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의 역사 - 가왕열전 2편 남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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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30. 06. 2024
  • 1918~1962년. 진주 출생.
    1932년 보통학교 졸업 이후 데뷔 전 이력은 불분명하나, 일본에 일시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
    1936년 눈물의 해협으로 데뷔.
    1. ‘만년 가수, 가요 황제’: 애수의 소야곡(1938년)
    1936년부터 1961년까지 25년 동안 350곡(추정치) 정도 발표
    건강 문제 등으로 일시적 휴식은 있었지만, 활동 기간이나 인기와 히트 면에서 독보적인 존재
    2. 출생의 비밀(?)과 분단의 가족사: 가거라 삼팔선(1948년)
    호적에는 강문수, 원래는 최창수?
    1948년 형 최창도의 월북, 북한에서 태어난 조카 최삼숙의 활동, 최삼숙 딸의 탈북
    3. 돈인수, 여인수, 그리고 이난영: 신접살이 풍경(1938년)
    빈틈없고 깐깐했던 돈 관리에 비난과 함께 옹호도
    데뷔 직후부터 끊이지 않았던 연애담. 1958년 이후 죽을 때까지 이난영과 사실상 부부. 그것이 마지막 스캔들
    4. 일본진출설의 진위: 애수의 세레나데(1940년 남인수 걸작집 중)
    일본에서 음반을 발표했다는 설은 오해로 인한 거짓
    하지만 1942~43년 무렵 일본에서 공연 활동을 했던 것은 사실
    5. 군국가요 문제: 남쪽의 달밤(1942년)
    작품 범위 설정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백년설과 더불어 가장 많은 군국가요 발표
    군국가요와는 좀 다른 문제이지만, 1940년 이후 일본어 가사 포함 곡을 가장 먼저, 많이 부른 가수이기도
    6. 가창의 특징과 의미: 산유화(1957년)
    안기영 사사?
    이인권에서 남강수까지, 남인수류 가수들
    7. 생가 문화재 지정 취소와 가요제 논란: 내 고향 진주(1954년)
    경남 진주시 하촌로96번길 56-2(하촌동 195번지). 2005년 지정, 2013년 해제
    호적상 출생지는 194번지. 보통학교 학적부 주소는 평안동
    2023년 가요제 부활 추진과 반대

Komentáře • 6

  • @user-sx5hk4fw2y
    @user-sx5hk4fw2y Před 25 dny +6

    민족문제연구소 응원합니다

  • @user-uq3be5kb9z
    @user-uq3be5kb9z Před 24 dny +4

    민족문제연구소 홧팅

  • @user-uk3ox9qy7g
    @user-uk3ox9qy7g Před 25 dny +5

    저 혹시 백년설, 남인수가 친일인명사전에 있는데 박향림이 없는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보니까 박향림은 심영이랑도 활동한 경력이 있더군요.

    • @MinjokMovie
      @MinjokMovie  Před 24 dny +2

      박향림은 혈서지원, 진두의 남편, 총후의 자장가 등 세곡의 군국가요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백년설, 남인수에 비해 친일의 강도가 낮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수록 보류 결정을 내렸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자료수집과 조사를 지속하고 있으므로 향후 개정판에 등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

  • @user-vx5hu2ut1s
    @user-vx5hu2ut1s Před 22 dny +1

    진주봉래국민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