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유럽에서 만든 전세계 3개 뿐인 황금칼이 경주 한복판에서 툭 튀어나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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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27. 03. 2022
  • 1500년 전 유럽에서 만든 전세계 3개 뿐인 황금칼이 경주 한복판에서 툭 튀어나온 이유
    #경주 #황금보검 #신라시대 #황남대총 #유물발굴 #켈트족 #계림보검 #해외반응 #외국반응 #해외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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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mentary@naver.com
    사진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Komentáře • 1,3K

  • @dcmentary_official
    @dcmentary_official  Před 2 lety +3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디씨멘터리가 진행하는 신이 내린 선물 '대마종자유' 공동구매가 하루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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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ser-yx1ut8zk6k
    @user-yx1ut8zk6k Před 2 lety +41

    그 당시 신라 경주는 인구 100만이 살던 현재 서울, 뉴욕 같은 메트로폴리스였음
    그 당시 100만 인구 도시는 거의 전무후무함

    • @likeutude
      @likeutude Před 2 lety +2

      지금의 경주는 인구 100만의 그 경주가 아닙니다. 중국을 그란 고지도에 지금 안후이성에 경주, (토)험산, 팔공산 등의 명칭과 김씨 마을, 김씨 가문 비석 등을 보면 그것이 원래 인구 100만 경주 였고, 한반도 경주는 대륙에서 이동한 이후 위치 입니다. 삼국사기 천문 기록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 @kji10103
    @kji10103 Před 2 lety +78

    역시 큰 대한민국 이였네

    • @kanglee8722
      @kanglee8722 Před 2 lety

      우리는 세계사를 장식한 바로 훈족 (HUNS) 입니다.

  • @user-qk1tm9xz8s
    @user-qk1tm9xz8s Před 2 lety +83

    오늘도 즐겁게 견문과 학식을 넓힙니다.
    감사합니다.

  • @user-sg8lb4xh6y
    @user-sg8lb4xh6y Před 2 lety +763

    사학계가 식민사관에 휩싸여 우리 고대사의 범위를 한반도로 축소를 시켰으니 답이 나올리가 없다. ㅠㅠ

    • @j3459
      @j3459 Před 2 lety +2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ㅌ

    • @user-rh7qt1fo9m
      @user-rh7qt1fo9m Před 2 lety +37

      동의합니다. 한국의 스케일은 대타타르 제국인데 말이죠.

    • @user-rg9qf5lq5q
      @user-rg9qf5lq5q Před 2 lety +9

      @@j3459 여기서도.뎃글복사를보네요.한마디만할께요.
      아무리좋은노래도.두번들으면싫증나는법입니다.님의의견이좋으면.좋아요를엄청눌를겁니다.이곳저곳복사뎃글싸지르는행위는.진짜.정말아닙니다.저처럼모든뎃글읽고신중히.뎃글달려고하는사람이보기에는..복사뎃글은.성의없는..행위입니다...!내용은좋은듯한데.왜이리.안티를만드시나요.....?!

    • @user-rg9qf5lq5q
      @user-rg9qf5lq5q Před 2 lety +2

      @@shih_tzu_zzang0120 좋아요..눌러드릴까요..?
      님에의견이..많은분들이읽고있읍니다.

    • @gdtt6485
      @gdtt6485 Před 2 lety +28

      한번 생각해봅시다.
      터키와 고대부터 교류를 했는데 한반도 이 작은 부분에 있던 작은 나라였다면 어떻게 터키의 옛날 오스만 트루크 제국과 연합이 되었겠습니까. 그 큰 나라에서 볼때 한반도는 엄청 엄청 100만배 작은 부족들이 있는 나라로 밖에 안보이는데. 그게 가능하리라 보는게 이성적으로 맞나요.
      최소한 그와 맞는 힘과 어느정도 크기가 있어야 가능한거죠. 터무니 없이 한반도 안에서 작은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우리가 힘이 있어도 어느 누구도 견제하거나 쳐들어갈 이유를 못찾았겠죠. 심지어 오스만트루크제국(지금터키)의 땅에서 보이지도 않는데 왜 연합을합니까. 그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들의 역사책에 자세히 소개가 나오고 전국민이 교육을 받을 정도면, 우리가 생각했던것 보다 더 크고 영향력있던 나라여야 맞습니다. 지금 중국의 동북삼성은 물론 그보다 더큰 땅덩어리여야 그 먼나라에서 사신을 보낼수 있는 상황이 되는거죠. 천년 이머냐 2천년전에 너무 작은 나라를 방향만 잘못 틀어도 안보이는 나라와 교류가 가능했겠습니까. 방향도 정확히 알수 없었던 그 시절에 그게 가능한거같냐? 지금처럼 통신이 자유롭길하냐 신문이 있냐? 말타고 3개월은 죽어라 달려야 오지 않냐?
      우리나라 아직 유명한 역사학자 대부분이 식민사관에입각해서 멍청한 소리만 지껄이는 상식에도 안맞는 소릴 지껄이죠.
      난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사 공부를 아무리 해봐도 불가능한걸 가능하다고 하는게 희안해. 특히 식민사관에 입각한 저 꼴통 역사사학자들.
      지금도 한국의 역사를 조작하는 놈들은 진짜 사람들이 바보인줄 아나봐. 그사람들이 주장하는거는. 그당시에 활로쏴서 1키로미터 밖의 사과를 맞춘다는 애기다. 지구 반바귀를 말타고 정확히 달려야만 도달가능한게 식민사관에 쪄든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다. 그 옛날에 바보도 아니고 인구도 적었고 지금처럼 국경개념도 없었는데. 그넓은 땅을 놔두고 백두산 이남에서만 살았다고 우겨대는지 . 거참.
      그렇게 백두산 이남에 사는 나라를 왜 중국은 줄기차게 쳐들어 왔을까도 궁금안하냐? 난 그게 항상 이상했거든. 그넓은 땅을 놔두고 왜 이한반도 깊이 들어왔을까. 아니라 본다. 땅덩어리가 크니까 뺏을려고 온거지. 구석에서 가만히 있었다면 쳐들어와서 대가리 깨지고 들어올 멍청이 중국인이 얼마나 될꺼라 보냐. 식민사관대로 주장하는 애들은 중국애들은 덜떨어졌다고 떠드는거나 마찬가지다. ㅋㅋ. 조그마한 나라에 쳐들어와서 나라를 몇번을 말아 쳐먹었냔 말이지. 한두번이면 말도 안해.. 한번쳐들어올때마다 나라가 망하니.. 천년이 지났는데도 중국애들이 무서워하잖아.
      난 처음에 이해가 안되었는데, 몇천년을 당해봄면 공포가 유전될꺼같긴해. 축구할때 중국애들이 유전적으로 쫄게 되어 있는거지.
      난 이게 더 상식적으로 본다.

  • @jaeseunglee9084
    @jaeseunglee9084 Před 2 lety +33

    역시 믿고 봅니다. 고맙습니다.

  • @david75556
    @david75556 Před 2 lety +262

    우리나라는 대체 고대에 무슨 일을 해왔던 것인가? 현재도 그렇지만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보면 단지 땅 크기로만 나라를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다. 고려라는 말이 세계에 많이 퍼져있지만 그 고려가 과연 조선 이전만 뜻할까.. 신라와 백제만 놓고 보아도 고려 때보다 더욱 문화 파급력이 강해보이는데..

    • @starnspace
      @starnspace Před 2 lety +24

      고구려는 장수왕 때부터 고려로 불렸습니다. 충주 고구려비(중원 고구려비)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likeutude
      @likeutude Před 2 lety +20

      고구려는 중앙아시아 발음으로 매케리, 묵구리. 맥구리 입니다. 고구려 시대 이미 중국은 맥구리. 맥족의 구리 또는 구리. 로 불렀음. 고구려는 후대에 만든 이름임. 스스로 구리로 음차어 표기 함. 려는 고을려. 또는 국가 리. 임. 구리로 읽는 것이 바른 이해
      참고로 무쿠리는 고구려를 중앙아시아에서 지칭하던 말인데, 고구려의 다민족 구성원 중 하나였던 이들이 징키즈칸의 그 몽골로 명칭이 됨. 한자는 음차표기로만 보고 음운학적으로 지리를 보면 여러가지가 추정 가능함.

    • @user-ri2vp7qt7f
      @user-ri2vp7qt7f Před 2 lety

      유럽검이 흘러들어왔지 반대로 신라문물이 유럽으로 넘어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네요. 신라인들이 유럽에 다녀온 것 같지는 않아 보여요.

    • @j3459
      @j3459 Před 2 lety

      @@user-ri2vp7qt7f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

    • @user-rh7qt1fo9m
      @user-rh7qt1fo9m Před 2 lety

      @@likeutude 맞습니다~

  • @user-kq8bb6tc1y
    @user-kq8bb6tc1y Před 2 lety +271

    제가 경주에 살때 밭을 갈거나 집짓는 공사판에 일을 할때가 있었는데 땅만 파면유물이 많이 나왔어요 특히 안압지 물을 빼고 보니 어마어마한 유물에 놀랐고 안타까운 건 도로공사 때 유물이 나오는걸 보고 그냥 묻어 버리고 아스콘을 깔아 버리는 파렴치한 놈들 신고 하면 신고한 회사에서 사비로 발굴 해야하고 공사는 무재한 중단되니까 이런식으로 땅속에 묻혀있는 유물이 70%는 넘을 겁니다 도굴도 많고 특히 가정집에.

    • @user-wo5yi7kx2q
      @user-wo5yi7kx2q Před 2 lety +14

      안압지에 물빼고 저수지 흙 파낼때 자주 가봤습니다
      그전에는 고기가 엄청 많아 몰래 잡아가는사람도 있었지요
      그때는 진흙탕을 왜 파내는지 몰랐습니다

    • @user-be2ky1iz5c
      @user-be2ky1iz5c Před 2 lety +6

      놀랍슴다

    • @user-kq8bb6tc1y
      @user-kq8bb6tc1y Před 2 lety +13

      @@user-wo5yi7kx2q 그때 발굴 한게 주령구 안압지에서 타고 다니던 목선이 제일 회자가 되었지요 다른건 수만점 나왔어도 신라시대 유물은 고미술상에 가서도 값이 안나갑니다 너무 수요가 많아서 이런말이 있어요 경주시 가정에 신라토기 안가진 집 없다고 저희집에는 보물 급들도 있었는데

    • @user-rr2lm4il6z
      @user-rr2lm4il6z Před 2 lety

      안압찌 복꾸는 엉터리씨더~~!!!
      >> 물 뺑거캉 그기에 물괴기만
      생각키덩기요~????
      ###########
      (((To 발굴복구 관계자들~~))))))))
      내 얼라때 찌근 사진에도,
      박물과네 걸려있는
      발굴당시 사진에도~~
      신라문화제때, 안압지, 반월성에
      (천막치고 먹자판) 먹거리 쪼쑤러
      갔을 때 기억에도~~
      지금의 축때가 아이~거등~!!
      기냥~돌빵천으로 된 뚝빵이었꺼등.
      * 력사, 박물관 관계자들아~~!!!
      지금의 축때에서 우째
      뱃놀이 할 수 이겠뜨나~??????
      내가 꼬꾸뢉끼 구카능기 아이고
      복꾸는 원래대로가~~기본이고
      정석 아잉가 시푸돠.
      단디 쫌 하거라. 일마드롸~.

    • @meunggeunsong2874
      @meunggeunsong2874 Před 2 lety +19

      솔직히 말해서 경주가 대대적인 개발을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죠. 구시가지 근처에는 개축이나 건축도 다 제한 되어 있었던거로 기억합니다. 살짝만 파도 뭔가 나오기 때문에.. 진짜 발굴할려면, 경주시민 몽땅 이사가야할판... 천년도읍이라. 뒤지면 서울전체 보다 유물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geunhaingheo2478
    @geunhaingheo2478 Před 2 lety +128

    내가 40년 넘게 살았는데, 이런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게 말이 됨??? 우리나라 역사교육 어떻게 된거임??

    • @user-kn4yd1wd3y
      @user-kn4yd1wd3y Před 2 lety +9

      그전에 검존재는 알았지만 확실히 밝혀진게 2010년 이라 자나요 그쪽이 중고등하교 나올때는 당연히 자세히 나올리가 없죠 그당시 사람들도 검의 대에 잘 몰랐으니까요.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Před 2 lety +4

      주류 사학(식민 사학 추종) 계보 / 매국 역사 학술 단체
      1. 일제의 식민사관을 만들어낸 조선 총독부 산하 조선사 편수회의 일본인 학자들
      : 요시다 도고, 시라토리 구라키치, 쓰다 소우키치, 이케우치 히로시 이마니시 류, 이나바 이와키치, 쓰에마스 야스카즈
      2. 조선사 편수회 고문 명단
      : 이완용, 권중헌, 박영효, 이진호, 유맹, 어윤적, 이능화, 최남선
      3. 수사관 및 수사관 보
      : 신석호, 홍희(수사관), 이병도(수사관보)
      4. 식민 사학 1세대
      : 이병도, 손진태(서울대), 신석호(고려대)
      대표적인 친일파(이병도, 신석호)
      5. 식민 사학 2세대
      : 고병익, 천관우, 이기백(한림대), 차하순, 한우근, 김철준, 김원룡, 유원동, 김정배, 변태섭, 이선근, 김용덕
      6. 식민사학 3세대
      : 노태돈(서울대, 송호정 지도교수), 주보돈(경북대), 이기동(동국대), 조인성, 서영수(단국대), 이광린, 배기동, 안휘준, 이선복, 조유전, 손병헌, 이종욱
      7. 식민사학 4세대
      : 송호정(교원대), 임기환(서울교대), 김태식(홍익대), 정재정, 정요근(덕성여대), 김현구(고려대),
      하일식(고대사학회, 연세대), 오강원(한국학 중앙연구원, 고고학), 공석구(한밭대)
      8. 식민사학 5세대
      : 심재훈(단국대), 박준형(연세대), 이진한(한국역사연구회,고려대), 백경식(한국역사문제연구소), 한상권(덕성여대), 오수창(서울대), 홍종욱(한국역사연구회,서울대), 이후석(숭실대), 배성준, 박선미, 연민수(동북아역사재단), 이영식(인제대, 와세다대 박사학위), 기경량(가톨릭대), 이문영('초록불의 잡학다식' 블로그 운영자, '유사역사학 비판 저자), 안정준 등
      9. 주요 역사 학회 단체
      : 동북아 역사재단, 한국학 중앙 연구원, 한국 고대사 학회, 한국 고고학회, 한국사 연구회,
      한국상고사 학회, 한국 서양사 학회, 한국 서양 중세사 학회, 한국 역사 연구회, 한국 교육 학회, 한국 중세사 학회, 역사교육학회, 일본사 학회, 아시아 평화 역사 연구회 등…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Před 2 lety +5

      ㅋㅋㅋ, 지가 역사시간에 졸면서 딴생각 해놓고, 배운적이 없데.
      분명히 80년대 90년대 중고교 역사책에 사진과 같이 나와있었다.

    • @kanglee8722
      @kanglee8722 Před 2 lety +10

      훈족 (HUNS) 에게 호되게 당하고 정복됐던 유럽인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인들이 활발한 연구를 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전세계사를 바꾼 훈족의 원류가 바로 우리 한민족 이라고 밣혔습니다.

    • @joycejames9654
      @joycejames9654 Před 2 lety +2

      ㅎ 나는 20년전에 알았는데 무선 소리고?

  • @HavyOil
    @HavyOil Před 2 lety +6

    우리가 배운 신라는 작은 규모의 나라가 아니라는게 보이네요.

    • @j3459
      @j3459 Před 2 lety

      신라는 게세르칸이 있었습니다.
      몽골의 징키스칸과 쌍벽을이루는...
      게세르칸때 신라의 영역은 상상초월입니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핏줄입니다.
      박혁거세 어머니는 파소 (파사)로 북부여 단군 고두막한의 딸이자 종교지배자였어요
      북부여가 단군시스템을 왕시스템으로 바꾸고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꾸는 과정중에
      종교지배자
      파소(파사)는 군사력을 이끌고 신라를 세우는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중요한건 박혁거세와 파사는 북부여 고구려 핏줄입니다.
      물론 박혁거세와 파소(파사)는 백인모습의 동양인이었어요
      파사(파소)는 파사국 즉 페르시아나 인도쪽 모계피를 이은 종교지배자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징키스칸이
      고구려 몽골 북한계열쪽에서 나왔는데
      한국쪽에서도 징키스칸 이름값에서 밀리지않는 대영웅이 나왔습니다
      그사람이 바로 게세르칸인 박혁거세입니다
      박혁거세는 중앙아시아 러시아 인도 페르시아 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지금이라크수도 바그다드가
      박혁거세의 박(신)에서 따온겁니다
      박혁거세부인도 알영부인으로 아리영부인 아리안족 백인으로 페르시아(이란)나 인도 티베트쪽 출신입니다.
      당연히 김씨나 석씨가 우리쪽으로 온것도
      박혁거세세력이 친척이라서 불러들인거에여
      김수로왕은 인도쪽계열 허황후 인도쪽 사람이라서 같은 고향사람들끼리 결혼한겁니다.
      당연히 허황후가 가져왔다는 파사의 사탑인가 있죠?
      박혁거세 어머니 이름이 파사입니다
      같은 친척들 불러서 데려온거에요
      그래서 2000년전부터 인도 어느부족은 아직까지 한국말 쓰는부족이 있어요
      박혁거세시절부터 다스리는영역이었으니..
      석탈해가 온것도 친척이라서 부른겁니다
      어마어마한 땅덩어리를 정.복해서요
      하지만 이러한 어마어마한 땅은 게세르칸(박혁거세) 사후 5개의 나라로 쪼개집니다.
      그게 징키스칸사후 몽골제국이 5개의 나라로 쪼개지는거랑 비슷합니다.
      우리역사에서 제일 푸대접받는게 게세르칸인 박혁거세에요.
      비슷한 레벨의 징키스칸은 자국에서 신으로 추앙받습니다
      물론 일본은 박혁거세신사를 2700개나 만들정도로 박혁거세인 게세르칸을 추모합니다.

    • @user-ok8qn5xz1n
      @user-ok8qn5xz1n Před 2 lety +1

      ㅋㅋ; 교과서 만드는 사학교수들이 똑똑할까요 유튜버가 똑똑할까뇨

  • @user-xb5bh1gy1i
    @user-xb5bh1gy1i Před 2 lety +172

    좁쌀만한 금구슬 신라 석탑 사리함에도 있어요. 신라는 금을 종이처럼 다루고 그 위에 글을 새겼을 정도입니다. 금으로 된 경전이 있어요.

    • @j3459
      @j3459 Před 2 lety +6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44

    • @jmc9678
      @jmc9678 Před 2 lety +8

      재밌고 참신하네요

    • @user-ok4sn3zo8h
      @user-ok4sn3zo8h Před 2 lety +3

      @@j3459
      박씨일가에 내려오는 비밀의 문서인가요?
      이런거 너무 재밌고 갠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 @threehelmet8825
      @threehelmet8825 Před 2 lety +5

      @@j3459 아놔 배째고 웃었네. 진지 잡솼어.

    • @j3459
      @j3459 Před 2 lety +8

      @@threehelmet8825 웃던말던 상관없지만
      황금보검의 비밀의 역사는
      이제 공개해도될것 같아서 공개하는것

  • @wooju9241
    @wooju9241 Před 2 lety +251

    신라는 한반도에만 국한되있는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는 점에 무게가 실리네요

    • @maus4033
      @maus4033 Před 2 lety +5

      원래는 만주 지방이 터전이었지만 후손들이 관리를 못했죠

    • @kanglee8722
      @kanglee8722 Před 2 lety +3

      만주 정도가 아닌 로마제국을 침범하며 아시아와 전유럽을 뒤흔들던 유럽인들이 훈족(HUNS) 이라고 불렀던 역사를 바꾼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 입니다.

    • @mariakimyun6609
      @mariakimyun6609 Před 2 lety +11

      양자강근처 에서 시작됨 신라 지명이 대륙 중남부에 많음 백제 신라는 대륙에서 시작되어 반도로 확장

    • @k7886
      @k7886 Před 2 lety +14

      일제에 앞서 고대사를 왜곡한건 조선임 이성계는 역적일뿐이다

    • @esmeandgyungkorea5361
      @esmeandgyungkorea5361 Před 2 lety +9

      학계:아니야 아니라고! 한국은 한반도에만 있어야한다고! 그래야 한국사가 내가 가르키는데로 된다고!

  • @moodylee9036
    @moodylee9036 Před 2 lety +231

    반도 사관만으로는 우리 역사를 절대로 이해 못합니다. 지금의 식민사학자들이 주류가 된 대한민국 역사는 진실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Před 2 lety +10

      주류 사학(식민 사학 추종) 계보 / 매국 역사 학술 단체
      1. 일제의 식민사관을 만들어낸 조선 총독부 산하 조선사 편수회의 일본인 학자들
      : 요시다 도고, 시라토리 구라키치, 쓰다 소우키치, 이케우치 히로시 이마니시 류, 이나바 이와키치, 쓰에마스 야스카즈
      2. 조선사 편수회 고문 명단
      : 이완용, 권중헌, 박영효, 이진호, 유맹, 어윤적, 이능화, 최남선
      3. 수사관 및 수사관 보
      : 신석호, 홍희(수사관), 이병도(수사관보)
      4. 식민 사학 1세대
      : 이병도, 손진태(서울대), 신석호(고려대)
      대표적인 친일파(이병도, 신석호)
      5. 식민 사학 2세대
      : 고병익, 천관우, 이기백(한림대), 차하순, 한우근, 김철준, 김원룡, 유원동, 김정배, 변태섭, 이선근, 김용덕
      6. 식민사학 3세대
      : 노태돈(서울대, 송호정 지도교수), 주보돈(경북대), 이기동(동국대), 조인성, 서영수(단국대), 이광린, 배기동, 안휘준, 이선복, 조유전, 손병헌, 이종욱
      7. 식민사학 4세대
      : 송호정(교원대), 임기환(서울교대), 김태식(홍익대), 정재정, 정요근(덕성여대), 김현구(고려대),
      하일식(고대사학회, 연세대), 오강원(한국학 중앙연구원, 고고학), 공석구(한밭대)
      8. 식민사학 5세대
      : 심재훈(단국대), 박준형(연세대), 이진한(한국역사연구회,고려대), 백경식(한국역사문제연구소), 한상권(덕성여대), 오수창(서울대), 홍종욱(한국역사연구회,서울대), 이후석(숭실대), 배성준, 박선미, 연민수(동북아역사재단), 이영식(인제대, 와세다대 박사학위), 기경량(가톨릭대), 이문영('초록불의 잡학다식' 블로그 운영자, '유사역사학 비판 저자), 안정준 등
      9. 주요 역사 학회 단체
      : 동북아 역사재단, 한국학 중앙 연구원, 한국 고대사 학회, 한국 고고학회, 한국사 연구회,
      한국상고사 학회, 한국 서양사 학회, 한국 서양 중세사 학회, 한국 역사 연구회, 한국 교육 학회, 한국 중세사 학회, 역사교육학회, 일본사 학회, 아시아 평화 역사 연구회 등…

    • @user-xv2sq2cn5k
      @user-xv2sq2cn5k Před 2 lety

      조선최고천재군주 정조시대 옆나라 일본은 유럽인들의 지팡구 황금의땅 엘도라도였음 일본의도자기 일본풍그림이 유럽르네상스에 영향을끼치고 고흐 피카소 화풍에 영감을줌
      도쿄는 전세계 최고 천만인구 도시였음
      일본은 같은 동양인데 선진국으로 가서 열강이됬는데 한국에서 어떻게 일본이 선진국이 됬는지 안배우고 어떻게 수탈당했는지 어떻게 맞았는지 어떻놈이 친일파인지만 교육함 왜 일본이 어떻게 선진국됬는지 조선시대랑 세계사 비교를안함 역사를 잊은 민족에는 미래가없지만 역사를 왜에서 시작이 아닌 맹목적 감정이입강요 하는 민족은 영원히 피해자의식만 있음 팩트를 인정하자 러일전쟁 안했다면 러시아가 우릴먹었을거고 일본이 없다면 영국 프랑스 미국 식민지 될 운명 독일은 2차대전 사과를 하지만 영국 프랑스는 식민지엔 사과안함 르브루 박물관엔 식민지 컬렉션 이게 세계임

    • @soooh565
      @soooh565 Před 2 lety +6

      @@user-xv2sq2cn5k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그렇다고 일본제국의 침략과 수탈을 정당화하거나 잊자는 것은 아니겠죠?

    • @user-ol5zi6kt8v
      @user-ol5zi6kt8v Před 2 lety +4

      @@user-xv2sq2cn5k 일본이 진짜 나쁜 건 우리나라를 아예 없애버리려고 했던 것. 단순 식민지로 두려고 한 게 아닙니다. 731부대 등도 영국 프랑스와의 차이점이겠죠.. 게다가 우린 피해 당사자입니다. 객관적인 것도 정도가 있는 거고요. 님은 우리가 일본을 욕하지 말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이미 지나온 과거네요. 별 바보같은 짓들 다 추앙해가며 열심히 따라하기도 했죠. 그리고 이제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네요 ㅋㅋㅋ 요새는 쇠락해가는 일본을 배워가려는 시도들이 성공해가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요 ㅜㅜ

    • @user-lp7fj4go8s
      @user-lp7fj4go8s Před 2 lety +10

      @@user-xv2sq2cn5k 그럼 가르쳐줘요
      일본이 어떻게 선진국이되었는지
      고호가 일본 문화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아는데로 어술해서 가르침을 주시지요~~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당했는지만 가르친다구요? 그럼 안가르칩니까?
      그리고 누가 친일 매국놈인지
      독립운동가인지 우리가 몰라야
      합니까? 어쩌면 젤 중요한 배움의
      첫머리지?

  • @kingsivaciva
    @kingsivaciva Před 2 lety +18

    신라가 원래 중원 남부에 있었던것은 일식기록으로 증명되었죠...북극성이 한반도로 이동해서 북극성을따라 왕도를 옴겨왔다고 김정민박사가 말해줌

  • @jkk5232
    @jkk5232 Před 2 lety +87

    한국의 역사와 유물은 엄청난 것이다...주변국때문에 폄하되어 그럴뿐....대한민국은 위대하다!
    우리민족은 다른민족보다 뛰어나다는는것을 우리만 모른다!

    • @joyfollkim5478
      @joyfollkim5478 Před 2 lety +2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 @user-cn8ef7mv3p
      @user-cn8ef7mv3p Před 2 lety +3

      주변국이 폄하한것보다 이나라 학자와 교수들이 더 문제임. 그들이 다 버린 것임.

    • @jslim8020
      @jslim8020 Před 2 lety +2

      뭐가 뛰어난게 있는가? 그당시 유럽은 고속도로에 수로뿐 아니라 건축기술도 상당했는데 우린 뭘 했기에 뛰어나다고 개소리를 하는지?
      조선이 전세계에서 제일 못 사는 나라였는뎁쇼?

  • @user-be3zh2dn9m
    @user-be3zh2dn9m Před 2 lety +38

    디바 제시카 채널에 페르시아와 신라와의관계에 관한 내용이 있네요 신라와 페르시아는 혈맹이었을듯

    • @900kkonn6
      @900kkonn6 Před 2 lety +4

      그러게요. 우리 옛 대중가요에서도 페르시아 왕자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가 나올때 만해도 외국과 관계가 묘연할때인데 들어가 있다는것은 이미 페르시아와
      교류를 잘알고 있었던거 같습니다.

    • @user-rh7qt1fo9m
      @user-rh7qt1fo9m Před 2 lety +3

      페르시아왕자와 신라공주가 결혼했다는 전설도있죵

    • @user-be3zh2dn9m
      @user-be3zh2dn9m Před 2 lety +1

      @@user-rh7qt1fo9m 네 그거보고 왔어요 ㅎㅎ

  • @user-jm2oq3qy2o
    @user-jm2oq3qy2o Před 2 lety +69

    확실히.. 우리나라 역사는 다시 파해쳐볼 필요가 있다..

    • @joyfollkim5478
      @joyfollkim5478 Před 2 lety +1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 @user-jm2oq3qy2o
      @user-jm2oq3qy2o Před 2 lety +3

      @@joyfollkim5478 한국사람이면 한국 역사를 믿으세요.. 왜 우리를 침범한 나라 말을.. ?
      이해가 안가네.. 스스로를 믿지못하고 서로 헐뜯으니 일본에서 저딴 소리를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 @rome99983
      @rome99983 Před 2 lety +2

      @@joyfollkim5478 어딘가 모르게 편협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는것 같아요. 다른건 역사적인 증거가 부족하여 판단이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다만 근현대의 한일합방은 경술국치라 부르는게 맞고 이는 일제가 정당성을 부여하기위해 만든 용어입니다
      경술년에 당한 나라의 수치로 기억해야하며
      위안부는 당신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것 같네요 당신은 일본의 내선일체주장과 군국주의를 사랑하는 일본인입니까?
      한글도 쓰고 한국인인것처럼 말하지만
      사상은 황국신민이신것같습니다

    • @user-nr5hv6zy2k
      @user-nr5hv6zy2k Před 2 lety +1

      땅파헤치면 막나와요 경주.. 근데 법이 ㄱㅈ같아서 그냥 다 밀어버림.. .ㅠㅠ

  • @user-ug2rw2hy3n
    @user-ug2rw2hy3n Před 2 lety +73

    중국인이 쓴 역사서에는 고조선 이전의 동이족 영토를 동서남북 3만리,5만리 라고 썼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모든 역사를 여기에 맞춰 연구한다면 역사적 문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 @j3459
      @j3459 Před 2 lety +11

      우리민적최대영토가 남북2만리 동서5만리에요
      5만리의 서쪽끝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입니다
      지금 핀란드의 핀족이 우리민족입니다

    • @svo2098
      @svo2098 Před 2 lety +16

      동이족은 퉁구스족이고 퉁구스족이 전부 우리 조상은 아니겠죠. 단지 우리가 퉁구스족의 한 갈레라는 것만 맞을 듯합니다. 아무튼 우리 조상 가운데 한 갈레 특히 경주로 내려와 신라왕권을 거머쥔 사람들은 훈족의 후예가 맞는 것 같고, 그들은 코카시언족이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여러 정황상 그러한 추론이 가능합니다. 단순히 역사학자만 떠드는 건 무지한 방법이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서로 모여 학제적 연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정확한 추론이 가능할 겁니다.
      유럽에서 비롯된 금세공술이어서 무조건 유럽에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으나, 유럽인종의 왕족들이 유럽의 세공술을 알고 그 기술을 들여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기술은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왕관, 금허리띠 등 여러 금붙이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금붙이를 좋아하고 이를 재산으로 보유하고 매장했던 훈족 문화를 깊이있게 연구하면 어느 정도 해답이 나올 듯합니다.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j3459
      @j3459 Před 2 lety +5

      @@svo2098 황금보검은 아틸라가 유럽 로마에서 만든거에여
      아틸라가 사절단을 신라에 보냈을때
      황금보검은 진귀한 유리잔 보물과 같이 왔어요

    • @kanglee8722
      @kanglee8722 Před 2 lety +3

      @@svo2098 : 얼마전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한국인의 당뇨병 유전자를 연구하다가 한국인들의 60%가 백인종 코개시안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그래서 그런 한국인의 백인종 유전자는 우리 한민족이 지금의 코카서스 산맥과 흑해 지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시베리아의 바이칼호로 이동해 오면서 쭉그지역에 광범위하게 살고있던 유라시안 백인종 스키타이인들과 섞여저서온 유전자가 아직도 우리의 핏속에 있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 @user-tp7ph4mb7n
      @user-tp7ph4mb7n Před 2 lety +3

      신장 위구르, 카자흐스탄 전부 고구려 제국이고 신라가 삼국통일 했다하면 뭐 같은 공예품이 있겠지요?

  • @user-id1xd6xs1t
    @user-id1xd6xs1t Před 2 lety +6

    그래!! 신라는 위대한 나라야!!!

  • @Will-cj5fn
    @Will-cj5fn Před 2 lety +4

    역시 박정희 대통령!

  • @user-zf7wg6qm2q
    @user-zf7wg6qm2q Před 2 lety +89

    경주는 최고의 문화 관광 역사의 도시입니다 경주 사랑합시다

  • @jinivacation
    @jinivacation Před 2 lety +10

    역사학박사님이신 교수님께서 언젠가 그러셨다
    교과서의 반이상이 근대역사 1900년대초
    를 집중해서 편성되었는것부터가 잘못되었다
    1년중 기념일에 광복절,삼일절등 일제시대관련된
    기념일은있어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기념일은없다
    교과서부터 바꿔야한다
    그 잠깐의 짧은시간 그교수님의 말씀으로
    머리를한대맞은듯 했고
    왜 라는생각이들더군요
    이후 나도 내아이들에게도
    아주예전 역사관련된책을 읽게하고
    공부하게했지요
    우리가생각하는 우리나라보다
    우리나라는 훨씬더 대단한나라
    입니다 그자부심으로 이겨나갑시다

  • @TMS.johnTV
    @TMS.johnTV Před 2 lety +64

    고대 신라 형제 삼형제가 경주 사막 유럽 이렇게 나누어 가져갈수도 있을수도 있지요 실크로드로 장미보석을 태극 무늬도 삼등분 했는걸 보니 왕의 삼형제 일수도 있지요

    • @niceguyhyun
      @niceguyhyun Před 2 lety +16

      훙노족이 유럽에 진출했으니 가능성있어보임

    • @ooOOoo-nf2uw
      @ooOOoo-nf2uw Před 2 lety +2

      이런 ㄷㅅ 저게 과연 3자루만일까 ..이넓은 지구에서 ㅋ 우연히 발견 된건만3개다 ㅋ 어디에 더묻혀있을 확률이 훨높다 ,.또한 과거에 녹여서 다른걸 만들었을수도있고 ..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Před 2 lety +1

      @@ooOOoo-nf2uw 뭍히지 않은것들은 다 녹여서 다른 걸로 바뀐거죠.
      왜냐면 금 장신구도 유행 이란게 있으니까, 구닥다리 스타일을 좋아할 리가 없죠.

    • @cmeat
      @cmeat Před 2 lety

      @@iplayoldgames1 자기 정신승리에 유리해서 그런듯

  • @user-lt4mk2ux1v
    @user-lt4mk2ux1v Před 2 lety +142

    정말 자랑스럽고 경이로운 대한민국의 역사에 감동했습니다.온몸에 전율이 흘렀네요.잘봤습니다.감사합니다.

    • @j3459
      @j3459 Před 2 lety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11

    • @user-yv1pk4mx9u
      @user-yv1pk4mx9u Před 2 lety +2

      @@j3459 음 제군 제법알고있군 본좌역시 박혁거세대왕의직계후손일세
      옛날같았으면 지금쯤 한국의왕이되엇겟지

    • @user-of5cr3wc3n
      @user-of5cr3wc3n Před 2 lety +3

      @@j3459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 .............뭔 소리여??......... 맨 처음한일이 사대의혹 사건 일으켜서 국민들 등꼴 빼 먹으면서 정치자금 모금 하면서 ..부 정 부패 대마왕 등극을 시작한 것 인데..

    • @j3459
      @j3459 Před 2 lety

      @@user-of5cr3wc3n 이양반아 님이 양심이 있는 사람이면
      박정희대통령에게 고마운마음을 한번이라도 가져보세여
      전혀 국제정세랑 역사 세게흐름을 모르는양반이네
      우리에게 박정희같은 사람이 없었으면
      우리는 지금 베트남이나 필리핀처럼 무.
      시당하고 사람취급못받고 삽니다
      공부를해야 보입니다

    • @user-bt3tu9nk1u
      @user-bt3tu9nk1u Před 2 lety +2

      @@j3459 차리리 박정희도 알에서 태어났다고해라~ ㅎㅎ

  • @user-wc5bl2es8n
    @user-wc5bl2es8n Před 2 lety +96

    북방 흉노와 헝가리 훈족과 신라김씨왕조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요.. 서흉노는 유럽으로 동흉노는 한반도로 이주해 왔고 4세기경 훈족이 서로마와 동로마 콘스탄틴노플로 부터 조공받은 것을 형제국가인 신라에 선물로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j3459
      @j3459 Před 2 lety +2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5

    • @user-tv3uf3ys6s
      @user-tv3uf3ys6s Před 2 lety +5

      @@j3459 개소리하네

    • @j3459
      @j3459 Před 2 lety +1

      @@user-tv3uf3ys6s 사실인데.

    • @user-pk3nl8xp1g
      @user-pk3nl8xp1g Před 2 lety +2

      @@j3459 박씨 경주김씨에게 밀림.

    • @kownwoo4521
      @kownwoo4521 Před 2 lety +2

      @@j3459 왓썹맨이 박근혜 한테 밀양박싸라고 했던 일화에서 박근혜가 밀양박싸 아니라고 친한 척 하지 말라고 했는데

  • @user-gu4kv7zl3o
    @user-gu4kv7zl3o Před 2 lety +38

    고구려.백제.신라 왕관들과 귀걸이에서도 저런 세공법 즐비하지 않나요? 더 섬세하게 박아놨던데...

    • @user-vq7rv1tt6z
      @user-vq7rv1tt6z Před 2 lety +3

      도검의 모양이 한반도식이 아님

    • @kanglee8722
      @kanglee8722 Před 2 lety +3

      @@user-vq7rv1tt6z : 맞습니다, 그보검은 로마제국식의 보검 입니다.

  • @user-sp7vi3gw1l
    @user-sp7vi3gw1l Před 2 lety +205

    저걸 일제가 먼저 발견했더라면 어쩔뻔 했을까 아찔한 한편, 결국은 후손의 손에 발견되도록 선조들께서 지금까지 보호하고 계셨구나 생각하니 뭉클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 @jeddnabi7625
      @jeddnabi7625 Před 2 lety +1

      이미 그렇게 가져가서 일본꺼로 둔갑시킨 보물들이 꽤나 많을 거라 추측합니다. 일제시대 국보급 고려청자들이 많이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죄다 무덤도굴로 가져갔죠 아마 간송선생님이 노력하지 않았다면 몇몇의 국보급 고려청자마저지키지 못하고 다 일본에 있었을 겁니다. 고려청자야 워낙에 독보적인 고려만의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출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낙인이 찍힌 몇몇 미술품도 그렇지만 이외 그렇지 않은 우리도 모르는 우리의 문화재가 과거 일본이 만든것처럼 현시대에 알려지고 있을겁니다.

    • @user-sp7vi3gw1l
      @user-sp7vi3gw1l Před 2 lety +5

      @@jeddnabi7625 그쵸.. 워낙 걔들이 뜯어간게 많다보니 이런 생각도 하게 되네요.

    • @user-he6oe1gb8z
      @user-he6oe1gb8z Před 2 lety +18

      글쵸. 진짜 대단한 건 35년 동안 훔치고 파괴하고 왜곡해도 남은 역사서와 유물이 이정도라는 겁니다.
      진짜 빡치는 건 석굴암이죠.
      복원할 능력도 없이 왜 건드려서 ..... 원래 기능을 파괴한 건지 ㅡㅡ.

    • @joyfollkim5478
      @joyfollkim5478 Před 2 lety +1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흑노예처럼 매매됐고 자식 또한 노예가 되었다. 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6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로만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고조선 부터 일본까지 다 한민족역사.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인 가야인이 일본으로 넘어가기전에는 일본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다.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비로소 고대국가가 형성됐다.일본역사는 백제가야 역사이고 한민족 역사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인은 사람의 모양을 한 바퀴벌레다"
      - 도조히데키(내각총리대신) -
      중국인을 조선처럼 황국신민으로 편입할 계획은 없는가 ? 라는 기자 질문에.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위안부도 일본인이 더 많았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고조선문명이 중국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 @user-he6oe1gb8z
      @user-he6oe1gb8z Před 2 lety +11

      @@joyfollkim5478 일단 조선 노비는 조선 전기에는 고려 때와 비슷한 10%였고 대기근이 왔던 시기 먹고 살기 위해 양인의 신분을 포기하고 스스로 노비가 되는 자들이 늘어 30~35% 정도늘어났던 적은 있었습니다.
      세기말적인 특이점이 없는 한 조선 시대에 신분 구성 중 노비는 평균적으로는 10%남짓이었다는 거죠.
      님 말대로 노비가 조선 전시대를 통틀어 40%가 평균이었다면 나라 자채가 유지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노비는 군역(현대로 치면 국방의 의무)을 짊어지지 않고 나라에 세금도 내지 않거든요.
      참고로 조선의 군대는 구한말 같은 막장 시대가 아닌 이상 평균 15~20만을 유지했고 군대를 가는 대신 국방세와 같은 세금을 내던 인구를 더하면 70만이 넘죠.
      또한 노비의 숫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등장하는 건 전쟁 후 인구 조사를 한 임진왜란 이후이며 그 이전은 양반들 세금 조사기록이나 특정 일부 마을 단위의 기록들 뿐입니다.
      즉 정확한 기록이 아니다라는 거죠.
      만약 노비의 비율이 40% 였다면 거의 인구의 절반이 세금과 국방의 의무가 없다는 건데 그런 나라가 과연 유지나 되었을까요?
      현대로 비유하자면 대한민국 인구 5000만 중 2500만이 세금도 안 내고 군대도 안가며 권리도 없지만 의무도 없는 사람이었다면 나라가 유지될 거라 생각하세요?
      당장 군대부터 규모가 줄어들고 무너질 겁니다.
      가끔 그래서 임진왜란 때 일본에 털린 거지 않냐는 분들 있는데 당시 털린 건 썩은 관리들과 일본에 대한 오판 희대의 ㅂㅅ짓을 한 원균 때문이었지 국력이나 군사력 차이로 진 게 아닙니다.
      일본에 선진화된 조총이 있다면 조선에는 동시대 최고 수준의 화포들이 있었고 그렇다고 조총이 없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조선군과 화포의 조합은 조선군이 성으로 들어가 수비하기 시작하면 노답 수준의 방어력을 자랑 했죠.
      그 대표적 예시로 개전 초기 부산 전초 기지의 장수였던 정선 장군이 500명의 병사들로 13만의 일본군을 거의 하루 동안 막아낸 것만봐도 알 수 있고 원균과 선조의 ㅂㅅ짓과 불운으로 정예병을 다 잃은 상황에서도 수비에 들어간 전라도를 결국 함락시키지 못 했던 걸 봐도 알수 있죠.
      다시 노비 이야기로 돌아가 만약 노비가 인구의 40%였다면 앞서 말했듯이 조선의 군대 규모는 평균 15만 정도 유지되었으며 병졸 1명을 훈련 시키고 무장하는데 7~ 10가구가 내는 세금이 들어가며 이를 단순하게 역산 해도 세금을 내는 양민들 숫자만 1050만~1500만이 되는데 경기서 노비가 40~50%라면 조선은 최소 인구 4000~5000만을 가진 나라라는 게 됩니다.
      또한 노비의 대우에 대해서는 그 시절 다른 국가에 비해 인권적이었다는 건 펙트입니다.
      경범죄의 경우 노비와 양민이 차등 처벌 받았지만 살인,강간과 같은 중범죄의 경우 노비나 양민(양반도 양민입니다.)도 같이 엄중하게 처벌 받았으며 양반이 노비를 죽이고 그 죄가 드러나게 되면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때문에 과거 기록에 근거해 사실적인 사극 장르물을 보더라도 양반이 노비를 죽였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숨기려 하죠.
      만약 노비가 비인간 물건 취급을 받았다면 숨길 필요가 없죠.
      왜냐하면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물건을 부순 것 뿐이니까요.
      또한 노비의 대우는 주인이 되는 양반의 인품에 따라 결정되며 그것도 주인과 같이 사는 10~20명 남짓한 노비들 뿐이며 대부분 노비는 마을에서 양민들과 구분없이 살았습니다.
      노비와 양민의 차이는 그 마을을 떠날 수 있는 이동의 자유와 세금이나 노동력을 받치는 대상의 차이일 뿐이죠.
      외거노비의 경우 자신의 재산 중 일정량을 주인에게 받치거나 그 양반가의 토지나 논밭에서 일정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대채 했지만 그 수준은 양민의 세금에 비해 아주 작았죠.
      노비의 인권에 대한 또 다른 근거는 조선 역사에서 농민들에 의한 봉기는 있어도 노비에 의한 반란은 없었다는 겁니다.
      앞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상당수가 조선 농민들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이는 맞습니다.
      개전 초기 부패한 관리들에 대한 분노로 일본군에 편승한 사람도 있었지만 전쟁이 지속됨에 따라 그 숫자는 빠르게 줄어갔고 정유재란 때는 아예 없었으며 임진왜란 때 많은 노비들이 의용군으로서 활약하여 면천되기도 했습니다.
      간혹 주인인 양반이 강제했다는 말도 있는데 노비에게는 국방의 의무가 없고 주인이 그렇게 하라해도 들을 이유도 없습니다.
      주인이 전쟁참여를 명령해도 이를 거부한다 해서 딱히 법 적인 처벌이나 패널티가 생기지 않는다는 거죠.
      요약하면 일부 40% 70%다하는 주장 것처럼 실상 조선의 노비는 그 정도로 많지도 않았으며 노비와 서양 노예를 동일시 하는 건 심각한 무리가 있다는 거죠,
      까놓고 말해서 조선에서 양민과 노비의 차이는 이동의 자유 하나 뿐입니다.
      둘 다 결혼 가능하고
      개인 재산 보유 축적 가능하며.
      노비의 경우 군대도 안가고 세금도 적게 내며 내거노비의 경우 주인이 노비의 의식주를 책임져야 하기도 했기에
      때문에 대기근이나 구한말에 양민의 신분을 포기하고 노비가 된 자들이 많았던 거죠.
      만약 노비의 대우가 서양 노예와 같다면 아무리 굶어죽을 상황이라도 노비가 되는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 @user-cc4ee8rg4i
    @user-cc4ee8rg4i Před 2 lety +7

    역시 갓정희

  • @JayKimJr
    @JayKimJr Před 2 lety +4

    한국은 신라의 나라지.

  • @shpark8871
    @shpark8871 Před 2 lety +482

    일본과 식민사학계가 그동안 우리역사를 얼마나 은폐시키고 날조해왔는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 @facezoneable
      @facezoneable Před 2 lety +25

      무려 35년이니 역사왜곡 엄청납니다

    • @cometfi2298
      @cometfi2298 Před 2 lety +4

      지금도 사학계쪽은 친일파가 꽉잡고있죠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Před 2 lety +31

      식민사관은 35년이 아니라 80년이 넘은 일제 사관입니다. 1920년 조선 총독부 산하 조선사 편수회의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만들고 그걸 전수 받은 이병도, 신석호가 해방후 국사학계와 교육계를 장악하면서 일제가 심은 사관을 배워 왔던 것입니다.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Před 2 lety +4

      주류 사학(식민 사학 추종) 계보 / 매국 역사 학술 단체
      1. 일제의 식민사관을 만들어낸 조선 총독부 산하 조선사 편수회의 일본인 학자들
      : 요시다 도고, 시라토리 구라키치, 쓰다 소우키치, 이케우치 히로시 이마니시 류, 이나바 이와키치, 쓰에마스 야스카즈
      2. 조선사 편수회 고문 명단
      : 이완용, 권중헌, 박영효, 이진호, 유맹, 어윤적, 이능화, 최남선
      3. 수사관 및 수사관 보
      : 신석호, 홍희(수사관), 이병도(수사관보)
      4. 식민 사학 1세대
      : 이병도, 손진태(서울대), 신석호(고려대)
      대표적인 친일파(이병도, 신석호)
      5. 식민 사학 2세대
      : 고병익, 천관우, 이기백(한림대), 차하순, 한우근, 김철준, 김원룡, 유원동, 김정배, 변태섭, 이선근, 김용덕
      6. 식민사학 3세대
      : 노태돈(서울대, 송호정 지도교수), 주보돈(경북대), 이기동(동국대), 조인성, 서영수(단국대), 이광린, 배기동, 안휘준, 이선복, 조유전, 손병헌, 이종욱
      7. 식민사학 4세대
      : 송호정(교원대), 임기환(서울교대), 김태식(홍익대), 정재정, 정요근(덕성여대), 김현구(고려대),
      하일식(고대사학회, 연세대), 오강원(한국학 중앙연구원, 고고학), 공석구(한밭대)
      8. 식민사학 5세대
      : 심재훈(단국대), 박준형(연세대), 이진한(한국역사연구회,고려대), 백경식(한국역사문제연구소), 한상권(덕성여대), 오수창(서울대), 홍종욱(한국역사연구회,서울대), 이후석(숭실대), 배성준, 박선미, 연민수(동북아역사재단), 이영식(인제대, 와세다대 박사학위), 기경량(가톨릭대), 이문영('초록불의 잡학다식' 블로그 운영자, '유사역사학 비판 저자), 안정준 등
      9. 주요 역사 학회 단체
      : 동북아 역사재단, 한국학 중앙 연구원, 한국 고대사 학회, 한국 고고학회, 한국사 연구회,
      한국상고사 학회, 한국 서양사 학회, 한국 서양 중세사 학회, 한국 역사 연구회, 한국 교육 학회, 한국 중세사 학회, 역사교육학회, 일본사 학회, 아시아 평화 역사 연구회 등…

    • @TV-jk6bu
      @TV-jk6bu Před 2 lety +2

      더화가 나는건 1000천년이상의 고서 고려왕실의 서고를 물려받아 그전고서를 정리해 놓은 조선왕실의 서고를 임진왜란때 무식한것들이 태워서 다시 남아있는거 수집해 왕실의 고서를 모았는데 일제시대때 또 태우고 한자도 모르는 무식쟁이들 일본의 습하고 더러운 지하실에 숨겨놓고 다 망가지고 소실되었네요

  • @browneyes2009
    @browneyes2009 Před 2 lety +34

    일본 개늠들에게 안털린게 정말 다행입니다

    • @user-ug2rw2hy3n
      @user-ug2rw2hy3n Před 2 lety +2

      일본의 시조를 중앙아시아 바이칼호수 근처라는데 일본에 있는 검刀이 바이칼쪽과 같다고 하죠. 그런데 백제와 일본의 교류는 빼고 이야기 합니다

    • @kanglee8722
      @kanglee8722 Před 2 lety

      알았다면 훔쳐갔겠지요!!!

  • @user-iq7lb4fm1u
    @user-iq7lb4fm1u Před 2 lety +28

    역시 이런 내용이
    중요하죠.
    정말 첨 알게 된 내용
    좋군요.

  • @hasalys
    @hasalys Před 2 lety +10

    세개의 보검마다 칼받침에 문양이 다른게 꼭 의미가 있을거라 생각하니 상상력이 솟아오르네요.

  • @user-ss9yy1hf4j
    @user-ss9yy1hf4j Před 2 lety +37

    요즘 이런 유튜버는 반 이상 넘겨야 본론이 나와

    • @user-df3kd6lm7q
      @user-df3kd6lm7q Před 2 lety +1

      자료조사 라는게 인터넷 검색수준에 불과한데다가 본인이 알지 못하는걸 아는척은 해야 되겠고 제일 중요한거 광고 넣으려면 기본 10분이상은 되야하니 그런거죠. 이사람 뿐만 아니고 이런류의 유튜버 많잖아요?

  • @eunjiyang5727
    @eunjiyang5727 Před 2 lety +4

    신라신대 황금 유문도 누금세공기법이 많은것 같은데~여튼 너무 신비한 역사네요~

  • @morphous
    @morphous Před 2 lety +2

    대체 신라라는 나라는 뭔가? 북으로는 고구려에 발해에 막히고 서로는 중국땅에 막히고 남으로는 끝없는 바다에 막힌 나라로 알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저런 보물이 신라로 온다는 말인가?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뭔가가 잘못되었다.

    • @j3459
      @j3459 Před 2 lety

      황금보검은 유럽의 아틸라가 5세기에 만든물건이에여
      본토신라인과는 전혀 상관없어여
      다만 신라에서 4세기중반에 나간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중에 아틸라가 나왔기에
      유럽에서 만들었어요

  • @user-cp2bl1sc7k
    @user-cp2bl1sc7k Před 2 lety +36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 옛 기록을 보면 바신라 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교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

  • @jaehyunkwon3509
    @jaehyunkwon3509 Před 2 lety +222

    신라는 과거 중동인들이 이상향으로 표현할정도로 잘살았던 나라입니다. 서라벌 인구가 최소 90만정도로 추정이 되구요(이게 가능한 이유는 조선은 농업기반국가였지만 신라는 상업과 공업을 기반한 나라라 가능). 조선은 신라에 훨씬 못미치는 나라입니다.
    서아시아 사람이 고위공무원이 되고 왕족 무덤에 로만 글라스(로마의 유리제품)가 발견되는 국제적인 나라가 바로 신라..

    • @luckymanu8619
      @luckymanu8619 Před 2 lety +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soooh565
      @soooh565 Před 2 lety +49

      고대 이란의 한 왕비가 바신라 출신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바신라가 어떤 나라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바신라에 대한 묘사가 신라를 연상시킵니다. 그래서 이란 학계에서는 신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고대부터 신라와 교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죠? 이름만 봐도 바신라, 신라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특히 고대 아람어 계통 언어에서 '바'는 접속사 또는 정관사로 쓰입니다.

    • @user-rh7qt1fo9m
      @user-rh7qt1fo9m Před 2 lety +35

      @@soooh565 네. 사상왕조 페르시아를 세운 유명한 페르시아 왕자의 모가 신라공주입니다

    • @JHK-vh2rm
      @JHK-vh2rm Před 2 lety +26

      무역으로 신라에 왔다가 신라에 눌러앉아 살던 외국인도 많았다네요.

    • @bamboo2659
      @bamboo2659 Před 2 lety

      톈산산맥 일대 유목문화지역의
      기원전 6세기 대형고분 쿠르간
      기원후 5세기 신라 고분과 유사
      키르기스 훈 무덤의 황금 마스크
      나뭇가지 무늬는 신라 것과 동일
      카자흐스탄에서 나온 훈 보검은
      경주 계림로 출토품과 쌍둥이 /// 카자흐스탄 몽골이주 흉노 혼혈민들 물품 맞습니다(몽골에서 중국 진나라에서 흉노민학살하자 경상북도 진한지역으로 집단이주) 그리고 전세계에 3자루가 아니고 졸 많아요// 중국 진나라에서 진한지역으로 이주한 흉노민들은 몽골 훈족들이 아니고 그 밑에 마부노예하던 부류가 중국 한나라,진나라에 끌려다니며 혼혈섞인 그 민족들이 진나레에서 경상북도 진한지역으로 이주한 민족 ( 몽골 훈족과 결이 다름)

  • @user-ic2sw5rs4x
    @user-ic2sw5rs4x Před 2 lety +264

    저거보면 중국 일본 역사는 다 뻥임

    • @user-ug2rw2hy3n
      @user-ug2rw2hy3n Před 2 lety +40

      중국은 사마천이 역사왜곡을 시작했고
      일본은 왜곡을 시도때도 없이해서 역사서는 반드시 교차검증 해야하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역사서

    • @user-pk3nl8xp1g
      @user-pk3nl8xp1g Před 2 lety +3

      @@user-ug2rw2hy3n 일제시대에 역사책이 많이 없어져 우리역사를 잃었죠. 친일매국노 이병도의 후예가 역사학계를 쥐고 있어 역사를 올바로 밝힐려구도 하지 않고요.

    • @user-ic2sw5rs4x
      @user-ic2sw5rs4x Před 2 lety +4

      @@user-pk3nl8xp1g 박근혜정권때 교과서 문제 한번 있었던거 같은데요 그당시 학생들 광화문에서 시위같은거 하던데

    • @user-rh7qt1fo9m
      @user-rh7qt1fo9m Před 2 lety +3

      일본은 백제가 멸망함으로써 생긴 나라임.
      백제는 당시 최고의 해상국가로 배를타고 인도네시아와 인도까지도 교류했었고, 지금의 오키나와는 백제의 섬정도의 위치였음. 백제멸망후 백제의 또다른 땅인 지금의 일본섬으로 거처를 옴겼을뿐 백제를 계승한건 지금의 일본.

    • @qusdudal
      @qusdudal Před 2 lety +9

      @웃지마 그 중국이 지금 중국이 아니라며?! 한족은 이민족의 지배를 아주 오랜 시간 격었지.

  • @user-ug4sk8qq1s
    @user-ug4sk8qq1s Před 2 lety +3

    잘봤어요 영상

  • @jmc9678
    @jmc9678 Před 2 lety +116

    10여년전 경주박물관에 있는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의 안쪽(내부)를 봤었는데 소리를 만들기 위한 종 제작기법에 너무 놀랐습니다. 종 안쪽벽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붙인 주물 덩어리가 있었는데 마치 밀가루 반죽을 필요한 곳에 붙혀놓은것 같았습니다.
    좋은 종소리를 만들기위해 정확한 위치를 어떻게 찿았는지, 어느정도의 두께와 크기로 쇳물 크기를 정하였는지, 쇳물을 어떻게 떠서 종과 하나게되게 붙였는지 너무 신기 하였습니다. 현재의 기술로도 부분적으로 덪된 부분은 조그만 충격으로도 떨어지는데 1000년을 사용해도 종과 덪된 쇳물이 하나가 되어 떨어지지 않는다는것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이 정도로 열과 쇠를 다룰수 있는 기술이라면 황금보검은 충분히 만들수 있는 기술을 가졌으리라 판단됩니다.

  • @borishenkel9703
    @borishenkel9703 Před 2 lety +10

    누금기법은 고조선 유물로 알려진 황금 버클에도 쓰였슴.

  • @user-co5pi3gh5w
    @user-co5pi3gh5w Před 2 lety +2

    이번 영상도 진짜 잘 봤습니다~^^

  • @kwoncop
    @kwoncop Před 2 lety +6

    왜 이런것을 한국 방송국에서는 소개 안하지 다큐로 만들법도 한데 처음 알게 되었네요

  • @user-sx7et7hj7k
    @user-sx7et7hj7k Před 2 lety +24

    맞아요
    신라는 한반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크로드를 통해 카자흐스탄과 그리이스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 @somurphy3895
      @somurphy3895 Před 2 lety +2

      경상도 사람들이 특별한것같음
      역대 대통령들이랑 재벌들도 거의다 경상도 출신인거보면

    • @user-tr7lc6tk4m
      @user-tr7lc6tk4m Před 2 lety

      @@somurphy3895 인구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인구가 전라도의 5배인데 이미 수도권으로 빠져나간수를 제외하고서도 그인원 경기도와 비슷한수치이고 서울보다 많은데 예전엔 그냥 압도적으로 사람들이 많았죠 그래서 경상도표를 얻지못하면 대통령이 될수없는구조

    • @user-fb4kd6vy3l
      @user-fb4kd6vy3l Před 2 lety

      문재인도 경상도사람 ㄷㄷ

  • @user-cm2tx1tt3c
    @user-cm2tx1tt3c Před 2 lety +3

    수고하셨습니다

  • @changseokhan4628
    @changseokhan4628 Před 2 lety +2

    고향인 저도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 @PARKnJONGMAN
    @PARKnJONGMAN Před 2 lety +1

    👍 디씨멘터리 쵝오

  • @user-vk6tn9uk5n
    @user-vk6tn9uk5n Před 2 lety +59

    심각한 역사왜곡에 가슴 아픕니다. 일본한테 주권 뺏기지 않고 6.25전쟁도. 없었으면 찬란했던 문화 유산이 제대로 평가되고 보존 됐을텐데. 저도. 최근에. 책보고.채널 보면서. 알게 됐는데 신빙성. 증거는 차고 넘치는 듯 합니다.

    • @bamboo2659
      @bamboo2659 Před 2 lety

      톈산산맥 일대 유목문화지역의
      기원전 6세기 대형고분 쿠르간
      기원후 5세기 신라 고분과 유사
      키르기스 훈 무덤의 황금 마스크
      나뭇가지 무늬는 신라 것과 동일
      카자흐스탄에서 나온 훈 보검은
      경주 계림로 출토품과 쌍둥이 /// 카자흐스탄 몽골이주 흉노 혼혈 민들 물품 맞습니다(몽골에서 중국 진나라에서 흉노민학살하자 경상북도 진한지역으로 집단이주) 그리고 전세계에 3자루가 아니고 졸 많아요

    • @bjlee1999
      @bjlee1999 Před 2 lety +2

      아마 노비로 사셧을
      겁니다. 자손 대대로~
      양반 노비 둘중하나 신분을 가지니깐

    • @jslim8020
      @jslim8020 Před 2 lety +1

      일본한테 주권빼앗겨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걸 모르다니 역사학자들의 역사 왜곡은 도가 지나치다. 여기서 찬란한 역사얘기하는 것들은 세계사 공부는 안한 것들이겠지. 고조선이 세워질 때 로마는 고속도로를 깔았어.

  • @user-cy2bq8yt5d
    @user-cy2bq8yt5d Před 2 lety +8

    놀랍다~!!♡♡♡

    • @j3459
      @j3459 Před 2 lety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ㄷㄷ

  • @user-ge9fj5kh6u
    @user-ge9fj5kh6u Před 2 lety +25

    제가 봤던 전시에서는 페르시아지역으로 주문제작한 검으로 보더군요. 삼태극문양같은 것은 우리 고유의 것인데 칼의 형태나 제작 기법등은 그 지역의 기법이라구요. 그런데 주문제작이라는게 정기적이고 장기적으로 믿을만한 소통과 무역의 창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서라벌이 그정도 국제무역에도 영향을 주고받은 세계적 도시였다고 보더군요.

    • @bleee1
      @bleee1 Před 2 lety +6

      신라 남미도 왔다갔다함. 일본정창원에 아르마딜로 가죽있는데 매매기록에 신라상인한테 샀다고 나옴. 아르마딜로 남미에서만 서식함.. 그리고 신라성골들 유골유전자검사하면 스키타이인에 가깝게 나와요. 외모는 현재 우즈벡사람 외모에 가깝구요.

    • @로지너스
      @로지너스 Před 2 lety

      @@bleee1 신라 상인이 중국에서 사온거예요~

    • @로지너스
      @로지너스 Před 2 lety

      oem ?

    • @bleee1
      @bleee1 Před 2 lety +5

      @@로지너스 네 다음 zzang

    • @user-bt8ev6yw3m
      @user-bt8ev6yw3m Před 2 lety +2

      @@로지너스 그나라 역사는 사마천이가 그나라 시조이후 족보 사기쳐서 만든거임

  • @tkew3831
    @tkew3831 Před 2 lety +9

    박정희 대통령님 좋은일 정말 많이 하셨네요.

    • @j3459
      @j3459 Před 2 lety

      박정희 대통령이 아틸라의 후예라서
      더욱더 황금보검과 신라의 역사유적 사적 발굴이나 지정에 앞장섯죠..
      신라 경주가 관광도시가 된부분도
      이런영향이 크죠

  • @KK-qe5zd
    @KK-qe5zd Před 2 lety +3

    역시 박대통령 멋지다

  • @user-rh7qt1fo9m
    @user-rh7qt1fo9m Před 2 lety +44

    스키타이의 케레이가 세운 나라가 신라입니다.
    백의 민족이라는 뜻은 천문을 관할한 흰색옷을 입고 흰산(파미르)에서 내려온 흰피부를 가진 천손 민족 즉 백인이며 태양을 상징하는 켄케레이 족(갈까마귀) 이라는 뜻이 내포되어있습니다..신라의 귀족들은 시간의 지남에따라 평민과의 혼례로 백인의 모습이 없어지자. 남자도 짙은 화장을하였고, 잘알려진 화랑도 같은 이치입니다. 페르시아에서는 사카,지금의 몽골지역에서는 색,또는 배달,동이, 라고 불렸습니다. 지금의 중앙아시아에서도 같은 황금보검이 있습니다 .복식도 카자스탄의 황금인간,물고기,북방의 순록 뿔 왕관, 자작나무 등등. 같은 지배민족이 천문을따라 움직이면서 중국 중원(동이의 발상지), 부터 동쪽까지를 지나 한반도로 넓게 퍼져살다가 백두산 폭발과 뒤이은 몽골족의 침략으로 지금의 중국땅에는 소수의 묘족,장족만 명맥을 잇고있습니다. 즉. 찾아야하는 땅입니다. 신라의 천문 관측 기록도 지금의 묘족,장족 자치구 위쪽으론 지금의 러시아땅까지도 관측이 기록되있습니다.

    • @user-fi7pj1sg1v
      @user-fi7pj1sg1v Před 2 lety +4

      잘 알고 계시네요

    • @j3459
      @j3459 Před 2 lety +2

      신라를 세운건 박혁거세입니다
      그리고 박혁거세의 어머니가 파소로 종교지도자입니다.
      파소는 북부여의 단군 고두막한의 딸이구요
      북부여가 단군시스템에서 왕의 시스템으로 가서 고구려로 나라이름을 바꾼겁니다
      당연히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의 핏줄입니다.
      그러니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려고 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칭하며 신하 취급한겁니다
      신라는 박혁거세라는 북부여 고구려 핏줄이니까요.
      물론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는 백인이거나
      백인모습의 동양인이었을것이고
      박혁거세도 백인모습의 동양인이었을겁니다.
      그리고 몽골족은 우리민족입니다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Před 2 lety +1

      김씨들은 흉노 왕자 김일제의 후손이 맞고, 한나라에 살던 김씨들이 한반도로 이주한 이유는, 왕망의 신나라의 멸망과 관계가 깊다.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은 고구려를 하구려 라고 부른 바로 그놈이고, 왕망의 외척이 김씨 일가 였다. 그리고 왕망의 고모가 전한의 황후로, 전국옥새를 집어던진 바로 그년 이다. 왕망의 고모가 전한의 황후 하기 전 황제의 황후 성이 허씨 였다. 그래서 신나라가 후한에 멸망당하자, 왕씨와 김씨들이 살기위해 한반도로 이주한건데, 김씨들은 가야와 신(나)라를 세운거고, 왕인박사, 왕건도 그들의 후손이다.

    • @user-rh7qt1fo9m
      @user-rh7qt1fo9m Před 2 lety +1

      @@davidjacobs8558 왕망과 박혁거세는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나라를 중국의 자랑거리로 여기는 중국이 왕망에대한 기록을 좋게할일없죠? 사마천이 한무제때 흉노에 패한 싸움을 이긴 것처럼 포장한 것처럼, 왕망의 역사도 일부러 시기를 왜곡할 수도 있는겁니다.
      신나라(AD 9-23)의 왕망(출생 BC 45)과 박혁거세 (출생 BC 69,재위 BC 57-AD 4)의 시기는 유사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특히 새 왕조를 여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왕망은 제나라 왕가의 후예라고 하며, 나중(AD 1)에는 '안한공'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안' 자는 중앙아시아의 서쪽을 의미하며 한은 한나라의 한입니다. 신라와 가야의 역사는 미스터리로 가득합니다. 이렇다저렇다 절때 단정지을수없으면 특히나 중국에서 쓰여진 역사서는 절때 믿을수없죠. 아직 티끌만큼도 발결되지 않았단말이죠. 신라가 왜 미스터리하고 신비하냐면 박혁거세의 신나라,페르시아 파르티마 제국, 신라의 유사점이죠. 사상왕조 페르시아를 세운 페르시아왕자가 신라공주와 페르시아왕조와의 혼인에서 낳은 자식이란건 역사에도 나와있어요.

    • @estherkim5469
      @estherkim5469 Před 2 lety

      헛소리. 신라인이 백인이라니 말도 안되네요. 우리 아들이 유전자 검사 의뢰했는데 99퍼센트 한국인이라고 결과가 나왔는데 저는 황인이올시다.

  • @bryankim6509
    @bryankim6509 Před 2 lety +3

    역시 박정희 대통령님

  • @Master_Seo
    @Master_Seo Před 2 lety +2

    감사합니다

  • @user-nu5zc1jm3i
    @user-nu5zc1jm3i Před 2 lety +22

    세계에서 현재 발굴된 보검이 3개다..그중에서 가장 완벽한 모양을 갖춘 제품이 경주 발견품인데..여기서 만들었을 확율이 더 높은 것 아니냐..석류석이 체코서 나오고 울나라는 생산 안된다 카는 데..그것도 장담하면 안되고..금알을 만드는 법도 울나라가 먼저 일 수도 있다..우리가 먼저고 그곳으로 기술을 전파 했을수도..울나라 사람들은 우리는 후발 따라지라 생각한다..고인돌도 제일 많아..금관도 제일 많아..비파형청동검도 제일 많아..명도전도 제일 많이 발견되고..그런데도 우리가 먼저다가 아닌 우리는 전래 받은 따라지다 한다..희한한 발상이다.

    • @j3459
      @j3459 Před 2 lety

      아틸라가 유럽 로마에서 만든겁니다
      아틸라가 만든물건인데 신라에서 만들었다고 뻥치면 안됩니다.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

    • @kanglee8722
      @kanglee8722 Před 2 lety

      경주의 황금보검은 아틸라 대왕이 로마제국을 짓밟던 기원 4 ~ 5 세기 금세공으로 유명한 발칸반도

    • @kanglee8722
      @kanglee8722 Před 2 lety +5

      불가리아의 장인들이 아틸라 대왕의 명령을 받고 신라의 귀족에게 선사하려고 만들었다고 추정 합니다.그래서 지금 전세계에 단하나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유일한 로마식 보검 입니다.

    • @user-cf8kw5pk2o
      @user-cf8kw5pk2o Před 2 lety +1

      @@kanglee8722 그시대에 산 사람처럼 말하네요
      우리나라 사람 아니죠?

  • @bleee1
    @bleee1 Před 2 lety +35

    삼태극문양보니까 신라에서 만든거 맞네요. 일본정창원에서 남미에서만 사는 아르마딜로 가죽에 대한 매매기록이 있는데 신라상인한테 샀다고 했어요. 석류석쯤은 무역으로 얼마든지 가져올수있어요. 남미도 갔다오는데.. Kbs다큐에서 신라왕족 dna가 현재 한국인이 아니고 스키타이인 유전자에 가깝다고 나옴. 신라성골은 위구르인이나 우즈벡인 외모를 가짐

    • @j3459
      @j3459 Před 2 lety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Před 2 lety +1

      김씨들은 흉노 왕자 김일제의 후손이 맞고, 한나라에 살던 김씨들이 한반도로 이주한 이유는, 왕망의 신나라의 멸망과 관계가 깊다.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은 고구려를 하구려 라고 부른 바로 그놈이고, 왕망의 외척이 김씨 일가 였다. 그리고 왕망의 고모가 전한의 황후로, 전국옥새를 집어던진 바로 그년 이다. 왕망의 고모가 전한의 황후 하기 전 황제의 황후 성이 허씨 였다. 그래서 신나라가 후한에 멸망당하자, 왕씨와 김씨들이 살기위해 한반도로 이주한건데, 김씨들은 가야와 신(나)라를 세운거고, 왕인박사, 왕건도 그들의 후손이다.

  • @user-cn4px9lh3r
    @user-cn4px9lh3r Před rokem +2

    지금 중국의 산둥반도와 그주변이 예전 우리의 영토라고 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였고 그러니 세계 3대 보물이 우리에게 있겠죠~!

  • @l740230
    @l740230 Před 2 lety +3

    금관가야(경남김해시) 옛이름이지요
    김해박물관에 말갑옷이 있어요
    시대를 거슬러보니
    우리가 보던 영화에 로마인들이 전쟁을 긴창을 손으로 들고 말마차 타고 하던 시대 더라구요... 그이전부터 말에 갑옷을... 그정도로 기술이 뛰어난 곳

  • @sklee7071
    @sklee7071 Před 2 lety +26

    다른 비슷한 칼에서는 4각 무늬가 있었는 데 삼태극 무늬가 있어서 이 칼은 경주에서 주문 제작한 것으로 보임. 황금으로 된 보석이 많은 비싼 칼은 기성품이 있을 수 없죠. 그래서 태극무늬는 경주의 고객이 주문 했을 수 있죠. 태극무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 배의 깃발(노량해전 기록- 참전 명나라화공)에도 있는 것 보면 태극 무늬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무늬임을 알수 있음. 중국에서 태극 무늬 비슷한 것은 송나라 때나 되야 있음 .

  • @user-ik4tm9vo9k
    @user-ik4tm9vo9k Před 2 lety +10

    이런거 보면 환단고기도 사실인것 같음..

  • @gogog124
    @gogog124 Před 2 lety +3

    신라역사기록이 강아지도 금을 차고 다녔다고 하네 금 세공 기술이 엄청 났을것 같아요

    • @j3459
      @j3459 Před 2 lety

      박혁거세어머니가 백인모습의 동양인으로 종교지배자입니다
      박혁거세는 백인모습의 동양인으로 게세르칸으로 러시아에서 페르시아까지
      신 왕 영웅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박혁거세 부인 알영부인도 아리안족으로 백인입니다.
      삼국지위지동이전은 진한사람은 편두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박혁거세가 다스리는시절 신라입니다.
      박혁거세부인도 편두를 했어요 .
      그리고 황금보검은
      신라에서 제작한게 아닙니다. 5세기 유럽의
      아틸라가 제작했어요.
      황금보검은 그거하나 만드는데 도시하나 만들정도로 뼈골빠질만큼 돈이 많이들어갑니다
      황금보검을 만들려면 그당시 최첨단기술과
      천문학적 돈이 들어갑니다
      그당시 황금보검모양이나 제련방식 천문학적으로 비싼 보석까지 넣을수 있는 사람은
      5세기 아틸라밖에 없어요
      그칼제작연대가 과학적으로봐도4~5세기입니다.
      그리고 5세기 아틸라는 그에 걸맞는 돈과 권력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더불어 삼태극이 뭔지 모르시는듯한데여
      삼태극 문장을 칼에 집어넣었다는 말이 무슨말인지 아세요?
      지금으로 치면 미국정도 되야 집어넣는겁니다.
      내가짱이다. 내가지존이다 말할수 있을때요
      그래서 삼태극문양은 과거 세계를 호령했던
      우리민족에서 나타나는겁니다
      참고로 아틸라는 나는 하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왜 삼태극인지 아실겁니다.
      극히 희귀하고 황금보검같는 건
      국보중에 국보로 가치를 따질수없는 세계전체의 국보입니다
      그검을 아틸라가 만들었으니 유럽 강대국에서 발견되었으면 홍보하고 난리났을겁니다
      근데 그칼만들어질때 즈음 얼마차이안나서
      신라는 광개토대왕이 도와주러와서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칭하고 신하취급해도
      말한마디못했어요.. 이게 신라입니다
      신라에서 제작할확률은 영프로입니다
      이미 유럽은 아틸라가 고대 한국인 인거
      알아요.
      그걸정확히 말하면 신라 박씨왕가의 후예와 따르는 무리들이 유럽으로 가고 거기서 아틸라가 나온거죠.
      유럽서양야들도 여기까지는 모를건데
      아틸라가 고대한국인 인건압니다..0044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아틸라의 후예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황금보검의 비밀의 역사를 알고있어요
      대통령이 되거 제일먼저한일이 역사사적지정 발굴로 황금보검 찾을려고 노력했고마침내 찾은겁니다.66

    • @gogog124
      @gogog124 Před 2 lety

      그래서 아마도 저 검들도 신하에서 넘어갔을수도 있는것죠

    • @j3459
      @j3459 Před 2 lety

      @@gogog124 님 백제가 칠지도를 일본에게 줫다는거 아세여?
      백제가 일본의 신하 여서 일본에 칠지도 상납한건가요?
      일단 신라는 황금보검만들어질 시기와
      얼마차이 안난시에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신라 멸망시키고 정복할려다가 참았습니다
      이유는 박혁거세신라시조가 고구려와 한핏줄이고 고구려친척들이 신라에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놓고 정복을 못하고 명분을 찾을려고 도발했어요
      신라왕에게 매금이라 칭하고 고구려 속국 신하 로 취급하면서 신라왕이 반항하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신라는 반항하면 멸망이란걸 알고
      꾹 참았어요 그래서 이당시 신라가
      멸망안하고 버틴겁니다
      이게 신라입니다
      황금보검의 삼태극은 내가 지존이다할때
      넣는겁니다
      지금으로치면 미국처럼요
      황금보검 제작시기의 신라는 많이 약했어요

    • @gogog124
      @gogog124 Před 2 lety

      @@j3459 당연히 알죠 일본이 백제 신하의 나라이죠

    • @j3459
      @j3459 Před 2 lety +2

      @@gogog124 비밀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면 깜놀해요
      유럽의 아틸라가 신라에서 나간 4세기중반이후 나간 박씨왕족의 후예이고
      박씨왕가를 따라나간 무리들이
      얼마나 또대단했는지
      .
      지금 영국왕실이 아틸라(박씨) 후손이에요
      그래서 영국왕실에서 한국에도 오고그랬어요
      사과도 한국산 사서먹고..
      암튼 고대한국에서 나간 무리들의 후예들이
      계속유럽을 지배하고 있고
      지금도 세계를지배하고 있죠
      ..
      암튼 앞으로 한국도 만주고토수복하고
      더 땅덩어넓히면서 잘나갈겁니다.

  • @hyunsunwoo8858
    @hyunsunwoo8858 Před 2 lety +16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실크로드와 연관 되어 있을까요? ㅠ

    • @j3459
      @j3459 Před 2 lety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ㅊㅊ

    • @user-lr4wu7ll2q
      @user-lr4wu7ll2q Před 2 lety

      초원길요 말 타고 다니던 사람들 시대별 문화 유물들이 한반도 신라 유적지에서 전부 온전히 다 발굴된다고 합니다

    • @hyunsunwoo8858
      @hyunsunwoo8858 Před 2 lety

      넵 고맙습니다^^!

  • @user-hk8px4bt8r
    @user-hk8px4bt8r Před 2 lety +40

    식민사학자들이 또 일본에 물어 봤네. 일본인들이 우리가 만들었다고 할까 우리역사를 한반도에 묶어둔 장본인 들인데 대한민국 역사분야를 지배하고 있는 식민사학자들로 부터 빨리 벗어 나야 한다

  • @user-wo5yi7kx2q
    @user-wo5yi7kx2q Před 2 lety +9

    1960대인지 1970년대인지 그대는 경주 왕릉단지에서
    뛰어놀며 능들을 봉분부분에서 구덩이를 파고 내려그는것을 봤습니다
    불영상 석축 무너진것 헐어내고 새로 섯축 쌓는것도보고
    여기에서 숫가락 향로같은것이 나오는것을 구경했지요
    불영사 뒷쪽에서 구덩이파고 큰종을 만드는것도 구경했습니다
    후일 가보니 능속을 관광객들이 구경하는곳이 됐더군요
    경주는 땅을 조금만 파도 유물이 나오는 곳이지요
    능에서 귀한것이 나온것 잊고 있다가 다시 생각납니다

  • @user-pk6on6sz1b
    @user-pk6on6sz1b Před 2 lety +1

    ㅎㅎㅎㅎㅎㅎ 대한민국 만세

  • @user-qr9xv7rb2i
    @user-qr9xv7rb2i Před 2 lety +1

    최고입니다

  • @tomatoya
    @tomatoya Před 2 lety +3

    우왕 이런거 너무좋음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 @user-it268
    @user-it268 Před 2 lety +4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많은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했어도 살아남았고 현재도 존재하고 있습니다.그만큼 한국인이 강하고 한국이란 땅이 강하다는 것이겠지요.일제 36년간의 지배당한것은 치욕이며 한국이 1/2로 두동강이 난것도 비참하지만 5,000년 역사속에 버티고 있는것에 만족합시다.사라진 나라들 많습니다.

    • @user-cv3qh5ig1l
      @user-cv3qh5ig1l Před 2 lety

      사라진 나라는 많지요 조선도 사라지고ㅋㅋ 우

  • @mikebai8970
    @mikebai8970 Před 2 lety +1

    유물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네요

  • @tae-whankim9821
    @tae-whankim9821 Před 2 lety +2

    통일 신라가 그 당시에 1천년 이상 정권을 유지한 나라가 역사상 거의 전무 할 때 천 년을 유지했으니....정말 대단했지

  • @nina6001sj
    @nina6001sj Před 2 lety +14

    신라는 금과 금속의 나라. 귀족 왕족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금 장식 이었다고 .. 중동에서 온 사신들이 놀랐다던데.

  • @goldrushtv
    @goldrushtv Před 2 lety +51

    가넷은 우리나라에도 흔한 준보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색상이 매우 다양한 가넷들이 아주 흔하게 나옵니다.
    보검의 금 성분을 분석해 본다면 산출지가 어딘지 나오지 않을까합니다.

    • @sunsimkang
      @sunsimkang Před 2 lety +10

      박대통령은 최고의대통령

    • @sunsimkang
      @sunsimkang Před 2 lety +1

      박정희대통령이업었다면 한국은아직도필리핀정도

    • @kanglee8722
      @kanglee8722 Před 2 lety +7

      가넷은 우리나라에서는 출토되지 않고 스리랑카와 발칸반도에서만 출토된다고 알고 있습니다,.그래서 처음 출토 됐을때 학자들이 무슨 보석인줄도 몰랐다가 나중에야 알았다고 들었습니다.

    • @bosskage
      @bosskage Před 2 lety +1

      방구석 박사님 뇌피셜.... 오진다 ㅋ

    • @kanglee8722
      @kanglee8722 Před 2 lety

      중공인이 신지오 ?

  • @user-ko3eu8mb6d
    @user-ko3eu8mb6d Před 2 lety +5

    그 당시나 지금이나 식민사관을 갖고 있는 것들을 지워내야 합니다.

  • @user-ok2cm3gq6b
    @user-ok2cm3gq6b Před 2 lety +2

    유럽에서 인도로 넘어갔고
    인도에서 신라로 넘어온것이다.

  • @user-qu9si6qq3r
    @user-qu9si6qq3r Před 2 lety +40

    다 이해가 되는 부분인데 태극무늬는 우리 고유의 무늬여서 결국 이걸 만들때 부터 우리나라를 위해서 특별제작하였다는 것인데 이부분을 확인해 봐야 겠네요.
    아니면 켈트지역 사람이 한국까지 와서 만들었을까요?

    • @j3459
      @j3459 Před 2 lety +1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4

    • @user-rg9qf5lq5q
      @user-rg9qf5lq5q Před 2 lety +7

      @@j3459 나도어느정도는.역사를안다고생각하는데.님이얘기하시는역사는.어디에근거를두는지궁금합니다.설명이좀더필요합니다.!

    • @user-kh6vs5xs6r
      @user-kh6vs5xs6r Před 2 lety +4

      태극무늬는 한국 고유 무늬가 아니라 중국 도교의 상징중 하나입니다.

    • @j3459
      @j3459 Před 2 lety

      @@user-rg9qf5lq5q 사실의역사에 기반을 두죠.
      그러니 숨겨진 비밀의 역사라고 하는거구요.
      아틸라가 죽은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시방으로 흩터졌는데
      그의 부하들이 헝가리로 많이갔어요.
      그래서 헝가리는 자신들의 선조가 아시아에서 왔다고 교과서에서 배운다고 합니다
      그리고 독일공영방송에서는 아틸라의 정체를 고대한국인으로 방송한적이 있어요.
      유럽에서는 아틸라가 사절단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거기가 어디인지
      궁금해하지만
      어디역사서에도 안나옵니다
      신라는 신라대로 비밀의 역사로 묻어야하니까요
      하지만 아틸라의 후손인 박정희대통령은
      그게 가문의 역사여서 이런 비밀을 알고있었습니다.
      무던히도 황금보검이나 아틸라가 보낸 유리잔을 찾으려고 대령통되자마자
      신라역사유물을 찾고 사적으로 집어 넣었어요..
      아참 그리고 아틸라가 죽은뒤
      신라로 돌아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원광법사가 세속오계를 통해
      신라통일을 도왔는데
      그 세속오계가 아틸라가 전쟁에서 했던 겁니다
      .
      세속오계를 만든게 원광법사인데 성씨가 박씨
      아틸라 사후 신라 고향으로 돌아온 아틸라와 관련있는 사람의 후손일듯

    • @user-ug2rw2hy3n
      @user-ug2rw2hy3n Před 2 lety +13

      @@user-kh6vs5xs6r 삼태극은 천지인을 나타내는데 한민족 시조부터 나온 (三자 문화)를 기초로 나온 것으로 압니다

  • @corea.
    @corea. Před 2 lety +7

    왠지 경주 다른 고분에 또 있을 거 같지 않나요? 분명 왕족이 구했다면 소문 났을 건데요 진짜 궁금한 건 태극문양 현존 오래된 태극문양이 나주 칼 모양의 나무판이자나요 그것 보다 오래 됐을까요?

  • @piesunny
    @piesunny Před 2 lety +2

    대한민국 대한국인

  • @airinre8692
    @airinre8692 Před 2 lety +70

    진짜 우리 나라가 기록의 민족인게 너무 다행이다.

    • @likeutude
      @likeutude Před 2 lety

      기록 부족. 삼국사기조차도 2018년경에 국보가 될 정도로 삼국사기도 정사로 인정 못받았어요

    • @airinre8692
      @airinre8692 Před 2 lety +1

      @@likeutude 조선왕조실록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많이 참고합니다.

    • @jslim8020
      @jslim8020 Před 2 lety +1

      저게 어디 기록됐는데? 모자른건가?

    • @likeutude
      @likeutude Před 2 lety

      @@airinre8692 조선왕조실록 참조 많아 하죠. 여튼 맞아요. 다만, 이런 게 있어요. 세종때 신하들이 삼국 시대 수도 위치를 정확히 모른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어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건 경주는 신라 수도로 말하고, 전주는 백제 수도로 추정하면서 고구려 수도는 도무지 추정을 못한단 거에요. 지금의 평양을 고구려 수도 평양으로 안본 이유는 유물로 알 수 있는데, 지금 평양의 고구려 성의 머릿돌 즈음되는 것에 한성이라고 되어져 그곳이 평양성을 아니라는 걸 뒷받침. 위화도 회군에 대한 조선실록의 기록을 보고 요즘 위화도에서 보면 갸우뚱 할겁니다. 왜냐면, 지금 위화도는 이성계 이후 대륙애들 때문에 명칭을 아래로 내려서 여러 지역을 압록강 지류가 아니라 본류로 내려 놨거든요. 도저히 지금 위화도는 여름엔 잠기는 곳이라 숙영자채가 불가능하고 사이즈도 그 많은 군대가 숙영하기에는 작아요. 여튼 문자만 보자말고 지리도 함께…. 보는 연구를 하는 분들이 계세요.

    • @airinre8692
      @airinre8692 Před 2 lety +1

      @@jslim8020 아니 저게 기록 됐다는 게 아니고요;;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기록을 잘 해뒀어요. 기록의 민족이라 할 정도로요. 물론 바실라에 대한 기록은 다행이 이란의 쿠시나메에 남겨져있서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거지만..

  • @user-rc7nh9zv3c
    @user-rc7nh9zv3c Před 2 lety +3

    우와아아아아.... 👍

    • @j3459
      @j3459 Před 2 lety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ㅋㅋ

  • @user-pz4yi9vq1o
    @user-pz4yi9vq1o Před 2 lety +33

    우리 나라가 고대지도를 어떤 나라보다 정확하게 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야기와 연결 지으면 뭔가 연결이 되는데요~ 와 우리나라 멋지네요..

    • @chojsandsol
      @chojsandsol Před 2 lety +4

      누구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나요?
      근거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예수가 중국인이라고 하는 중국인은 되지 맙시다.

    • @fiaf10047
      @fiaf10047 Před 2 lety +1

      그게 무슨 지도입니까?

    • @chojsandsol
      @chojsandsol Před 2 lety +1

      @@fiaf10047 아마 자다가 이불에다가 그린 지도 같습니다.

    • @jslim8020
      @jslim8020 Před 2 lety +1

      판상선갖고 세계일주라도 했나보네요.
      조상님들이 코가 긴 코끼리라는 동물이 있다는 얘기만 듣고 코끼리를 세계에서 제일 잘 그렸다는 얘기가 하고 싶은 거냐? 생각좀 하고 살아라.

  • @user-xb9lu3ey3y
    @user-xb9lu3ey3y Před 2 lety +1

    울 나라 역사를 과소평가했네. 세계관이 확장되는 느낌이야 ㅋ

  • @kevinkj2011
    @kevinkj2011 Před 2 lety +3

    이런 고대 귀품을 납품 받을 정도로.
    보검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반도의 역사적 위상은
    고대에 아마도 몰라도
    패권 국 중에 분명히 하나일것이다

    • @j3459
      @j3459 Před 2 lety

      황금보검은 들어가는 재료와 정성이
      너무도 뛰어나서
      무역거래하듯 주는 물건이 아닙니다.
      백제가 일본에 준 칠지도같은 느낌으로 봐야됩니다.
      그리고 황금보검은 5세기 아틸라가 유럽에서
      만든검입니다

  • @hpk9321
    @hpk9321 Před 2 lety +11

    외부에서 만들어서 신라로 반입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듯 합니다. 세공기법이야 기술의 이동에 의해 자유롭겠지만 문양은 한문화의 정신을 대표하는 것으로 단순히 그려 넣었다고 보기는 힘들지요. 삼태극문양은 우리문화의 정수이고 다른 문화권 장인이 삼태극을 넣기는 쉽지 않을거 같습니다.

    • @j3459
      @j3459 Před 2 lety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

    • @kanglee8722
      @kanglee8722 Před 2 lety

      삼태극 문양을 알고있는 유럽으로 이동한 우리 한민족 훈족인 아틸라 대왕이 불가리아의 금세공장인들에게 그렇게 문양을 만들라고 시켰을수 있습니다.

    • @j3459
      @j3459 Před 2 lety

      @@kanglee8722 불가리아 헝가리가 같은 형제입니다
      신라에서 나간 박씨왕족과 그를 따르는무리들이 유럽까지 갔는데
      거기서 아틸라도 나옵니다
      불가리아를 세운사람이 아틸라와 형제입니다
      같은 박씨혈연관계 ..

    • @user-if1ib4pn1i
      @user-if1ib4pn1i Před 2 lety

      @@j3459
      중국인들과 같은 역사관을 가지셨군요

    • @j3459
      @j3459 Před 2 lety

      @@user-if1ib4pn1i 이정도는 아주축소한거에여
      한국의 비밀의 역사알면 놀라자빠집니다
      더 많은건 차차 밝혀지겠죠
      지금도 조금씩 밝혀지는중

  • @sangwonahn6600
    @sangwonahn6600 Před 2 lety +42

    신라시대는 금세공에 대해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단순히 다른나라에서 들어왔다고 단정할수만은 없을 것 같기도 하네요.

    • @user-BigshortGO
      @user-BigshortGO Před 2 lety +5

      그렇게 따지기엔 세공기법이 기존 신라에서 만들던 기법과 너무 다름... 이건 누가봐도 그렇게 느낄겁니다.

    • @user-rh7qt1fo9m
      @user-rh7qt1fo9m Před 2 lety +11

      다뉴세문경만 봐도 한국스케일 미쳤죠.

    • @j3459
      @j3459 Před 2 lety +3

      신라에서 만들어진게 아닙니다
      아틸라가 유럽에서 만든거니까요
      하지만 아틸라가 신라에서 나간 박씨왕족의 후예니까 삼태극도나오고 신라느낌나게 만들었어요.

    • @babyblue8596
      @babyblue8596 Před 2 lety

      @@user-BigshortGO맞아요 저런 형태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저 보검 뿐입니다.

    • @sunnyan151
      @sunnyan151 Před 2 lety

      삼태극을 모르니..이 땅에 나온 유물을 타국에서 유래를 찾고자 한다. 어쩌겠나.. 식민사학이 만든 폐단임을..
      [삼태극]
      배달 신시시대에 태호복희와 동문수학 하였던 인물로 선인 발귀리가 있었습니다. 그가 삼신상제께 천제를 올리던 아사달에 와서 제천행사를 보고 예식이 끝난 후에 찬송하는 글을 지었는데,
      그 글 가운데 삼태극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만물의 큰 시원이 되는 지극함이 신의 조화이다. 원(圓)은 하나이니 '무극'이요, 방(方)은 둘이니 '반극'이요, 각(角)은 셋이니 '태극'이라 " 라고 '소도경전본훈'에서는 삼태극에 담긴 원방각, 천지인 우주관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삼신은 일신이며 삼극이 곧 일신입니다. 셋이지만 하나이며, 하나이지만 셋이라는.... 짧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엄청난 우주의 원리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개의 지극함을 삼태극으로 각 각 하늘, 땅, 인간과 연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세종 7년(1425), 평양에 단군사당 건립. 한글 창제에도 원방각(○□△)을 담고, '민본사상'(홍익인간)을 일깨우시다.
      조선총독부의 지령으로 '이마니시류(今西龍)'는 를 1929년에 관보에 게재. 찬란한 역사와 유구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는 한민족의 역사를 끊고자 시작한 역사왜곡 출발점.
      단군의 역사를 신화로 만든 장본인. 지금도 식민사학에서는 금기시 하는 단군.
      단군을 부정하는 것은 세종대왕을 부정하는 것. 삼국사기, 유사를 부정하는 일. 를 읽어 보면 왜 그들이 그렇게 역사를 신화로 둔갑 시켰는지 알 수 있다.

  • @hanjin4545
    @hanjin4545 Před 2 lety +1

    누금기법은 우리나라 금세공유물에 많이 보입니다.

  • @good5402
    @good5402 Před 2 lety +1

    신기합니다

  • @naru7518
    @naru7518 Před 2 lety +49

    적석목곽묘라기 보다 돌무지덧널무덤이라 얘기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요즘 책에는 후자쪽으로 쓰여 있어서 적석목곽묘라고 하면 잘 모르는 분이 있을 듯..

    • @j3459
      @j3459 Před 2 lety +3

      황금보검은 박정희 대통령의 선조 아틸라가
      그당시 신라왕에게 보낸 아주 진귀한 국보입니다
      아틸라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뿐만 아니라 유리잔 등 진귀한 보물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절단을 두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아틸라는 유럽에 신라를 세웠으니까
      유럽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둘쩨 신라에 남아있는 박씨왕족을 잘 보살펴 달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틸라는 4세기중반이후
      신라가 중앙집권화 왕위세습하는 과정중에
      유럽으로 떠난 박씨왕가의 후손입니다.
      역사를 겅부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에 있었다는건 다들 아는기본상식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득을 위해 역사조작을 많이하지만 그렇게 역사조작해도 당서나 송서에서 중국에 있었다는걸 이야기합니다.
      4세기는 백제전성기로 신라위의 백제가 자꾸 신라를 쳐들어와서 빨리 대처하기위해서
      강력한왕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왕위세습으로 가는데 내물왕이 중앙집권화 하는 과정에서
      박씨왕가와 따르는 무리들이 왕위쟁탈전을 하면 신라가 망해버리니까 신라를위해
      떠납니다.
      모든 박씨왕족과 따르는무리가 떠난게 아니고
      신라에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뒤 박씨왕가의 후손 아틸라가 유럽에 새로운 신라를 세울정도로 유럽을 정복한뒤..
      아시아에 있는 신라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황금보검도
      같이 보낸거에여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도 박혁거세의 후손 박씨왕가이니 이런 비밀의 역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니 대통령이된뒤 제일먼저 한일이
      역사사적 발굴이라고 할만큼 관심이 많았죠..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는 다 한형제지만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는 북부여 단군과 관련이 있어요.
      후에 북부여는 통치시스템을 단군에서
      왕시스템으로 바꾸면서 고구려로 나라국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고구려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주러왔다가 신라왕에게 매금이라고 신하취급한겁니다.
      원래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는 북부여 고구려 계통이고 ,, 김씨왕은 신하로 있다가 세력이 커저 왕이되었으니까요...
      아참 한가지 더이야기하자면
      박혁거세는 백인외모의 동앙인이었을겁니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도 종교지배자로
      백인외모의 동양인이거나 백인이었을겁니다1

    • @user-vo5ur7pr9g
      @user-vo5ur7pr9g Před 2 lety +19

      @@lol_shorts__ 정신차리시오. 여기서 이재명 민주당 비난하는 곳이 아니올시다. 또 그렇게 억울하고 원통하시면 왜 그런신지 조목조목 남들에게 알아듣게 말하시요 당신처럼 무작정 비방하면 어느누가 공감하겠소

    • @marcofolosaint6916
      @marcofolosaint6916 Před 2 lety +6

      @@lol_shorts__ 미친넘이 여기저기서 글 달고 다니네.
      국짐당에서 돈 받고 일하냐?
      CCBN아~

    • @chaneo5877
      @chaneo5877 Před 2 lety +1

      대구 경북은 친일파 지역 친일파 도시인데 가지마요 ㅋㅋ

    • @user-rk8eb9bl3y
      @user-rk8eb9bl3y Před 2 lety +1

      @@chaneo5877 7시지역 빨갱이 친북 전라디언들 사는곳 보단 안전함 ㅇㅇ

  • @user-rr2lm4il6z
    @user-rr2lm4il6z Před 2 lety +21

    왕릉에서 미끄럼 타다
    선도산(西山)에 해가 걸릴 쯤.
    왕릉 사이에 자리한 동네 굴뚝마다
    저녁 밥 짓는 연기가 왕릉 사이로
    수채화 처럼 자욱하게 퍼지겠다.
    왁짜지껄~
    토끼랑 노루처럼 뛰어놀던 학동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저녁 먹으로 가는 그림자를
    동(东)으로 뉘여서 키재기 하겠다.

    어린 시절이~~🤔

    • @user-ok4sn3zo8h
      @user-ok4sn3zo8h Před 2 lety +6

      한편의 시인데요? ㅎ
      눈앞에 보이는 듯 합니다

    • @user-ug2so8or8m
      @user-ug2so8or8m Před 2 lety +3

      다분히 시적 문장과 분위기....3문단만 잘 마무리 했다면 ... 어쨌든 은유가 참 멋지셨슴다.

  • @user-pi9vt5lj9u
    @user-pi9vt5lj9u Před 2 lety +1

    대한민국 정말 대단한 나라 입니다
    대한민국 만세

  • @user-sc3lv6rz8o
    @user-sc3lv6rz8o Před 2 lety +2

    누금기법은 신라 유물에 많이 쓰는데요.

  • @sinianmask4467
    @sinianmask4467 Před 2 lety +8

    광복절과 동시에 일본군이 가져간 조선역사물을 보면 알수 있을것이다.
    일본인들이 그것을 돌려주지는 않을것이지만...

  • @bleee1
    @bleee1 Před 2 lety +5

    4:47 이렇게 보니까 신라 금세공품이랑 황금보검이랑 거의 같은양식인데 왜 해외제작했다도 하는겨

  • @user-sl9ke1bf6b
    @user-sl9ke1bf6b Před 2 lety +1

    아름답다 ᆢ ^^

  • @ani5m
    @ani5m Před 2 lety +1

    신기하기만 하네요~^^

  • @duruzhkovivan7556
    @duruzhkovivan7556 Před 2 lety +12

    여윽시 이익이 되는 곳에 한국인이 있나니!

  • @user-dz4vj2vc4z
    @user-dz4vj2vc4z Před 2 lety +4

    스키타이 유목민과 신라 지도층과는 확실히 관계가 있는듯

    • @j3459
      @j3459 Před 2 lety

      황금보검은 5세기 아틸라가 유럽에서 만든검이에요

  • @user-ul4mk8mo7w
    @user-ul4mk8mo7w Před 2 lety +2

    엄청난 보검이네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유물이네요

    • @j3459
      @j3459 Před 2 lety

      아틸라 유럽로마에서 만든거에여
      아틸라가 만들었다고 소개하면 엄청유명해질듯요

  • @user-sq2is4pv7u
    @user-sq2is4pv7u Před 2 lety +2

    신라가 천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조선은 5백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