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was Germany defeated by the Soviet Union? The real reason (controversy in World War II)

Sdílet
Vložit
  • čas přidán 3. 02. 2021
  • #Russian war#Soviet invasion#Kiev battle
    Why was Germany defeated by the Soviet Union?
    We analyze why the Soviet Union won and the real reason Germany was forced to lose!

Komentáře • 307

  • @user-yy2hk8nm8e
    @user-yy2hk8nm8e Před 3 lety +30

    패전의 요인중 하나에
    일본과 동맹을 맺은거 자체가 불필요하고
    오히려 방해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본이 아시아 에서 잠시나마 승승장구 할수 있었던것도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이 식민지 관리가 힘든 틈을 이용해서 그나마 점령가능했던거 같고,
    일본의 군사력이 조금 과대평가 되고 있지않나 싶은데요(특히 육군)
    미국내 독일인 여론으로 미국은 계속
    참전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독일이 차라리 미국이랑 협상을 하는게 더 유리했다고 보이는데요...
    만물상자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16

      오늘 히틀러의 머릿속 분석이라는 컨텐츠를 만들었는데 유튜브 측에서 제재를 강하네요.
      문의하신 것과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너무 안타깝네요.
      동맹국 복이 지지리도 없는 나라가 독일입니다. 영미 연합군 보면 전략도 통일해서 세우고 일치단합해서 움직입니다. 그런데 독일, 일본, 이태리는 각자 따로 따로 움직입니다. 일본은 지맘대로 미국을 공격하고 이태리도 지맘대로 그리스, 북아프리카를 공격하고 독일은 뒷수습 하느라 바쁩니다. 하나 아셔야 할 것은 히틀러가 독재자이긴 하지만 동맹국에겐 우리 상상보다 부드러운 남자였습니다. 동맹국을 나름 존경했습니다, 리하르트 조르게 아시죠? 일본에 있었던 소련간첩. 그가 일본이 소련이 아니라 동남아로 공격할것 같다고 보고를 하죠. 스탈린은 그 말을 듣고 시베리아의 소련군을 동부전선으로 보낸겁니다. 그래서 모스크바 전투에서 독일이 밀려난 겁니다. 일본이 한미 동맹이나 영미 동맹처럼 동맹의 대의로 움직였다면 당연히 소련을 쳤죠. 히틀러에게 하나 아쉬운 것은 일본이 진주만 공격한 이후 히틀러가 의리를 지키려고 그랬는지 미국에 선전포고를 먼저 했는데 그건 좀 전략적이지 못했습니다. 미국까지 적으로 돌리면 안됐었는데. 너무 이기적인 일본, 동맹 국같지 않은 이탈리아 등 루마니아, 헝가리 유전을 제외하고는 단 1도 독일은 동맹국 도움을 받지 못한 겁니다.

    • @user-yy2hk8nm8e
      @user-yy2hk8nm8e Před 3 lety +3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드신 컨텐츠가 도움이 많이 될거 같은데 아쉽네요ㅠ
      만물상자님 말씀대로 히틀러가 미국까지 적으로 돌리면 안됐었다는 말씀 정말 공감합니다.
      히틀러가 동맹국에게 부드러운 남자였다는건 정말 의외네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8

      @@user-yy2hk8nm8e 동맹국에게 갑질을 자제했다는 말을 현실성있게 설명드립니다. 일본이 이기주의의 극치로 독일이 소련에서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독일을 도와 소련을 공격하기는 커녕
      일본을 공격하잖아요. 그 후에 미국이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하니까 독일이 우리 동맹국에 선전포고 했다며 미국에 선전포고 한겁니다. 갑질하는 동맹국이었다면 그렇게 행동 안하죠.
      이태리도 마찬가지죠. 동맹국인 이태리가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에게 죽을 쑤자 동맹국의 어려움을 해결한다며 소련침공준비때문에 그렇게 정신없던 와중에도 2개 기갑사단을 줘서
      아끼는 부하인 롬멜을 보내잖아요. 독일이 동맹국에게 실질적으로 도움받은것은 루마니아의 플로에슈티 유전 무상제공 밖에 없었습니다.

    • @user-yy2hk8nm8e
      @user-yy2hk8nm8e Před 3 lety +4

      @@만물상자TV전쟁의신 실질적으로 독일이 도움 받은건 루마니아,헝가리 유전이 대부분이네요
      이 나라들이 진정한 독일의 동맹국이었죠..

    • @DamoTory0225
      @DamoTory0225 Před 2 lety +10

      이탈리아가 일본보다 더 했지ㅋㅋ 그리스도 정복 못하고 독일한테 도움받아서 겨우 정복했잖음

  • @gamevideochannel1550
    @gamevideochannel1550 Před 2 lety +3

    댓글들도 읽어보구 영상도 다 봤는데 정말 유익한 영상이었네요 잘 보구 갑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다른 유익한 전쟁사 영상도 많습니다. 2차대전이 중심이지만 6.25전쟁 이슈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user-sj4mc9or7e
    @user-sj4mc9or7e Před 2 lety +2

    영상 흥미롭게 잘보고 갑니다

  •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Před 2 lety +14

    룬트슈테트 원수가 전후에 연합국 대표단앞에서..."물론 독일이 소련을 공격한 것은 큰 실수였지만 더 큰 실수는 우리가 영국 공군을 꺽지 못하고 영국을 고스란히 배후에 남겨둔 점이다.
    만일 영국공군을 꺽고 점령했다면...우리는 전력을 소련에 집중해서 싸워 이겼을 것이다. 그랬다면 미국도 온전치 못했을 것이다" 이 말에 참 공감이 갑니다. 2차대전의 진정한 전환점은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아니고 브리턴 항공전이라 봅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갈대님 대단하십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놀랬습니다. (czcams.com/video/kxpu47uBtOA/video.html) 만뭃상자TV채널에서 영국본토항공전 관련 컨텐츠가 총 2개입니다. 이것은 채널 초반기때 올렸던 독일공군이 영국공군에게 진 이유라는 컨텐츠인데요. 거의 영상 끝나갈 즈음에 실제로 소련 국영방송국에서 룬트슈테트를 인터뷰합니다. 그때 갈대님이 한 이야기를 룬트슈테트가 그대로 합니다. 소련국영방송국은 룬트슈테트입에서 스탈린그라드가 독일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룬트슈테트의 입에서는 진짜 엉뚱한 전투가 튀어나옵니다

  • @tassader3317
    @tassader3317 Před 2 lety +15

    개인적인 생각으론 시간순으로 나열해보면
    첫번째: 덩케르크 영프 연합군 철수 허용
    두번째 : 영국본토 항공전 패배 ( 여기서 베테랑 조종사 5000명중 2500명을 잃었으니 )
    세번째: 이탈리아에 뻘짓으로 아프리카 및 유고 그리스에 불필요한 병력 파병 ( 원래 소련으로 갔어야 할 병력들인데 이겄때문에 바바로사 작전 연기 )
    4번째 : 모스크바로 바로 갔어야 했는데 우크라이나로 돌린 실수 (60만 소련군이 있다지만 모스크바가 우선순위 였어야 했음 )
    5번째 : 동부전선에서 잔혹한 행위로 후방에 빨치산들 대거 출연 ( 처음에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맞이한 발트3국 및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빨치산으로 변함 )
    그외로 엄청 많지만 한가지 추가하면 에니그마 암호가 털린것도 패전 원인중 하나 또 미국에게 선전포고 한거까지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3

      만물상자 Tv에서 모두 다뤘던 주제들이네요. 독일이 전쟁에 진 이유를 너무 잘 정리해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 @tassader3317
      @tassader3317 Před 2 lety +3

      @@만물상자TV전쟁의신 추가로 히틀러에 실수 도 포함입니다

  • @5323ds
    @5323ds Před 11 měsíci +6

    전선을 너무 늘린게 패착이였다고 생각하네요.
    그만큼 전력을 쪼개야하고 동시에 그걸 유지하기 위한 보급 물동량이 엄청나기에 그걸 감당하지 못해서
    공세종말점이 와서 밀린것 같네요

  • @kze7719
    @kze7719 Před 3 lety +11

    1. 겨울
    2. 발터 폰 라이헤나우 원수의 급사 : 이로 인헤 미숙한 파울루스가 6군 지휘
    3. 제6군 좌우익을 루마니아군에게 전적으로 맡김
    4.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에는 레닌그라드) 점령 실패
    5. 무능한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가 남부집단군 지휘
    이 다섯 가지가 치명적인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hawk8873
      @hawk8873 Před 3 lety +12

      1. 겨울은 양군 모두 동일 조건이였습니다. 영상에서도 나오지만 진흙장군을 물리쳐준건, 동장군이였지요. 실제 태풍 작전 개시일인 1941.10.6 이해 유난히 한파가 심해서 할더 장군은 영하 10도까지 떨어지고 다음날 20도까지 뚝뚝 떨어졌다고 기록할 정도 였습니다. 그래도 독일 기갑부대들은 오히려 진격이 쉬워졌다고 기뻐했었죠. 나중엔 동계 장비 부족으로 개고생하긴 하지만.
      2. operation blau 당시 독일은 남부 집단군을 주공으로 삼고 병력을 보강하고 둘로 쪼개 캅카즈와 마이코프, 바쿠 유전 지대 진격은 에발트 클라이스트 원수의 A집단군, 그리고 측면 견제와 남부의 중심 공업 도시인 스탈린그라드 점령을 위한 B 집단군을 편성합니다. 이 B 집단군의 가장 큰 제대가 6군이였고 라이헤나우는 그때 6군 사령관에서 영전하여 남부 집단군 사령관이 됩니다. 후임 6군 사령관을 파울루스에게 넘깁니다. 원래 이 둘은 폴랜드 전때부터 환상 콤비여서 비록 야전경험은 부족하지만 명석한 파울루스를 참모장으로 끼고 다녔고 그가 6군 사령관이 되었더라도 어차피 남부 집단군 차원에서 라이헤나우가 작전 통제권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에 이 인사조치는 당시로서는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였다고 합니다. 근데 문젠 그가 뇌출혈로 1942년 1월에 사망해버리고 바익스원수가 남부 집단군 사령관이 되는데 그래도 6월까지는 파울루스도 쏘련군의 2차 하르코프 공세를 격파하는등 훌륭한 야전 지휘를 보여줍니다. 문젠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 되었을때 히틀러의 사수 명령을 어기고 탈출하는 베짱, 이것 때문에 두고 두고 까지게 되는 것이였죠. 사실 그가 야전 사령관에 미숙하다는 평은 일종의 선입견이며 당시 독일군부의 분위기가 오히려 야전통보다는 참모 출신들이 주류였으며 참모 출신 장군의 마지막 보직이 예우 차원에서 군단장이나 군 사령관을 역임하고 전역하는게 일반적인 관행이였다고 합니다.
      3. 당시 집단군 B의 거의 모든 병력, 특히 주력이던 6군이 스탈린그라드에 처박혀 있었기 때문에 좌우익은 동맹 추축군에게 맡겨져 있었는데 좌익은 이탈리아 8군과 루마니아 3군, 우익은 루마니아 4군과 헝거리 군이였는데 이들은 독일군 보다 무장도나 숙련도에서 약체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불안한 곳이였습니다. 쏘련군에서 이들을 노리는 반격작전을 벌인것도 당연하며 이미 루마니아 군은 그 사실을 갈파하고 독일군에게 반복해서 지원 요청을 합니다. 그래서 48 기갑군단과 4 기갑군이 증파 되지만 반격작전인 operation uranus가 개시 되었을때 쏘련군은 그의 3배 이상되는 병력을 쏟아 부어 한번에 돌파해 버리게 됩니다. 처음부터 스탈린그라드에 너무 몰빵하느라 전선을 확대 해버린 것이 화근이였습니다.
      4.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 이 셋중 하나에 집중했다면 하나쯤은 점령 가능했을 겁니다만 단 한군데도 점령 못하죠. 전쟁 초기면 모를까 그 시점에서 레닌그라드의 점령은 적어도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에는 영향을 줄 수 없었습니다.
      5. 룬트슈테트 원수는 키에프 포위전에서 대승을 거둔후 1941년 겨울까지 계속 진격을 지속하여 로스토프까지 점령하였지만 이미 중부 집단군이 쏘련군의 반격에 의해 밀려나는 상황이고 남부집단군 역시 연속된 공격전에 지친 상태여서 중부 집단군에 맞춰 전선 축소 철수를 건의하다가 격노한 히틀러에 의해 파면 당하고 당시 후방이였던 서부전선 총 책임자로 발령 받아 프랑스로 간 상태였습니다. 사실상 좌천 되었죠. 그의 후임 남부 집단군 사령관이 바로 라이헤나우였습니다. 근데 그도 부임한지 한달만에 뇌출혈로 사망하여 바익스 원수로 교체 된것이라 무능하고 말고를 떠나 룬트슈테트 원수와 스탈린 그라드 전투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 @user-mi6cz4br9k
      @user-mi6cz4br9k Před 2 lety +2

      그냥 간단하게 히틀러의 변덕 때문에 진거임 ㅋㅋ 애시당초 소련이 자원준다는데도 전쟁이르켰고 모스크바 진군안하고 키예프가고 스탈린그라드때 루마니아군 오합지졸인거 방비해놔야하는거 알았는데도 말같지도 않은소리라면서 무시함

    • @user-ox6km3uf8v
      @user-ox6km3uf8v Před 2 lety +2

      1. 모스크바 점령 실패 ( 태풍 작전, 겨울)
      2. 남부에 너무 집착함
      3. 유능한 장군의 의견 무시 ( 레프 구데리안 보크 만슈타인 등)
      4. 전선의 무리한 확대 ( 동서 양면전쟁)
      결론은 히틀러의 아집 때문임

  • @exittogoal
    @exittogoal Před 2 lety +6

    [이유1번: 너무추운 겨울과 길이 진창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 [이유2번: 스탈린은 삽질몇번하고 군사작전에 깊게관여 안했지만 히틀러의 끊임없는 관여와 삽질].. [이유3번 : 미국의 광대한 군수물자지원_동부전선 코브라전투기는 이후 소련전투기에 지대한 영향을 줄정도로 명품임].. [이유4번 : 전쟁초기 코카서스 지역의 광대한 자원확보 실패].. [이유5 : 소련국민들은 독일군보다 스탈린이 무서웠음] 등등

  • @user-by9nk3yv4v
    @user-by9nk3yv4v Před 2 lety +1

    말씀 편집 1.5배속 으로 하면 좋을듯요 나이든 나도 느려서 힘드네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1.5배속으로 재생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영상은 조회수는 높은데 채널 초창기 영상이라 그렇습니다.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4 měsíci +1

    대전초기 독일군의 강함은 전략전술의 유연성과 장점을 가진 소프트웨어적 전략운용이었기 때문이며, 군사적역량도 컸으나
    장차 다가올 전쟁 수행에 앞서서 적국의 전쟁수행에 필요한 군사통솔능력파악 여러가지 처세용 조약으로 국제정세를 파악해둔 정치적인 면이 크게 한 몫 하였고 봅니다.

  • @user-qm4ei8sn3j
    @user-qm4ei8sn3j Před 6 měsíci +2

    단시간에 너무 많은땅을 차지하려다보니 전선은 늘어나고
    병력은 부족하고 소련이나 영국둘중하나에 집중햇어야 햇는데 미국의 지원이 결정적었죠
    미국의 어느 군사학자가 말하길
    2차대전은 미국의도움없었으면 독일을 절대 이길수없엇을것이다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듯합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6 měsíci

      사실 2차대전 당시 독일은 1대 1로 붙었을 경우 소련만은 잡을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기회가 여러번 왔었습니다.
      때문에 고립주의를 고수했던 미국을 먼저 공격했던 일본의 전략적 판단 미스는 결정적이었습니다.
      거기다 추축국 동맹의 의리를 지키겠다며 미국에 먼저 선전포고를 했던 히틀러의 실책까지...
      이 사실은 이제껏 잘 부각되진 않았지만 히틀러 최대의 실수라고 불릴 만 했습니다.
      czcams.com/video/c_KjzjLDhYc/video.html (2차대전의 승패를 반전시킨 히틀러와 일본 군부의 바보짓)

  • @user-bx9pc1nz5i
    @user-bx9pc1nz5i Před 2 lety +11

    독일이 막판에 죽쓰긴했지만 소련이 아니라 다른나라였으면 진작에 인구증발해서 독일이 이긴전쟁이였긴함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0

      바바로사 작전이 벌어졌을 때 전세계가 독일이 이길 것으로 예상하며 숨을 죽이고 쳐다봤죠.
      말씀하신 것이 하나 더 추가한다면 한목표만 정해서 송곳처럼 찌르고 들어갔다면 소련은 무너졌죠. 즉 북부, 중부, 남부를 똑같이 진격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군 하나에 전부 몰빵해서 찌르고 들어가는 것이죠. 그랬다면 이후에도 무수히 히틀러와 언쟁이 있었던 기동포위전. 바로 만슈타인, 구데리안이 늘 강조했던 대규모 기동 포위전을 할 수 있었겠죠

  • @sangmyeongshin
    @sangmyeongshin Před měsícem +1

    2024, 6, 8, 15:12
    잘 보고 있습니다

  • @user-yu1qn4ue4n
    @user-yu1qn4ue4n Před 2 lety +8

    1차대전 연락병 한 마리때문에 2차대전이 완전하게 구식 1차대전으로 소련을 상대하니 전략전술에 물량에 보급에 결국 패망의 과정일 뿐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4

      핵심을 잘 찔러주셨네요. 만슈타인, 구데리안, 롬멜 등이 구사했던 기동포위전이란 신개념으로 대승을 거둬왔던 것인데 히총통은 자신의 이른바 육감과 게르만족을 살리기로 정해져 있는 자신의 운명때문에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독불장군이죠. 병적인 요소까지 가미된...

    • @fact7568
      @fact7568 Před rokem

      히틀러는 독일을 교란 시킬목적으로 보낸 소련 KGB 요원 아닐까 싶음

    • @yosefj7191
      @yosefj7191 Před rokem

      독재자라 어쩔수 없어요 수하들이 주목 받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니 자기가 뭔가 결과를 내야하고 무리한 전략 전술 요구

  • @yoonaeyoon
    @yoonaeyoon Před rokem +5

    생산 속도입니다. 생산속도가 소련은 점점 늘어나는데 독일은 점점 줄어들었죠. 사실 소련만 침공했으면 독일이 쉽게 승리를 거뒀을텐데 폴란드 프랑스 영국까지 침략하면서 은근히 독일이 소련만 침공해 공산주의국가를 제거하고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고 싶던 미국 영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연합국은 폭격기로 독일을 신나게 두둘겨 독일의 생산력은 급속히 떨어뜨리고 반대로 철강과 알루미늄을 잔뜩 실은 수송선을 소련으로 보내 소련의 군수산업은 활기를 얻게 됐습니다. 독일의 가장 어리석은 짓이 프랑스 영국을 침공한 것입니다.

    • @user-zy8up1je9z
      @user-zy8up1je9z Před rokem +1

      ㄴㄴ 영국 프랑스침략하고 끝냇어야됏음 가장멍청한게 소련침공한것. 영국 프랑스는 먼저 선전포고해서 어쩔수없었고 영국 프랑스로만 만족했어야됐음

  • @mkim7684
    @mkim7684 Před 3 měsíci +1

    모스크바 초기에 바로 안따러간게 진짜 너무아깝죠
    고퀄영상 잘봤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měsíci

      응원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독소전 초반에 뒷통수를 맞은 스탈린은
      멘탈이 다 털려서 보름이 넘도록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히틀러가 독소전을 조기에 끝낼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은
      모스크바를 최대한 빨리 점령하여 스탈린의 항복을 끌어내는 것 하나 뿐이었습니다.
      사실 독일군은 모스크바를 조기에 점령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키예프 전투만 안했어도 구데리안은 모스크바에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았던 것입니다.
      czcams.com/video/4FY_iSEL1ME/video.html (구데리안 3부)

  • @user-nv9bf5yz6l
    @user-nv9bf5yz6l Před rokem +2

    더 살을 보태자면 저도 최근에 남보람의 순삭밀톡 2차세계대전 프로에서 안거지만 당시 소련의 교리는 상당히 우수했으며 향후 나토에서도 밴치마크 될정도로 우수한 교리였고 합니다.
    하지만 이교리가 만들어진 시점이 겨울전쟁에서 패배하고 군관구 구조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만든 교리여서 교리를 바꾸는데 시간이걸렸고 소련 군사 전문가들도 선진화된 교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려면 1943년쯤은 되어야만 위력을 발휘한다고 해서 스탈린이 일부러 전쟁을 1년이라도 미루려고 독일에 물자를 퍼준거라고 하더라고요
    즉 소련은 1943년 까지만 버티면 엄청강해질수 있는데 연합군이 버티질 못하니 스탈린은 미처 버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스탈린이 첩보원들을 통해 독일군이 400만명 정도 처들어 올것 같다는 첩보를 듣고 징집병도 늘려서 독일군이 공격 가능한 부대 숫자에 맞춰서 150만 육군에서 400만까지 병력수를 늘렸고 탄약 비축 하는데 전쟁전부터 엄청난 돈을 지불했다고 알려 젔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당시 스탈린이 정보부 인사를 죽인이유가 독일한테 소련이 전쟁준비한다 라는 이야기가 새어 들어가 이걸 빌미로 혹시라도 처들어 올까봐 정보국 사람들은 그렇게 다죽였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전쟁은 41년도에 시작했고 당시 대숙청으로 유능한 장교 부족과 스탈린의 227호명령을 내리면서 주코프가 주장했듯이 병력과 물자를 보존해서 소련의 우방인 동장군과 함깨 싸우는 전략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물론 스탈린의 감성적인 227호 명령 때문에 소련군이 큰피해를 본거 패배 할뻔 한것도 맞지만 근본적으로 전술교리도 힘을 발휘 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고 미영프의 공산주의 배척 때문에 해외에서 돈을 빌려올 여력도 안되는 상황에서 소련혼자 적백내전으로 파타난 경제력 가지고 나름대로의 상황에서 국방력을 끌어올리는데 최선을 다했디만 어느정도 한계가 있었지만 프랑스와 영국과 달리 전쟁에 최대한 나름 준비 했고 영국 프랑스와 달리 선진화된 교리를 실정에 적용하고 최대한 전쟁에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와 227호 같은 멍청한 작전을 펼치긴 했지만 이후 주코프에 모든걸 위임하는 것을 보면 독일군의 육군전력의 70프로를 막아내는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도 창의적이고 도전적 이여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거 같기도 합니다.
    물론 독소전 초반에 교리가 완성되기 전이고 적백내전의 피해와 미영프의 경제적 제재들 때문에 운이 따라주지 못해서 질뻔했지만 마키아 벨리가 말했듯이 진취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나 국가에게 행운이 따라주는 대표적인 스토리가 독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은 전쟁이니 재미만 추구하면 안되겠지만 전쟁사로도 인생을 배울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것 같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소련의 교리가 상당히 우수했다. 저도 동의하고요. 그렇다면 투하체프스키의 종심작전이론을 아시겠네요. 일전에 히틀러가 망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였을까? (czcams.com/video/7tIvSIMuK1A/video.html) 라는 영상에 투하체프스키가 나옵니다. 소련의 구데리안쯤 되는 인물인데요. 전격전은 독일만이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련에도 만슈타인과 구데리안과 같은 생각을 가졌던 투하체프스키가 있었습니다. 2차대전이 참으로 드라마틱했던 이유는 구데리안과 만슈타인 그리고 투하체프스키가 이미 2차대전 이전에 다 만난적이 있었고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단 점이었습니다. 투하체프스키가 스탈린의 시기로 인해 죽지만 않았어도 독소전 당시 명승부가 벌어질 뻔했습니다!

  • @user-vs3hu6ie9f
    @user-vs3hu6ie9f Před 2 lety +5

    깊이 들어가기는 쉬웠지만, 나오기는 어려웠어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최근 히틀러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2차대전을 깊이 파고들다보면 엄청난 자부심과 자만으로 무장된 아니 이것이 깊어져서 정신병적으로 과도한 자기 확신을 가진 인물이 히틀러 총통이었습니다.

    • @user-vs3hu6ie9f
      @user-vs3hu6ie9f Před 2 lety +2

      @@만물상자TV전쟁의신 그런것을 과대망상이라고 하잖아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user-vs3hu6ie9f 예전에 히틀러를 보고 이런생각까지 했었죠. 일부러 연합국에서 심은 스파이가 아닐까? 그럴정도로 그의 행동이 좀 이해가 안갔습니다
      (czcams.com/video/SVJOx-oGWj0/video.html) 이 영상을 보시면 저와 같은 분들이 조금은 그를 이해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 뜻대로 하면 정말 승리할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의 어릴적 백수 시절 일화를 보면 그후 그의 행동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 @psycho803
    @psycho803 Před 8 měsíci +3

    전 소련을 공격한게 전술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충분히 이길수 있는 전쟁을 히틀러가 말아먹은거뿐이죠 만약 히틀러가 장군들처럼 제대로 된 군사교육을 받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거라 생각해요 학교에서 절대 포크와 나이프 쓰는 법만 가르치지 않았을테니까요 ㅋ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8 měsíci +2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채널의 독소전 관련 컨텐츠에서도 말씀하신 그 부분에 대한 충분한 언급을 했었습니다.
      에이~ 소련에게 상대도 안 되는데 왜 공격했나? 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구데리안의 말대로 초반에 모스크바를 점령하여
      스탈린에게 멘붕을 일으켰다면 스탈린은 멘탈이 무너져 항복을 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 최근 역사학자들 이야깁니다.
      히틀러 그가 망하기 시작한 시점은? (czcams.com/video/7tIvSIMuK1A/video.html), 구데리안 3부 (czcams.com/video/4FY_iSEL1ME/video.html)
      이 두 컨텐츠를 추천합니다.

  • @user-kv2pd8kk9b
    @user-kv2pd8kk9b Před 3 lety +5

    英國과의 전쟁을 무조건 전쟁끝내고 蘇聯과 전쟁을 했으면 히틀러의 생각돼로 됐었지만 서부전선 동부전선 두전선 형성했기에 한쪽도 전력투구를 못한것이 독일의 패인이라고 생각합니다ㆍ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4

      댓글 감사드립니다.
      서부에서 영미 연합군이 그대로 살아있는데 난데없이 3대 공업국 소련을 공격?
      이해불가죠. 보다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이를테면 북아프리카를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장악한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czcams.com/video/Z-6V5Nh5wcY/video.html (히틀러가 손자병법 전략을 실천했더라면) 이 영상도 흥미가 있으실 것 같네요.

    • @user-qp9ov1os1q
      @user-qp9ov1os1q Před 9 měsíci

      덩케르크에서 히틀러가 구데리안의 고삐를 잡아서 영국이 회생한거임. 롬멜의 유령기갑사단을 가진 구데리안의 전차군단이 덩케르크에서 영국 육군을 전멸시킬 수 있었는데 히틀러가 황당한 명령으로 템포를 끊었음.

  • @user-un1zr6eq5t
    @user-un1zr6eq5t Před 2 lety +2

    이차대전사에 관한 관점은,
    오랫동안 승전국 입장에서 악을 물리친 정의의 세력의 승리로 인정되어왔으나,
    인류역사의 수많은 전쟁사 중 패배자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도 의미가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것같은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도 승자와 패자의 국제정치적 지정학적 군사적 부문등에서 상대적 관점에서 다시 돌아볼 필요가있는 것처럼!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를 돌아보면서 서로 다른 견해의 역사에 대한 건강한 논쟁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좋은 말씀이십니다. 이미 시중에 진실이 다 나와있죠. 대표적인 것이 쿠르스크 전투 당시 최고의 대전차전으로 꼽히는 프로호로프카 전투에서 사실은 소련이 몇배나 큰 희생을 치르며 완전히 패배했다는 사실과 독소전 다큐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독소전 당시 다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군들에게 꽃다발을 안기고 환영했으며 오히려 독일군에 가담해서 소련과 싸웠었다는 사실 등등이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이 묻혀졌죠. 그리고 롬멜이 존경받는 이유가 전쟁범죄가 1건도 없었다는 점인데 오히려 당시 롬멜과 싸웠던 영국군 측에서 전쟁범죄가 있었습니다. 이런일들이 이미 나와 있는데도 독일이 패전국이라는 이유로 묻혀져 있죠.

    • @milchholstein884
      @milchholstein884 Před 9 měsíci

      @@만물상자TV전쟁의신 하지만 그 우크라이나 인들을 수백만이나 의도적으로 굶겨죽이고 나치 2인자라는 놈이 슬라브 남자를 모조리 죽여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떠들고 다니고 그 꽃다발을 전해준 사람들에게 나치가 스탈린보다 슬라브족에게는 너 나쁜 놈이라는 걸 깨닫는데 2주도 걸리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유럽과 달리 동유럽 점령지에서 너무 잔혹하게 현지인들을 다루었죠. 독소전 내내 후방에서 게릴라전으로 보급을 방해하고 괴롭히던 자들도 독일의 진격속도가 너무 빨라서 후방에 남겨진건데 어차피 항복해봐야 죽을거라서 이래죽나 저래죽나 라는 심정으로 싸우게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냉전이 접어들고 나서도 서방에서 소련군에 의한 베를린에서의 강간사건은 다뤘지만 소련에서 벌어진 수천만건의 독일군에 의한 강간에 대해선 전혀 다루지 않더군요. 나치는 슬라브족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이 3천만 가까이 희생하면서도 독일군과 싸워서 간신히 이길 수 있었다고 봅니다. 독일이 소련연방 사람들에게 유화적으로 나갔으면 스탈린이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사람들이 그렇게 죽기살기로 싸우진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투항하면 살려주고 먹을 걸 줬다면 누가 독일군이 일방적으로 밀릴때도 자신들이 두배 이상 더 죽는 미친 전쟁을 스탈린 명령에 따라 했겠습니까.

  • @user-op1qu9mv2e
    @user-op1qu9mv2e Před rokem +2

    히틀러가 우크라이나의 반공세력들을 슬라브인이라 숙청하지 않고 포용해서 소련과 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소련민간인을 학살하지 않고 군인만 상대했다면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2차대전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들이 현재에도 연장선입니다. 지금의 러시아에서 보듯 원래 러시아는 2차대전 당시에도 우크라이나를 꽤 핍박했습니다. 너네들은 뛰어봤자 어짜피 나에게 속했다 이거죠. 그래서 오죽하면 우크라이나는 2차대전 당시에도 독일보다 소련을 더 싫어할 정도였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히틀러가 인종적인 이념때문에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지 않았죠. 블라소프라고 아십니까? 소련군 사단장인데 스탈린의 무지막지한 현지사수에 반대해서 아예 부대를 끌고 독일군에 항복해서 소련군하고 싸운 소련장군입니다. 거의 백만에 달하는 소련군을 이끌고 독일군에 붙어 소련군과 싸웠던 사람입니다. 블라소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설사 히틀러가 우크라이나인들을 끌어들였어도 히틀러처럼 싸워서는 패했을 거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이 영상을 봤다면 아시겠지만 오직 조기에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스탈린정권 자체를 무너뜨려야 독일군이 이길 수 있었습니다. 구데리안 시리즈 최종회 (czcams.com/video/BMvAp--c6cM/video.html)를 같이 보신다면 질문에 대한 답을 저절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

  • @user-gp6ts3hv5n
    @user-gp6ts3hv5n Před 3 lety +6

    전략보다 전술에 치중한 대표적인 사례이지요..전체를 통찰하고 해박하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2

      응원의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changho7
      @changho7 Před 2 lety +1

      @@만물상자TV전쟁의신 그건 아닌 듯 합니다. 최근의 연구 경향은 당시 히틀러의 판단이 더 정확했다고 봅니다. 모스크바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어짜피 더 공격해 봤자 공쇄종말점을 맞아 괘멸했을 겁니다. 오히려 후방을 든든히 한 것이 더 유효한 전략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틀러가 전반적으로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changho7 단 한가지 경우에 모스크바를 먼저 점령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그것은 스탈린이 모스크바를 뺏긴 후에 너무 놀래서 항복하겠소! 라고 나온다는 가정하에서 옳았습니다. 만약 끝까지 스탈린이 싸우려 들었다면 말씀하신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 @changho7
      @changho7 Před 2 lety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맞는 말씀입니다!!

  • @user-hy4rd7wg2g
    @user-hy4rd7wg2g Před rokem +1

    지금도 이해가 안가는게 세가지 목표가 군사적 목표였다는것. 이건 러시아를 완전히 무시하지 않고서는 나올수 없는 목표

  • @user-sanaekochiya
    @user-sanaekochiya Před 5 měsíci +1

    제일 큰 패전요인은 전쟁준비도 다 안됐는데 전쟁을 시작한 것

  • @user-hy4rd7wg2g
    @user-hy4rd7wg2g Před rokem +6

    독일여성들은 군수산업에 무지막지 투입되었습니다

    • @velociraptor7871
      @velociraptor7871 Před 7 hodinami

      아닌데?
      군수상 슈페어 책을 보아도 여성 활용은 미미했음.

  • @user-cx2kg8im5n
    @user-cx2kg8im5n Před 2 lety +3

    미국이 소련에 물자를 퍼주고 소련이 버티면서 독일의 공세종말점까지 잘 버틴것 같아요.또 우랄산맥동쪽으로 산업시설을 옮겨서 히틀러가 소련공업시설을 이용해서 보급을 하려는걸 불가능하게 만든것도 있는것 같아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히총통이 구데리안 말대로 키예프에 눈 돌리지 않고 모스크바를 공격하라고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혹자들은 그랬어도 소련에게 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사분석가들은 멘탈붕괴에 빠진 스탈린에 주목합니다. 당시 스탈린은 소련침공이 벌어졌는데도 독일과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세계 최강일텐데라고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스탈린은 히틀러를 부러워하며 높이 평가했습니다. 구데리안뜻대로 했다면 모스크바는 분명 점령됐을거라는데 거의 동의하는데요. 이렇게 됐다면 스탈린은 강화조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소련이라는 거대한 덩치를 어짜피 다 쳐서 없애기는 불가능했고 1차대전때처럼 소련 독일 강화협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user-cx2kg8im5n
      @user-cx2kg8im5n Před 2 lety +2

      @@만물상자TV전쟁의신 히틀러는 석유 유전을 너무 탐냈던것이 화를 부른것 같아요.우크라이나 유전으로 독소전쟁 틀어지고 나중에 헝가리 유전으로 독일방어에 대못을 박았죠.독일이 석유가 나오지 않는건 이해하지만 만물님 말씀처럼 모스크바 점령하고 스탈린하고 강화 맺고 우크라이나 유전을 먹었다면 유럽이 아니 세계질서가 바뀌었을것 같기도 해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독소전 결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한국에게도 영향을 줬습니다. 주축국이 패전해야 일제 해방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뭘 몰라서 그런 것이고 전 세계가 식민지 운영을 안하는데 조선만 계속 식민지로 남아있겠습니까? 소련하고 독일하고 강화협상만 했어도 한국 분단은 아마 어려웠지 않나 생각됩니다. 공산주의가 퇴보될테니까요.

  • @user-tt8mn1th8h
    @user-tt8mn1th8h Před 3 lety +4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나 가을이였다면 전쟁에서 어떻게 됬을까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2

      어떤 전투가 여름이나 가을이였다면이라는 뜻인가요? 모스크바 전투인지 키예프 전투인지?
      모스크바 전투를 말하는거 같은데 현재 군사 전문가들은 키예프로 구데리안의 2기갑군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놔뒀다면 모스크바 점령은 거의 100프로이고 아마 독소전에서 독일이 승리했을거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겨울도 문제지만 소련의 10월은 라스푸티챠(가을장마)때문에 지금도 통행이 어려울 정도랍니다. 그대로 뒀으면 아마 구데리안이 10월에는 모스크바 들어갔을 것입니다.

    • @kze7719
      @kze7719 Před 3 lety +3

      @@만물상자TV전쟁의신 모스크바를 점령했다고 해서 독일이 이겼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조금 위험하지 않나 싶습니다.
      1. 키예프에서 룬트슈테트의 남부집단군은 고전했으며, 중부집단군이 합류한 후에도 거센 교전 끝에 겨우 우크라이나 확보
      2. 이미 소련의 산업은 우랄로 이전되었으며, 미국이 소련에 물자를 대여해주고 있는 상태
      3. 르제프 완전 장악 실패
      4. 레닌그라드 점령 및 발트 해 봉쇄 실패
      5. 소-일 불가침 조약으로 합동공격 무산
      차라리 레닌그라드와 발트 해 전역이 제3제국에 장악되었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제3제국은 소련을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 @user-nv4wu7hc3f
    @user-nv4wu7hc3f Před rokem +1

    No reason nothing is answer winter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1

      While there were issues with the harsh winter, a lack of focus on a single objective was the biggest reason for the failure of Operation Barbarossa.

  • @user-zk5mi4je1i
    @user-zk5mi4je1i Před 8 měsíci +1

    1:15: 🔍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4:20: ❌ 독일과 소련의 인구 차이, 수송차량의 중요성, 인적 자원 활용의 부족이 독일의 패배에 영향을 끼친다.
    8:33: 🔍 히틀러가 2차 대전 중 민간인 여성을 군수 공장에서 활용하지 않은 이유와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13:29: ✨ 독일 육군의 전략적인 작전과 아돌프 히틀러의 전략 실패

  • @LF-mz5if
    @LF-mz5if Před 2 měsíci +1

    스탈린은 모스크바 떠날 기차도 마련했다고 합니다 모스크바 점령하고 기지화 했으면 소련은 끝이었죠 나폴레옹이 모스크바 점령하고도 패배한 이유는 식량 창고에 대형화재가 나서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고 모스크바 점령하고 잘 지켜냈으면 키예프 소련군은 전부 다 자발적으로 항복했을 겁니다 스탈린도 떠난 마당에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měsíci

      아주 핵심을 찌르셨네요.
      스탈린은 히틀러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와 내가 힘을 합친다면 우리는 천하무적일텐데, 왜 나를 공격했지?"
      그렇게 의심이 많은 스탈린이 유일하게 믿은 사람이 정말 어이없게도 히틀러였습니다.
      때문에 독소전이 터졌을 때 스탈린이 받은 쇼크는 무척 컸습니다.
      독소전이 터진 후 개인별장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을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조기에 모스크바가 점령당했다면 스탈린은 평화회담을 제안했을 것으로 강하게 추정됩니다.

  • @mvpstar2913
    @mvpstar2913 Před 2 lety +1

    전격전의 의미를 몰랐던 히총통..

  •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Před měsícem +1

    독소전은 질(독일군)이 양(러시아군)을 이길 수 없었던 전쟁이었습니다. 스탈린이 "양이 곧 질"이다라고 했다는데...

  • @user-qq2di8zm1k
    @user-qq2di8zm1k Před 3 lety +9

    히틀러의 실수도 패배원인중 하나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5

      실수를 했어도 결정적인 실수를 도대체 몇번을 했었어야 말이죠.
      1940년까지는 정말 완벽했죠. 싸우지도 않고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시키고 소장파인 구데리안과
      왕따당했던 만슈타인의 전략을 채용하여 베네룩스 3국과 프랑스를 함락. 누가 봐도 완벽 그 자체.

  • @user-nd4ic4tg6d
    @user-nd4ic4tg6d Před 11 měsíci +1

    무한 저글링에 다굴 당함...게다가 오버로드 드랍에 본진 여기저기 털린데다 아바타 소환에 앞마당 다 털림...이길수가 없는 게임....

  • @asddghjklzxcvbnmm
    @asddghjklzxcvbnmm Před rokem +1

    소련을 침공한 그 자체가 패전 요인임.
    대서양 쪽에 미국과 영국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전선을 2개 만들어 병력과 보급이 분산된게 주 요인.
    소련이 작은 나라라면 승산이 있었겠지만 큰 나라라 처음부터 승산이 없었음.
    일본이 중국을 넘어 몽골 시베리아를 넘었다면 달라지겠지만

  •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Před 2 lety +7

    개인적으로...독일이 소련에게 보다는...연합군(미,소련, 영국 등)에게 졌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영미군이 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독일군의 힘을 많이 약화시키지 않았다면..
    글고 무시무시한 영미공군이 2년 반이상 독일의 모든 지역에 매주 폭탄으로 도배를 하지 않았다면 ...그럼에도 러시아가 2차 대전 시 유럽지역의 결과에 대해 66%이상의 기여를 한 것은 확실합니다. 미국쪽이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노르망디상륙도... 만물상자님이 설명하신 바그라티온 작전이 아니었음..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여튼 러시안인들도 잘 싸웠습니다. 베를린 점령후에 러시아 병사들이
    독일여성들에 행한 짓은 옥의 티...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3

      소련군은 독일에게 호되게 갚아주게 되죠. 바그라티온 작전도 바바로사 작전 4주년때 정확하게 시작했고 독일이 소련에서 했던 그대로 갚아주게 되죠. 독소전은 영토전쟁이자 절멸전쟁이었습니다. 히틀러 가상인터뷰(미공개 영상)까지 보셨으니 알겠지만 소련을 건들였던 것은 히틀러 일생 일대의 대실수였습니다. 스탈린과 히틀러는 똑같이 자국민의 희생을 두려워하는 존재들이 아니었으니 그 전쟁이 얼마나 처절했겠습니까? 미국은 자원이 넘치고 또 넘쳐서 태평양에서 일본과 싸우면서도 소련이 잘 싸울수 있도록 기관차나 트럭 등 수송지원까지 소련에게 해줬으니 2차대전은 결국 아무리 전략이 뛰어나고 훌륭한 장군들이 있었어도 결국 자원순서로 강할 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전세계 1위 공업국 미국, 2위 소련 3위 독일. 이 순서가 2차대전 때 공업력 순서였습니다.

  • @kriskwon575
    @kriskwon575 Před 7 měsíci

    군사작전시 크게 보면 두가지로 나눠집니다. (1)적의 병력의 섬멸이냐 아니면 (2) 지역 점령이냐로 볼 수있는데 히총통은 키에프에 묶여있는 쏘련군의 섬멸이 우선으로 보았고 아니면 쿠데리안의 목표처럼 "모스크바"냐 차이인데 쏘련으로 봐서는 키에프에 모여있는 그갓 60여만의 병력손실은 쏘련의 인적자원으로 볼 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점령은 독일에게 전선을 확정시키고 스탈린의 전쟁의지를 꺽을 수 있는 전략적인 승리라고 봅니다. 결국 히총통은 쏘련군의 무한한 인적자원과 미국의 군수품지원으로 결국 한계에 부딪칠 수 있다고 봅니다.
    긍극적으로 쏘련과의 동부전선과 연합군의 서부전선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네요. 차라리 연합군에 항복하고 연합군과 합쳐서 쏘련군을 대적했더라면 쏘련은 쪼끄라들었을 것이고 동유럽의 공산화나 중국의 모택동이나 한국은 분단되지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히총통이 사라지니 이제는 스탈린이 대신하네요. 쏘련은 독일보다 몇배 더강한 적인데 결국 미국이 쏘련을 2차세계대전을 통해 키워놨다고 봅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7 měsíci

      히틀러의 독일이 너무나 초반에 잘나갔고 과학기술과 군사기술이 너무나 대단했기에 서방권은 공포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합국에게 두고두고 후환거리는 스탈린이었습니다.
      이 컨텐츠에서는 구데리안의 주장대로 조기 모스크바 점령만이 독일이 승리할 유일한 길이라고 봤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스탈린의 멘탈입니다.
      독소전쟁 이전만해도 스탈린은 같은 독재자인 히틀러를 굉장히 존경하고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그와 내가 힘을 합치면 우리는 세계를 정복할텐데...라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르바로사 작전이 갑자기 시작되자 스탈린은 멘탈이 붕괴되어
      보름이 넘게 별장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고 폐인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조기에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협상을 했다면 훨씬 불리한 조건에서도 OK를 할 사람이 스탈린이었던 겁니다.

  • @yealk9725
    @yealk9725 Před měsícem +2

    독일이 소련을 잡았다면
    중국 한국은 분단이 없지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měsícem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대로라면 아예 분단이 안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설사 독일이 패전했고 기존 역사대로 흘러갔더라도
      한반도는 충분히 분단이 안 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루즈벨트 정부의 다분히 친소적인 행동만 없었다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의 분단은 정말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애초 혼자 힘으로 일본을 박살내고도
      소련에게 기회를 준 것이 결정적 실수였습니다.
      czcams.com/video/3HD3YR5VW4o/video.html 스탈린은 나랑 했던 모든 약속을 깼어! 한반도의 분단을 부른 루즈벨트의 대실수

  • @Xigspsirpupsur335
    @Xigspsirpupsur335 Před 4 měsíci +1

    독일의 진짜 패전 분기점은 덩케르크,이탈리아의 막무가내 전쟁 개시(이로인해 독일-유고슬라비아 전쟁 발발). 이미 독소전쟁 전 부터 많은 패널티를 입었습니다. 바르바로사 1차 목표는 레닌그라드-모스크바-로스토프 였습니다. 레닌그라드 봉쇄 작전(큰 패착),모스크바 점령 작전(동장군으로 실패),로스토프(점령 몇일하다가 탈환당함). 설사 3곳 다 점령했더라고 해서 바로 항복은 안했을거 같습니다. 여기서도 이길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일 큰 2가지. 미국의 참전과 스탈린그라드 점령전을 한것이 문제입니다. 스탈린그라드는 굳이 해야한다면 포위전을 해야 했었고요. 왠만하면 도전해서는 안되는 전투였죠.(애초에 목표가 석유 확보인데 소련이 석유 시추소 다 부셔서 뻘짓한것). 히틀러는 미국에게 선전포고 한것은 대 실수였어요. 독일이 바르바로사 진짜 목표랑 계기를 잊은거죠. 독일이 영국을 항복시키기 위해서 한것인데. 윈스터 처칠은 미국 바라기엿어요. 근데 미국이 선제 선전포고 했을거 같기는 합니다.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에 몇십만명 잃으면서 마지막 희망을 잃었죠. 저거라도 구출했으면. 히틀러가 군 장성에게 중요한 전투를 맡겼다면. 무려 50~70만명 아꼇을거 같습니다. 그리고 보급 문제,정보 문제 등등... 키예프 전투. 이건 저는 히틀러와 구데리안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겠죠. 근데 독일이 아는 소련의 정보와 소련의 진짜 진실은 정말 다릅니다. 독일은 소련 측면공격이 불가능하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나, 입수한 정보와 다르게 정말 잘했어요. 에초에 독소전쟁 전부터 이미 정해진 결론이였다~. 물론 스탈린이 초반에 대삽질 해서 모스크바 근처까지 밀린거긴 해요. 역사가 증명한거죠. 독일이 잘싸웠지만. 졌죠.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4 měsíci

      말씀하신 댓글을 보니 강력 추천하고 싶은 컨텐츠가 한 둘이 아니네요.
      덩케르크 해변에서 영국군이 무사히 탈출했던 다이나모 작전.
      히틀러의 기갑부대 정지명령 때문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때 덩케르크 해안의 모래밭에는
      영국 최고의 전략가 앨런브룩, 몽고메리, 알렉산더, 뎀프시 등이 전부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냥 밀어붙였으면 그냥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czcams.com/video/GLrUAWknTC0/video.html (덩케르크의 탈출이 없었다면 히틀러가 2차대전에서 승리했을까?)
      그리고 모스크바 전투, 일본이 공격하는 시늉만 했어도 스탈린은 그때 무너졌습니다.
      이것은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czcams.com/video/Hk36j8QLANU/video.html (추축국 동맹 일본의 전략적 실수, 이것이 히틀러를 패전으로 이끌었다.)

    • @Xigspsirpupsur335
      @Xigspsirpupsur335 Před 4 měsíci +1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맞습니다, 일본이 5만명으로 선제 소련 침공했으면... 일본과 독일 동시에 이점을 볼수도 있었습니다.. 소련 극동군 스노우볼이 정말 커요. 일본이 석유 확보를 위해서 북사힐린,오호츠크해,연해주,캄차카 반도 침공이라도 했으면 소련이 양면전선이 되면서 일본이 원하는 석유를 얻을수 있었습니다. 일본이 대표적인 강약약강이죠 ㅎㅎ. 애초에 추축국 시스템이 실수 몇번하면 망하는건데, 일본 독일 둘다 큰 실수를 많이 해서 지는게 당연한 결과죠. 물론 이탈리아 뻘짓도 큰 몫 했지요.

  • @heejang8364
    @heejang8364 Před 3 lety +8

    이탈리아 , 일본 동맹국이 너무 약함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5

      이탈리아는 약하면서도 가만있질 못하고 오히려 전략적 방해를 했고
      일본은 전투력 자체는 강하긴 한데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국가였습니다. 동맹으로 볼수가 없는 국가였죠.

  • @Dah_Ye_PARK
    @Dah_Ye_PARK Před 10 měsíci +2

    독일이 소련수준의 인명피해를 입었다면 나라가 반쯤 증발했겠죠. 그랬으면 지금 아마 폴란드, 우크라이나보다도 약소국으로 전락했을겁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10 měsíci +1

      이제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단일전투에서 60만명이 포로로 잡히고도 항복하지 않았던 국가가 있었나?
      그 어떤 국가도 60만명이 포로로 잡히고도 끝까지 싸웠던 국가는 없었습니다.
      그 똑똑했던 히틀러의 발목을 잡고 끝내 패망으로 몰고 간 소련.
      60만명의 소련군을 포로로 잡고 키예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뒤
      히틀러는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 @FF-er2wc
    @FF-er2wc Před 2 lety +7

    패전요인.
    1.양면전쟁을 피하지 못했다.
    2.영국을 먼저 조지고 소련을 마지막에 쳤어야한다.
    3.보급문제. + 보급선이 너무 길어짐
    4.겨울.
    5.히틀러의 작전지휘
    +후에 미국참전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4

      최근들어 밝혀진 독소전 초반 스탈린이 진지하게 강화협상을 고려했다는 말로 보아 중부집단군이 모스크바를 빨리 점령할 수 있도록 그냥 놔두기만 했어도 동부전선을 끝낼 수 있었을테니 최소한 패전국은 안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약한지점을 집중공략하라! 그리고 신속하게 진격하라! 이 불변의 승리공식은 2차대전이후 벌어진 모든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amigo6355
      @amigo6355 Před rokem

      영국은 섬나라라서 해군이 빈약한 독일이 점령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할 뿐더러, 만에하나 영국이 독일에 항복했다 하더라도 유럽에서 마지막 남은 적수가 소련뿐인걸 소련이 안 이상 바르바로사 작전 때처럼 소련이 넋놓고 멍하니 당하진 않을겁니다.

  • @user-ev6xz3fp3u
    @user-ev6xz3fp3u Před 11 měsíci +1

    서울 3일은 부대정비 보급확보등이 포함된 일정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11 měsíci

      북한군이 언뜻 빨리 서울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북한군도 빨리 내려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북한군과 싸우는 국군은 탱크가 1대도 없는 군대였습니다. 그런 군대를 상대로 3일씩 걸린 것은 제대로 된 전격전을 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훗날 김일성도 그것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czcams.com/video/4jdieuhKhlU/video.html 전차전문가 구데리안이 북한기갑부대 지휘관이었다면 6.25전쟁에서 무슨일이 벌어졌을까?

  • @doogon-kim
    @doogon-kim Před měsícem +1

    제개인적인견해로는 너무 연속된 큰성공에 도취 되어서 병법의 기본조차 잊고 자만하게된 그 자만심인거같네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měsícem

      말씀하신 것이 정확합니다.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히틀러의 오만함이었습니다.
      채널에서는 이것에 대해 매우 자세히 다룬 바 있습니다.
      czcams.com/video/7tIvSIMuK1A/video.html (히틀러가 망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였을까?)

  • @Propus-rk9pz
    @Propus-rk9pz Před 9 měsíci +1

    해군/공군을 충분히 키우지 못한 채로 미국을 적으로 둔 시점에서 승리는 물 건너간 것이고
    소련을 찔러 들어간 병력들을 집중해 목줄을 틀어쥐지 못한 시점에서 패배는 분명해 졌습니다.
    소련 지역은 날이 풀리면 뻘밭이 되고, 추워지면 다 같이 얼어붙어 땅땅해지는 특성이 있죠.
    도시 간의 거리도 멀고, 땅 덩어리 자체가 넓기에 교통로, 교량, 철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 애들이 만주 쳐들어 갔을 때 점과 선을 중요시한 것처럼 말이죠.
    독일 애들이 한방에 소련 애들을 쳐부수고 그 땅을 지배하리란 기대는 전혀 하지 않지만
    모스크바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교통로를 통제했다면, 소련의 역습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주위의 모든 큰 길이 모스크바로 이어지거든요.
    스탈린이 재주껏 살아남아 짐 싸매고 도망을 친들, 새로운 모스크바를 1~2년만에 만들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물자지원 받아 병력을 2만 3만을 모은들, 적재적소에 투입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동부전선 장군들이 여력 싹싹 긁어서 보내달라 할 때 밀어 넣어주고
    리미트 풀어서 최대한 작살내고, 빠져야 할 때 재빨리 빠질 수 있도록 도왔어야 하는데
    히틀러는 큰 비율로 나눠 분산투자를 해버렸으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 @jaehokang1891
    @jaehokang1891 Před 2 lety +4

    어느 유튜버분의 평가 "장군들의 전략은 이해 못 하는 육군 상병 히상병"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만슈타인 1부를 보셨는지요? 그 영상에서 히총통이 왜 프랑스 전역 당시 그렇게 잘 나가던 기갑부대를 정지시켰는지 명확히 밝혔습니다. 히틀러 가상 인터뷰라는 컨텐츠도 제작한 적이 있었는데요. (czcams.com/video/lDtonTfi66o/video.html) 이 영상과 만슈타인 1부 영상에서 결론을 내렸죠. 1차대전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히틀러의 막연한 불안감을 꼰대 부하들 즉 카이텔, 괴링, 요들 등이 부채질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거기다가 히틀러 정신상태를 분석하면 과대망상자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하나 더 추가한다면 오만함이었습니다. 잘 나갈 때 불안해했고 나중에는 자기가 가장 잘난 사람인 것으로 착각했고 거기다 오만함이 더해져서 그나마 똑똑했던 히틀러가 망가져 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2 lety +2

    지금의 우크라이나를 봐도 반러정서가 작용하는이유가 마찬가지라고 봐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1943년 말,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탈환하려고 만슈타인의 남부집단군을 공격했을 때 우크라이나 인들은 독일군과 함께 피난을 갔다고 합니다. 패전국이라는 이유떄문에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 많습니다. 사실 나치독일이 너무 인종주의로 흐른게 문제였지 소련은 독일을 욕할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 @user-dq6tf9ms6q
    @user-dq6tf9ms6q Před rokem +1

    동장군, 동계장비, 점령지 학살과 탄압, 세방향 분산, 보급, 히틀러 개입, 영국항공전 대서양 북아프리카 등 전선의 다양화 ㅎㅎ

  • @rhduddls1
    @rhduddls1 Před 2 lety +1

    애초에 이길 수가 없었음. 너무 거대한 영토와 인구수 차이, 결정적으로 소련은 자체 자원 생산이 가능했고, 독일은 자체 자원 생산이 안되었죠. 전략적으로 소련 사람들을 포섭하고 친독으로 돌렸으면 모를까... 전략적 안목없이 소련인들 학살과 독일인을 위한 영토로 만든다는 발상과 행동 자체가 소련인들 지지도 못 얻어내고... 애초에 당대 세계2위 공업국이었을 정도로 소련은 강자였죠.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동감합니다. 만슈타인 시리즈에서 밝혔지만 만슈타인은 크림반도에서 승리한 후 남부집단군으로 오게 되는데요. 그것이 스탈린그라드 후였죠. 1943년 2월쯤인데 당시 히틀러와 그 부하들 전부가 아직도 독일이 당연히 이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슈타인은 그때부터 소련을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평화협정 혹은 휴전만 하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소련군을 최대한 많이 죽여서 스탈린이 강화협상을 하도록 압박하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히틀러는 최종 승리의 꿈을 꿨지만 말입니다.

  • @kephas7772
    @kephas7772 Před rokem

    아무리 석유와 자원이 급해도 확실한게 아니면 나폴레옹의 예를 보았듯이 패할 때를 생각해서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분명 야전군 사령관들은 분명 반대했을텐데도 그걸 무시하고 진행한 나치당과 히틀러의 무모함 때문에 패한것임...패하는 순간 양쪽으로 샌드위치가 될게 뻔한데도 말임...최고 권력자가 무능하면 안된다는..특히 군사 전문가도 아니면서 말이죠...

  • @joinso3744
    @joinso3744 Před rokem +1

    5:27 대숙청 이후인데도 이정도 격차..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1

      당시에 소련의 징집병은 정말 패도패도 계속 나왔죠.
      독일 육군참모총장 할더는 이런 일기를 남겼죠.
      우리는 바르바로사 작전 이전에 소련군 사단이 약 180개 정도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격파한 소련 사단수가 벌써 200개를 넘어가고 있다.
      우리는 소련의 잠재력에 대해 완전히 잘못 생각했다.

  • @user-wc7nl6xy5u
    @user-wc7nl6xy5u Před 3 lety +3

    공식 맞춤법 상으로는 "잖아"가 맞지만 꼭 공식을 지킬 이유는 없죠 ^^ "잔아"도 좋아요!
    여자는 전쟁에 동원되어선 안 된다는 다정한 남자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참.. 대량학살을 저지른 인물임을.. 기억하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확실히 인구와 지원면에서 분리했네요. 어쨌든 감사합니다. ^^ 모두 편안한 밤~ 되십쇼~ : )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2

      히틀러는 보수주의자예요. 대부분 사람들이 모르더라구요~
      어디에서 잔아라고 했나요?

    • @user-wc7nl6xy5u
      @user-wc7nl6xy5u Před 3 lety +3

      @@만물상자TV전쟁의신 내 말대로~ 하니까 이기잔아!
      그렇죠... 아 그런데 아까 생각났던게, 강제노동한 유대인 수도 있네요. 나중에 2차 세계대전의 각국의 전쟁 피해, 가국에 특히 어떤 피해가 얼마나 지속됐는지 나오는 영상도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 @SeungYoon99963
    @SeungYoon99963 Před rokem +1

    일본이 독일을 도와 영국을 치러 가고 이탈리아가 트롤짓 안하고 그리스 동맹에 지중해를 장악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겁니다 게다가 독일 일본 이탈리아 기타 국가들의 해공군을 동원하여 영국을 쳤더라면 어땠을까요 동맹국이 단결됐더라면 궁금합니다

  •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Před měsícem +1

    이제 어느 나라도 먼저 공격해서 러시아땅에 들어갈 나라가 없을 듯 합니다.^^ 1941년에 저런 강펀치를 여러 방 맞고도...버티고
    끝내 베를린까지...러시아이들의 엄청난 저항정신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měsícem

      히틀러가 소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딱 한번 있었습니다.
      바로 키예프 전투를 안하고 모스크바로 직행했다면
      스탈린의 멘붕을 유도하여 평화협상 정도는 가능했다는 것이
      최근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독일군이 키예프 전투에서 인류 역사상 최대 승리를 거두지만
      히틀러는 키예프 승리와 전쟁 승리를 바꾼 셈.
      설사 키예프 전투를 했더라도 일본이 소련만 공격해줬다면
      모스크바 공략을 성공했겠지만 일본은 독일을 돕지 않았습니다.
      czcams.com/video/Hk36j8QLANU/video.html
      (추축국 동맹 일본의 전략적 실수, 이것이 히틀러를 패전으로 이끌었다.)

  • @hhheo6674
    @hhheo6674 Před 2 lety +2

    남부집단군은 전략을 바꿔서 이기는 전투가 아니라 키예프 내 소련군을 공격으로 전환을 못 하게 키에프로 오는 물자보급을 최대한 차단하고 경계하는 방식으로 전투했었으면... 그러니까 남부집단군은 전략을 중부집단군이 뒤에 문제없게 만드는 전략으로 바꿨으면... 나치를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ㅎㅎ 레닌그라드 포위보다 못 하겠지만 규묘면을 봤을 때는... 하지만 중부집단군이 뒤 걱정없이 진격할 수 있게 전략을 바꿨으면... 계속해서 중부집단군처럼 전진이 목표가 아니라. 좀 하나는 포기하지...

    • @hhheo6674
      @hhheo6674 Před 2 lety +1

      글고 공중장악도 분명히 했었을텐데 최대한 공군을 활용했었으면...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저도 나치 옹호를 할 리가 없지만 소련이란 나라는 한국에게 그다지 좋은 영향을 줬던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전쟁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중간에 즉흥적으로 계획을 변경하면 패배로 가게 됩니다. 이것은 어느 전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user-wz3xk7ff7r
    @user-wz3xk7ff7r Před 2 měsíci +1

    그당시 소련이였으니 말이 되지 안 그랬다면은 나도 없었을건데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měsíci

      소련은 다 죽어가는 일본과의 전쟁에 막판에 참전했습니다.
      루즈벨트의 패착이었죠.
      그런데 소련은 미국이 다 해놓은 전리품인 일본마저 차지하려고 시도했었습니다.
      czcams.com/video/W7nb6U3D7Bc/video.html [한반도와 일본의 운명을 바꿔버린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 차이는?]

  • @user-wz3xk7ff7r
    @user-wz3xk7ff7r Před 2 měsíci +1

    러시아의 해체가 그당시였다면 역사는 바뀌였을텐데

  • @user-lo7of5kh3d
    @user-lo7of5kh3d Před 3 lety +6

    만슈타인이 전격전의 창시자 아닌가?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5

      이건 공식적인 별칭인데요. 전격전의 창시자, 기갑부대의 아버지는 구데리안이구요.
      만슈타인은 기동전의 대가, 독일군 최고의 두뇌라고 실제 불렸습니다!

    • @user-lo7of5kh3d
      @user-lo7of5kh3d Před 3 lety +3

      @@만물상자TV전쟁의신
      전격전 창시자는 히틀러와 독대해 프랑스를 기갑으로 하자는거는 만슈타인이고 그걸 승화 시킨 사람이 구데리안 아닌가요?
      구데리안의 최고 부하가 롬멜이고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4

      아 프랑스를 기갑부대로 낫질처럼 아작을 내자는 작전은 만슈타인이 맞아요. 만슈타인 머릿속 작전을 잘 실행한 사람이 구데리안인것도 맞는데 롬멜은 구데리안의 부하는 아닙니다. 보크원수와 클라이스트의 부하였죠

    • @user-lo7of5kh3d
      @user-lo7of5kh3d Před 3 lety +3

      @@만물상자TV전쟁의신
      롬멜 계급이 그때는 사단장 아니었나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1

      @@user-lo7of5kh3d 제7 기갑사단장 맞습니다.

  • @user-ow8kw1gi2n
    @user-ow8kw1gi2n Před rokem +1

    여러가지설들이 있지만 독일은 당시유독 정보전에. 취약한거같아요 바다사자작전 이나 등등 거의모든 정보가 새어나가고..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채널의 컨텐츠 중에 엘 알라메인 전투를 다룬 컨텐츠가 있습니다.
      czcams.com/video/zalrZ8qtVQE/video.html
      그런데 놀라운 점은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몽고메리가 오히려 후퇴를 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몽고메리는 후퇴하려다말고 다시 롬멜을 공격하여 끝장을 내버립니다.
      그 이유는 롬멜의 이런 무선통신문 때문이었습니다.
      "총통 각하, 우리에게는 이제 고작 전차가 20여대 뿐입니다!" 즉각 후퇴를 허락해 주십시오!
      롬멜이 히틀러에게 보내는 암호통신문은 정확히 4시간 후에 몽고메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갈량이 내려와도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 @user-wz3xk7ff7r
    @user-wz3xk7ff7r Před 2 měsíci

    안 그랬다면은 지금 살고 있는 인간들이 아니라 새로운 다른 사람들이 태여났을텐데 말입니다

  • @MESSI_win
    @MESSI_win Před 10 měsíci +1

    소련을 공격한거 자체가 실수죠...
    차라리 소련과의 협공으로 북아프리카 전체를 점령하는게 더 나앗음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면 영국도 타격 받는건데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10 měsíci

      좋은 댓글 의견 감사합니다.
      사실 말씀하신 그 대전략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히틀러는 북아프리카를 홀대했지만 그래서 롬멜에게 제대로 지원도 안해줬지만
      실은 가장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장이 북아프리카였습니다.
      czcams.com/video/Z-6V5Nh5wcY/video.html 손자병법으로 보는 히틀러의 승리와 패배 이유
      위 컨텐츠에서 관련 내용을 다뤘습니다.

  • @user-op1qu9mv2e
    @user-op1qu9mv2e Před rokem +1

    독일이 처들어간게 아닌 소련이 독일을 쳐들어 갔다면 누가 이겼을까요 독일이 소련을 물리칠수 있었을까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사실 스탈린이 묘한 인간입니다. 황당한 것은 히틀러를 엄청 좋아했습니다. 물론 소련 침공 전에 말입니다. "아 그자와 내가 힘을 합친다면 우리는 천하무적일텐데."라고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질문하신 것에 답을 드리자면 소련은 죽어도 독일을 침공 안했을 것입니다. 스탈린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 그 이유입니다. 만약 침공했다면 어찌되었을까요? 100% 독일군에게 박살이 났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제 채널의 수많은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1940년 그 빛나는 독일군 영광의 시절, 독일군은 전력이 강력해서 승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독일군에게 박살이 났던 영프 연합군이 훨씬 강력했습니다. 그런데도 패배한 이유는 장군들의 능력치, 그리고 전략, 전술의 차이였습니다. 그리고 제 채널 컨텐츠 중 구데리안 1부를 보셔도 아시겠지만 독일군은 전격전을 세계최초로 구사했던 나라입니다. 소련군의 가장 큰 스승은 독일군이었습니다. 독일군에게 계속 당하면서 피를 흘리며 소련군은 배우게 됩니다. 그후 소련군은 정말로 강력해지게 된 것입니다.

  •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Před 2 lety +1

    독소전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만...영상말미에...6.25전쟁얘기가 나와서...전쟁초기에 북한군 전차운용전술이 초보적이었는 데...조선족부대가 주력이 되었다고는 하나...수도를 3일 만에 뺏기는
    셰계전생사에 유례가 없는 기록을 세운 한국군대...^^ 의정부방어선에 있던 국군 주력사단들은 어디로 간걸일까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안녕하세요. 제가 링크 드린 거 보셨는지요? 하늘에서 본 정선에 다신 댓글에 대한 답글에 써놨습니다. 질문 주신 것에 대해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컨텐츠 말미에 6.25전쟁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전격전은 적을 다 죽이면서 진격하라!가 아닙니다. 적이 공황상태에 빠져서 전쟁을 더 이상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1939년 폴란드 전역, 1940년 프랑스 점령, 1941년 독소전 초반. 1941~1942년의 롬멜의 북아프리카 전역이 좋은 예입니다. 공황상태에 빠뜨리려면 제일 중요한게 뭔가요? 바로 스피드! czcams.com/video/woOpiyIwuzw/video.html (구데리안과 롬멜의 별명만 봐도 전격전이 이해된다) 이 영상에서 그 얘길 하고 있습니다. 구데리안 별명이 재빠른 하인츠입니다. 롬멜 별명이 유령사단입니다. 왜 이런 별명이 붙었냐면 너무 빠르게 진격하니까 붙은겁니다. (czcams.com/video/tuOG1F-f68U/video.html (롬멜의 토브룩 전투)에서도 영상을 한번 다 보세요. 그냥 제 의견을 쓴게 아니라 롬멜 관련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04:24 보세요! 걱정하는 부하에게 롬멜이 한 말! 걱정마. 눈치채도 어짜피 내 스피드를 못 따라와! 전격전 = 스피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갑부대를 보병지원으로 사용하는게 아니라 후방을 찢고 들어가 포위하여 포위당한 적을 공황상태에 빠뜨려 싸울 의지를 꺾고 적의 심장부를 파괴한다! 신속하게! 이게 전격전입니다. 6.25때 북한이 롬멜처럼 번개같이 내달렸다면 국군 주력을 후방차단해서 섬멸하고 이승만도 잡혔을 것입니다. 한국군보다 더 못했던 것이 북한군이었습니다. 구데리안은 처절한 저항을 뚫고 1000킬로 넘게 진격했지만 북한군은 탱크도 없는 오합지졸을 상대하면서도 40킬로 진격에 3일이나 걸렸고 400킬로도 안되는 부산에 들어가지도 못했죠.

    •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Před 2 lety +1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링크해 주신 거 잘 봤습니다. 잘 만드셨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user-tg2tn3ww3i 감사드립니다.

  • @user-bd8yu2mp1l
    @user-bd8yu2mp1l Před 4 měsíci +1

    자원 보급 부족.
    전선 확대

  • @user-ot1go6vw8f
    @user-ot1go6vw8f Před 27 dny +2

    독일의 전시 경제로의 변환이 느린것도 큰 패착.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7 dny

      일부러 히틀러가 늦췄죠.
      다른 나라는 여자들까지 동원하여 생산하느라 바빴는데
      독일은 끝까지 그렇게 안했습니다.
      1차대전 당시처럼 독일국민들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으려 그랬다는데
      모두 히틀러의 고집 때문이었습니다.

    • @velociraptor7871
      @velociraptor7871 Před 7 hodinami

      ​@@만물상자TV전쟁의신히틀러가 여성에 관하여 굉장히 보수적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슈페어 자서전에서 읽은 거 같은데, 내 기억이 맞다면 히틀러는 여성이 건강한 아리아 후손을 생산하고 교육하는 존재로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 @cafu234
    @cafu234 Před 10 měsíci +2

    뭘 어렵게 생각해요. 서부 동부 두개로 나눠서 진거지.소련과 일대일 대전이면 이기고도 남았지

  • @user-fg7sn9ev6o
    @user-fg7sn9ev6o Před 11 měsíci +1

    1, 미국의 돈
    2, 소련의 엄청난 머릿수
    3, 독일의 쓸데없는 자존심
    4, 정신병자 히틀러와 미치광이 스탈린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11 měsíci

      우리가 히틀러에 대해 막연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장 확실한 것 하나는 그가 몽상가, 즉 과대망상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바로 그점이 유능한 장군들이 즐비하게 있었음에도 그들을 활용하지 못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czcams.com/video/SVJOx-oGWj0/video.html (세계최고 장군들이 있는데도 히틀러가 2차대전에서 패배한 이유) 에 그 부분을 자세히 다뤘습니다.

  • @goldeneagle3218
    @goldeneagle3218 Před rokem +4

    1941년 남부전선에서 Battle of Dubno(Brody)는 역사가들이 사실을 덮고 있는 최대 전차전중 하나 입니다. TIKhistory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쿠르트스 전투보다 규모가 더 컷다고 합니다. 정비도 제대로 못한 소련군 탱크가 전선에 도착 하기도 전에 1천 500대가 이동 도중 길가 와 평원에서 퍼지고, 남은 3천 500대중 약 3천대가 격파 됩니다. 독일도 이 전투에서 약 300대를 잃습니다. 대부분의 소련 전차들이 BT-tank, T-tank 와 T-26, 28, 29, 34(불량품 초기형), 35(대순향 전차) 와 KV-1 이였습니다.

  • @user-rk5cr4nt9h
    @user-rk5cr4nt9h Před 2 lety +1

    1.25배속 들으시길 추천드립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ㅋㅋ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제 영상은 말로만 때우는 것이 아닌 고증에 맞는 자료를 찾고 여러분의 이해를 더 쉽게 하기 위해 영영화, 게임까지 뒤져서 제작되었기에 다른 영상에 비해 제작 시간이 2배 이상이 걸리는 점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 @user-rk5cr4nt9h
      @user-rk5cr4nt9h Před 2 lety

      @@만물상자TV전쟁의신 앗 제 말뜻은
      1.25배속이 보통속도로 들려서요 ㅋ

  • @user-de1sg1vt5x
    @user-de1sg1vt5x Před rokem +1

    사람들이 독일은 전략적으로 안좋은 상황이었고 전술에 너무 치중했다고 하는데 저는 이렇게도 생각해봅니다 독일은 전술말고 다른데 한눈팔아서 진거 아니냐 원래 독일의 전쟁계획보다 전쟁이 너무 빨리 시작되었는데 오히려 그것때문에 독일이 한동안 무쌍을 찍은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이 계획대로 준비해서 시작했다고 한들 다른나라들은 가만히 있나요 다들 준비하지 독일은 위험을 감수하고 앞만보고 달리는것말곤 방법이 없었떤거 같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라스푸티챠는 히틀러의 후퇴불가 현지사수 명령같습니다 진짜는 독일에 있었떤거죠

  • @woonkilyi10
    @woonkilyi10 Před 2 lety +5

    보급의 실패. 처음부터 독일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은 했습니다. 보급실패와 산업생산력 이 소련보다 훨씬 뒤처진 국가가 무리한 전쟁을 일으킨 전쟁임. 차량을 전부 전투병력에 몰빵하고 수송부대에는 차량화가 거의 이루어 지지않은 완전 빈약은 보급수송력으로는 처음부터 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느낀 결과 오늘 날에도 대규모 보급수송능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미국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미군이 1944년 8월 25일 파리에 입성한 후 퍼레이드를 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파리시민들이 "아, 웬 차량이 저렇게 많나? 걸어다니는 군인이 하나도 없네'라는 말을 하며 놀랬다고 합니다. 파리가 독일 치하에 있을 때 독일군이 자주 퍼레이드를 했는데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차량화가 되어 있었던 것이죠. 말씀하신대로 독일의 한계는 키예프 승리까지 였던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키예프에서 60만이나 포로로 잡는 대승리는 확실히 독일군에데 독이 되었습니다. 독일은 키예프 승리 이후 대규모로 승리한 적이 만슈타인의 3차 하르코프 전투 외엔 없었습니다.

    • @woonkilyi10
      @woonkilyi10 Před 2 lety +2

      @@만물상자TV전쟁의신 님의 말습대로 키예프가 한계인거죠. 키예프까지 간것도 독일군이 정말 선전한거죠. 소련땅에서 독일의 명장들 덕에 그나마 후퇴하면서도 몇배의 적을 아주 곤혹스럽게 만든것이 대단한 전과라 봅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woonkilyi10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나치는 반대하지만 히틀러가 1943년이라도 만슈타인의 의견대로 그를 동부전선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맡겼더라면 3차 하르키우 전투와 같은 전사에 길이 남을 만슈타인의 승리가 더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만슈타인 시리즈 보셨겠지요?

    • @woonkilyi10
      @woonkilyi10 Před 2 lety

      @@만물상자TV전쟁의신 님의 말습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히틀러는 싫어요. 다만 명장들의 의견을 많이 수용했더라면, 그래서 유럽에서 독소전이 6개월 정도만 끌어 줬더라면, 대한민국은 아마 분단이 않됐을거라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아쉬운 역사의 순간^^

    • @user-mu7sx1gd1f
      @user-mu7sx1gd1f Před rokem

      @@woonkilyi10 당시 1940년 독일이 서유럽 다먹고 발칸반도까지 싹 다 정리한 시점에도 소련이 독일보다 산업생산력이 압도적이였나요..?
      제가 본 자료에 의하면 1940년만큼은 독일이 소련의 gdp를 뛰어 넘은걸로 나와있어서 여쭤봅니다

  • @libertybellliberty6096
    @libertybellliberty6096 Před 6 měsíci +1

    독소전쟁사를 읽어 봤는데 1941년부터 1945년 4월 까지 소련의 무기 생산량을 보면 전차와 자주포 9만8천 300대 . 야포와 박격포 52만 5천 200문. 항공기 12만 2천 100대, 소총 1천9백 83만정을 생산했고 엄청난 인명피해에도 불구하고 물량공세로 밀어 붙여 승리했습니다. 소련은 1941년 6월부터 12월 까지 전사 실종 약 300만 군인손실. 1942년 약 300만 군인 손실. 전세가 역전된 1943년 197만 군인손실. 1944년 140만 군인 손실. 1945년 4월까지 63만 군인 손실. 총 전쟁기간 1천만 군인 손실. 부상자 질병자 1천8백200만명 발생. 총손실 2천 9백 63만명 손실. 이에 비해 독일은 전쟁동안 530만이 전사 실종으로 전사했고. 약600만이 부상 당했으며 소련군에게 239만명이 포로로 잡혔는데 이중 45만명이 포로 생활 중 사망(소련측 주장) 독일측 주장 239만명의 포로중 생존해서 독일로 귀환한 군인을 역 계산하면 최소 포로 생활 중 100만 이상 사망했다고 주장. 나치즘과 소련 공산주의 대결은 한세대 30년(10대 후만에서 50대 나이 남성 인구) 남성 인구를 모조리 전쟁에 투입하고 투입한 군인 중 최소 50% 이상이 전쟁 중 전사하거나 부상 당하거나 포로가 되거나 했으니 소련이 승리한 원인은 천문학 전인 인명 피해에도 물량 공세로 밀어 붙어서 이겼습니다. 독일군은 전쟁 중 군인만 약 530만이 죽었는데, 한국군 현역이 50만에 예비군 300만인데 이 병력이 다 죽고 180만이 더 죽은 인명 피해니 전후 독일에서는 중간 나이 대 인구가 급감하여 전쟁이 끝난지 20년이 지난 1960년 대 중반이 되어서야 전쟁 전 남성 인구를 회복 할 수 있었고 인적 피해가 더 심했던 소련은 1960년이 되었어도 전쟁 때 잃은 남자 인구를 회복하지 못하고 여자가 남자보다 1.5배 이상 많은 성비 불균형이 심했습니다. 전쟁은 비극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아기가 태어 나면 공통적으로 남아가 항상 여아 보다 1 ~6% 더 많이 태어나는데 이는 남자가 전쟁에서 희생되는 인구 손실을 감안한 인류학적 공통된 현상이라고 합니다.

  • @user-wz3xk7ff7r
    @user-wz3xk7ff7r Před 2 měsíci

    그러면은 어떻게 되었을지 독소불가침도 깬 독일인데 일본도 그렇고

  • @user-bq7wz2ql2n
    @user-bq7wz2ql2n Před 4 měsíci +1

    체급차이
    80kg vs 130kg

  • @lucifer-yp3vf
    @lucifer-yp3vf Před rokem +1

    패전의요인 히틀러의개입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2 lety +5

    패망전 독일에도 군부대나 군수품을 생산할 민간기업에 여성인력이 아예 없는것이 아니였어요. Der totalenkrieg(데어 토탈렌크리크)즉 총력전을 다른 나라에 비해 거의 너무 늦게 실행하여 뒤늦게 인력을 투입했기에 별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히틀러는 진짜로 전쟁을 원한게 아니었다 (czcams.com/video/twUSfJp5Hvw/video.html) 라는 영상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히틀러는 여자화장품 공장을 군수공장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도 허락을 안했습니다. 독일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해칠 수 없다는 농담까지 하며 말입니다. 보통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그 반대라고 생각할텐데 말입니다.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2 lety

      @@만물상자TV전쟁의신 그에 비해 미국은 모든 생필품 공장의 생산공정상 군수물자 생산라인으로 전환되었으니 물량으로 쏟아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 @pedrogim6952
      @pedrogim6952 Před 2 lety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약 독일이 총력전을 좀더 빨리 실행해 질과(과학기술) 양(공업생산속도)둘다 잡았다면, 실제보다 연합국이 훨씬 더 고전 했을것이라봅니다.

  • @jsgrandpa9878
    @jsgrandpa9878 Před 3 lety +2

    새삼 새로운걸 알았습니다

  • @user-wz3xk7ff7r
    @user-wz3xk7ff7r Před 2 měsíci

    다른거 말할건없고요 그당시 소련이 지금같이 해체되었었다면 그것이 중요하지요

  • @KweonHyukInn
    @KweonHyukInn Před rokem +4

    모스크바로 직진을 했어야죠. 소련 철도교통의 중심지인데....모스크바를 가지면 모든것을 가질수 있었는데 카프카스의 석유와 우크라이나의 밀밭, 레닌그란드....모든 것을 동시에 가지고 싶어하다 모든것을 잃었죠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1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모스크바 조기점령이 매우 중요했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짜피 독일은 모든 것을 다 잡을 순 없었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에서 3가지 목표를 동시에 노린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하나만이 가능했는데 하나만 고르라면 단연 모스크바였습니다. 구데리안 장군은 거칠게 생겼지만 의외로 엄청난 전략가였습니다.
      그는 모스크바를 가장 먼저 점령해야 한다고 히틀러에게 독일 장군 중 처음으로 대들었습니다.
      구데리안 3부 (czcams.com/video/4FY_iSEL1ME/video.html)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모스크바를 조기 점령했다면 스탈린의 멘탈은 완전히 털렸을 것이고 히총통에게 평화를 구걸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 @asddghjklzxcvbnmm
      @asddghjklzxcvbnmm Před rokem

      모스크바 점령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휴전 했다면 승산이 있었겠지만
      나폴레옹 러시아 침략전 보면 러시아 애들 모스크바에 불지르고 청야 전쟁 돌입하잖아요.
      모스크바를 나찌가 점령을 해도 소련이 배째라하면 별로 의미는 없을 듯..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선조처럼 도망가면 수도 점령 의미도 별로 없을 듯 하고

    • @KweonHyukInn
      @KweonHyukInn Před rokem

      @@asddghjklzxcvbnmm 그때는 철도와 자동차가 없던때라. 한편으로는 나폴레옹은 러시아와 같이 유럽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해서 동맹 대우를 했어요 나중에 뒷통수 맞고 차라리 오스만터키와 동맹을 했으면 그지경이 안되었을것 같아요

  • @user-cx4ty2zy4r
    @user-cx4ty2zy4r Před 4 měsíci

    레닌그라드나 스탈린그라드보면 모스크바를 점령가능했을지도 의문이고 모스크바를 점령해도 우랄산맥 뒤에서 숨고르며 재정비한 소련한테 밀렸을듯. 나폴레옹도 모스크바 점령은 했는데 결국 망함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4 měsíci

      모스크바는 충분히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키예프 전투때문에 구데리안의 기갑부대를 남쪽으로 돌리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이것은 모든 전사가들이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czcams.com/video/4FY_iSEL1ME/video.html (구데리안 3부) 구데리안 3부에 이 상황을 자세히 다뤘습니다.
      조기에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스탈린의 멘탈 때문입니다.
      스탈린은 독소전 초반에 멘탈이 무너져 수십일간 잠적까지 했습니다.
      초반에 모스크바가 점령당했다면 아마 히틀러와 강화를 할 가능성이 컸을 것입니다.

  • @user-qv9vh8qs2i
    @user-qv9vh8qs2i Před rokem +1

    결과적으로
    히틀러가
    다 말아먹었습니다

  • @user-wz3xk7ff7r
    @user-wz3xk7ff7r Před 2 měsíci

    말씀하시는분도 없었을건데요

  • @user-wz3xk7ff7r
    @user-wz3xk7ff7r Před 2 měsíci

    독일이 진 의유는 그당시 소련이였다는거 러시아가 아니옇다는거 소련의 해체의 중요성이지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měsíci

      독일이 2차대전에서 패전한 주요원인이
      소련과의 독소전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맞습니다.
      소련은 돈이 아닌 거의 몸으로 때운 셈입니다.
      czcams.com/video/OoeAgW8repk/video.html (소련군이 없었어도 연합군이 승리했을까?)

  • @uropa
    @uropa Před 2 lety +1

    군사적으로 2차 대전에 관심이 많아서 구독중인 데요 영상중에 북한에 의한 통일이라느니 부산을 신속하게 점령할수 있었다느니 좀 거슬리는 표현이 있네요 제가 그냥 예민한 건지 아님 정치색을
    드러내신건지 필요없는 논란을 일으킬 부분은 삭제 하시는 편이 나을거 같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정치색은 보수에 가깝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은 6.25 당시 북한군이 독일의 전격전을 어설프게 모방했을 뿐 제대로 싸우질 못했다고 오히려 북한군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내용에 가깝습니다. 말씀하신 문구는 자극적일 수 도 있으나 내막을 알면 오히려 6.25당시 북한기갑부대의 무지몽매함을 꼬집는 말입니다.

  • @user-wz3xk7ff7r
    @user-wz3xk7ff7r Před 2 měsíci

    소련이 그당시 지금처럼 다 해체되었다면은 지금 역사가 바뀌였을걸요? 연합군이 나치한테 졌을걸요 한국도 지금 일본 땅이 되었을거 아니면 독일의 손에 들어갔을걸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měsíci

      채널의 모든 컨텐츠를 본 사람이라면 답을 알 것입니다.
      소련이 해체가 아니라 소련이 독일에게 패전했다면 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소련이 독일에게 패전했으면 연합군은 독일과 휴전을 했을 것입니다.
      히틀러라는 인물은 원래부터 연합국을 통째로 점령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또한 흔히 착각하는 것이 일본과 독일은 거의 별개로 싸웠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사 유럽에서 독일이 승리했다해도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은 전혀 다른 얘깁니다.
      태평양 전쟁은 철저히 미국 vs 일본이고 미국은 직접 진주만에서 당했기에
      일본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소련이 패전했다면 한반도는 아예 처음부터 분단이 없었을 것입니다.

  • @user-fv3dh2it5x
    @user-fv3dh2it5x Před 2 lety +5

    보급ㅡ주코프는ㅡ보급을ㅡ끊을ㅡ줄ㅡ알고ㅡ히틀러는ㅡ보급이ㅡ먼지ㅡ모르고ㅡ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히틀러는 후퇴하면 정신상태가 무너져서 전선 자체가 무너진다! 이것을 신념으로 알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czcams.com/video/lrXFzJ2aoyg/video.html)을 보시면 10:40부터 히틀러가 왜 후퇴금지에 그렇게도 집착했는지 유추해 볼수 있습니다.

  • @user-wc7nl6xy5u
    @user-wc7nl6xy5u Před 3 lety +2

    엇! 아직 안 자시네. 안녕히주무세요~ ^^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1

      이 영상 올리느라...
      독일이 소련에게 진 리얼 이유 입니다.

    • @user-wc7nl6xy5u
      @user-wc7nl6xy5u Před 3 lety +1

      @@만물상자TV전쟁의신 카를 되니츠 사령관이 "어뢰를 다 쏘고 꼬라박아 자폭하라!" 라는 명령도 내렸다가. 책을 얇게^^ 읽어보니, 히틀러 자살 후 총통 후계자로 임명되고나서, 바로 되니츠는 전쟁 피해를 최소화 하려 노력했다고 적혀있던데... 정확히 어떤식의 방향과 노력을 했나요? 감사합니다 : ) 수고하시네요!

  • @user-hy4rd7wg2g
    @user-hy4rd7wg2g Před rokem +1

    인구비교는 틀렸습니다. 개전당시 독일 8000만 소련 1억 8천 600만이었습니다. 여기다 독일은 체코경제권도 넣으면 인구가 9600만이었습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이 컨텐츠는 전문 자료를 참조한 것입니다.
      저도 다시 한번 내용을 검토해봤는데요. 여기서 말한 인구 수는 전쟁에 군인으로 동원할 수 있는 인구에 한정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독일 순혈 국민이 아닌 체코 같은 다른 나라의 국민을 독일군에 징집한 것은 아주 극소수였습니다.
      실제 기록 상 소련은 3,400만명의 병력을 동부전선에 투입했고 독일군은 다 합쳐봤자 1,300만명이었습니다. 그나마 동부와 서부를 다 합친 것이 그렇습니다.

    • @velociraptor7871
      @velociraptor7871 Před 7 hodinami

      Wikipedia 에선 소련 170, 독일 79백만으로 나오네요. 독일은 오스트리아, 슈데덴 포함.

  • @user-kg6bo9pq2r
    @user-kg6bo9pq2r Před 10 měsíci +1

    가장 큰요인은 히틀러의지나친 간섭때문임.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10 měsíci

      히틀러도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습니다.
      전쟁 초반엔 상당히 부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신중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그렇게 된 이유는 바로 그의 오만함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원래부터 히틀러는 지나친 자기확신에 빠져있긴 했지만 거기에 오만함이 더해졌습니다.
      그것과 관련된 컨텐츠가
      (czcams.com/video/7tIvSIMuK1A/video.htmlsi=FKrCEGcdJ0umWf4N) 히틀러가 망하기 시작한 시점은? 입니다.

  • @okkultedeutsch873
    @okkultedeutsch873 Před 2 lety +2

    156개 덕일 사단과 50개 동맹국사단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져도 우랄까지 진격은 불가능. 모스크바라인확보가 최대림.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2

      본 채널 2차대전 주요 이슈 히틀러 관련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초반에 모스크바 먹었으면 스탈린이 히틀러에게 항복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스탈린은 히틀러를 존경한다는 발언까지 했었거든요. (czcams.com/video/7tIvSIMuK1A/video.html) 히틀러가 망하기 시작한 시점은? 이란 영상을 함께 보시면 의문이 더 풀리게 될 것입니다. 키예프 전투가 인류 최대의 단일 승리라고 하는데 실상은 히틀러 망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user-qv9vh8qs2i
    @user-qv9vh8qs2i Před rokem +2

    미국의 소련에대한
    무기원조 즉
    랜드리스가
    있었기에
    소련이 승리하는데
    한몫했죠

  • @user-wz3xk7ff7r
    @user-wz3xk7ff7r Před 2 měsíci

    일본하고 독일이 또 전쟁할지도 모르지요

  • @user-wz3xk7ff7r
    @user-wz3xk7ff7r Před 2 měsíci

    한국도 없을걸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독일이 소련에게 패배한 이유. 알기 쉽지만 깊이있는 영상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2

      기존 제국이었던 영국, 미국, 프랑스가 온통 차지한 세계에 도전했다가 패한 히틀러죠.
      도전하려면 전략가들의 의견도 좀 청취를 하시지...
      1940년 프랑스전까지는 정말 잘하셨는데 말입니다. 히총통 각하.

  • @user-wg4nb7hd7t
    @user-wg4nb7hd7t Před 3 měsíci

    그 유명한 동장군 아닌가!
    나폴레옹도 당한 그 장군.

  • @user-sx5gc1hb9c
    @user-sx5gc1hb9c Před 2 lety +2

    너무 독소전을 편향적으로 아시는듯 합니다. 연합국 편향성, 독일국방군 편향성, 생존자들의 증언 편향성이 심각할 정도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TIK 라는 유튜브 채널 추천드리구요, 너무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지 마시고 양쪽 말 다 들어보시죠. 그리고 독일국방군뽕 심하게 맞으셨는데요, 국방군이 멋있어 보이는 거는 저도 동의하지만 외관으로 전쟁하는 거는 아니잖아요? 독일군이 유럽에서 잔챙이나라들 빼고 점령한 나라가 프랑스 빼고 있나요? 그리고 독일군 핵심 전략은 기동전도 있지만 선전포고 없이 기습하는 것도 있잖아요? 왜 기습이죠? 정면으로 붙으면 장담 못하니까요. 초전박살 못하면 이미 지는 전력이 독일군 전력이고 애초에 그게 독일군 수준이었어요. 무슨 독일군이 전쟁의 신도 아니고. 그나마 선진화된 무기와 전쟁술도 전후 2년만에 소련군한테 다 따라잡혀요. 나치만 못된 놈, 히틀러만 멍청이, 소련은 미국 도움 받아서, 겨울때문에...이 모든 논리가 그냥 만슈타인이나 할더 등의 시각 아닌가요? 그래서 독일군이 소련군한테 발렸죠. 더 많은 객관적인 인텔리전스를 수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채널주님의 2차대전 시각이 거의 히틀러급의 편향성을 가지셨어요.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2 lety +1

      좋은 의견 잘 봤습니다. 각 컨텐츠마다 고증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전문서적을 참조하는데요. 이 영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소련군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보다 더 전격전을 잘하고 강력해졌다는 사실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뭐든지 처음 시작하는 것이 어려운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프로호로프카 전투의 진실이라는 영상인데요. (czcams.com/video/sf2OeNGyfMk/video.html) 이 영상에서도 독일군이 잘났다고만 말하지 않고 소련군의 규모라는 것은 독일이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가 없었던 규모라고 언급하는 등 각 영상마다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user-sx5gc1hb9c
      @user-sx5gc1hb9c Před 2 lety

      만물상자님의 밀덕력을 낮게 보지 않습니다. 다만 만물님의 고증이라는 게 출처가 궁금해요. 제가 수년동안 주워들은 것들이랑 많이 다르거든요. 제가 말씀 드린 균형이라는 게 예를 들어 이런 거에요. 만물님의 만슈타인과 파울루스 스탈린그라드 돌파 명령 부분 있잖아요. 저는 이 부분에서 만물님의 균형을 느꼈어요. 흔히들 만슈타인은 영웅이고 파울루스는 소심쟁이 예스맨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동의하지만, 만물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만슈타인이 파울루스 직속 상급자이면 하급자 희생에 대한 책임이 있잖아요. 군대가 그렇잖아요. 그런데 지휘책임자인 만슈타인은 모든 책임을 파울루스에게 전가해버리잖아요. 뭔가 이상하잖아요. 저는 솔까 만슈타인의 이런 면을 보면 그의 시각이 과연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나 싶어요. 그런 그가 전후 회고록을 통해 히틀러 까고 나치 까고 국방군 옹호하고 소련군 무시하고 이런 것은 다분히 편향된 시각처럼 보이지 않나요? 저는 솔직히 독일군이 병력을 집중해서 모스크바로 바로 진격했더라면 어땠을까에 동의해요. 하지만 그런 시나리오에도 독일군에 대한 허상이 존재하지 않나요? 소수의 기계화사단이 무작정 돌진하면 걸어가는 알보병은 어떻게 쫓아가나요? 제가 본 다큐멘터리들은 독일군의 이동수단이 얼마나 전통적인 방식에 의존했고 이로 인해 선두와 후방의 진격속도가 얼마나 차이가 났는지를 지적하던데요. 그러면 허리가 끊기고 선두가 고립되는 것 아닌가요? 바바로사작전도 저는 애초에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모스크바를 겨울 이전에 점령했다고 해도 소련이 프랑스처럼 항복을 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소련의 각 거점을 세개의 군대로 나눠서 점령함으로써 소련군 재활의 싹을 잘라버리는 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작전을 히틀러가 혼자 짠 건가요? 독일군작전사령부가 짜고 히틀러에게 최종승인 받은 거 아닌가요? 저는 유전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코카서스로 병력 이동시킨 것도 아주 생뚱 맞아 보이지 않습니다. 1차로 모스크바를 공격했을 때 국방군이 후퇴한 순간부터 전쟁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짜야 되는 것도 타당해 보이잖아요. 만슈타인은 본인이 최고라고 생각하겠지만 히틀러 말처럼 전시경제에 대해서는 별관심 없는 사람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슈페어가 만슈타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요. 만물님은 고증을 많이 하셨다지만 누구의 자료로 고증을 하셨는지가 저는 궁금하고 그 자료 자체가 편향되어 있을 거라고 의심합니다. 신문으로 치면 조선일보만으로 한국정치를 판단하는 것처럼요. 이거 신문에서 본 거니까 사실이야 이런 것처럼요. 제 견해로는 1941년에 독일군의 계획처럼 겨울 이전에 소련을 점령하지 못한 순간부터 독일군이 가진 선택지는 별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독일군 제복이 멋있고 전차가 멋있고 기관총이 멋있고 기동전이 멋있고 게르만족이 멋있고 만슈타인 롬멜 모델 구데리안 등 수많은 장군들이 멋있어도 찌질해보이는 소련에게 진 건 변함이 없고 그건 만물님처럼 독소전패배의 원인이 미국의 원조, 겨울, 히틀러가 아닌 만슈타인과 같은 독일국방군 최고 사령부의 오만함 아닐까요? 소련이라는 광활한 영토 수많은 인구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의지 말이죠.

  • @user-jx3tw5vz2h
    @user-jx3tw5vz2h Před rokem +1

    🇰🇷Korea 인구절벽 😂😅😮

  • @user-ur6bz6pk5o
    @user-ur6bz6pk5o Před rokem +1

    이분은 빨랑 본론으로 안 들어가고 불필요한 서론이 너무 길다. 조회수 높은 유튜브 보다 군더더기 말 없이 스피드가 있다. 이차대전 관심있어 자주 보는데 서론이 길어 지루하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rokem

      채널 초창기 영상이라 그런 현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촤근 영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스크바 조기점령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저 뿐만이 아닙니다. 최근의 연구자들이 그렇게 많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왜 중요했냐고요? 스탈린은 바르바로사 작전이 터진 후에 멘붕상태에 빠져 폐인이 되서 밖에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히틀러를 정말로 믿었던 것 입니다. 그리고 만슈타인에게 3차 하르코프 전투에서 패배한 후에는 실제 독일이 현재 점령지에서 물러난다면 강화협상을 하려고까지 했었습니다.
      만약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구데리안 말대로 바로 모스크바를 덮쳤다면 스탈린은 히틀러에게 휴전을 하자고 매달렸을 확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모두 컨텐츠 화 되어 있습니다.
      다 보시고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 @mkim7684
      @mkim7684 Před 3 měsíci

      ​@@만물상자TV전쟁의신방구석 백수들 말 너무 정성스럽게 반박하지마십쇼ㅋㅋ 고퀄영상잘봤습니다

  • @yong-gilchoi8614
    @yong-gilchoi8614 Před 3 lety +4

    러시아 말을 공부해서 러시아 말로 된 전쟁사 책을 읽으세요.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미국 영국에서 만든 전쟁사는 자화자찬 미국 영국 중심의 전쟁시점으로 서술합니다.

    •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물상자TV전쟁의신  Před 3 lety +1

      이 영상은 러시아 자료가 상당수준 반영되었습니다.
      러시아의 공업수준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다는 사실을 부각하여 설명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