959년 졸업 후 본격적인 가수 활동 시작. 미8군쇼에서 무대 활동을 하다가 1961년 비너스레코드에서 음반 데뷔 군복무로 인한 공백(1964년 2월 전역)이 있긴 했지만,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까지 톱 가수로 활약 1. 학사가수 대표주자: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손석우 사·곡, 1961년) 비너스레코드에서 데뷔한 학사가수의 아이콘, 최희준과 김상희 2. 미8군쇼: 내 사랑 쥬리안(손석우 사·곡, 1962년) 한국의 냇 킹 콜 3. 방송과 영화 주제가: 맨발의 청춘(유호 사, 이봉조 곡, 1964년) 196...
[뭐하니] 한일시민이 교류하는 이야기마당 l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
zhlédnutí 185Před dnem
안녕하세요, 펭PD입니다. 지난 7월 6일에는 오사카의 군군재판지원회(재한군인군속재판 요구실현을 지원하는 모임) 활동가 세 분이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찾아 자료를 기증해 주셨습니다. '한일 과거청산운동 아카이브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첫 자료 기증이기도 했는데요. 활동가 세 분뿐만 아니라 많은 한일 시민들이 박물관을 찾아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의 설명도 듣고, 질문을 주고받으며 교류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기록사진전은 7월 28일까지 관람하실 수 있으니 많은 방문 부탁드리고,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와 관심 부탁드려요!
대중가요의 역사 - 가왕열전 4편 이미자
zhlédnutí 458Před 14 dny
1941년~. 서울 출생 문성여고 재학 중 RCA텔레비전 예능 로터리(1958년 2월 26일 첫 방송) 출연 1959년 유니버살레코드에서 데뷔 1. ‘엘레지의 여왕’: 엘레지의 여왕(1967년) 1967년 개봉 이미자 전기(?) 영화의 제목이기도 196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 이미자의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 2. 데뷔곡 진위: 아리랑 상사병(1959년) 이미자 본인이 말해 온 데뷔곡은 열아홉 순정(1961년) 하지만 그에 앞서 1959년 유니버살레코드, 1960년 킹스타레코드에서 이미 여러 곡을 발표 3. 동백 아가씨의 의미: 동백 아가씨(1964년) 이미자 가수 이력의 전환점이 된 대표작이자, 한국 음반산업의 새로운 단계를 연 작품. 최초의 10만 음반 금지곡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실상을 좀 ...
[뭐하니] 한림대 학생들의 방문에 펭PD가 감동했어요ㅠㅠ
zhlédnutí 267Před 14 dny
안녕하세요 펭PD입니다. 지난 6월 27일,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학생들이 축제 때 크로플과 에이드를 판매한 수익금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 후원해주었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는 후원금 전달식과 함께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대표님의 강의를 진행하였는데요. 역사정의실천을 위해 행동하는 한림대 학생들 너무 멋있지 않나요? 펭PD는 행동하는 여러분을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대중가요의 역사 - 가왕열전 3편 현인
zhlédnutí 591Před 21 dnem
1919~2002년. 부산 출생. 1938년 고등보통학교 졸업 이후 일본으로 유학. 도쿄음악학교(우에노음악학교) 중퇴로 알려져 있음. 1940년대 초 일본에서 먼저 무대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국내 무대 데뷔는 1944년 성보악극단으로 추정. 1. ‘해방 가수’ 제1호?: 신라의 달밤(1949년) 중국에서 해방을 맞아 1946년 봄에 톈진에서 귀국선을 타고 돌아옴. 귀국 이후 다시 무대 활동 음반은 1949년 신라의 달밤이 데뷔작 2. 전무후무한 데뷔 1년의 성과: 비 내리는 고모령(1949년) 대표작 절반 가까이를 1949~50년 럭키레코드에서 발매 작품 대부분을 유호, 박시춘과 함께 3. 영화와 인연: 푸른 언덕(1958년) 최초(?)의 음악영화 푸른 언덕 주연 성벽을 뚫고, 내 사랑 그대에게...
#역사강의|통일운동의 선구자 늦봄 문익환 - 김연철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 |늦봄 문익환 30주기 특별전 연계특강 '다시오는 늦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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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역사 - 가왕열전 2편 남인수
zhlédnutí 1,1KPřed 21 dnem
1918~1962년. 진주 출생. 1932년 보통학교 졸업 이후 데뷔 전 이력은 불분명하나, 일본에 일시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 1936년 눈물의 해협으로 데뷔. 1. ‘만년 가수, 가요 황제’: 애수의 소야곡(1938년) 1936년부터 1961년까지 25년 동안 350곡(추정치) 정도 발표 건강 문제 등으로 일시적 휴식은 있었지만, 활동 기간이나 인기와 히트 면에서 독보적인 존재 2. 출생의 비밀(?)과 분단의 가족사: 가거라 삼팔선(1948년) 호적에는 강문수, 원래는 최창수? 1948년 형 최창도의 월북, 북한에서 태어난 조카 최삼숙의 활동, 최삼숙 딸의 탈북 3. 돈인수, 여인수, 그리고 이난영: 신접살이 풍경(1938년) 빈틈없고 깐깐했던 돈 관리에 비난과 함께 옹호도 데뷔 직후부터 끊이지 않...
#역사강의|사진으로 보는 늦봄 문익환의 일생 - 장원석 학예실장|늦봄 문익환 30주기 특별전 연계특강 '다시오는 늦봄'
zhlédnutí 148Před 28 dny
[늦봄 문익환 30주기 특별전 연계특강 '다시오는 늦봄'] 1강 사진으로 보는 늦봄 문익환의 일생 장원석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실장
30년간의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역사를 담았습니다 l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 갤러리토크 하이라이트
zhlédnutí 223Před měsícem
강제동원 피해자운동 기록사진전 24.5.24(금)~7.21(일)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10:30~18:00 (휴관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연휴, 노동자의 날) 개막식 및 특별행사 “그날을 기억해” 갤러리토크 2024.4.25.(토) 14:00~17:00 #강제동원피해자운동기록사진전 #식민지역사박물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 #강제동원 #강제동원사진전 #강제동원피해자
대중가요의 역사 - 가왕열전 1편 채규엽
zhlédnutí 365Před měsícem
1906?)1949년(?) 함흥 출생 1926년쯤 일본으로 유학, 최종적으로 1933년 주오(中央)음악학교 졸업 성악가로 먼저 활동을 시작하다 1930년 유행가 가수로 데뷔 1. 첫 번째 ‘직업 가수’: 봄노래 부르자(1930년) ‘유행가의 패왕’이라 불리며, 1930~43년 동안 150여 곡 발표 1935년 잡지 삼천리 가수 인기투표 1위 선정 2. 이름 부자, 소속사 부자: 북국 오천키로(1939년) 채규엽, 채동원, 이명진, 하세가와 이치로, 사하쿠 슈지, 에하라 케이요 콜럼비아, 시에론, 오케, 태평, 포리돌 3. 일본 활동: アリランの唄(1932년) 콜럼비아, 다이헤이, 포리돌 등에서 12곡 발표 4. 좌파 성향과 금지곡: 누가 그를 그렇게 했나(1932년) 누구보다 많은 금지곡의 주인공(6곡...
반민특위 명예회복을 위한 우리의 외침 l 반민특위 강제해산 75년 기억행사
zhlédnutí 355Před měsíc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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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ho Lee / Jeongho Jeon: MINJUNG Art is Resistance
zhlédnutí 559Před měsíc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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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 강제 해산 75년, 1949년 6월 6일을 기억하며
zhlédnutí 1,7KPřed měsíc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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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제가로 본대중가요 역사 8부-1990년대 이후
zhlédnutí 291Před měsíc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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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제가로 본 대중가요의 역사 7부 - 1980년대
zhlédnutí 365Před 2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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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8. 제44주년 5·18 민주화운동 서울기념식 - 민족문제연구소 함세웅 이사장 발언
zhlédnutí 225Před 2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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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제가로 본 대중가요의 역사 6부 - 1970년대
zhlédnutí 580Před 2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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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제가로 본 대중가요의 역사 5부 - 1960년대(2)
zhlédnutí 350Před 2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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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제가로 본 대중가요의 역사 4부 - 1960년대(1)
zhlédnutí 552Před 2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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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lédnutí 510Před 3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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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lédnutí 436Před 3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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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lédnutí 530Před 3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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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lédnutí 389Před 3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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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의 중국문학기행 - 37.루쉰과 근대의식
zhlédnutí 564Před 3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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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lédnutí 481Před 3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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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lédnutí 410Před 3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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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lédnutí 600Před 3 měsí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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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entáře

  • @user-zb6my2ql1m
    @user-zb6my2ql1m Před 4 hodinami

    어릴 적 논도렁밭투렁, 시골길을 걸으며 불렀던 송창식님의 노래들, 한번쯤, 새는, 피리부는 사나이, 맨처음고백, 왜불러 등 등 등...송창식님 없는 어린시절은 생각할 수가 없네요

  • @user-tp8pb3yt7i
    @user-tp8pb3yt7i Před 19 hodinami

    저는 60년생인데 이분 노래를 중2때부터 따라불러 60곡정도 가사보지않고 지금도 라이브에서 부르는데 참 대단한 분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겨울철에 밤눈 같은 곡은 60대 중후반 분들이 들으시면 그냥 예술입니다

  • @user-nn3zu5mz3r
    @user-nn3zu5mz3r Před dnem

    ㅎㅎㅎㅎ 진짜 뭔 소리 하는 거야? 담배가게 아가씨? 이 양반들아, 그 노래 원래 제목은 오이샤쓰가게 아가씨야!!! 그 노래를 작곡한 배경 모르나? 참 답답하네..... 옛날 명동에 와이샤쓰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 아가씨가 너무 이뻐서 장사가 그렇게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와이샤쓰 아가씨 하면 발음이 어려우니까 담배가게로 바꾼 거라고.... 이런 것도 모르고 무슨 송창식 특집을 한다고... 쯧쯧쯧

  • @user-nn3zu5mz3r
    @user-nn3zu5mz3r Před dnem

    성대수술 두 번 했어요!!!

  • @user-nn3zu5mz3r
    @user-nn3zu5mz3r Před dnem

    송창식은 금전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했어요. 인기도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은 음악을 만들까 이게 가장 큰 관심이라고 했습니다. 돈을 벌지 못해도 과거 노숙생활을 한 거와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돈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내가 송창식을 존경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기도 합니다. 과거에 경제적으로 궁핍했으면 돈에 환장할 만도 한데, 오히려 돈에 초월해 있으니.... 먹고 살만하니 창작활동을 안 한다고? 그건 굉징히 무례한 말입니다. 미사리 까페에서 노래하는 것도, 자기는 첫 출발이 까페였으니 평생 까페에서 노래한다고 했어요... 지금은 그런 까페가 하나 둘 없어져서 쉰지가 몇 해 되었을 겁니다.

  • @user-nn3zu5mz3r
    @user-nn3zu5mz3r Před dnem

    뭔 소리 하는 거야? 송창식이 왜 한복을 입었는지 몰라요? 답답하네... 도대체 준비를 이렇게 하고도 방송을 합니까?

  • @user-nn3zu5mz3r
    @user-nn3zu5mz3r Před dnem

    1990년대 이후 신곡을 발표하지 않은 이유를 직접 말한 적이 있어요. 그전에 자기는 앨범 10만장 정도 파는 걸 목표로 했는데, 90년대 이후 부터는 10만장 팔아서는 손해가 엄청나게 발생하는 상황으로 변한 겁니다. 제작비가 워낙에 많이 들어가니... 그래서 제작자에게 손해를 줄 수가 없으니 신곡 발표를 안 한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발표는 안 했지만, 신곡은 많이 있다고 합니다.

  • @user-nn3zu5mz3r
    @user-nn3zu5mz3r Před dnem

    진짜 실망이네.... 뭘 조사하고 뭘 준비한 겁니까? 송창식이 음악적 변화를 시도한 것이 왜 그랬는지 모릅니까? 방송에서 그 내용이 얼마나 많이 방송되었는데!!!! 군 생활 하면서, AFKN을 보다가 미국 아마추어 가요 경연대회를 보고 충격을 받았답니다. 그들은 아마추어인데 나는 그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그래서 1주일을 눈물로 지새우다가 대중적인 노래를 하자고 결심했답니다. 처음엔 세미 클래식을 하고자 했는데... 그리고 나온 첫 번째 노래가 피리부는 사나이입니다. 이건 모두 송창식 씨가 직접 한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많이.... 이런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고 뭔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 @timyang5898
      @timyang5898 Před dnem

      옵빠 정신줄 챙겨~~당신이 생각하는 것만 정답이 아니야 일간?

  • @TheKyunghoon
    @TheKyunghoon Před dnem

    재밋게 잘 들었습니다. 대단한 분이시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왕이라는 수식어가 오히려 부족한것 같습니다

  • @user-nn3zu5mz3r
    @user-nn3zu5mz3r Před dnem

    이 양반들이 조사를 제대로 안 했네. 송창식 씨가 네 살 때 당시 경찰이었던 아버지가 6.25 때 전사를 했어요. 어머니도 행방 불명이 되고 그러니 집안 형편이 어려울 수밖에.... 동기였던 금난새 씨가 자기 친구 중에 음악 천재가 하나 있었는데 워낙 가난해서 수돗물로 배를 채운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송창식이라고 말 한 적이 있어요.

    • @timyang5898
      @timyang5898 Před dnem

      그래서 뭐 어쩌라규? 너만 다 옳다는 거니?

  • @user-pb3ow4tx3v
    @user-pb3ow4tx3v Před dnem

    발표 당시엔 세상이 시끄러워서 관심 갖지 못했지만, 참새의 하루 가사가 참 와닿네요. 특히 해설이 언제나처럼 정말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user-my9tk2ih9c
    @user-my9tk2ih9c Před dnem

    우와~~~~ 민문연에서 이렇게 대중과 크게 공감할 수 있는, 그리고 대중문화 그 중에도 대중음악을 깊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먼저 댓글 달고 감상하겠습니다.

  • @sunnykim4093
    @sunnykim4093 Před 2 dny

    2부는 못 만들었나보네요!

  • @sunnykim4093
    @sunnykim4093 Před 2 dny

    반민족 매국노 친일파 역적농!

  • @jaesukim9653
    @jaesukim9653 Před 3 dny

    북괴 김일성의 지시를 받고 시작한 반일본선동의 시작, 백년전쟁. 거짓을 사실처렴 왜곡하여 만든 김일성의 전략적 선동 사상영화. 백년전쟁.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을 영화 "백년전쟁" 을 통해 완전히 반일 선동화 하고, 일본을 철천지원수화하여 한국-미국-일본의 삼각동맹체제를 무너뜨려서 대한민국을 공산 적화통일해야한다. 이것이 이 영화를 만든 북괴 김일성의 계략이다.

  • @user-cr7rj5vt2d
    @user-cr7rj5vt2d Před 3 dny

    이거 왜곡 거짓 내용 이라고 재판까지 받았는데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영상 삭제 안했네 ㅋㅋㅋㅋ 이거 보고 순진한 국민들 속아넘어가는거 보니까 참 안타깝다... 쫌만 검색해봐도 프레이저 보고서 원문 볼 수 있는데...

  • @user-sx5hk4fw2y
    @user-sx5hk4fw2y Před 3 dny

    민족문제연구소 응원합니다

  • @user-sx5hk4fw2y
    @user-sx5hk4fw2y Před 3 dny

    임헌영선앵님 항상 건강하십시요

  • @user-qb4ry7ur5l
    @user-qb4ry7ur5l Před 4 dny

    거짓말로 선동하는 북한 앞잡이 주사파집단 민족문제연구소

  • @user-ls3ee3xq1r
    @user-ls3ee3xq1r Před 4 dny

    이런 거짓선동 방송 보면 안됨.

  • @user-yz3iy3lz4w
    @user-yz3iy3lz4w Před 4 dny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ㅠ

  • @user-yz3iy3lz4w
    @user-yz3iy3lz4w Před 4 dny

    이승만은 위대한 인물이에요 거짓을 만드는 분들 회개하십시요 ㅠㅠ

  • @user-pb3ow4tx3v
    @user-pb3ow4tx3v Před 4 dny

    정말 오랜만에 듣는 최희준 노래네요. 어쩌면 그렇게 힘을 들이지 않고 듣는 사람이 편안하게 노래를 부르는지 늘 감탄했지요. 5,60년대 노래는 트로트 빼고 다 좋아합니다.

  • @user-dx6ew4ku8l
    @user-dx6ew4ku8l Před 5 dny

    이런 버러지 같은 인간을 건국의 아버지라 지꺼리는 모지리 바퀴세기들

  • @user-so4sc8ge8x
    @user-so4sc8ge8x Před 5 dny

    영어제목과 영어자막을해야 됩니다...

  • @sjh0314
    @sjh0314 Před 5 dny

    영상 자료들은 어떻게 찾은 건가요??

  • @kim-jm4wm
    @kim-jm4wm Před 5 dny

    고칠현삼 古七現三..인화人和감천瞰天

  • @samsin911
    @samsin911 Před 7 dny

    두번다시 이땅에 저런 기회주의 민족의 배신자는 안나타 나야한다

  • @user-oi8nt2gu1u
    @user-oi8nt2gu1u Před 7 dny

    감사합니다 ^^

  • @dr.woodangtang
    @dr.woodangtang Před 7 dny

    진짜 소리 반 공기 반 이네요

  • @useunghan1177
    @useunghan1177 Před 8 dny

    친일파의 아버지 이승만...

  • @user-sx5hk4fw2y
    @user-sx5hk4fw2y Před 8 dny

    임교수님 응원합니다

  • @dickayyoon5598
    @dickayyoon5598 Před 8 dny

    이별의 플랫트홈 정말 오랫만에 듣네요. 국민학교 시절 듣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최희준 노래 중 '종점' 다음으로 즐겨 들었던 기억이 남아있어요. 두 분의 전문 해설과 함께 방송도 고맙게 잘 듣고 있습니다.

  • @user-sx5hk4fw2y
    @user-sx5hk4fw2y Před 8 dny

    민족문제연구소 응원합니다

  • @chinlee4391
    @chinlee4391 Před 9 dny

    좌파들이 이승만 박정희를 왜 그토록 증오하는줄 아나? 바로 북한의 침략으로 부터 자유 대한을 지켰기 때문임. 그들은 사회주의 지상 낙원 통일조선에서 김정은 모시고 사는 것이 꿈인 인간들임

    • @user-dx6ew4ku8l
      @user-dx6ew4ku8l Před 5 dny

      저 두놈은 도망만 다녔지 멀했냐? 우리 청년들이 지킨거지

  • @user-mj9un2gw2v
    @user-mj9un2gw2v Před 9 dny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미주 오랜지 농장에서 국내 연통제통해서 들어오는 군자금으로 제벌 2세나 사칭하면서 백인여자들이랑 잠이나 쳐자고 호텔에서 먹고 자던 새끼고 하와이 정부에 허락받고 박용만이 세운 합법적 대한민국 군대에 총질해서 사탕수수밭에서 나오는 돈 꽁치려하고 독립자금으로 백이들이랑 떡치고 다니다가 맨법률 위반해서 플레이보이로 신고받고 기어코 하와이가서 재판받게 해달라고 하고 여기저기 언론에 공포하지말라고 하와이 주지사들 로비나 쳐하고, 독립자금으로 그지릴했으면서 상해에가서 꽁쳐먹을돈 떨어질까봐 국민이 여가시간에 병법을 익히라는 개소리나 하고 또 이 새끼가 외교독립이란 명분으로 나라만 팔아먹을려 했고 이런 십세가 남한국민이 미군정시기때 멀쩡하게 자본주의 달콤함 맛보고 있을때, 남북은 갈라졌다고 분단국가라고 개소리를 지꺼리지 않나 이미 UN측에서는 통일시켜주겠다고 인구조사할려고 북한까지 올라가는데 그걸 막은게 북한정부랑 소련임. 흐름상 총선에서 질게 뻔하니깐, 이승만은 자본주의랑 민주주의에 기여한적도 없고 사회주의를 막은적도 없음. 이런게 또 초대대통령해서 친일파 살리고 3.15부정선거 일으키고 제주도에 있는 멀정한 시민들 죽이고 독제까지 하면서 헌법에 의거한 대통령5년 임직 즉 민주주의가 엄청멀어지게함. 이 십세가 잘한거 딱하나 학교 많이 세운거 학교에서 민주주의 배우던 학생들이 이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튀쳐나와서 시위했음. 그때 중학생들이 저기 영상에 나와서 시위하시는 저 할아버지 할머니들 아버지뻘이 살아있는 역사책임. 저분들이 하는말 틀린거 없고 올바른 시위임.

  • @user-mg3pm5ij1z
    @user-mg3pm5ij1z Před 10 dny

    십세끼글또선동에거짓말히네 더러운것들

  • @user-ri2xu4mj7u
    @user-ri2xu4mj7u Před 10 dny

    지금대한 민국은 공산화 되었습니다 이희천교수님 유트브영상 보셔요

  • @user-ri2xu4mj7u
    @user-ri2xu4mj7u Před 10 dny

    와 김구가 이중인데 그당시 대한민국 이 없으면 북한에 서 살아야 하는데

  • @user-baeholove
    @user-baeholove Před 11 dny

    대한민국 최고의 여자 가수는 이미자가 아닌 이난영이다.

  • @brucewayne-ox8ss
    @brucewayne-ox8ss Před 11 dny

    지금시대에 와서 이런 방송이 나온들 뭘 바꿀수가 있겠나ᆢ 알고만 있어서 뭘할껀데

  • @user-eu2ei9hc2x
    @user-eu2ei9hc2x Před 11 dny

    한인독립자금유용하고 독단적행위로 임시정부에서 탄핵당하고, 친일파를 등에업고 반공프레임으로 양민을 학살해 미국의 신임을 얻으며 권력을 얻은자. 6.25전쟁나자 국민들 나몰라라 도망가고 부정선거와 부정축재로 국민들에게 쫒겨나 타국으로 도망간자. 민족의 정기를 망가트린 반역자 이승만!

  • @user-db5hz6tq5p
    @user-db5hz6tq5p Před 12 dny

    전 국민이 봐야할 영상

  • @mirart6770
    @mirart6770 Před 12 dny

    이준희 선생님의 귀한 자료와 말씀 잘들었습니다. 친일파 윤석열 무리가 이 프로를 꼭 보기를 바랍니다.

  • @user-eu2ei9hc2x
    @user-eu2ei9hc2x Před 13 dny

    독재와 군부의 50년 쇠뇌로 다까끼마사오가 영웅화되었지

  • @user-ht5bn3hy5c
    @user-ht5bn3hy5c Před 13 dny

    당해보지도 않고 라는 말이 무고한 국민을 학살한적 없다가 아니라 너도 당해봤어야 하는데 이 의미 같은데 저걸 웃으며 말하고 그걸 또 웃어주는 악마들 부관참시가 어울리는 희대의 악마

  • @user-rt7ee1rp1r
    @user-rt7ee1rp1r Před 14 dny

    24:06 41년생 뱀띠,. 어머니는 자기와 동갑이라고 항상 말하십니다,. 언젠가 이미자 선생의 일대기를 아주 객관적을 다루는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전후부터 21세기를 대중문화사 시각으로 다룬,.. 이런 고급스런 프로그램을 연재하는 민족문제연구소에 감사드립니다~

  • @lunaj5499
    @lunaj5499 Před 14 dny

    이승만의 수많은 악행 중 하나죠 반민특위가 강제해산되지 않았다면 친일파들이 지금도 득세하는 현실이 없었을텐데😢

  • @jongkim6449
    @jongkim6449 Před 14 dny

    1959, 1960년 이후 이미자씨는 사회 영향이 대단했어요. 가난을 빼면 설명이 되지않는 시절이었고, 새마을 운동 일환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개천을 청소정비하는 시절이었죠. 직장이없던시절, 시외뻐스나 시내뻐스가 김포지방과 김포공항 쪽에서 출발한 승객, 아가씨들은 해태제과 앞에서 모두 내릴정도로 공장에 출근한 여성이 어마어마했죠. 동사무소에서 밀가루 배급을 받을 정도였으니, 사회가 어려웠습니다. 해태제과공장앞 한강다리가 처음 생겼고, 여의도 섬은 여전히 공군이 머물렀죠. @ 얼마전 고국방문시 김포공항고속도로(옛날)주변 논들이 완전 주택지로 변화된 것에 놀랐습니다. 이미자씨의 노래는( 대부분 박춘석 작곡 정두수 가수) 한 시대 모든이에게 위로가 되었죠. 국군 위문공연 영상물에 이미자씨가 등장하곤 했죠.1960년앤 연세대학교 신촌 노타리가 서울의 서쪽 끝이었으니( 동쪽은 중량교) 서울 규모가 작았습니다. @ 사실 백영효씨의 “동백아가씨”와 그 후 “ 선마을 선생님”(박춘석“ 이후 두각이 나타났다고 기억됩니다 @1960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 공연히 있었는 데 그 때 서울 시내 벽보 광고지에 나란히 등장했지만, 노래 장르가 이미자와 패티킴은 같지 않아서 경쟁자란 망 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트롯은 그 당시의 생활상인 데, 그걸 감안하지 않는 귀하들과는 상관없는 듯하게(특히 여성분) 늘어 놓는다고 한다면… 박시춘씨는 남인수, 박춘석씨는 이미자 가수와 함께했다고 하면,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 @jongkim6449
    @jongkim6449 Před 14 dny

    방송국이 있었다는 데 왜 웃나? 당시 그러한 발상과 방송국을 만들 인재가 몇이나 되었겠는가? 얼마나 우러러 볼 사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