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의 판도가 바뀔뻔 했던 무모한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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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28. 08. 2024
  • "마켓가든작전"을 그린 "머나먼 다리"입니다.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Komentáře • 521

  • @3434Kim
    @3434Kim Před 4 lety +64

    깔끔한 해설과 관련 동영상... 너무 잘 만드셨네요... ^^ 아직 구독자가 많지 않지만 소문나면 엄청 많아지겠네요... 화이팅!!

    • @cinemory
      @cinemory  Před 4 lety +7

      감사합니다.^^ 아직 유튜버 초보라 발성이 썩 좋지는 않지만, 더 좋은 컨텐츠로 구독이 아깝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user-ul3tq9pb8j
      @user-ul3tq9pb8j Před rokem +2

      ​@@cinemory 2023년 지금 생각해보면, 형님 발성은 밀리터리 영화 리뷰하는 유튜브로 찰떡인 듯 싶네요 ㅋㅋㅋ

    • @잘모르겠는데
      @잘모르겠는데 Před rokem

      @@cinemory 영화 소리 개작고 님 개같은 목소리만 나와서 개짜증남 갑자기 목소리 커지는것도 개싫어요 ㅎㅎ

  • @classy.j4669
    @classy.j4669 Před 4 lety +71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가지고있다 쳐맞기전까지는." - 마이크타이슨
    [영국 몽고메리 주축의 작전 계획]
    1. 해당 지역엔 독일군 기갑부대 없을테니 공수부대 투입 (네덜란드 레스탕스의 경고 무시하고 강행)
    2. 공수부대의 네덜란드 주요 교량 7개 점거, 동시에 지상군 진격
    3. 독일군 라인간 방어선 3일 이내 돌파
    4. 독일본토 진격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끝날 것)
    [실제 상황]
    0. 독일군 방어전 초고수인 '발터 모델'원수는 네덜란드지역의 연합군 공세 예측, 독일 사령부도 이동
    1. 공수부대 투입지역에 다수 독일 기갑부대 주둔
    2. 연합군 공수부대 투입과 동시에 지상군의 진격
    3. 독일군 부대의 교량 폭파,점거 => 미군 공수부대 고작 교량 2개 확보
    4. 영국 제1공수사단, 강하 위치 실수로 시간 지체
    5. 영국 제1공수사단 수송 위한 지프 대대, 독일군에게 전멸 -> 공수사단 도보로 이동
    6. 영국 제1공수사단, 도보이동 중 독일군의 공격으로 고립.
    7. 영국 30군단, 독일군과의 교전으로 작전 지체.
    8. 82공수사단, 강 반대쪽 상륙 성공 및 교량 탈취 But 전사자많음, 시간지체로 (실상) 작전 실패
    9. 작전 포기,후퇴
    10. 몽고메리는 작전책임안지고 이 작전에 반대한 장군이 책임지게됨

    • @fiercehan6791
      @fiercehan6791 Před 3 lety +4

      친절한 설명 넘나 감사드립니다!!

    •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Před rokem +4

      10. 그 책임을 엉뚱하게 폴란드군 장송이 졌다는거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Před 2 lety +15

    저 작전을 처음 들은 연합군 장성들은 처음에는 몽고메리가 제정신인가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브레들리 원수는
    '술을 전혀 하지 않는 몽고메리가 만취한 상태로 비틀거리면서 회의실로 들어왔다고 해도
    이것보다 더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할 정도로 너무 무모하면서도 황당한 작전이었는데
    진짜 이 작전이 성공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로또를 100번 연속 1등으로 맞출 정도급의 행운이 함께 했을 겁니다.

  • @talkkingshin
    @talkkingshin Před 3 lety +4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극장은 대한극장이였습니다. 제 기억으로 몇군데 삭제를 해서 개봉했죠.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서.... 좀 짤라내면 하루 4번 상영할 것을 5번을 할 수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삭제안된 작품으로....

  • @user-hk4hu9id4o
    @user-hk4hu9id4o Před rokem +8

    1977년도 영화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었네요. 출연진도 당대 탑스타들 (숀 코너리, 진 핵크만, 안소니 홉킨스, 로버트 레드포드, 마이클 케인 등) 이 총출동해서 제작비도 만만치 않게 들었을 것 같습니다. 무능한 리더가 얼마나 큰 불행을 몰고 오는지 잘 보여주는 전투였군요.

  • @LS-oq3qh
    @LS-oq3qh Před 2 lety +8

    이 영화가 나온 시기(1977년)와 전쟁영화의 걸작 "지옥의 묵시록"이 나온시기가(1979년) 비슷하여 두 영화 본 저로써는 지옥의 묵시록에 비하면 머나먼 다리가 굉장히 딸리는 작품이라 생각했습니다. 15살때 봤던 지옥의 묵시록이 저의 멘탈을 완전히 부셔놓아버린 것도 있었지만 그때 저는 머나먼 다리의 전개가 너무 상투적이고 고리타분하다고 느꼈었죠. 하지만 나중에 다시 재평가 하기 위해서 머나먼 다리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전쟁의 참혹함, 전쟁의 의미없는 소모전과 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무고한 민간인들의 죽음까지 너무 사실적으로 그렸다고 느껴졌네요. 어떻게 보면 전쟁영화의 수작이면서도 2차대전 서부전선을 다룬 작품들 중 얼마 없는 반전영화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 @user-zx2ge2rz1d
      @user-zx2ge2rz1d Před 3 měsíci +1

      원래 명작은 나이들고 봐야
      가치를 느끼죠😂

  • @user-ks6ew1jg9n
    @user-ks6ew1jg9n Před 4 lety +74

    하필 현대방어전의 마스터 발터모델이 방어하는 지역을 공격하다니 덕분에 발터모델은 몽고메리 주고프 브래들리 연합군 3명장한테 모두이긴 장군이 되엇저
    이작전의 실패를 몽고매리는 폴란드 여단장에게 넘겨 불명예전역 공장노동자로 죽게햇저 그졸열한성격덕에 후에 정계진출도 실패하고요

    • @user-ie9ph3ym6z
      @user-ie9ph3ym6z Před 4 lety +1

      대가는 아니였지만 명장임에는 부인할수없네요

    • @user-ks6ew1jg9n
      @user-ks6ew1jg9n Před 3 lety +5

      @@user-ie9ph3ym6z 그건모르겟군요 패튼도 브래들리도 무시햇다는걸보면 영국체면땜에 뛰어준느낌도있고 물론 롬멜에게 승리를 거둔건 인정하지만 똑같은 전력이라는 가정하에는 모르겟내여 적보다 열세이거나
      명장이라는게 승전국들이 가저가거나 압도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장성에게주는거니까요

    • @anonanonym9872
      @anonanonym9872 Před 3 lety +10

      설령 명장이라도 남탓(심지어 그 남이 바다건너 자기 나라 위해서 피흘림)은 선넘었지

    • @user-bf3ze7sl8l
      @user-bf3ze7sl8l Před 2 lety +1

      @@user-ie9ph3ym6z 명장이란 의견은 반대임. 저런 병력과 권한이 있다면 독일에 널림.
      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베테랑들이었음. 모두가 나치는 아니었는데 인식이 나쁜 게 아쉬움

    • @user-zx2ge2rz1d
      @user-zx2ge2rz1d Před 3 měsíci +1

      ​@@user-ks6ew1jg9n아이젠 하워 미국 대통령이 제일 극혐한 영국 장군 😂

  • @threecolor342
    @threecolor342 Před 3 lety +10

    최근 영상보고 다른 채널인가 싶을정도로 1년 사이에 말씀하시는거나 영상 요약 줄거리 실력이 높아 지셨군요 ㅎㅎㅎ 머나먼 다리는 굉장히 인상 깊은 부분이 많기 때문에 다시 리메이크?하시면 다른 새로운 맛일듯 합니다 ㅎㅎ 씨네모리님 머나먼다리 리메이크 영상 생각만 하더라도 기대되네요

  • @kleenex23
    @kleenex23 Před 4 lety +36

    처음 말씀 하실땐 크게 하다가 점점 소리가 작아지더니 이내 눈꺼풀이 감겨오는 제 눈알을 발견하게 되는군요...

  • @user-ni5ip4my2n
    @user-ni5ip4my2n Před 4 lety +18

    정말 명작이죠
    상영시간이 길지만 초반 작전설계부분을 지나면 지루할 틈 없는 전투신이 압권이였죠
    마지막 장면이 좀 서글펐던 기억이 납니다

    • @fiercehan6791
      @fiercehan6791 Před 3 lety +1

      왜서글프죠?????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Před 2 lety +2

      @@fiercehan6791 다른 전쟁영화와 틀리게 독일군이 승리하는 결과니까요.
      거기에 아무 죄 없는 시민들이 어떻게 되는지 담담하게 보여주기까지 하면서 주제가가 흘러나오는데
      노래 자체는 마치 승리를 한 것 같은 행진가 식이니.....

  •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Před 3 lety +5

    실패한 전쟁사례를 이토록 치밀하고 세세하게 그려낸다는 것이 대단한거죠. 한국전쟁내내 우리군의창군주역이라는 색히들의 병신삽질과 추악한 이면을 그린 영화가 우리나라에선 만들어질수도 없단걸 고려하면 패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저들이 부럽기까지 하네여

  • @쿡잇파파
    @쿡잇파파 Před 3 lety +4

    숀 행님이다!!! 찍는 영화마다 명작 탄생 숀 행님 어카트 사단장으로 나오셨었네~~ 이제는 가고 안계시지만 젊은 시절 모습 볼수 있어 좋넹~ 어릴적에 이거 본 기억이 나네~ 그때는 19금 청불 개념이 없어서 ㅋ 그냥 토요명화나 명화극장하면 그냥 다 봤었는데.ㅎㅎㅎ

    • @koleanan1001
      @koleanan1001 Před 3 lety

      숀 코네리 전문성우이신 양지운님도 지금 파킨슨병으로 투병중이시라네요ㅠㅠ

  • @schmitt77
    @schmitt77 Před 10 měsíci +1

    어렸을적 삼촌 손 잡고 대한극장 가서 봤던 영화, 긴 런닝 타임으로 중간에 쉬고 2부로 나누어 봣던거 같네요..중간에 영국장교가 비스킷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다이제스티브가 나온지 얼마 않되어, 먹을때 마다 생각이 나는 영화 였습니다. 오래전 기억 과 나름 밀덕으로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잘 알려 지지 않은 희귀 영상과 자료는 어떻게 구하시는지 궁금 하네요.

  • @law308
    @law308 Před 4 lety +12

    좋은 영화들을 간결하게 정리 잘해주셔서 자주 애청하고 있습니다. 밀덕입장에서 나중에 투입된 폴란드 자유 공수여단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쉬워 몇자 납깁니다. 엉망인 작전에 작전권없이 연합군의 소모품으로 쓰이는걸 알면서도 나치치하의 조국 해방을 위해 투입되어 죽어간 폴란드군이 한마디라도 언급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는 주류만 기억하지만 늘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도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유명한 배우 진헤크만이 폴란드 공수여단장 소사보우스키 소장으로 나와 작전에 어쩔수 없이 참가합니다)

  • @kdz5290
    @kdz5290 Před 4 lety +18

    몽고메리 장군을 천하의 멍청이로 만든 작전 모두가 그를 역사적 바보로 남기다.

  • @javaxerjack
    @javaxerjack Před 4 lety +11

    6:35 독일인들은 영국식 농담을 이해 못한다니까요.

  • @ianlee7800
    @ianlee7800 Před 4 lety +29

    몽고메리 뻘짓의 전형을 보여준 작전. 물론 처칠의 닥달도 한 몫했지만. 미군에서는 몽고메리라면 이를 갈았다고 함ㅋㅋ

    • @user-ie9ph3ym6z
      @user-ie9ph3ym6z Před 4 lety +3

      미군이랑 영국군이랑 사이가 안좋았음ㅋㅋ
      패권싸움도 심했고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Před 2 lety +3

      사실 패튼 장군이
      몽고메리가 독일군을 보면 미군은 도망친다고 하는 막말을 하니까
      '그 미군이 보면 도망친다는
      잘난 독일군 XX를 잡아 뽑아서
      몽고메리 주둥이에 처박아버리겠다!'
      하고 대놓고 분노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 @hwangseongjun2816
    @hwangseongjun2816 Před 4 lety +33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패전 이후에 벌어진 책임전가에 폴란드 공수부대의 소사보프스키 장군만 불쌍해 보이더군요.
    규모도 제일 작고 계획된 작전에서 한참 틀어진 늦은 시기에 최악의 격전지에 투입된 폴란드 공수부대가 무슨 잘못인지 원...
    마켓가든 작전 이후 한직만 전전하다가 전역해 타국에서 생을 마감하고 고국인 폴란드에서는 인정 받지도 못하다가 그나마 네덜란드에서 사후 최고의 훈장과 부대 훈장을 수여받고 그와 폴란드 공수부대의 희생을 기리는 것을 보면 하늘에서 무슨 감정일지 씁쓸하기만 합니다.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2

      1. 2019 마켓가든 75주년, 아른헴 : 3번 동영상은 1954 폴란드 소사보프스키 장군, 영국 숀커네리역 장군 참석.
      czcams.com/video/NC3hW508SmI/video.html
      2. 1949 마켓가든 기념식 아른헴, 전투 5년후 실제 작전 수행했던 베테랑들 참석.
      czcams.com/video/WHaqLCmza9U/video.html
      3. 1954 마켓가든 기념식 아른헴, 작전 지휘했던 폴란드와 영국 공수부대 장군 참석
      제목 : The "Many" Honour The "Few" - Nijmegen And Arnham (1954)
      czcams.com/video/oNYQ0s5VFxo/video.html
      영국 제1공수사단장 Roy Urquhart(숀커너리 역), 폴란드 소사보프스키 장군
      4.1944 마켓가든, 실제 전투 기록 영상
      czcams.com/video/3WWE8ZMfLSs/video.html
      5. 2019 마켓가든 75주년 공수강하 4k
      czcams.com/video/gt3hmNx0hbw/video.html
      6. 2019 마켓가든 75주년 공수강하
      czcams.com/video/2rVRXUmNE30/video.html
      7. 마켓가든 그 때와 지금 : 44년 전투 당시 사진과 그 위치의 현재 사진 비교
      czcams.com/video/f2M-onQwmaU/video.html
      8. 2019 마켓가든 75주년 기념 공수작전 낙하부대원들 기내 및 착륙. 기념식 포함
      czcams.com/video/qMr7oRB7UsY/video.html
      9.1955 마켓가든 전사자의 아이들 75명, 아빠 잠든 아른헴 전사자 묘역 방문.
      czcams.com/video/AmeEV_xTF4w/video.html
      10. 존 프로스트 중령 이름 딴 다리에서 출발, 영국 백파이프 행진 2019년
      czcams.com/video/xIf-zJ_E0Us/video.html
      2019 백파이프 연주하면서 존 프로스트 중령 이름 딴 다리 출발 시내 행진하는 모습.
      패배한 전투라고 덮고 넘어가지 않고, 그 패배 속에서 더 빛나는 영웅들을 추모하는 것.
      저 백파이프 연주자 중에는 75년 전 노병인지는 모르겠는데 머리 하얀 노인들도 섞여 있습니다.
      찾게 되면 나중에 추가할 예정인데 폴란드군 역시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기념비도 있고.
      폴란드군만 참여하는 것이 아닌 영국 공수부대도 폴란드군 기념식에 함께 참여해서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실제 전투로 부터 가장 최근인 1945년 기념 영상도 찾게 되면 첨부하겠습니다. 전에 어디서 보긴 본 것 같은데.
      11. 30군단 아이리시 가드, 좁은 도로 전진 중 독일군 매복에 걸린 전투 분석 : 과거 전투 영상, 기록과 현재 지형 비교.
      czcams.com/video/T7UCLf7a-3k/video.html
      매복 공격당해 격파당한 영국군 기갑 차량들 사진, 그 차량에서 숨진 전사자 이름 까지 나오는 분석
      과거 전투 기록 그것도 동영상 포함 많고, 수십년이 지나도 분석하는 민간인들이 있다는 것 부럽죠.
      정부와 군에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아마추어들이 이렇게 활동합니다.
      세계를 좌지우지 해봤거나 하고 있는 세력 공동체는 전쟁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그럴지도.
      12. 2014 아른햄 존 프로스트 다리를 방문해 헌화하는 노병들, 전투 70주년 기념식
      czcams.com/video/OBH9AA4OTAw/video.html
      9번 동영상은 아른헴에서 전사한 공수부대원들의 아이들이 아빠 묘소를 찾는 영상입니다.
      영국 정부가 제공한 항공기로 네덜란드 방문해 묘소를 찾아 헌화하는 모습.
      전투에는 패해도 전쟁에는 지지않는 역사가 왜 일어났는지 위 동영상들을 보면 느낄겁니다.
      패배한 전투를 그냥 넘기지 않고 기억하는 자들만이 전쟁에서 승리할 자격이 있는 것이죠.
      마켓가든 교전국 피해 (현지 레지스탕스 피해 자료 못 구함)
      독일 : 전사 약 2,000명, 부상 약 8,000명 총 인명피해 약 10,000명 (포로 확인 못함)
      미국 : 전사 + 부상 약 3,600명 (전사 부상 따로 확인 못한, 포로 확인 못함)
      폴란드 : 전사 약 100명, 부상 약 300명 (포로 확인 못함)
      영국 : 총 인명피해 약 14,000명, 영 공수부대 사망 약 1,100명
      전사 마켓작전(공수부대) 약 1100명, 전사 가든작전(30군단) 약 5,400명, 영국 마켓가든 총전사 약 6,500명
      마켓가든 실종 약 850. 포로 약 6400(거의 공수부대), 영국 공수부대 인명피해 총 약 8,000명/투입병력 약 10,000명
      정리하면 대략
      독일측 총 인명피해 약 10,000명
      연합국 총 인명피해 약 18,000명, 독일측 피해의 대략 2배.
      영국 공수부대 피해율은 사상자 포로 도합 80% 에 이를 정도로 공수부대원들은 분투.
      작전계획 수립 단계에서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대패한 상태지만 전선 붕괴로 역전되거나 할 상황은 전혀 아님.
      아른헴 후방으로 영국군 100만, 미군 300만은 여전히 건재하고 마켓가든 공세 실패로 전선이 잠시 정체되는 정도.
      작전이 성공했으면 1944년 종전, 실패하게 되면 45년으로 미뤄지는 정도. 도박할 가치 있었지만 성급 부실했던 작전수행.
      미국이나 영국은 세계대전 상황에서도 이 정도 인명피해 당하면 어마어마한 손실로 여겨집니다.
      바바로사 초기 소련군이 당한 손실은 단일 전투에서도 50만 쉽게 넘어가고 포로 또한 가볍게 수십만이 넘죠.
      소련군이 공세를 취할 때도 전투는 승리해도 보통 독일군 보다 몇 배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세계대전 갈 필요도 없이 한국전쟁 때 우리 국군 전투 피해도 규모가 큰 경우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졸전 패배 없이 멋지게 승리만 하는 군대 없습니다.
      지난 수 백년간 지구상에서 가장 승률 높고, 결정적 승리를 거듭했던 군대 조차도,
      손가락질 당할만한 패배를 수 없이 겪으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전쟁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패배가 미래의 승리가 될 수 있도록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고 기념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한 이유기도 하죠.
      영국과 영연방의 대규모 삽질 사례인 갈리폴리 상륙 작전은
      영국을 넘어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안잭데이로 그들 전쟁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날로 추념됩니다.
      안잭데이 기념 중 특히 터키의 상륙지점에서 벌어지는 행사는 영-호-뉴-터키 함께 참여합니다.
      갈리폴리 전투는 터키에게도 상징성이 큽니다. 그 전투를 지휘했던 케말 파샤가 그 전투 승리를 기반으로
      패전한 오스만투르크를 대체하는 터키 공화국을 건설하게 되었으니까.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철수한 작전이지만, 호주나 뉴질랜드 입장에서는
      식민지 보호령이 아닌 독립된 군대로 함께 참전한 그들 국가 군대 정체성을 확립한 상징이 된 것이죠.
      아른헴 투입된 공수부대의 80%가 손실된 대패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손실을 당하면서도 전투를 수행한 공수부대원들의 희생은 수치가 아닌 명예입니다.
      물론 조건은 있습니다. 패배로 부터 전훈을 배워야만 하죠. 저들은 철저하게 그런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1

      1. 2014년 마켓가든 70주년 아른헴 행사 : 폴란드 공수부대 추모전, 폴란드 참전 노병들과 현역 군인들도 참석 (동영상 7개)
      czcams.com/video/SbZmAaHnF-I/video.html
      (아래 3번 동영상엔 기념비 옆에서, 소총에 착검한 폴란드 현역 공수부대원들이 군례를 표하고 있음.)
      1944년 소사보프스키 장군이 이끌던 그 폴란드 공수부대, 또는 계승한 부대가 폴란드에 있는 것 같습니다.
      폴란드 공수부대 지휘관이 부대원과 함께 기념 행사에 참석 인터뷰도 하는군요.
      1944년 투입되었던 폴란드 공수부대 노병들과
      가족, 후손들이 영국 공수부대 노병과 대화도 하고. 폴란드인이 제작한 영상 같음.
      영국과 폴란드 공수부대가 당시 강을 건너 후퇴하는 과정도 노병이 보트에 승선 재현하고 있고.
      비록 전투에선 패배했지만, 패배만으로 남기지 않고 참전자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며 거듭나고 있습니다.
      패전을 저렇게 기리기도 어렸습니다. 많은 국가들의 경우 보통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편.
      특히 오늘날 폴란드군에서 마켓가든은 아마도 그들 군 역사에서 가장 명예로운 전투로 여겨질테고.
      2. Remembering The Battle of Arnhem, September 2014 : 위 영상과 같은 해, 70주년 공식 기념행사. (영 폴 네 미 함께)
      czcams.com/video/WoV28acPDLU/video.html
      유모차에 탄 증손자녀와 휠체어에 앉은 노병 증조 할아버지가 함께 행사에 참석하는 모습.
      행사 참석자들과 시민들이 따뜻하게 환영하는 모습, 걸을 수 있는 노병은 걷고, 휠체어에 의지한 노병도 있고.
      3. Airborne Commemoration 2016 :
      72주년 기념식, 기념비 쪽에서 본 헌화 모습, 1분45초 이후에 착검한 폴란드 공수부대가 예의를 표하는 장면 잠시 나옴.
      czcams.com/video/hBwNjRCrCGM/video.html
      몸이 쇄약한 노병들이 거수 경례 조차 힘들어 하는 모습도 보이고, 손자들을 데리고 함께 헌화하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함께 저런 행사에 참석한 소년들은 훗날 군인이 될 가능성도 크겠죠.
      4. Oosterbeek 2014 : 2014년 70주년, 네덜란드 지명 딴 이름, 넓은 시야로 바라 본 70주년 기념식 영상.
      7분10초 이후 영국 폴란드 네덜란드 국기 게양식. 동영상 앞 부분엔 현역 폴란드군 기수 입장을 볼 수 있음.
      미국 국기 게양식은 없는 대신, 전투 관련 각국 군부대 기수단 입장할 때 미국 국기가 함께 입장하는 형태로 보임.
      czcams.com/video/2lkQAkaeqjs/video.html
      5. Heroes Of Arnhem At The Palace : 버킹검궁에서 열린 아른헴 참전 영국 공수부대 훈장 수여식 및 행진.
      1944년 투입된 영 제1공수 부대원들, 그 위 직급인 브라우닝 장군, 빅토리아 훈장 수여자 등 400명 이상 참석.
      czcams.com/video/39yUhZU_vtY/video.html
      6. Major Cain The One Man Tank Destoyer | Medal of Honor Monday : 아른헴 전투, 빅토리아 훈장 수여자.
      5명의 VC 수여자 중에서 유일한 생존자. 독일 전차 격파, 부상당함. 기념 우표 까지 발행되었군요.
      그는 6파운드 대전차포와 피아트 대전차화기를 이용해 적 전차 6대를 무력화시킴, 그 중 4대가 타이거 전차.
      czcams.com/video/soEggNTQoQ0/video.html
      7. Victory March Of The 51st Highland Division (1945) | British Pathé
      영 30군단 51 하이랜드 사단, 독일 브레멘하펜에서 victory march : 군단장 호록스 장군, 영화 속 인물과 비슷
      머나먼 다리, 출연 배우들 생김새도 실제 인물들과 비슷 : 영 1공수사단장, 30군단장 등.
      czcams.com/video/QcA4ffFNiAk/video.html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1

      아른헴 전투와 페가수스1 : 드론 촬영 공중에서 지상 내려다 본 영상 (해외 군사매니아 동영상 4편)
      1. Then & Now | Oosterbeek Perimeter (South) | September 1944 (포위된 영국 공수부대 거점 방어지역 전투)
      czcams.com/video/mAFv80fyMNQ/video.html
      아른헴 기념비 있는 장소가 바로 Oosterbeek 입니다. 영국 공수부대가 주로 전투를 벌였던 지역.
      2. Then & Now | Westerbouwing | 21-24 September 1944 : 폴란드 공수부대 투입되어 영국군과 함께 전투
      czcams.com/video/QpjiPKXNeH8/video.html
      3. Then & Now | Operation Pegasus 1 | 22-23 October 1944 : 아른헴 실패 후, 고립된 병력 일부 강 건너 탈출
      czcams.com/video/OfDg5km6OwU/video.html
      아른헴 이후 서부 연합군은 재정비에 들어가고, 종전을 위한 대규모 공세는 겨울이 지난 45년초로 변경됩니다.
      독일은 연합국의 공세 가능성을 막기 위해, 댐들을 폭파시켜 북서유럽 저지대 대부분이 늦가을 초겨울 늪지대로
      변해버립니다. 그리고 그 겨울에 벌지에서 공세를 취하지만 실패하죠. 벌지전투에서 독일이 연합국 방어선을 붕괴
      시키고 역전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노르망디 전선에서 독일군이 붕괴된 이후 병력, 연료, 탄약 등 모든 면에서
      전쟁의 향방을 바꿀 여지 전혀 없었습니다.
      4. Then & Now | Groesbeek & Nijmegen : 미군 캐나다군 전투 지역 공중에서 바라본 영상.
      czcams.com/video/IEGj_kAuvpM/video.html
      영국 미국 유럽의 군사매니아들이 얼마나 철저한지 위 동영상 자료들로 느끼게 됩니다..
      저들은 우리와 달리 수 많은 자료들을 만들었고,남겼고, 접근이 더 쉽습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저렇게 하죠.
      승리한 전투도 아닌데 저렇게 분석하는 집단이 속한 공동체가 세계를 좌지우지했던 것 우연이 아닐 겁니다.
      이 글 직전 올렸던 아른햄 기념식 관련 영상들 보면, 저들이 참전 군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군이 얼마나
      명예로운 집단인지 알 수 있죠. 명예를 잃을만한 일도 벌이지 않는 군임은 물론 당연한 것이고.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1

      2차 엘알라메인 사상자 및 포로 실종 총합 : 독일- 30,542명, 영국-13,560명
      전차 야포 항공기 손실 : 독일- 전차 500대, 야포 254문, 항공기 84대
      영국 전차 332~500대, 야포 111문, 항공기 97대
      일부 사람들이 말하듯, 몽고메리가 물적 인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초래하고 겨우 이겼다는 주장과 많이 다르군요.
      영국이나 미군 입장에서는 사실 저 정도 피해도 본토의 여론으로는 손가락질 당할 만한 피해지만, 2차대전 일반전인 사상자 발생에 비하면 큰 손실 발생했다고 보기 힘든 수준입니다. 더구나 저 전투는 지형 때문에 우회 포위 기동을 할 수 없는 정면 돌파로 초래된 최악의 전투 방식에서 발생한 손실들입니다. (영국 전차 손실이 저렇게 ~ 범위로 나온 것은 회수되어 수리된 물량 때문일 겁니다. 독일은 후퇴로 몰려서 회수고 뭐고 할 수도 없어서 그렇고)
      1942년 10말 말 2차 엘알라메인 전투로
      독일군 방어선이 붕괴되고 후퇴할 때, 독일군에 남은 전차는 기억으로는 30여대 정도.
      몽고메리가 물량을 충분히 비축하고 공세를 펼쳤기 때문에 영국군은 그 시점에서 500대 이상의 전차를 확보.
      독일군은 도저히 회복하기 힘든 처지로 몰리고
      튀니지 까지 끝 없는 후퇴를 하고 결국 1943년 항복하게 됩니다.
      튀니지 최후의 거점 방어선인 마레트 전선에서 롬멜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대전차 방어망에 치명타를 입었죠.
      영국군이 마레트 전선에서 독일군 기갑부대를 격멸시킬 무렵, 햇병아리 미 전자대는 캐서린 계곡에서 거의 전멸당했고.
      패튼을 포함한 미군은 튀니지 항복할 때 까지 독 주력을 맞아 실질적 전투를 못했죠. 영국군의 보조 역활 정도.
      튀니지 항복한 독-이 추축국 병력은 무려 25만 입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독 제6군이 항복할 때 9만 좀 넘은 수준이었죠.
      그 때 옛 카르타고 유적을 방문한 처칠이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북아프리카 승리는 끝의 시작, 아니 시작의 끝이라고 (순서 바뀔 수도) 했을 겁니다. 독일 패망의 시작을 그렇게.
      여기 게시판에서 몽고메리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의 주장이 꽤나 과장 왜곡된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영국군과 몽고메리는 물량으로만, 인해전술로만, 겨우 이긴 것이 아닙니다.
      저 정도가 무능이면, 전세계에 유능한 군대는 없습니다.
      몽고메리 최고의 삽질 마켓가든은 몽고메리가 변명할 거리가
      별로 없지만, 그 조차도 거대한 인명 피해는 아니죠. 당시는 세계대전이고 모험과 실패는 병가지상사일테니.
      1-2만명 손실 각오하고 시도해 성공하면 1944년에 전쟁 끝나고, 실패하면 45년으로 종전 미뤄지는 모험 도박 성격도.
      모험 실패한다고 전쟁에 패배하는 대역전 벌어지는 것도 아니죠. 승리에 대한 열망에 휩싸이면 누구나 범할 수 있는 도박.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 당시, 미국이나 영국 침공군의 최고 지휘관급 위치에 있었다면,
      자신이 주도해서 전쟁을 끝내는 열망에 휩싸이게 됩니다. 강력하게 요구하고 관철시키고 승리해서 영웅이 되고자 하겠죠.
      최악의 경우 실패한다고 해도 공세가 거기서 멈추는 정도, 실패해도독일이 2차대전 승리할 것도 아니고.
      마켓가든, 몽고메리에 대한 최대한의 변명이 가능하다면 이 정도일 겁니다.
      매력적이었으니까 아이젠하워도 ok 했겠죠.
      투입되는 병력도 수십만의 대병력도 아니고 모험해볼만 했던 것이라 ok,
      미국과 아이젠하워가 영국 보다 힘이 없어서 협박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마켓가든 ok 하지는 않았겠죠.
      당시 미국은 모든 전선에서 균등하게 전진하자는 전략이었고, 영국은 송곳으로 한 곳을 뚫자는 전략이었는데
      논리적으로 미국의 주장이 좀 어리숙한면이 있었습니다. 비효율적이죠. 그래서 논쟁에서 밀려 마켓가든 ok 했을 겁니다.
      패튼과 몽고메리, 간단히 2 사람을 요약하면 서로 자신이 송곳이 되겠다고 설쳐댄 측면이 있죠.
      미국 입장에서는 패튼만한 장군이 없었고 따라서 할리웃 영화에서 미국의 전쟁 영웅 아이콘으로 부상한 측면도 있죠.
      하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패튼은 전성기 독일군과 교전해본 적 없고, 몽고메리는 덩케르크 부터 교전했습니다.
      노르망디에서 영국군이 거의 모든 독일 주력 기갑군을 몸빵할 때, 그 빈틈으로 코브라 성공했죠.
      사실 영국군이 독일 주력 고착 소모시킬 때 미군 돌파가
      상륙하기 전에 새운 노르망디 작전 계획이기도 했습니다. 계획 그대로 된 겁니다.
      벌지 때 사실 패튼이 거기에 있었건 없었건 독일군은 전선 돌파 할 수 없었죠. 패튼 없었으면 미군 정말 붕괴? NO!
      패튼은 마켓가든과 같은 단독의 송곳이 되지 못했고, 몽고메리는 송곳이 되었지만 뚫지 못한 동일한 본질의 야망가들.
      작전 실패했다고 그 작전이 전부 글러먹은 것은 아닙니다.
      작전 실행 이전에는 그 누구도 작전과 전투의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가능성과 손실을 예상하며 주사위를 던질 뿐.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1

      엘알라메인, 몽고메리만이 아니라 롬멜도 정면돌파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동영상 첨부, 40초 이후 보시죠.
      카타라 저지대, 사막지역인데 늪, 진창과 같이 걷기도 힘들고 기갑부대가 통과할 수 없는 지역이 있습니다.
      지중해의 바닷물이 지하로 연결되었는지 사막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지형적 장애물로 인해 우회 포위 섬멸이 불가능.
      czcams.com/video/L-rRc5hQFbA/video.html
      엘알라메인, 바로 이런 지형적 제약 때문에,
      토부룩 함락 후 잽싸게 이집트로 진격하던 롬멜이 여기서 멈추게 됩니다.
      알엘라메인의 영국군 방어선은 지중해 해안으로부터 남으로 카타라 저지대까지 이어집니다.
      카타라 저지대 남쪽으로는 모래 천국 사하라 사막이 펼쳐져, 지중해 해안선에서 카타라 저지대 사이 좁은 폭만 기동 가능.
      토부룩을 잃고 이집트로 후퇴하던 영국군이 최후의 방어선을 엘알라메인에 설치한 이유가 카타라 저지대 때문.
      저런 지형이 아니었다면 롬멜은 그냥 간단히 영국군 방어선 남단을 우회 해서 돌파했을 겁니다.
      방어에선 최적지였지만, 공세를 취할 때는 최악의 조건이 되고 말죠.
      저 방어선 선택은 해임된 오킨렉 장군이 했습니다.오킨렉이 해임된 이유는 토부룩 상실이 결정적이라 추측됩니다.
      몽고메리가 아닌 오킨렉이 계속 지휘했어도 영국군은 독일군을 북아프리카에서 축출시켰습니다.
      저 시점에서는 독일군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후임으로 부임한 몽고메리는 지형적으로 기갑부대의 정면돌파,
      그것도 적 방어선 정면에 최악의 축차 투입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충분한 수량의 전차와 물량이 비축될 때 까지 공세를 최대한 늦추죠. 처칠의 이른 공격 요구를 거듭 거부하면서.
      몽고메리가 전술적으로 후달려서, 물량빨로 겨우,
      그것도 큰 인명 피해내면서 이긴 졸장? 어림도 없는 매도입니다. 저 지형에선 그 어떤 다른 대안도 없습니다.
      영국군은 그렇게 물자 비축하면서 대기하며
      롬멜이 최대한 우회기동 해서 공세를 취할 카타라 저지대 경계선 근처에
      대전차 함정을 파고 기다렸고. 롬멜은 할람함파 에서 대전차전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돈좌됩니다.
      그 이후 롬멜은 일방적 수세로 몰리죠.
      이런 지형적 제약은 몽고메리가 공세로 전환할 때도 동일했습니다.
      즉 영국군이 독일군 방어선을 우회 돌파 포위 불가능해서 독일군이 매설한 지뢰지대를
      보병 투입해서 손으로 지뢰 하나 하나 제거하고, 그렇게 확보된 통로를 독일군이 뻔히 보는 가운데 탱크들 투입.
      투입된 탱크들 마구 퍼져나가도 어쩔 수 없이 독일군 방어선 붕괴되는 그 순간까지 투입해서 결국 돌파. 어쩔 수 없었던 것.
      실제 전투에서 영국군은 해안선 쪽 도로의
      아주 좁은 곳으로 우회 아닌 우회 기동을 하면서 독일군 방어세력을 일부 이동시키면서 전선 돌파.
      롬멜은 현명하고, 몽고메리는 어리석어 엘알라메인 영국의 공세에서 큰 희생이 발생했다? 어림 택도 없습니다.
      롬멜도 몽고메리도, 어느 누구도 엘알라메인 전선 돌파는 피 흘리는 정면돌파 외엔 대안이 없었습니다.

  • @user-gd3ur7md7u
    @user-gd3ur7md7u Před 4 lety +25

    근데 생각해보면 독일 입장에선 저거 이겨도 러쉬뛰는 소련 저지 못해서... 멸망엔딩은 여전 했을듯

    • @user-ie9ph3ym6z
      @user-ie9ph3ym6z Před 4 lety +8

      역시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독소전쟁이죠ㅋㅋ

    • @Arstotzka0329
      @Arstotzka0329 Před 3 lety

      인류캐삭빵 독일vs소련 ㅋㅋㅋㅋㅋㅋ

    • @jaeyunji728
      @jaeyunji728 Před 2 lety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러시아 전선의 독일군은 궤멸되었죠.

  • @nfandw
    @nfandw Před 4 lety +5

    나온 사람들이 전설이네요 명예욕이건 승부욕이건 욕심에 눈이 멀으면 몽고메리장군 같은 명장도 장님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전

  • @user-gq2mx7jf9s
    @user-gq2mx7jf9s Před 3 lety +5

    1.5배속으로 들으면 내용미나 영상미나 다 해서 ㄹㅇ 완벽..

  • @user-gx8im4sl1t
    @user-gx8im4sl1t Před 4 lety +45

    군인은 이기고 있을때, 사업가는 사업이 잘 나갈때 이때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 자만심이
    항상 문제.

    • @user-ie9ph3ym6z
      @user-ie9ph3ym6z Před 4 lety +1

      맞습니다

    • @user-os7vn9tr4w
      @user-os7vn9tr4w Před 3 lety +2

      주식투자는 오를때 뺄 준비를 해야함
      ㅋㅋㅋ
      그걸 못해 울고 있지만

  • @micael7347
    @micael7347 Před 4 lety +6

    마켓가든작전은 몽고메리 똥고집에서 나왔고 제대로 수립된 작전이 아니었다. 독일군에게 전멸 안당한게 용한 작전이었음.

  • @jerryfletcher4861
    @jerryfletcher4861 Před 3 lety +2

    1!!!! 2.3.4.5...... 설명 하실때 강조 부분이 매번 첫 단어는 크고 뒤로 갈수록 소리가 작거나 힘이 없어지는 느낌입니다. 이것만 고치시면 더 멋진 씨네모리가 될 것 같습니다.

  • @pillseung1804
    @pillseung1804 Před 4 lety +16

    우연에 우연에 우연을 바란 몽장군
    저런 작전을 다른 장군들이찬성한것도 이상하다
    다리 하나라도 확보못하면 끝인데
    수많은 공수부대원들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한 몽고메리는 총살감이었다. 꿈깨 몽장군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Před 2 lety +2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주둥이에 한 방 얻어맞기 전까지는."으로 고쳐서 말한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을
    저 당시 몽고메리가 깨달았다면..........
    많은 젊은이들을 개죽음시키지 않았을텐데....
    그래서
    지금도 저는 몽고메리는
    명장도 지장도 아닌
    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구리를 할 수 있는 물량이 모이기전까지는
    공격도 안한
    책임지기 싫어하는 관료형 졸장..............
    그나마
    롬멜을 무찔렀다는 그거 하나 만으로
    저런 무모한 작전을 시도했다니.......
    그래서
    본인의 주검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영국의 국립묘지로 인정되는 진짜 영국의 성지..... 아이작 뉴턴도 그 곳에 묻혔음)
    에 안장되지도 않고
    자신의 고향 공동묘지에 묻혔고
    지금도 몽고메리의 묘에는
    우리나라 현충일에 꽃을 바치는 것 같은 예우도 못받으니....
    그나마
    폴란드 공수여단의 지휘관인 소사보우스키 장군은
    생전에는
    영국에서도 무시당했지만
    지금은
    그나마 국립묘지 급의 묘지에 묻혔으니....
    사실
    지금도 폴란드에서는
    소사보우스키 장군의 묘비에
    마켓가든 작전 당시의 날에
    꽃을 바친다고 합니다.
    과연
    자기 고향집 근처의 묘지에 묻힌
    몽고메리의 무덤에
    진실스러운 모습으로 꽃을 바칠 사람이 과연 있을지..........
    저승에서
    소사보우스키 장군은
    몽고메리보다는 고개를 들 자격이 있다고나 할까요............

  • @user-dz7ut8ud6j
    @user-dz7ut8ud6j Před 4 lety +144

    패튼이 몽고메리를 무시했던 이유가 있었음ㅋㅋ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45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쩌면 가장 큰 이유.
      패튼은 스코틀랜드 이민자 후손입니다.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 보는 시각 원수나 다름없죠.
      그런데 패튼은 사실 쌩쌩한 독일군과 붙어본 적이 없습니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도 시칠리에서도 별 다른 전투 없이 폼만 잡은 편이죠.
      영화에서 멋지게 나오는 팔레르모 입성, 영국군은 에트나 화산지역을
      치열한 교전 후 전진할 때 패튼은 거의 무방비 지역을 지프 타고 쌩하고 팔레르모 입성해서 폼 잡았고.
      노르망디 상륙전에서도 패튼의 미3군은 독일 주력 기갑군을 영국군이 몸빵할 때,
      그 빈 틈으로 돌파한 것이고. 노르망디 상륙 때 독일 주력을 상대한 것은 미군이 아닌 영국군입니다.
      상륙지점 위치 부터 벌써 확 표가 나죠.
      영국과 연방군은 노르망디 우측으로 깔레 쪽, 미군은 좌측 셀부르 쪽. 독일이 어느 쪽이죠? 칼레 방향이죠.
      노르망디 전역에서 독일 주력 기갑군의 80%를 영국군이 까앵 전선에서 도맡아 고착 소진 시켰습니다.
      뒤늦게 투입된 패튼의 미3군은 너덜너덜한 독일군 그것도 거의 순수 알보병 뚫었고.
      벌지 전투 때 역시 쌩쌩한 독일군이 아닌 전쟁 말, 너덜너덜해진 독일군 상대로 멋지게 폼 잡았죠.
      패튼이 거기에 있었거나 말거나, 벌지 전투는 독일이 승리할 수 없는 여건이었습니다.
      기갑부대 연료를 미군에게 탈취해서 사용하는 것이 작전 계획에
      포함될 정도였으니.

    • @ghkim9527
      @ghkim9527 Před 4 lety +10

      sc z 영국이 미국을 끌여들였는데 더 위험한 것을 감수 하는게 맞죠~ 그래야 미국이 따라오죠~

    • @hoonjee2698
      @hoonjee2698 Před 4 lety +18

      개인적으로 성격이 ㅈ같아 문제지 패턴을 우습게 보네 독일의 롬멜과 함께 이차대전최고의 영웅을 그를 몽고메리와 비교 하는 것 자체가 다른 것이 그는 현대전에서의
      탱크를 말이 그동안 수행해왔던 역할로 대체한 최초의 군인으로 그 걸 전쟁에서 직접 시행에 전쟁을
      일찍 앞 당겨 종결시켜 수많은 생명을 살려낸 천재군인을 마치 물 뺀 웅덩이에서 고기나 줍는 낚시꾼 같은 군인으로 표현하는 건 좀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6

      @@hoonjee2698
      1. 2019 마켓가든 75주년, 아른헴 : 3번 동영상은 1954 폴란드 소사보프스키 장군, 영국 숀커네리역 장군 참석.
      czcams.com/video/NC3hW508SmI/video.html
      2. 1949 마켓가든 기념식 아른헴, 전투 5년후 실제 작전 수행했던 베테랑들 참석.
      czcams.com/video/WHaqLCmza9U/video.html
      3. 1954 마켓가든 기념식 아른헴, 작전 지휘했던 폴란드와 영국 공수부대 장군 참석
      제목 : The "Many" Honour The "Few" - Nijmegen And Arnham (1954)
      czcams.com/video/oNYQ0s5VFxo/video.html
      영국 제1공수사단장 Roy Urquhart(숀커너리 역), 폴란드 소사보프스키 장군
      4.1944 마켓가든, 실제 전투 기록 영상
      czcams.com/video/3WWE8ZMfLSs/video.html
      5. 2019 마켓가든 75주년 공수강하 4k
      czcams.com/video/gt3hmNx0hbw/video.html
      6. 2019 마켓가든 75주년 공수강하
      czcams.com/video/2rVRXUmNE30/video.html
      7. 마켓가든 그 때와 지금 : 44년 전투 당시 사진과 그 위치의 현재 사진 비교
      czcams.com/video/f2M-onQwmaU/video.html
      8. 2019 마켓가든 75주년 기념 공수작전 낙하부대원들 기내 및 착륙. 기념식 포함
      czcams.com/video/qMr7oRB7UsY/video.html
      9.1955 마켓가든 전사자의 아이들 75명, 아빠 잠든 아른헴 전사자 묘역 방문.
      czcams.com/video/AmeEV_xTF4w/video.html
      10. 존 프로스트 중령 이름 딴 다리에서 출발, 영국 백파이프 행진 2019년
      czcams.com/video/xIf-zJ_E0Us/video.html
      2019 백파이프 연주하면서 존 프로스트 중령 이름 딴 다리 출발 시내 행진하는 모습.
      패배한 전투라고 덮고 넘어가지 않고, 그 패배 속에서 더 빛나는 영웅들을 추모하는 것.
      저 백파이프 연주자 중에는 75년 전 노병인지는 모르겠는데 머리 하얀 노인들도 섞여 있습니다.
      찾게 되면 나중에 추가할 예정인데 폴란드군 역시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기념비도 있고.
      폴란드군만 참여하는 것이 아닌 영국 공수부대도 폴란드군 기념식에 함께 참여해서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실제 전투로 부터 가장 최근인 1945년 기념 영상도 찾게 되면 첨부하겠습니다. 전에 어디서 보긴 본 것 같은데.
      11. 30군단 아이리시 가드, 좁은 도로 전진 중 독일군 매복에 걸린 전투 분석 : 과거 전투 영상, 기록과 현재 지형 비교.
      czcams.com/video/T7UCLf7a-3k/video.html
      매복 공격당해 격파당한 영국군 기갑 차량들 사진, 그 차량에서 숨진 전사자 이름 까지 나오는 분석
      과거 전투 기록 그것도 동영상 포함 많고, 수십년이 지나도 분석하는 민간인들이 있다는 것 부럽죠.
      정부와 군에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아마추어들이 이렇게 활동합니다.
      세계를 좌지우지 해봤거나 하고 있는 세력 공동체는 전쟁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그럴지도.
      12. 2014 아른햄 존 프로스트 다리를 방문해 헌화하는 노병들, 전투 70주년 기념식
      czcams.com/video/OBH9AA4OTAw/video.html
      9번 동영상은 아른헴에서 전사한 공수부대원들의 아이들이 아빠 묘소를 찾는 영상입니다.
      영국 정부가 제공한 항공기로 네덜란드 방문해 묘소를 찾아 헌화하는 모습.
      전투에는 패해도 전쟁에는 지지않는 역사가 왜 일어났는지 위 동영상들을 보면 느낄겁니다.
      패배한 전투를 그냥 넘기지 않고 기억하는 자들만이 전쟁에서 승리할 자격이 있는 것이죠.
      마켓가든 교전국 피해 (현지 레지스탕스 피해 자료 못 구함)
      독일 : 전사 약 2,000명, 부상 약 8,000명 총 인명피해 약 10,000명 (포로 확인 못함)
      미국 : 전사 + 부상 약 3,600명 (전사 부상 따로 확인 못한, 포로 확인 못함)
      폴란드 : 전사 약 100명, 부상 약 300명 (포로 확인 못함)
      영국 : 총 인명피해 약 14,000명, 영 공수부대 사망 약 1,100명
      전사 마켓작전(공수부대) 약 1100명, 전사 가든작전(30군단) 약 5,400명, 영국 마켓가든 총전사 약 6,500명
      마켓가든 실종 약 850. 포로 약 6400(거의 공수부대), 영국 공수부대 인명피해 총 약 8,000명/투입병력 약 10,000명
      정리하면 대략
      독일측 총 인명피해 약 10,000명
      연합국 총 인명피해 약 18,000명, 독일측 피해의 대략 2배.
      영국 공수부대 피해율은 사상자 포로 도합 80% 에 이를 정도로 공수부대원들은 분투.
      작전계획 수립 단계에서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대패한 상태지만 전선 붕괴로 역전되거나 할 상황은 전혀 아님.
      아른헴 후방으로 영국군 100만, 미군 300만은 여전히 건재하고 마켓가든 공세 실패로 전선이 잠시 정체되는 정도.
      작전이 성공했으면 1944년 종전, 실패하게 되면 45년으로 미뤄지는 정도. 도박할 가치 있었지만 성급 부실했던 작전수행.
      미국이나 영국은 세계대전 상황에서도 이 정도 인명피해 당하면 어마어마한 손실로 여겨집니다.
      바바로사 초기 소련군이 당한 손실은 단일 전투에서도 50만 쉽게 넘어가고 포로 또한 가볍게 수십만이 넘죠.
      소련군이 공세를 취할 때도 전투는 승리해도 보통 독일군 보다 몇 배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세계대전 갈 필요도 없이 한국전쟁 때 우리 국군 전투 피해도 규모가 큰 경우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졸전 패배 없이 멋지게 승리만 하는 군대 없습니다.
      지난 수 백년간 지구상에서 가장 승률 높고, 결정적 승리를 거듭했던 군대 조차도,
      손가락질 당할만한 패배를 수 없이 겪으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전쟁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패배가 미래의 승리가 될 수 있도록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고 기념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한 이유기도 하죠.
      영국과 영연방의 대규모 삽질 사례인 갈리폴리 상륙 작전은
      영국을 넘어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안잭데이로 그들 전쟁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날로 추념됩니다.
      안잭데이 기념 중 특히 터키의 상륙지점에서 벌어지는 행사는 영-호-뉴-터키 함께 참여합니다.
      갈리폴리 전투는 터키에게도 상징성이 큽니다. 그 전투를 지휘했던 케말 파샤가 그 전투 승리를 기반으로
      패전한 오스만투르크를 대체하는 터키 공화국을 건설하게 되었으니까.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철수한 작전이지만, 호주나 뉴질랜드 입장에서는
      식민지 보호령이 아닌 독립된 군대로 함께 참전한 그들 국가 군대 정체성을 확립한 상징이 된 것이죠.
      아른헴 투입된 공수부대의 80%가 손실된 대패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손실을 당하면서도 전투를 수행한 공수부대원들의 희생은 수치가 아닌 명예입니다.
      물론 조건은 있습니다. 패배로 부터 전훈을 배워야만 하죠. 저들은 철저하게 그런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2

      @@hoonjee2698
      윈스턴 처칠, 2차대전 방송 연설 모음. (전선 방문시 연설 제외한) 가장 중요한 연설들.
      1. BLOOD, TOIL, TEARS AND SWEAT speech Winston Churchill : 피, 수고 눈물과 땀 (1940.5.13)
      czcams.com/video/80_HXIHa724/video.html 자막 없음
      czcams.com/video/fKBR0igDPfM/video.html 영어 자막
      2. WE SHALL NEVER SURRENDER speech by Winston Churchill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덩케르크 (1940.6.4)
      czcams.com/video/s_LncVnecLA/video.html
      3. THEIR FINEST HOUR speech by Winston Churchill 영국 홀로 항전 (1940.6.18)
      czcams.com/video/6jjhxeHIjvU/video.html
      4. Never in the field of human conflict was so much owed by so many for so few 영국항공전 치하 (1940.8.20)
      czcams.com/video/oiISJ1Z40Y4/video.html
      5. GERMANY SURRENDERS announcement by Winston Churchill 독일 항복 발표 (1945.5.8)
      czcams.com/video/JNTWyqVCBZc/video.html
      6. An IRON CURTAIN has descended - VIDEO RECORDING from The Sinews of Peace speech 철의 장막 (1946.3.5)
      czcams.com/video/lULSK10LQqA/video.html
      웬만한 국가 지도자, 장군들 어록과 비교할 수 없는 연설들이죠.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 케네디 취임 연설 등과 함께 극적인 연설입니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전시 연설중에선 언론-신앙-결핍-공포 로부터의 4가지 자유 연설도 그렇고.
      대한민국에서 연설은 아니지만
      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은 대단한 혜안과 소망을 담고 있죠.
      학력은 훨씬 더 좋은 (미국 박사 출신) 이승만의 어록 중에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외엔 기억 안남.
      (오늘날은 스마트 폭탄으로 뭉치면 떼죽음 당하는데, 과거에도 운이 없으면 그렇게 되고)
      가장 비참한 전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웰링턴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가장 비참한 전쟁은 패배한 전쟁, 그 다음 비참한 전쟁은 승리한 전쟁
      웰링턴의 저 한 마디로 전쟁의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한 승리, 영광 그런 것 다 허깨비 같은 겁니다.

  • @kcs8772
    @kcs8772 Před 4 lety +3

    워낙 캐스팅이 화려 그 자체인데다 정말 명작이죠. 라이언일병 이후로 cg가 판치는 요즘 영화에 비하면야 참혹함이나 액션씬이 진부하겠지만 저도 여러번 즐감한... 기억에 남는건 당시엔 독일군 바보만드는 영화가 트렌드였는데 비교적 객관적 묘사가 신선했던... 근엄함과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충실한 영국군, 직접 부하들과 일선을 넘나드는 어그레시브하고 에너제틱한 미군, 오만한듯 그러나 전쟁프로페셔널의 모습을 보여주는 독일군등 각군 장성들의 대조도 느꼈죠.
    그런데 기억나는 이 영화상 오류는 잠시 화면으로도 나온 크레프너 대위이하 독일 9ss 기갑수색대와 영국 프로스트 대대와의 아른헴브릿지 공방전이라고 하더군요. 영화에선 기갑수색대가 교량을 탈환하려 온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는 갑작스런 영국군의 낙하로 고립되버린 수색대가 영국군포위망을 돌파작전을 벌이다 크레프너 대위도 전사하고 상당수의 차량과 인적자원도 손실한거라고 하더군요. 영화가 너무 기니 한번 시간나면 다시 봐야겠네요.. 감사..

  • @janejeong2403
    @janejeong2403 Před 4 lety +4

    이영화를 중3때 고등학교 입시를 보고 봤는데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영화였습니다 나중에 유튜브를 통해 내용을 이해하고 보니 맨날 독일군이 깨지는 영화가 아니고 연합군도 실패했다는 사실에 다소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 @user-xu1fy2xs9g
    @user-xu1fy2xs9g Před 2 lety +5

    다시 보러왔는데 목소리 차이 많이나네요ㅎㅎ

  • @idealist_87
    @idealist_87 Před rokem +1

    마지막에 항복하는 영국군 잔존 병력에게 모델장군이 영국군 군수품 초콜릿을 주면서 영국제야~
    라고 하는 장면의 아이러니와 영국부상병을 인수하러 진입하는 독일군
    그리고 피난가는 네덜란드 시민의 모습으로 끝나는 장면은 참 무의미한 작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죠

  • @user-ql3cm5bw3h
    @user-ql3cm5bw3h Před 4 lety +146

    가만보면 몽고메리는 명성만 높지 실제는 많이 부풀려진듯.

    • @user-jh9bx6ld6i
      @user-jh9bx6ld6i Před 4 lety +35

      @@user-kt8yp5ho2y 롬멜도 부풀려진 게 많다 하지만 열세로 아프리카에서 엘 알라메인을 공략한 것이나 그 전의 부대 지휘관으로서 전공 중 무시못할 실적을 쌓은 게 분명 있습니다,
      부풀린 측면이 둘 다 있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롬멜과 몽고메리를 동급으로 보시는 건 동의하기 힘드네요.

    • @JJJ00-12
      @JJJ00-12 Před 4 lety +36

      롬멜은 2차세계대전 초기 프랑스 침공때 당시 지휘한 사단 이름이 ‘유령 사단’
      진격속도가 너무 빨라서 얻은 칭호
      후에 아프리카 전선에 사령관으로 임명되고 연합국에서 ‘사막의 여우’ 라는 칭호까지 얻은 장군인데 반면에 몽고메리는???
      롬멜은 장군중의 장군이었음
      당시 나치당도 반대하고 히틀러 암살사건에도 연류되서 숙청된 참군인

    • @user-hs9jj3is3h
      @user-hs9jj3is3h Před 4 lety

      @@user-kt8yp5ho2y 독일이 욕을 들먹었겠죠....전쟁도 조금 일찍 끝나는 정도 아닐가여?

    • @user-ms3sz5mn7q
      @user-ms3sz5mn7q Před 4 lety +6

      롬멜이왜 몽고메리랑 같다는겨

    • @user-ms3sz5mn7q
      @user-ms3sz5mn7q Před 4 lety +8

      부풀려진거는 쥬코프가 젤큰듯 그

  • @user-ld3xu4wo3n
    @user-ld3xu4wo3n Před 4 lety +2

    오! 나름 재미있는 영화죠! 두번을 봤었는데 볼만해요. 지휘부의 고심?과 투입부대들의 실전상황까지 나름 재미있게 조합을 했고 전쟁영상들도 제법 실감나게(고전영화 치고는) 표현했죠.

  • @user-ul3tq9pb8j
    @user-ul3tq9pb8j Před rokem

    2:00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 끝내겠다."는 정말 유명한 클리셰가 되었군요 ㅠㅠ

  • @koosungdeok
    @koosungdeok Před 4 lety +2

    초대 제임스본드인 숀 코네리도 있네요ㅎㅎㅎ diamonds are forever(1971)을 마지막으로 제임스본드 배역을 그만두고 여러가지로 이미지 변신에 전념할때이지요. 오리엔탈특급열차 살인사건도 비슷한 시기였던겨 같은데요ㅎㅎㅎ

  • @SWATLAPD9701
    @SWATLAPD9701 Před 2 lety +1

    씨네모리님 돌아오지 않는 해병도 리뷰해주세요 당시 6,25이후라 실제 장비들과 실탄을 사용하여 사격 (부대에서 특등사수들을 뽑아 실탄사격 촬영)
    한 스턴트는 실제 수류탄에 발목을 절단되는 부상을 당하였으나 당시에 보상으로 개발되지 않은 강남 논 몇마지기를 받았었다네요
    미국배우들은 실탄 사격하며 촬영하는걸 보고 겁을 먹었다는 일화가..
    단점은 당시 마이크문제였는지 몰라도 음향에 문제가 있는것빼고는 촬영때 날아다는 도비탄이나 도탄되는 소리는 실제 탄의 소리였다는걸 감안하면...
    촬영할때 얼마나 무서웠을지....

  • @charlieshin9513
    @charlieshin9513 Před 3 lety +1

    고딩때 문화교실로 단체로 관람했는데 이런 깊은 의미가 있었군요 ~ 추억으로 빠져보는 시간 감사합니다.

  • @user-us9tm7yu6f
    @user-us9tm7yu6f Před 3 lety +2

    공수작전 자체가 공수작전을 상상도 못하는 적에게 의외의 침투일때만 유효하지. 적이 예상해서 준비하면 삽질임. 기동방어가 가능한 적을 상대로는 아예 금지해야함.

  • @ClearCitrn
    @ClearCitrn Před 3 lety +1

    처칠의 갈리폴리, 몽고메리의 마켓가든
    네덜란드 여왕의 남편이 대놓고 "니들 작전 두 번 성공해도 될 만큼 우리나라가 ㅈㄴ 쎄지 않아요 ㅎㅎ..." 라며 비꼰 작전.
    근데 듣자하니 이 영화에서 모델이 연합군 공습에 당황했다는 너프가 있다는게....

  • @user-zw6eb6on5r
    @user-zw6eb6on5r Před 3 lety +5

    처칠 - 갈리폴리, 디에프
    몽고메리 - 엘 알라메인, 마켓가든
    이 영국 두놈은 참..(전쟁 이겨서 망정이지)

  • @right-wing3640
    @right-wing3640 Před 3 lety +3

    영화의 백미는
    '아마도...우리가 너무 먼 다리(A bridge too far)까지 가려했나보군요' 임

  • @user-ie9ph3ym6z
    @user-ie9ph3ym6z Před 4 lety +5

    사실상 2차대전은 독일과 소련의 영혼의 맞다이

  • @bluemonday9538
    @bluemonday9538 Před 4 lety +1

    소근소근 얘기하다가 첫마디만 크게 하시는데 들으면서 볼륨조절 하기 애매해요 강약 조절을 좀더 일정하게 해보시는건 어떠세요

  • @MsRalph386
    @MsRalph386 Před 5 měsíci

    내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전쟁영화... 영화가 끝난뒤.. 아니 왜 영화가 하다가 끝나? 그리고 앞뒤도 안맞아.. 이긴거야 진거야 라는 고민만 남여준 영화였죠.. 중학교때 봤나 암튼... 그때는 무조건 우리편 이겨야 되었는데.. 이긴건지 진건지 ....ㅜㅜ

  • @soomin1189
    @soomin1189 Před 4 lety +16

    독소 전쟁 없고 동부전선 병력 서부전선에 투입 됐다면 연합군 상륙작전 하지도 못한다 주력 대부분 동부전선에 투입 되어서 많이 약해진거지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영국과 독일 비교
      시간 제한과 게임 룰이 명확한 축구에선 독일이 무적이다.
      그러나 시간 제한 없고 게임 룰이 흐리멍텅한 전쟁에선 독일은 결국 패한다.
      영국, 무수히 많은 전투의 패배에도 결국 전쟁은 승리.
      독일, 무수힌 많은 전투의 승리 그것도 위대한 압도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전쟁엔 패배 반복.
      지난 수 백년 역사에서,
      영국은 단 1번의 예외 그것도 같은 앵글로색슨의 분열 성격인
      미국 독립혁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전투에선 무수히 많이 졌지만.
      나폴레옹의 프랑스,
      비스마르크가 건설한 카이저의 통일 독일제국,
      히틀러의 나치 독일, 그 모두는 영국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 막혔습니다.
      그들 모두가 제 아무리 깃발 날렸다고 해도,
      세계 지도나 지구본 상에선 잘 보이지도 않는 좁은 우물 안에서 잠시 소란 피운 수준.
      나폴레옹은 프랑스대혁명 중반부 부터, 워털루 까지 대략 20년.
      1차대전의 독일은 겨우 4년, 나치 독일은 대략 6년 정도 깃발 날리다 사그라들었죠.
      그들 모두를 유럽이라는 좁은 우물 안에 가둬놓고, 영국은 세계를 쥐락펴락 했습니다.
      영국은 무너졌지만, 영국과 동일한 언어 문화를 가진 미국이 영국의 뒤를 이어 패권을 장악했고.
      독소전이 아무리 광활하다고 해도,
      북아프리카 전선의 전진 후퇴 종심 깊이 보다 짧았 즉 얕았고,
      지구본에선 겨우 보이는 좁은 영역에서 서로 튀기는 자멸 행위를 한 정도.
      독일과 소련이 그 짓 할 때, 미국과 영국은 과장 조금 보태면 북극에서 남극, 5대양 6대주 어디건
      필요한 곳에 병력과 물자를 이동 배치할 자유와 능력이 있었던 차이, 결정적이죠.
      대륙 세력이 해양 세력을 상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독일이 독소전을 하건 말건, 소련이 독일과 전쟁을 하건 말건, 그 둘이 친구가 되건 말건.
      그들은 유럽이라는 우물에 갖혀 봉쇄된 운명이었고, 나머지 광활한 전세계는 미영의 영향력 아래죠.
      독일이 영국에 트라우마를 가졌으면 가졌지, 영국이 독일에 열등감이나 트라우마 가질 이유가 전혀 없는 겁니다.
      지난 역사와 전쟁이 증명합니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것, 결코 좋은 것이 아니죠.

    • @user-ie9ph3ym6z
      @user-ie9ph3ym6z Před 4 lety +3

      사실상 2차대전은 독일과 소련의 영혼의 맞다이

    • @user-bo4qq8tr8h
      @user-bo4qq8tr8h Před 3 lety

      실제로 41년도에 상륙작전 디에프에서 ...개박살남.

  • @Chungkukzang
    @Chungkukzang Před 2 lety

    1. 패튼: 기갑부대를 대규모로 이용한 공세적으로 기동전으로 적종심 돌파 해서 적섬멸을 최초로 시작한 입지적인 미국 장군
    기갑부대는 오로지 돌파와 속도를 우선시하다보니 사소한 문제는 신경안씀....필연적으로 사상자 다수발생
    그래서 패튼은 군대보낸 아들들 죽인다고 미국내에서 욕 많이 먹음
    - 기동전,적 종심돌파란 개념은 현대의 기갑전에선 당연하지만 2차대전당시엔 저런 기동전,종심돌파및 우회기동이란
    개념없었슴, 최초로 시도한게 만슈타인장군이 기획해서 롬멜,구데리안 장군이 실행했던 낫질작전이 최초
    - 기동전,적 종심돌파란 개념이 일반 보병부댁가 아닌 기갑부대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지는
    중동전에서도 나타남. 이스라엘 총참모장까지 지낸 샤론장군은 3차 중동전 발발후 사단장으로 재취임후
    이집트가 쳐놓은 방어선을 뚫고 그냥 이집트 영내로 들감,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샤론장군에게 멈추라고 했지만 쌩까자 샤론
    장군을 짜를려고 했슴(결국 이집트 휴전협정 조인,샤론장군은 전투가 아닌 전쟁을 끝내는게 뭔지 보여줌)
    - 독일에서 패튼을 두려워한 이유가 자신들이 했던 기갑부대로 기동전,종심돌파란걸 패튼이 하는걸 보면서 당연히 두려워할수밖에 없었슴
    - 시칠리 상륙작전시 패튼은 전쟁을 이기는 작전을 구사하고 몽고메리는 그냥 1:1 박치기하는 전투를 함
    - 전투후 경험치가 쌓인다
    미국은 먼로주의때문에 유럽에 치구박구 쌈하던 신경안씀 미국 전쟁초기 육군 경험치 0, 전차,전투기 물량 0
    그래서 아프리카 상륙후 카세린에서 독일군한테 개털림(반면 영국군은 아프리카,인도,노르웨이에서 경험치 쌓임)
    - 전쟁 경험치는 각 나라별 사례에서 나옴
    한국 : 625전쟁 한국군 현리전투에서 중공군에 개털림 이후 파로호에서 중공군 개털어버림
    영국 : 2차대전 초기 노르웨이 지원하러갔다가 노르웨이군이 영국군을 광산노동자들이라 놀림 이후 독일군 텀
    소련 : 스탈린 적백내전으로 단련된 장교들 대숙청 2차대전초반 개털림 이후 독일군 밀어버림
    미국 : 1.2차대전,625전쟁등에서 초반에 개털림 이후 그냥 밀어버림
    - 2차대전후 소련은 그동안의 전쟁경험으로 대규모 기갑부대를 이용한 작전을 구상
    이름하여 (operation maneuver group; OMG,,위키에서 복붙 ㅋㅋㅋ)
    그냥 간단하게 하면 카테고리 A급 부대로 전선을 유지하다 일부가 최소한 도로가 3개이상 연결된 도시를 목표로 돌파
    전선에 구멍을 뚫고 후방에 대기중인 작전기동군(최소 10개이상의 기갑부대)을 뚫린 구멍으로 밀어넣음,전선 확대
    이것때문에 각 사단당 전차 300대,장갑차 600대이상이 필요했고 이런식으로 바르샤바조약군은 10만대가 넘는
    전차를 대기시켰죠. 그리고 미국은 이걸 막을려면 선제적 핵무기가 필요하다...몇일전에 바이든이 선제적 핵사용을 하지않게
    다고한게 핵무기 사용않고 공격해오는 대규모 적 지상군에 핵무기 사용않겟다 햇죠.
    2. 몽고메리: 필자가 제일 하찮은 장군으로 취급하는 소련 쥬코브장군과 같은 인물
    - 작전으로 이길수없으니 물량빨로 이긴다
    - 전투로 적의 병력,전차,전투기,,,,을 소모시킨후 후방에 모은 병력으로 일거에 밀어버린다
    (엘 알라메인.바그라티온 작전)
    - 영국은 수세기동안 자신들이 최강자이고 유럽은 자기들 앞마당으로 생각함
    영국은 2차대전을 자신들이 목숨걸로 해야하는 전쟁으로 여겼고 미국은 도와주는 전쟁 ,꼰대짓하는 독일을
    그냥 혼내주자 정도? 근데 이것도 일본때문에 사생결단으로 가지만....

  • @worldhousing
    @worldhousing Před 10 měsíci

    5:28 시가 물고 뛰는 101공수 506연대 2대대당 밥 스트라우스입니다. 밴드오브 브라더스의 윈터스 대위 직속상관

  • @fiercehan6791
    @fiercehan6791 Před 3 lety +3

    야무진 영상, 시간가는 줄 몰랐네요

  • @plastictower
    @plastictower Před 4 lety +1

    독일군에 포위된 앤서니 홉킨스의 부대를 보니 자꾸 블랙호크다운이 떠오르더군요. 호화 출연진이라 3시간 정도 되는 영화인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네요.

  • @vinniekim6899
    @vinniekim6899 Před 3 lety +1

    사견입니다만
    제작자님 특유의 차분하고 시니컬한 나레이션이 뭔가 이질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개인적 취향은 기존것입니다.

  • @ICAOhell
    @ICAOhell Před 3 lety +1

    몽고메리의 대삽질이자 공수부대의 한계를 명백히 보여준 작전이었음죠.

    • @user-oo8fx2qr7u
      @user-oo8fx2qr7u Před 3 lety

      전략적 타격의미로 작전자페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다만 상대하는 독일군 사령관이 역사에 길이남을 방어전의 천재인데다가 독일 기갑부대의 기동력이 연합군 예상이상이였다는게 문제죠.

  • @user-pk5ue4fp2t
    @user-pk5ue4fp2t Před 4 lety +1

    본거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
    출연진이 어마어마 했네요

  • @user-lc9zh4cy4j
    @user-lc9zh4cy4j Před 4 lety +3

    구독신청
    앞으로도 더 좋은 영상 부탁드려요
    응원 합니다.

  • @user-jw2sc2sh6k
    @user-jw2sc2sh6k Před rokem

    씨네모님, 화장실에서 녹음하셨나요?ㅠ

  • @user-rr6oz9qi1m
    @user-rr6oz9qi1m Před 4 lety +1

    다른배우들의연기도 좋지만 30군단장역을한 에드워드폭스 의 브리핑 장면의연기는 진짜 대박이죠 영화에서유일하게 수월하게 점령한 그라베 흐라베 그레이브다리는 자세히보면 네이메겐다리를다른각도에서찍어제작비를 아끼려했던 의도를알수있습니다 여기나온배우들 진짜 명배우들입니다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30군단장역의 배우와 실제 30군단장 호록스 장군, 겉 모습도 비슷합니다.
      귀찮아서 한글로 적을께요. 브리티쉬 파쉐라는 사이트에는 2차대전 실제 영상들이 넘쳐납니다.
      거의 모든 영상들은 흑백, 소리는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경우도 제법 많고, 실제 전투 장면들 많습니다.
      사이트 주소
      czcams.com/channels/Gp4u0WHLsK8OAxnvwiTyhA.html
      션코네리가 맡았던 배역의 실제 인물도
      겉 모습이 션코네리와 거의 유사합니다. 후일 나토군 지역 사령관 까지 지냈을 겁니다.
      80년대 소설 제3차세계대전인가의 저자이기도 한 존 해켓 장군인데 덩치도 엄청나게 좋고 잘생겼죠.
      80년대 초에 그 소설을 라디오에서 매일 방송해줬었고,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소련군이 나토 침공하는 내용.

    • @user-ie9ph3ym6z
      @user-ie9ph3ym6z Před 4 lety

      @@scz8333 좋은정보네요 감사합니다

    • @user-rr6oz9qi1m
      @user-rr6oz9qi1m Před 2 lety

      @@scz8333 아이쿠 이제야 감사하단 말씀 전하니다. 그 사이트 잘보고 있습니다.

  • @koleanan1001
    @koleanan1001 Před 3 lety +1

    이 작전실패 이후 몽고메리는 연합군의 무다구치 렌야 취급을 당했지요.

  • @user-ld3xu4wo3n
    @user-ld3xu4wo3n Před 3 lety +1

    C-47수송기!
    잘못 뛰어내리면 꼬리날개에 부딪혀 사망한 경우도 많았다고....
    그래서 뛰어내릴때는 꼭 땅으로 파고들듯이 달려들어서 강하!

  • @user-wy4ug5wo4x
    @user-wy4ug5wo4x Před 3 lety +2

    몽고메리가 승전국 장군이라 사람에 비해 높게 평가된거지 사실상 속좁은 인간에 불과함

  • @yoonaeyoon
    @yoonaeyoon Před 4 lety +2

    전략은 과감했지만 아른헴은 너무 먼데다 통신두절도 패착이었다고 봅니다. 통신만 제대로 됐어도 독일군 기갑부대에 폭격을 가하고 수송기를 통한 보급도 이뤄져 연합군 지상군이 아르헴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줬을 겁니다.

    • @sdp6667
      @sdp6667 Před 2 lety

      가장 중요했던 게 시간싸움이고
      시간을 절약하려면 다리를 점령하고 건너야하는데 다리 폭파를 전혀 고려하지도 않은 근본 없는 작전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Před 7 měsíci +1

    전투에서 승리의 요소는
    적진과 후방간의 원할한 보급루트 확보와 통신망 확보가 승리의 요소인데
    마켓가든 작전을 보면
    그 두 요소를 무시했다는 것이 제대로 보여지니.........
    오리려 영국이 이겼다면
    진짜 신이 직접 돕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너무나도 무모하면서도 어리석은 작전이자
    몽고메리는 이 작전 하나로
    국립묘지가 아닌
    지 고향 시골 공동묘지에 묻히는 치욕을 당할 정도로
    인성과 명성이 완전히 시궁창에 처박히는 모욕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패튼이 대놓고
    너는 등신새끼 아니냐?
    식으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고...........

  • @junghoon6855
    @junghoon6855 Před 4 lety +1

    1:16 병력을 적진에 공수하는게 왜 후송입니까? 후송은 말 그대로 아군지역의 후방으로 보내는 겁니다.

  • @user-tu9kh4xp3o
    @user-tu9kh4xp3o Před 4 lety +4

    독일군 전차대 등 몇몇 고증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외는 나무랄데 없는 수작 영화죠
    미군 아이젠하워의 장점이자 단점은 군인치고 지나치게 정치적인 면을 따지는 점인데 그래서 영국군 몽고메리 장군의 말도 안되는 어거지를 일일이 받아주면서 달래느라 미군 내부의 불만이 쌓여갔고 유명한 패튼장군의 경우는 영화 "패튼(패튼 대전차군단)"에서 묘사하듯이 몽고메리를 거의 원수지간급으로 싫어했습니다
    사실 몽고메리라는 이름을 알린 엘 알라메인 전투도 독일군을 이겼다고는 하나 이미 독일군의 가동 가능한 전차 댓수가 뚝 떨어져 있었고 영국군은 독일군의 대전차 방어진지와 지뢰밭을 통과하면서 많은 피해를 입으며 기진맥진한 독일군 상대로 사실상 물량으로 따낸 승리

    • @nabe4987
      @nabe4987 Před 4 lety +1

      엘알라메인은 단순히 물량으로 어거지승리죠 ㅋㅋ 영국이 워낙에 털리다 보니 영웅이 필요했을뿐 몽고메리는 롬멜 발바닥에도 못가죠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4 lety

      고증을 맞추어 살려낼 수 없었던건 대량으로 노획된 노획품도 없고 이미 실물들이 종전 전에 다 파괴되어 전차 및 장갑차등의 기계화 장비들이 없었기 때문임을 이해하시면됩니다.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4 lety

      아이젠하워 나중에 대통령 되지 않았나요? 625전쟁이 한창이었던 우리나라하고도
      많은 연관이 있던것으로 압니다.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4 lety +1

      @@nabe4987 몽고메리는 롬멜의 적수가 안됩니다.

    • @user-tu9kh4xp3o
      @user-tu9kh4xp3o Před 4 lety

      @@pedrogim6952 70년대쯤이면 프랑스가 독일군 판터 노획해서 쓰던 것도 한참전에 모두 폐기하고도 남았을 무렵이니 독일군 운행 가능한 실물 전차는 보빙턴 박물관이나 가야 있었겠죠 ㅎ
      아이젠하워는 그 아이젠하워가 맞습니다. 그 정치적인 능력을 인정받아 연합군에서 각국의 이해조정을 맡았었고 대통령까지 오른것도 그 탁월한 정치 감각이 빛을 발휘했던

  • @donggeunihm1636
    @donggeunihm1636 Před 4 lety +2

    수비 전문집단이 공세를 어설프게
    하니 시작도 하기전부터 비관적 예상 백출. 연합군 사령관인 아이젠하워의
    유유부단이 이작전을 거부 못해서
    수많은 희생자 발생. 몽고메리는 공세의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만 효과가 았음
    아른헴 다리에서도 다리수비를 할때만
    제법 했던것. 3일 버티라는 것을 일주일이상 버텨냈음.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수비 전문집단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할 수 있겠습니까?
      인류 역사상 저들과 같이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지구촌 곳곳 광활한 범위를 침공한 세력이 있었습니까?
      전에 다른 게시판에서 님에게 단 댓글에 현 지구촌 국가들중 거의 90%는 영국의 직간접 침공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글 다시 읽어보고 냉정하게 표현을 가다듬기 바랍니다.
      영국의 전쟁 수행은 일단 자국이 아닌 해외, 수 백년 전 부터의 전통입니다. 즉 기본적으로 침공군.
      영국이 방어를 하더라도 대부분의 방어전은 자국이 아닌 해외 침공군이 침공 지역에서 전술적 방어인 겁니다.
      먼저 침공 침투하고 그 이후에 거점을 방어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었죠.
      저들은 또한 엄살도 엄청 심하죠.
      마켓에서 1100명 전사, 가든에서 5500명 전사로도 저들 내부에서 졸전 대패라고 비난이 가해지죠.
      2차대전에서 저 보다 더 큰 인명 손실난 전투는 무수히 많습니다. 한국전쟁에서도 저보다 큰 피해 전투 많고.
      님에게 첨부했던 한국전쟁 때 우리 국민방위군 사건 추정 10만 굶어죽거나 얼어죽은 일 따위는 일어날 수 없고.
      님이 영국을 수비 전문집단이라고 하니까, 그 대표적 사례도 첨부하겠습니다.
      2차대전 지중해전선 최대 몰타 호송선단 작전이었던 피데스텔 작전 첨부할테니 읽어보기를.
      그런데 그 작전이 수비일까요? 아니면 공격일까요? 님은 수비와 공격 개념 부터 다시 세워야 합니다.
      몰타를 그냥 수비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몰타를 수비하는 이유는 몰타로부터의 공세 때문이지.
      몰타에 대한 보급 작전에 동원된 영국 해군은 이렇습니다.
      호위함대는 전함2척, 함대항모4척, 호위항모1척, 순양함7척, 구축함32척 기타 함정들.
      저런 대규모 함대가 지키려고 했던 수송선단은 당시 세계최대급 유조선 오하이오 포함 상선14척.
      2차대전 유럽전선에 투입된 수 백만 미군들, 미국 아닌 영국 배가 훨씬 많이 미군들을 퍼날랐습니다.
      당시 세계 최대였던 7만톤급 이상의 여객선 퀸 엘리자벳과 퀸 메리는 한 번에 1만 단위의 병력을 수송했죠.
      몰타에 대한 보급이나, 미국에서 영국으로의 미군 병력 수송이나 미국 물자 운반은 폼나는 전투는 아니지만,
      그것이 안되면 전쟁 승리는 애초 불가능한 치명적인 업무죠. 님은 그런 치명적인 부분이 아닌, 패튼의 돌파와
      같은 하부 전술 차원에 너무 심취한 겁니다. 패튼의 돌파가 이루어진 과정이나 돌파당한 독일군이 처한 입장에
      대한 분석 없는 돌파에 환호만 하는 입장이 아닌지 냉정하게 자료들 찾아보고 깊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가장 탁월한 수비는 치명적 공격의 준비이기도 합니다.
      자국에서 탁월한 수비를 했던 경우 별로 없고, 대부분의 탁월한 수비 방어전은,
      그들이 침공했던 지역에서의 수비 방어전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수비이겠습니까? 아니면 공세의 전단계일까요?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1942년 8월 operation pedestal 최대 몰타 호송선단 : 상선14, 전함2, 항모5, 순양함7, 구축함32, 잠수함7등
      czcams.com/video/0inR2jRW_P8/video.html Operation Pedestal: The Convoy That Saved Malta
      (2분25초 이후 지중해 진입할 때의 페데스탈 선단 배치 그래픽으로 나옴. 상선들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선단 배치 모습.)
      czcams.com/video/11173sD3kgc/video.html Battle Of The Convoys (1942) 실제 전투 영상
      czcams.com/video/Xf3vzsT40aI/video.html Malta Convoy Battle (1942) 실제 전투 영상
      czcams.com/video/qjUmRzKZH-E/video.html Malta Convoy - Further Pictures (1942) 실제 전투 영상
      czcams.com/video/it3pOYM0JkA/video.html HMS Nelson Hit in Convoy Attack 실제 전투 영상blog.daum.net/mybrokenwing/387 몰타를 살리기 위한 발악들(5) 국내 블로거 봉달이님 글.
      독일 이태리 추축국의 공격을 뚫고 보급을 성공시켰지만, 피해도 엄청났습니다.
      거의 모든 함정이 손상당했고 격침된 함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상선9, 항모1, 순양함2, 구축함1.
      격침된 항모는 장갑항모 이전의 함대항모 이글, 독 유보트에게 격침당했습니다. 장갑항모 인도미터블은 대파.
      상선은 14척이 출발해서 몰타엔 겨우 5척만 도착했죠.
      불행중 다행으로 당시 세계 최대 유조선이었던 오하이오는 겨우 도착.
      오하이오는 원래 미국 유조선이었지만 영국해군이 임대해서 승무원은 모두 영국인.
      거의 1만톤급 유조선 오하이오 역시 피해가 커 전승무원이 퇴함하기도 했으나 구축함3척이 양 옆과
      앞에서 지탱하며 끌고 반쯤 가라앉은 상태로 몰타 입항. 몰타 도착후에 기름 거의 다 퍼낸 상태에서 결국 침몰했습니다.
      4척의 일반 상선과 1척의 유조선 도착으로 보급받은 물자는 약 5만5천톤, 그 중 석유는 약 9000톤, 식량과 탄약 4만5천톤.
      페데스탈 작전 피해가 너무 커 다시는 이런 작전을 시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5만5천톤의 보급은 몰타를 살려냈고, 역으로 살아난 몰타로 인해 롬멜의 보급이 끊기고 몇 달 후 엘알라메인.
      동원된 전함중 1척은 어뢰에 피격되었지만 천운으로 별 타격 입지 않았고,
      동원된 항모 5척은 장갑항모2척, 구형의 함대항모였던 이글과 퓨어리어스, 그리고 세계최초의 전갑판 항모 아거스.
      아거스는 세계최로로 상부구조물이 제거된 전갑판 항모였지만 함대항모가 아닌 소형 호위항모.
      퓨어리어스는 항대방공 임무가 아닌, 몰타에 항공기를 공급하기 위해 영공군 스핏파이어를 탑재, 몰타 약 1000km 전방에서
      항공기를 몰타로 출격시키고 지브롤터로 바로 귀환했습니다. 즉 장갑항모 2척이 몰타 인근 해상까지 함대방공 임무를 수행
      하다, 몰타의 영공군이 엄호하기 시작한 직후 역시 잽싸게 지브롤타로 후퇴. 아거스는 대잠 항공작전 위주.
      피데스탈 작전 이외 여러 호송작전에서도 영국함대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죠.
      그러나 영국 장갑항모는 여러번 직격탄에 피격되었어도 단 1척도 격침되지 않았습니다.
      일러스트리어스 경우 피격된 상태에서 몰타 입항, 항구에서 다시 공습에 노출되자 밤에 탈출해 미국까지 도피, 수리 때문에.
      영국 본토도 폭격에서 자유롭지 않아 병신된 몸 이끌고 대서양을 건너가 수리받음. 인도미터블은 슈투카에게 대형 폭탄 2발
      직격당하고도 꾸역 꾸역 후퇴했죠. 장갑갑판이 찢어졌지만 갑판 아래 핵심 선체는 손상당하지 않아서 탈출에 성공했죠.
      미국과 일본의 나무갑판 항모였다면 지중해 진입하면 다시는 못빠져나갑니다.
      타격당하는 순간 끝이나 다름 없습니다. 몰타 가는 중에 피격되면 살려면 지브롤타까지 도망가야 하죠.
      문제는 적 공군이 계속 추격할 수 있는 추축국 점령지대가 튀니지 알제리등 지브롤타 근처까지 이어져 있었다는 것.
      호송선단은 대략 3일 정도 항해합니다. 그 3일 밤낮으로 항공기, 잠수함, 수상함의 공격을 당했고, 심할 경우엔 한 번의 공습에
      대략 300기 정도의 추축 공군기들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함대가 생존한 이유는 하늘엔 몰타의 영국 공군도 출격해서
      추축국 공군도 대함공격만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몰타의 영공군 엄호가 없는 구간에서는 항모 함재기와 함대의 대공포
      만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미드웨이나 태평양에서의 항모전투는 몇 시간 이내에 일단 끝나고 휴식기를 가지게 되죠.
      항모가 격침되거나 대파되면 전장에서 이탈되어서 쉬는 거고, 항모 피해 별로 없더라도 무장 떨어지면 보급 때문에 후퇴.
      지중해의 호송선단 전투는 약 3일간 밤낮 없이 지속되고, 적 항공기들은 육상기지에서 재급유 재무장받고 다시 출격.
      즉 공격하는 측의 공군기지는 격침될 위험이 없어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방어하는 함대의 항모는 격침되거나 대파될 위험.
      태평양에서 항모 대 항모 전투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항모와 공군력의 대결이었습니다.
      항모 단독은 아니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몰타에서 출격한 영국공군의 호위 아래 영국 항모들이 생존했던 것.
      미국 일본의 항모전단이 만일 그 당시 지중해에 진입했다면, 항모전단 자체 세력만으로 살아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나무 갑판이라 피격되는 순간 이미 운명은 결정되는 겁니다. 적 공군과 잠수함이 끊임없이 추격 반드시 격침시킵니다.
      태평양의 항공모함전 때는 잠수함들 활약 어렵죠. 잠수함이 항모 따라다닐 속도가 못되니. 잠수함을 전장에 항상 미리
      배치 매복시킬 수도 없고. 하지만 지중해에선 잠수함들은 상시 매복 상태. 강력한 대잠세력을 가지지 못한 항모전단 자체
      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태평양과 달리 대서양에선 독일 상대로 항모 대 항모 전투는 불필요,
      북해에선 적 공군력 위협이 너무나 커 무르만스크 호송과 같은 임무 이외엔 항모가 진입도 꺼렸고,
      지중해에선 몰타 보급 때문에 정말 목숨걸고 들어가 죽다 살아나왔습니다. 물론 영국공군 엄호 아래서 겨우 생존했죠.
      그러한 지형적 작전 제한 조건 때문에
      영국은 장갑갑판을 채택하면서, 함재기 탑재수를 희생했고,
      여러 곳에 산재한 영국 공군기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전쟁 전 함재기 개발 필요성 덜 느겼던 것.
      전쟁 터진 이후엔 독일 상대하기 바빠 2차대전 중엔 대부분 미 함재기 의존, 45년 종전 후에야 고성능 씨퓨리와 제트기.
      지중해 북아프리카 전선 보급 측면에서 살펴보면,
      독일 이태리 추축국은 시칠리에서 북아프리카 겨우 수백km 해상교통로,
      영국은 최단거리 직항로라고 해도 지브롤타-몰타-알렉산드리아 수천km, 전황이 악화되어
      지중해 직항로를 택할 수 없을 경우엔 대서양-희망봉-인도양-홍해-이집트로 아프리카 대륙 우회 수만km.
      짧디 짧은 해상교통로를 유지하지 못하고 보급이 말라버린 것, 그 자체로 추축국은 승리할 기본 자격이 없었던 것.

  • @umeda777
    @umeda777 Před 3 lety +3

    독일군 장성역의 막시밀리안 쉘도 훌륭했습니다

  • @kkj5100
    @kkj5100 Před 3 lety +2

    고딩때 본 영환데 영화관에서 꾸벅꾸벅 졸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이해도 잘 안됐었고...
    😅

  • @myrmoi
    @myrmoi Před 2 lety

    소리가 너무 뜨네요. 원래 공수 부대라는 것이 말이 좋아서 공수부대이지 이 작전을 처음으로 시도한 독일 역시 이후 공수부대 작전을 포기 할 만큼 대가가 큰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지휘부의 잘못으로 모는데 전시에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 제한된 정보 속에서 완벽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죠.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Před 7 měsíci +1

    이 작전을 누가 이렇게 묘사했다고 합니다.
    '이 작전은
    한 가닥의 실로 일곱개의 바늘귀를 단숨에 꿰는 것과 같다.
    하나만 실패해도
    모든 것은 실패한다.'

  • @gudehs232
    @gudehs232 Před 4 lety +5

    저때 낙하하다 사망한 연합군 장교한테서 독일군이 작전지도까지 습득해서 추가증원 올때 그 위치에 매복해 공격했다고 하죠

  • @drmphy
    @drmphy Před 4 lety +6

    작전이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는 거지
    너무 무책임하게 작전을 실행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j8663
    @j8663 Před 4 lety +6

    몽고메리의 지상최대의 삽질
    밴드오브브라더스에서는 처음으로 후퇴할수밖에 없었던 작전이었던걸로 기억함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Před rokem +1

      밴드오브 브라더스에서도
      닉슨 대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총맞아 죽을 뻔한 상황이기도 했지요.
      진짜 철모에 총알구멍 두개만 나고 살아난 것이 천운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 부분을 보면서
      왜 군인들이 전투시에 철모에 있는 턱끈을 턱에 고정시키지 않는지 확실하게 알았다고나 할까요?
      총탄의 충격 때문에 철모가 날아가는데
      턱끈이 고정되어 있으면
      그 충격 때문에 목뼈가 어긋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 @SWATLAPD9701
    @SWATLAPD9701 Před 2 lety

    저영화는 명작이죠 당시 장비의 고증과 주변이 재개발지역이라 건물을 실제 폭발시켜 실감나게 찍었었죠.

  • @hellpoome
    @hellpoome Před 2 lety

    당시에 로져 무어도 캐스팅 하려고 했는데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면 안 하겠다고 해서 무산되었다죠? 그리고 로버트 레드포드도 제작진이 삼고초려해서 당시로는 거금인 4백만 딸라를 미끼로 데려왔다고 하구요.

  • @ssy11321
    @ssy11321 Před 3 lety

    특전사 입대전인 00년도인가 티비에서 방영해줘서 본게 아직도 기억납니다 제일 기억나는 장면은 목숨걸고 번들 가져왔는데 그 번들안엔 베레모만......

  • @sdp6667
    @sdp6667 Před 2 lety

    다리폭파로 인한 점거실패 시 걸리는 시간도 고려하지 않고 애초에 공수부대를 처음부터 고립시켜 놓고 점거해버리라는 어처구니 없는 작전

  • @user-ce3ci1fl5c
    @user-ce3ci1fl5c Před 4 lety +2

    와 나1살때 나온영화네요 꼭 한번 찾아볼께요 감사합니다

  • @Harry-qg4gl
    @Harry-qg4gl Před 4 lety +3

    밴드오브브라더스에 나오는 마켓가든 작전이군요.. 밴드 보신분들은 다들 아는 작전

  • @user-nh4zu1cl1
    @user-nh4zu1cl1 Před 3 lety +2

    사실 몽고메리는 뛰어난 장군은 아니었음.,. 워낙에 영국에 내세울 장군도 없었고 승전국이 된 바람에 이름이 알려진 거지 몽고메리가 그나마 이긴 전투들도 이미 미리 독일군의 정보를
    다 받아놓고 패가 어디에있는지 알고 있었고 압도적인 물량으로 그나마 이긴 전투였지 그의 전략이 대단해서 이긴 전투는 그닥 없다고 보면됨..
    만약 만슈타인이나 롬멜이 몽고메리 만큼의 정보지원과 물자지원을 받았다면 소련도 점령했을거임..

    • @user-oo8fx2qr7u
      @user-oo8fx2qr7u Před 3 lety

      ㅋㅋㅋㅋㅋㅋ 재밌는 사란이네요. 독일이 보유했던 트럭의 절반을 지원받은 북아프리카군단을 롬멜이 말아먹었는데 ㅋㅋㅋ
      애초에 롬멜은 전략적 식견이 너무 부족함. 그리고 몽고메리가 지휘한 전투들이 므ㅓ뭐있는지 알고는 말하는건지... 그냥 뇌무위키 설명몇개보고 물량빨로 이긴다 생각하면 오산임

    • @user-nh4zu1cl1
      @user-nh4zu1cl1 Před 3 lety +1

      @@user-oo8fx2qr7u 독일이 보유했던 트럭의 절반?
      제대로 공부나 하고 댓글다는것인지..
      그리고 그 지원 받아서 롤멜이 아프리카에서
      까부신 연합군 전차 트럭 장비들은 피해량보다 훨씬 많은데 무슨소리..
      원수계급장은 엿하고 바꿔서 달아준줄아나
      전략적 식견이 부족한 롤멜에게 패하고 쫏겨서 토부룩까지 후퇴한 영국군은 그럼 식견이 아예 없었나 보네..
      솔직히 연합군은 미군보급없이 비슷한 물량으로 붙었다면 연합군이 그렇게 이기기 힘들었단는것은 어느 전사가들도 인정하는 것이고 빈약한 아프리카군단을 가지고 근 3년이나 연합군과 싸운건 다 아는 사실인데 무슨소리를 하는건지 공부나 좀 더 하고 댓글달아라

    • @user-gk5gc3mw7p
      @user-gk5gc3mw7p Před 2 lety

      이놈은 뭐하는놈인가...주코프가 가장 한심하게 생각했던 장군들이 독일 장군들인데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 주코프를 2차대전 중 가장 훌륭한 장군이라고 칭했던 사람이 아이젠하워였고 ...롬멜이나 만슈타인 빠냐? 만슈타인 가장 비열한 장군 아닌가? ㅎㅎㅎㅎㅎㅎㅎ 거품장군 주제에

    • @user-nh4zu1cl1
      @user-nh4zu1cl1 Před 2 lety

      @@user-gk5gc3mw7p 내가 뭐하는 놈인지 알아서 뭐하게? 이놈아..
      글고 그리 한심한 독일장군들에게 소련이 그렇게 유린당했냐?
      뭐 아이젠하워가 뭐어째?
      그건 소련이 동부전선을 담당하고 있으니 공치사 한마디 해준거고.. 나중에 전쟁 끝나고 나서도 그리 칭찬하더냐?
      만슈타인이 거품장군인데 프랑스는 낫질작전에 한방에 나가 떨어지고 소련은 키에프를
      다시 빼았겼냐?
      뭔 책이라도 제대로 한권 읽고 쓰는건지
      게임만하다 뇌필셜로 쓰는건지..
      주코프도 전쟁중후반 막대한 연합군의 병참지원과 소련의 인력물량으로 해낸거지.
      뭔 대단한 장군이라고..
      전사공부 좀 더 해라..
      아이디 그대로 아웃사이더구만..

    • @user-gk5gc3mw7p
      @user-gk5gc3mw7p Před 2 lety

      @@user-nh4zu1cl1 독일 장군들은 동부전선에서 자신들의 화력이나 병력이 불리할때는 상부 명령불복종 밥먹듯이 하고 죽기 싫어서 죄다 도망간 장군들인데 그런 장군들이 장군이냐? ㅎㅎㅎㅎㅎㅎ 어이가 없네

  • @a55413275
    @a55413275 Před 4 lety +1

    연합군은 실물 셔먼 전차, 독일군은 촬영용으로 개조한 레오파트1...ㄷㄷㄷ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얼마 전에 개봉했던 헐리웃 영화 퓨리에는 실물 타이거가 나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영국 보빙턴 박물관에 소장된 타이거들이 출연한 것으로 들었습니다.
      1977년 머나먼 다리, 개봉할 때도 보빙턴에 타이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타이거가 있었고, 운행 가능했다면 출연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화에 동원된 물량을 고려할 때.
      그러나 실제론 동원되지 않았죠. 그렇다면 성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당시 실제 운행 가능한 타이거가 없었을 수도.
      이 영화 말고, 영국항공전을 다룬 공군대전략이라는 영화에는 다수의 2차대전 항공기들이 출연했습니다.
      스핏파이어와 허리케인은 실물이고, 독일의 메서슈미트는 스페인에서 면허생산했던 거의 그대로의 매서슈미트.
      그리고 최근 말고 그 전에 그렇다고 아주 과거도 아닌 진주만 관련 영화에서,
      진주만 항구에 정박중인 해군 함정들에 2차대전 전함들이 아닌 미국 이지스함들도 출연한 적 있죠.
      컴퓨터 그래픽이 발전한 시대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이지스함 출연시킨 부분은 정말 지적당할만 하지만
      머나먼 다리에서 실물 타이거가 나오지 않은 부분은 그래도 상황을 고려해볼만한 여지는 있습니다.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봅니다. 그 정도로 성의 없게 제작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투입된 자본과 인원, 배우들 구성으로 볼 때.

  • @user-pe9tc8os6g
    @user-pe9tc8os6g Před 4 lety +3

    여유치 않다(X) => 여의치 않다(O)

    • @cinemory
      @cinemory  Před 4 lety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셨습니다. 챙피해서 잠이 안옵니다 ㅜㅜ

  • @user-fr1ji3qi7s
    @user-fr1ji3qi7s Před 3 měsíci

    다시보기 돌려보기 또 보기해도 되는 영화..~~지상최대의 작전이 흑백영화로 대작이라면 컬러영화에서 이 작품...~ 로버트레드포드가 저렇게 젊었다는거..~ 돌아가신 숀코넬리..그리고 절제된 독일군 장성수뇌부의 연기..~ WORLD WAR2에서 마켓가든작전과 함께 독일군의 반격작전 이름기억안나는데.. 고전명작중에 "지상최대의 작전 +발지대전투 + 머나먼다리 + 공군대전략 +이렇게 네가지..기억합니다..그외 2차대전 영화 명작들 많지요..~ ^_^

  • @nabe4987
    @nabe4987 Před 4 lety +11

    그나마 다행인점은 처참하게 털린 부대가 영국 공수사단이고 미군 피해는 적었다는 점. 몽고메리가 싼 똥이라 인과응보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6

      영국군이 계획한 침공 작전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 미군이 아닌 영국군 공수부대가 투입되는 것은 기본적 태도입니다.
      인과응보 이런 단어 사용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요. 노르망디에서 영국이 독일 주력 몸빵하다 많이 죽은 것에
      인과응보 이런 단어 사용하면 좀 느낌이 그렇듯, 마켓가든에서도 영국 공수부대는 최선을 다해 싸웠고 죽었습니다.
      상층부의 작전계획에 문제가 많았지만, 투하된 공수부대원들은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그 희생에 대해 인과응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 봅니다.
      이런 말하기 싫지만, 님이 올린 이 글은 이런 주장과 유사할 수 있습니다. 읽어보시죠.
      한국전 때 미군 보다 한국군이 훨씬 더 많이 죽고 미군 피해가 적었다는 점은 한국이 싼 똥이라는 점에서 인과응보!
      기분 어떠신가요?
      몽고메리가 승리에 대한 과도한 욕망으로 마켓가든 작전을 허술하게 짜고, 성급하게 시행해,
      영국 공수부대가 거의 전멸했지만, 그럼에도 영국군과 마켓가든에서 입은 미영군
      총손실은 2~3만 수준이고, 전선 붕괴되어 후퇴하지도 않았고,
      영국군 공세가 그곳에서 정지된 수준으로
      소련군이 수백만 손실당하고,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수십만 손실당하고 최종 9만 이상 항복한 것에 둔감하면서
      몽고메리 주도의 튀니지 대승에서 독일 이태리 추축국이 무려 25만이 항복한 것에는 눈을 감아버리고 모른척 하면서
      마켓가든의 저 손실로 손가락질하고 마치 전쟁을 말아먹은 듯이 과장하는 측면도 너무나 지나친 면이 있어보입니다.
      그냥 개인적 느낌입니다. 조금은 냉정해졌으면 하는군요.

    • @blackcow_two_plus
      @blackcow_two_plus Před 4 lety +1

      @@scz8333 이게 맞는 말.. 계획 잘못짠 지휘부의 실수로 죽은 용감한 군인들의 희생을 겨우 인과응보라고만 표현하는건 매우 잘못된 언어 선택인거 같아요..

    • @thomaslim8720
      @thomaslim8720 Před 3 lety

      폴란드도 심하게 털림. 더군다나 지휘관은 징계받음

  • @user-dq4en3dk6c
    @user-dq4en3dk6c Před 4 lety +1

    tv로 재방까지 열심히본 영화 실제로는 몽고메리가 작전실패 책임을 저야하는데 몽고메리대신 희생양으로 폴란드 장군이불명애 전역했지요

  • @kcs8772
    @kcs8772 Před 4 lety +1

    배경이나 특히 군장장비등의 지식이 좀 있는 밀덕들이라면 참 좋아할 영화인데 여성층이 굳이 아니라도 일반인들이 보기엔 좀 복잡하고 흡입력이 약하긴하죠. 저도 특히 ss의 계급장과 영국군 군복도 고증이 된 자료를 보고 깜놀..
    영국측의 무리수였던게 사실 영국은 자기들이 독일과 가장 먼저 싸우기 시작했고 이 전쟁을 미, 소가 아닌 영국이 주역으로 끝내고 싶어한 욕망이 이런 무모한 도박을 벌인것이죠. 처칠이나 몽고메리 역시 분명 마켓가든 성공가능성을 크게 보지는 않았을거라고봅니다.
    기억나는게 이 영화의 대표적 오류라고도 하는 아른헴 브릿지 공방전이죠. 9ss 기갑수색대와 레드데블스 프로스트 대대와의 격전인데 영화에선 독일 기갑부대가 교각을 탈환하려 오는것처럼 묘사됬지만 실제로는 영국 공수부대의 갑작스런 드롭으로 그만 고립되버린 9ss 기갑수색대 지휘관 크레프너 대위가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려다 본인도 전사하고 큰피해를 입고 실패한거라고 하더군요.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독일이 패배한 결정적 이유, 독일 영국 국가 및 룰 브리타니아 가사로 본 두 나라의 차이점.
    1. 독일 국가 1절 :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독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독일
    czcams.com/video/WO3NXx0k9-E/video.html
    한글 자막 있음
    2. 영국 국가 3절 : 왕이 법을 지키게 하고, 선정을 베풀게 하소서. (안그러면 각오하라. 매우 공손한 협박)
    czcams.com/video/Xm7CZvvsC64/video.html
    3. 룰브리타이아 : (외세의) 폭군들은 그대를 굴복시키지 못하리라, 영국은 결코 노예가 되지 않으리라.
    czcams.com/video/UKfXVm4fDw8/video.html 한글 영어 자막
    czcams.com/video/j_wYihc37dw/video.html 룰브리타니아 해군 버전, 자막 없음
    4. 러시아 국가 : 같은 선율의 4가지 변천 (동영상 화면 맨 위 볼세비키, 다음 2개 소비에트, 맨 아래 현 러시아)
    czcams.com/video/SjVCTQsUDIk/video.html :
    볼세비키당, 소비에트 찬가는 공산당, 레닌, 스탈린이 가사에 등장하고, 자유-정의-영광 등이 나열됩니다.
    독일 1절과 소련 가사는 철없는 열정과 가슴 벅찬 감동이, 차분해진 이후 오그라듬으로 바뀔 수준.
    과거 독일이나 소련은 세계 패권을 가질 기본 자격이 안됨을 바로 알 수 있죠. 다행히 현재 독일은 솔직히
    미국 영국 보다도 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공동체로 거듭난듯 합니다. 러시아는 푸친의 종신 대통령 시도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불길하게도 과거 영국 미국과 달리 현 미국과 영국은 수준이 많이 낮아진 느낌.
    하지만 과거 독일과 영국 두 나라만 비교,
    두 나라의 국가 가사를 보면 차이점을 알 수 있습니다.
    독일국가와 룰브리타니아에서도 차이가 보이는데, 그 차이는 작지만 결코 작지 않죠.
    내부에선 왕은 국법을 지켜야 하고, 대외적으로 외세의 침략 폭압에 굴복해 노예가 되지 않겠다. 독일과 다르죠.
    1. 독일 국가 : 1840년대 독일민족주의 고취, 로 등장, 사실상 독일 국가로 지금 까지 이어짐.
    1절은 매우 전투적, 2절은 독일의 자랑거리, 3절은 오늘날 국가로 채택. 1절 등은 오늘날은 사용하지 않음.
    1절은 주변국들에게 엄청난 위협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나폴레옹 몰락 후, 독일어 사용 지역 휩쓴 민족주의 광풍.
    자존감 자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쳐선 안되죠. 그 부작용, 댓가 훗날 독일이 피할 수 없었던 것.
    1절
    독일,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독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독일!
    방어와 공격의 정신으로
    형제처럼 서로 함께 단결하면
    마스에서 메멜까지
    에치에서 벨트까지
    독일,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독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독일!
    2절
    독일의 여인은, 독일의 성실은,
    독일의 와인은, 독일의 노래는,
    온 세계에 간직되어야 하리라
    이들의 오랜 아름다운 메아리는
    우리의 온 일생에 걸쳐
    고귀한 행동을 고무하였도다
    독일의 여인, 독일의 성실,
    독일의 와인, 독일의 노래!
    3절
    통일과 정의와 자유를
    조국 독일을 위하여!
    이를 위하여 우리 모두 형제처럼
    마음과 손을 모아 노력하자!
    통일과 정의와 자유는
    행복의 증표가 될지니,
    이 환희의 광채 속에서 피어라
    피어나라, 조국 독일이여!
    2. 영국 국가 :1745년 공식 국가, 이미 입헌군주정 상태에서 채택. 국왕이 국법을 수호해야한다는 내용 포함.
    영국 국가도 전투적인 것은 마찬가지고, 특히 2절, 6절 등 많은 부분은 사라지고 1절, 3절 사용.
    6절 스코틀랜드에 대한 적개심이 나오는데 나중에 폐지. 다른 나라를 자극 제국주의 속성이 강한 2절도 폐지.
    영국 국가의 선율은 원래 오래 전 프랑스에서 이미 나타났으며,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국가로 사용.
    3절이 독일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 왕이 법을 수호할 때만 마음을 다해 충성할테니, 선정을 베풀라!
    아주 공손하게 충성을 다짐하지만, 조건이 붙은 충성이죠. 법을 준수하라.
    1절
    신이여, 자비로우신 여왕/왕을 지켜 주소서.
    고귀하신 여왕/왕 만수무강케 하사,
    신이여, 여왕/왕을 지켜 주소서.
    여왕/왕께 승리와
    복(福)과 영광을 주소서.
    군림케 하소서.
    신이여, 여왕/왕을 지켜 주소서.
    2절
    오, 지도자이신 주님, 일어나시어
    여왕/왕의 적들을 변방으로 흩으사
    패배하도록 하소서.
    그들의 정치에 혼란을,
    그들의 간교한 계략에 좌절을.
    당신께 저희의 희망을 거노니
    저희 모두를 보우하소서.
    3절
    그대의 최상의 선물을
    여왕/왕께 부어주소서.
    여왕/왕을 군림케 하소서!
    여왕/왕이 우리 법을 수호케 하시길,
    우리가 마음과 목소리로 찬양할 수 있도록.
    선정을 베풀게 하소서.
    신이여, 여왕/왕을 지켜 주소서.
    6절
    주님, 저 원수(元帥)로 하여금
    당신의 가호와 함께
    그의 승리를 허락하소서
    반역을 퇴치하여,
    그분이 성난 노도처럼,
    모반하는 스코틀랜드인들을 부수기를!
    신이여, 여왕/왕을 지켜 주소서.
    3. 영국 제2의 국가나 다름 없는 룰 브리타니아 : 1740년대 노래. 거의 300년이 되어가는군요.
    룰 브리타니아 2절도 다른 나라를 자극할 우려가 있어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페지 되었습니다.
    독일 국가 1절은 전세계 위에 군림하는 독일,
    룰 브리타니아는 외세 폭압에 노예가 되지 않겠다. 다른 나라들이 느끼는 위협의 강도는 다르겠죠.
    독일이 다굴당할 가능성이 더 크고, 영국이 동맹을 확보할 가능성이 더 크겠죠. 실제 역사도 그랬습니다.
    전세계 위에 군림하겠다는 독일, 전쟁에서 독일편 누가 들겠습니까?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투쟁하지.
    1절
    브리튼(영국)이 천명에 의해,
    푸른 망망대해로부터 솟아났을 때
    그 땅에 내려진 헌장 있었네,
    또한 수호천사들은 이 선율을 노래했다네
    (후렴)"지배하라 브리타니아! 파도를 지배하라!"
    "영국인은 결코 노예로 살지 않으리라!"
    2절
    그대만큼 축복받지 못한 국가들은,
    반드시 차례로 그들의 폭군의 파멸로 이르리니,
    그대가 위대하고, 자유로이 번성할 동안
    다른 국가 모두에 두려움과 선망의 대상 될지니!
    (후렴)"지배하라 브리타니아! 파도를 지배하라!"
    "영국인은 결코 노예로 살지 않으리라!"
    3절
    여전히 위엄 있게 일어설 그대여!
    외세의 일격으로부터 더욱 강해지리!
    하늘을 찢을 천둥마저도
    그대 토양의 떡갈나무만 더욱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리라.
    "지배하라 브리타니아! 파도를 지배하라!"
    "영국인은 결코 노예로 살지 않으리라!"
    4절
    고집 센 폭군들은 그대를 절대 굴복시키지 못하리:
    그대를 꺾기 위한 그들의 모든 시도마저도,
    단지 그대의 자애로운 불꽃만 더욱 키우리라
    허나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라, 그대의 고명은 더욱 높아질테니!
    (후렴)"지배하라 브리타니아! 파도를 지배하라!"
    "영국인은 결코 노예로 살지 않으리라!"

  • @vinniekim6899
    @vinniekim6899 Před 3 lety +2

    몽고메리는 전형적인 이길조건을 넘칠만큼 갖추고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북아프리카 전선이 대표적이지요.
    하지만 잔술적 식견과 현장지휘는 좀 창피한 수준이었고, 공에만 욕심이 넘치는 사람이었지요. 공수작전에 대한 이해도없이 그저 물량공세만 퍼부은 작전에서 정예 1사단을 전멸시켰습니다.
    아이크의 배려가 없었다면 최악의 장군으로 남았을 사람이기도 합니다.
    90프로의 성공은 맞는말이기도 합니다. 또다른 공격 기동로인 아인트호벤을 해방시켰으니까요.
    그러나 그건 미 101이 한것이지요.
    노욕에 찬 한심한 장군 하나로 얼마나 많은 장병이 죽어나간것인지...
    우리도 시사되는바가 크다고 봅니다.

  • @nty7214
    @nty7214 Před 2 lety +2

    중화기도 없는 공수부대로 기갑부대를 상대로 이틀동안 버틴다는 자체가 개소리였지 ㅋㅋㅋ
    영국군이 종전이후에 숟가락 올릴려면 업적이 있어야 되니 무모한 작전을 감행한거였음
    거기에 미군도 공수사단 2개 정도 지원하면 된다고 하니 실패하더라 그 피해가 적으니
    손해대비 이득이 크다고 판단하거지만 ㅋㅋ

  • @user-vv9pt7ej2d
    @user-vv9pt7ej2d Před 2 lety

    5:38 영국 신사답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환가요? 총이 없나요?ㅠㅠㅠㅠㅠ

  • @Video-hr2ig
    @Video-hr2ig Před rokem

    마켓 가든 작전 패배에 브래들리 미군 장군도 선배(조지 패튼)나 상대방 아군(몽고메리)이나 참 피곤하게 만든다고 분노했죠.
    물론 셋 다 명장에 들어갈 인물이지만........둘 다 엄청 화끈하게 실패를 겪던 거랑 달리 이름값이 떨어지지만 덕장이자 천천히 이기는
    브래들리로선 둘 다 화가 날 듯

  • @vanquish2768
    @vanquish2768 Před 3 lety +5

    숀코네리 진짜 잘생겻다

  • @user-yv1tf4zd3z
    @user-yv1tf4zd3z Před 3 lety +1

    난황은 계란 노른자위고 난항을 겪다 라고 써야죠.

  • @scz8333
    @scz8333 Před 4 lety

    최초의 제트기 항모 이착륙:1945년 12월3일, 놀라운 2차대전 전시 기술발전 속도
    czcams.com/video/PNoUBil7A3c/video.html
    2차대전 종전된지 불과 몇 개월 후인, 1945년 12월3일 경사장갑갑판의
    영항모 오션에서 세계 최초의 제트 함재기 이착륙이 일어났습니다. 착륙 후 이륙 순으로 성공했습니다.
    에릭 윙클 브라운 이라는 테스트 파일럿은 487종의 연합국과 추축국 비행기를 시험 비행한 깨지지 않을 세계 최다 기종 테스트 비행사입니다. 영국해군 조종사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 테스트 파일럿으로 전향했습니다. 최다 기종, 최다 항모 이착륙 기록, 기타 수 많은 기록이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특히 최다 기종은 아마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겁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신기종이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또한 에릭은 1944년 영공군의 모스키토 폭격기를 항모에 최초로 착함시켰고, 종전 직후 독일의 제트기와 로켓 항공기등 추축국 항공기들을 시험비행했습니다. 소련의 인류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글라이더, 복엽기, 전투기, 폭격기, 민항기, 헬기, 수직이착륙기 등 거의 모든 기종을 포함한 487종.)
    제트기를 항모 갑판 거의 끝에서 착륙시켜 아주 짧은 거리에서 멈춘 놀라운 착함 모습입니다.
    전쟁이 조금만 더 지속되었다면, 영국과 미국은 제트 함재기로 태평양 하늘을 휩쓸었을 겁니다.
    미국 일본 항모와 달리, 지중해와 북해라는 육지로부터 가까워 적 공군력에 노출되기 쉬운 조건이라 영국 항모는 장갑갑판을 먼저 도입하게 되었고, 지중해에서 여러 직격탄에서도 단 1척도 격침되지 않았습니다. 1945년 정도엔 벌써 경사갑판으로 개조된 영국 장갑항모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도 이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갑갑판, 경사갑판, 광학식 착륙유도장치, 증기 캐터펄터 등 항모에 필수적인 거의 모든 요소들이 영국 해군에서 도입되어 미국으로 이전되었습니다. 미국이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항모의 스키점프대 역시 마찬가지죠.
    유명한 고성능 미 함재기 코르세어의 항모 사용도 미해군이 아닌 영해군이 먼저 도입했습니다. 전방동체가 크고 길어서 항모 착함시에 시야를 막아 미 해군은 해병항공대의 육상기지 사용으로 돌리고 항모 도입을 하지 않았지만 영국 해군에서 새로운 착륙방법을 도입해서 최초로 항모에 탑재했고 미항모에 그 착함 방식이 이전되었습니다. 직선 경로로 착함하지 않고, 선회하면서 착함하는 방식으로 시야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curved approch : 영 해군이 개발한 corsair 착륙법, corsair 전방 시야가 좋지 않아 항모 접근시 관측하기 용이하도록
    (항모 주변을 곡선을 그리며 선회하면서 접근하며 측면에서 갑판을 보며 고도를 맞추어 착륙) 7분35초 이후 보시길
    czcams.com/video/rNcV13uayxw/video.html
    위키백과 인용
    (1943년 11월 영국 해군은 보우트사가 납품한 95 기의 F4U-1 커세어를 커세어 MK I 으로 분류하여 배치하였다.[62] 첫 비행중대는 미국 동부 연안에서 결성되어 훈련을 받은 뒤 대서양을 건넜다. 영국 해군은 커세어를 항공모함에 탑재하고 즉시 작전에 투입하였다. 작전이 실행되자 다수의 커세어의 착륙 특성 문제가 드러났고, 다수의 커세어가 이 과정에서 파손되었지만 영국 해군으로선 달리 방도가 없었다.
    영국 해군에 납품되는 커세어는 영국의 항공모함의 격납고 크기에 맞추기 위해 윙팁이 8 인치(200 mm)정도 짧았다.[63] 주익의 폭을 줄인데다 갑판의 활주로도 짧은 영국의 항공모함에서 운용된 커세어는 미국의 경우 보다 오히려 착륙 사고가 적었는데, 영국 해군의 조종사들은 착륙시 갑판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좌현 방향으로 돌아서 접근하면서 하반각을 이루는 날개뿌리 너머로 활주로를 확인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방법은 미국 해군의 함상 커세어 운용에도 전파되었다.[64]
    영국 해군은 F4U-1A 커세어를 차례로 도입하여 510 기를 추가로 배치하고 커세어 MK II로 호칭하였다. 커세어 MK II중 마지막 150기는 F4U-1D였으나 별도의 구분 없이 모두 MK II로 분류되었다.[65] 이후 도입된 F3A-1 커세어 334 기와 F3A-1D 96기는 커세어 MK III[66] 400 기의 FG-1/1A와 457 기의 FG-1D는 커세어 MK IV로 호칭되었다.[67] 실제 전투에 투입된 기종은 MK II와 MK IV 뿐이었다.[68] 몇 가지 개량을 거친 뒤 영국 해군은 아무런 문제 없이 커세어를 함상 전투기로 운용하였다. 심지어는 갑판이 작은 호위 항공모함에서도 이착륙에 문제가 없었다. 영국은 총 2,012 기의 커세어를 공급받았다.[46]
    영국의 첫 함대 항공단은 미국 퀀셋 포인트 항공 기지에서 결성된 1830 비행 중대로 HMA 일러스리어스에 배속되었다.[69] 1945년 7월에서 8월사이 영국의 함대 항공단 소속 1834, 1836, 1841, 1842 비행 중대는 일본 본토 공격에 참가하였다.[70] )
    유투브 게시물 댓글 인용
    (Altered Beast
    2년 전
    The F4U was notoriously difficult to land on a carrier because of the huge elongated nose and massive Pratt & Whitney R2800 engine. Being a tail dragger the attitude of the aircraft on the ground was almost impossible to achieve accurate forward visibility. As with many big radial engine fighters of the period such deck take offs and landings were very risky and resulted in considerable losses. So much so that the US marines who flew Corsairs operated them from ground based airstrips. It wasnt until the British who effectively solved this problem but implementing the curved approach for deck landings that led to US navy pilots adopting the same method. Like many other examples of great ingenuity the British learned to adapt and overcome. It should also be noted that British aircraft test pilot Eric "winkleman" Brown was responsible for many feats of aerial genius. Even making several successful carrier landings in the TR-33 Sea Mosquito. As well as later going on to become the first pilot to successfully land a jet aircraft on the deck of a carrier. He was a true aviation legend, sadly missed..... )

  • @donsilkco70
    @donsilkco70 Před 3 lety

    시장정원. 다리에서 영국 공수대원 piat 대전차 무기 발사 장면을 보면 불안. 왜냐면 piat는 로켓이 아니고 스프링으로 발사해서 유효거리가 100m 이어서 성공률 이 적습니다.

  • @tothesun1875
    @tothesun1875 Před 4 lety +1

    아마 영국군 단독으로 독일군 최정예 전력하고 전쟁했다면 개작살 났을 듯 합니다. 독소전쟁 없고 미군 개입 없다는 가정하에 말이죠

    • @user-ie9ph3ym6z
      @user-ie9ph3ym6z Před 4 lety +1

      유럽본토에 상륙자체가 힘들었을듯합니다

  • @BlackSkyUploadTube
    @BlackSkyUploadTube Před 2 lety

    제일 큰 문제... 현재 한국 업체 가운데 C-47을 만들 수 없다는 거죠...
    뭐 전투기도 만드는 어쩌고 하시는 분들... 직접 물건을 만든 게 없으면 증명이 안됩니다.

  • @user-yu1qn4ue4n
    @user-yu1qn4ue4n Před 4 lety +3

    일주일 후면 6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76주년이네요

  • @mikeryu61
    @mikeryu61 Před 3 lety +1

    나는 1977 년도에 직접 극장에 가서 본 영화입니다. 워낙 전쟁 영화광이었는데 실망을 많이 했지요. 왜냐하면 장면마다 장면 안에 나오는 병사의 수나 전차의 수가 매우 적게 촬영되어서 입니다. 그 전에 워털루와 사상최대의 작전같이 대단한 스펙터클의 영화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A Bridge Too Far는 많은 제작비를 들인 영화인데 스펙터클하게 제작할 수 없었나 항상 생각해 봅니다. 3 개 사단의 병력을 다 태운 항공기의 양이 어마어마하고 화면에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화면 하나에 기껏 수십에서 백 여명 정도 나오면 병사들의 전투 씬도 감질 납니다. 아르핸에 독일 기갑부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어째 한 화면에 탱크 3 대 이상 나오지 않는지?

  • @minnmmmmimm6990
    @minnmmmmimm6990 Před 4 lety +2

    딱 5초만 봐도 마켓가든

  • @Kampfgruppe9260
    @Kampfgruppe9260 Před 4 lety +4

    패튼이나 몽고메리는 사막의 이순신 롬멜에 비하면 하사관 수준... 너무 부풀려졌음

    • @cinemory
      @cinemory  Před 4 lety +1

      감히 비교한다는 것은 그분께 무례죠 ^^

    • @user-yu1qn4ue4n
      @user-yu1qn4ue4n Před 4 lety

      빵빵한 물량앞에서는 쇼 미더 머니 치면 물량빨로 무조건 압도해요 티거가 아무리 강한들 기갑웨이브 물량 떼삼사로 밀어붙이면 결국 패배해요 물량빨로 독일을 찍어 눌러서 북아프리카 전쟁 이겼음 몽고메리가 지휘 잘해서가 아니라 소모되는 만큼 물량으로 독일을 물량빨로 압도하여 승리했음 물량 빨 헛빵지휘 몽고메리

    • @user-iw6db6uc8g
      @user-iw6db6uc8g Před 4 lety

      몽고리베리는 아프리카전선에서 전임자가 다해놓은걸 그대로 이어받아 물량으로 밀어버릴뿐임. 전임자가 처칠때문에 인도사령관으로 좌천만 안되었어도..

    • @user-qp7ye2dx8k
      @user-qp7ye2dx8k Před 4 lety

      알람 엘 할파 전투에서 롬멜을 상대로 더 적은 병력을 가지고 더 적은 피해로 승리한게 몽고메리입니다만.......

  • @user-5children
    @user-5children Před 3 lety

    1977년에 이런 대작이. 지금 봐도 나쁘지않다.

  • @minungkang536
    @minungkang536 Před 3 lety +2

    아군을 정성껏 고기패티로 등가교환하는 연금술사 몽고메리....

    • @scz8333
      @scz8333 Před 3 lety

      첨부한 글에 마켓가든 인명피해 있으니 확인해보길.
      독소전에서 소련군은 단일 전투에서 사망과 포로 수십만 발생한 전투가 수두룩.
      독일도 스탈린그라드 이후 전투에서의 손실 비율이 치솟았고, 중앙집단군 붕괴등에선 수십만 손실.
      마켓가든에서의 영국군 피해는 2차대전이 아니라 국지전인 한국전쟁 때와 비교해도 크다고 하기 힘든 규모입니다.
      아군을 정성껏 고기패티로 등가교환?
      거기에 정확하게 해당하는 군대가 바로 한국전쟁초 대한민국 국군이었습니다.
      사실 등가교환도 아니죠. 적에게 아무런 댓가도 받지 못하면서 초래된 비전투 황당무계한 인명피해였으니.
      국민방위군 사태, 중공군이 남하하던 1951년 초의 한겨울, 보충역으로 징집된 국민방위군 50만중 추정 10만이 굶어죽거나 얼어죽은.
      비전투손실로 중공군 남하 피해 남쪽으로 후퇴 행군하며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인명피해. 적에게 총 한방 못쏘아보고 죽어나간.
      첨부는 하지 않았지만, 한국전쟁 초 전향했던 좌익들 단체였던 보도연맹 조직원들,
      전쟁 발발과 동시에 대규모 체포 후 혹 있을지 모를 위협에 대비코자 선제적으로 예방학살 추정치 단위가 10만대, 10만이 아닌 단위.
      지난 수 백년간 영국은 누적 승률 압도적인 1위 국가입니다.
      수 많은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전쟁에선 거의 패하지 않은 기적같은 승률을 거두었죠.
      단 1번의 예외 조차도 같은 앵글로색슨의 내부 분열이었던 미국독립혁명이었고, 나머지 모든 전쟁에선 패배가 없었습니다.
      투입한 병력은 경쟁국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로 소규모 많았고,
      그들이 거둔 승리는 나폴레옹이나 1차 2차대 대전 당시의 독일군이 거둔 승리는 견줄 수 없는 결정적인 승리였습니다.
      트라팔가와 워털루의 승리는 그 후 100년의 전세계 제해권과 100년의 유럽 역사를 결정지었습니다.
      나폴레옹이나 독일의 승리는 아무리 큰 승리였어도 본질적으로 국지적 일시적 전투 승리 차원을 넘지 못했고.
      그들이 삽질한 전투도 많았지만,
      삽질과 졸전은 지구촌 모든 국가와 군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그들의 삽질이 가장 준수한 편으로, 어디에 내밀기도 힘든 적은 사상자에 해당하는 것도 분명하죠.
      2차대전만 국한하더라도, 2차대전 6년 동안 민간인 포함 총 사망 피해 약 45만~50만으로, 모든 삽질 졸전 포함된 수치입니다.
      소련은 단위가 1,000만 단위. 독일은 단위가 100만 단위인데 500만을 훨씬 웃돌죠.
      전쟁은 영국 처럼 해야 하는 겁니다.
      전쟁을 한국전쟁 당시의 남북 처럼 하면 큰 일 나는 것이죠.
      영국은 일단 지난 수 백년간 모든 전쟁을 해외에서 수행했습니다. 우린 주로 우리 국토가 주전장이었고.
      영국 국립묘지엔 해외파병에서 전사한 군인들이 거의 모두. 남북은 한국전쟁 즉 내부투쟁 희생자가 압도적 다수.
      남의 나라 졸전 비꼬더라도 고기패티니 그런 단어 사용말길.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에 승리했던 웰링턴이 한 말이라고 합니다. 비꼼이나 자랑질 없습니다.
      " 가장 비참한 전쟁은 패배한 전쟁, 그 다음 비참한 전쟁은 승리한 전쟁. "

    • @user-ul6qh7zo1k
      @user-ul6qh7zo1k Před 3 lety

      @@scz8333 농담도 이해못하는 진지충찐따네
      영국좀만까도 얼마나 할짓없으면 그렇게 정성껏씀? 친구는 있음? 친구라 해봤자 모쏠파오후 쿰척쿰척거리는 씹덕친구아님?ㅋㅋㅋ

    • @scz8333
      @scz8333 Před 3 lety

      @@user-ul6qh7zo1k
      아군을 정성껏 고기패티로 등가교환하는 --------------> 농담이라고 여기는 님의 인식 자체가 문제.
      국민방위군 사태 -----------------------------------------------------> 난 농담성 0%니까, 혹이나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길.
      워털루에서 승리했던 웰링턴이 한 말입니다.
      " 가장 비참한 전쟁은 패배한 전쟁, 그 다음 비참한 전쟁은 승리한 전쟁. "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에 대해 고기패티 운운하거나,
      그런 표현을 보고 농담으로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나 그 후손들 역시도 미래 언젠가는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전쟁을 직접 경험 못한 이들중 일부가 고기패티 표현을 사용하고 농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전쟁터에서
      수 많은 희생을 직접 본 이들은 감히 그런 표현하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