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한국사] 위화도 회군2, 4불가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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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6. 07. 2024
  • 위화도 회군의 진실, 요동정벌의 목적, 회군 과정에 대한 설명은 3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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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중동전쟁-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

Komentáře • 168

  • @chakanbrazil
    @chakanbrazil Před 18 dny +9

    고맙습니다

  • @fierwalt
    @fierwalt Před 18 dny +39

    당장 요동에서 싸워본 전문가인 이성계의 주장...

  • @user-hv1vg7it4m
    @user-hv1vg7it4m Před 18 dny +18

    제 생각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나 독소전쟁이 4불가론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buckston201
      @buckston201 Před 16 dny

      근데 독소전은 불가피했던건 사실이긴했습니다. 다만 히틀러의 만용과 과도한 간섭 거기다 러시아의 낙후된 도로시설과 미국, 영국의 엄청난 랜드리스가 있었다는게 결국 히틀러의 종말을 앞당기는 트리거가 됐지만요

  • @user-mp5gt4zm2v
    @user-mp5gt4zm2v Před 18 dny +1

    여윽시... 마지막 멘트에서 또 가르침을 주심 ...캬.

  • @user-dw5ks7pq6v
    @user-dw5ks7pq6v Před 18 dny +8

    안녕하세요 임용한 선생님 저는 경남 창원에 살고 있는 경제 외교 군사 밀리터리 역사 덕후입니다 몇년전부터 선생님을 유튜브로 알게 되어 방송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틈날때마다 저술하신 책들을 빠짐없이 보고 있습니다 과장없이 말씀드리면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력의 측면에서 각 분야의 다른 전문가들과 선생님은 수준이 다르시다 생각합니다
    여쭤보고 싶은게 있어서 댓글을 남깁니다 혹시 선생님은 현 북한 체제에 중대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우리와의 통일과도 이어질 수 있는 정도의) 우리와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전략 전술 시나리오에 관한 방송 프로그램이나 저작물이 있으시나요? 찾아봐도 없는거 같아서 여쭤봅니다 만약 없으시다면 일부러 이 주제를 다루지 않으시는걸까요? 혹은 다루실 계획은 있으실까요?

    • @Limyonghan-TV
      @Limyonghan-TV  Před 18 dny +9

      글쎄요 전 사실 당장 북한 체제에서 중대한 사태가 벌어지거나 전쟁이 난다고 생각하진 않는 사람이라 그 주제를 다루지 않는 겁니다. 주변 열강의 태도도 비현실적인 가정 하에서 논할 수는 없습니다.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건, 러-우 전쟁을 계기로 한 세계 체제의 변화입니다 이미 미국 유럽에서도 정치 경제 국제협력 지형이 변하고 있고, 중국의 일대일로나 대만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너무 이데일로기적 정파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하긴 우리만이 아니고 유럽 미국 마찬가지긴 한데.. 이것이 향후 최소 5년 간 우리와 세계의 고민 고통이 될 것 같습니다.

    • @user-dw5ks7pq6v
      @user-dw5ks7pq6v Před 17 dny

      넵 선생님~ 답변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my8xy1gg5k
    @user-my8xy1gg5k Před 18 dny +5

    요동땅이 좋기는 한데... 중국 유목민족 사이에 낑겨서
    그 넓은 땅을 지키기가 너무 힘듦... 왜구도 극심했고요.
    이성계가 요동땅을 먹었더라도, 추가적으로 중국과 사생결단을 해야 하는데
    농업중심 국가였던 조선 국력으로는 어림없는 일. 결국 도로 뺏겼을듯

  • @arnshutain
    @arnshutain Před 17 dny +8

    8:44 부모님께서 텃밭 농사를 하시는데, 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습니다.
    진짜 이 잡초라는게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금방 나옵니다.(김매기가 어려운 작업임) 그리고 주기적으로 물을 주는것도 일입니다.
    그리고 가지치기도 해야하는게 양분을 열매에 집중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농사 이거 쉬운일이 아닙니다.

  • @user-kd7fu7qI5z
    @user-kd7fu7qI5z Před 18 dny +24

    4불가론 기분나쁘다는 애들 특
    태평양 전쟁은 비웃음

  • @BRJoe
    @BRJoe Před 18 dny +8

    몽골의 일본원정때도 태풍불어서 몽골군 활(합성궁)의 아교문제가 실패 중 하나였을수도 있겠습니다

    • @truth1472
      @truth1472 Před 18 dny +3

      전투 의지가 없었답니다.
      그 땅을 점령을 해도 총독으로 임명을 했을테고요.
      당시로서는 영양가가 없던 땅이었죠.

  • @user-bn1ch8ot7r
    @user-bn1ch8ot7r Před 18 dny +6

    요동 정벌을 할려면 농사가 끝나고 추수를 해서 군량과 군수품이 넉넉히 확보가 가능한 가을에 출병하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군대는 먹어야 진격하고 잘 싸울 수가 있죠. 그리고 추운 겨울이 되면 장마철 비가 많이 내려서 진창이 되어서 기병과 보병이 행군하기 어려워지는 것과 비교해서 땅이 단단하게 얼어서 기병이 전투마를 타고 달리면서 전투를 할 수가 있고 활의 아교가 녹지 않는다고 보면 궁수가 활을 쏘거나 궁기병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기사(騎射)에도 유리하죠.
    단, 요동정벌 후에 요동에 군대 주둔과 지방관 파견, 남도 지역 백성 이주로 온전한 고려 영토로 만들고 지키고 유지하고 국력 신장에 얼마나 잘 활용할 수가 있느냐가 관건 이라고 봅니다. 우왕과 최영의 요동 정벌은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통보에 반발한 일종의 무력 시위가 아니었을까요?
    우왕과 최영은 요동정벌 후에 요동을 어떻게 지키고 유지하고 활용해서 고려 영토로 만들지에 대한 계획이 있었는지 그게 의문 입니다.

    • @justice13759
      @justice13759 Před 18 dny +1

      비오면 말이 진흙에 빠지죠.

    • @usergwhsj1
      @usergwhsj1 Před 16 dny +4

      1차 요동정벌 때 그렇게 요동성을 먹고도 보급이 안되니 방어를 할 수 없어서 물러났죠...

  • @vetym02
    @vetym02 Před 18 dny +2

    이성계 입장에서만 보면 위화도 까지 간거 자체가 현명했던듯 증명인듯. 그 전에 엎었으면 고려 전반의 지지를 받기는 힘들었을테니.

  • @user-dq3cu2qu6n
    @user-dq3cu2qu6n Před 18 dny +2

    군심이 다 돌아섰다는건 진짜 뭐같은 상황이었다는 거죠

  • @user-hs1sg3vm6e
    @user-hs1sg3vm6e Před 18 dny +2

    온갖 어려움을 돌파하고 요동 정벌에 성공한다고 해도 과연 요동을 계속 고려 영토로 유지할 수 있느냐가 진짜 문제인데 그것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더군요. 카푸어 란 말이 있죠. 자기 능력 밖으로 비싼 차를 할부로 구입했는데 매달 갚아나가기에 매우 힘들어서 결국 차를 팔게됩니다. 요동은 중국 왕조들에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명나라는 반드시 대군을 보내어서 되찾으려고 했을 겁니다. 그래서 명나라의 역습을 받아 고려 전체가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 @buckston201
      @buckston201 Před 16 dny +2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를 상대로 맞서 싸울때도 700여년간 터잡고 그곳에서 생활하던 당시 고구려인들의 총력전으로 버텼던건데 하물며 전투병력 5만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고려이남지역에서 몇만의 사람들을 끌어다 정착시킨다고 한들 과연 버틸수 있었을지

  • @dowpark4347
    @dowpark4347 Před 18 dny +5

    4불가론중 두개가 여름에 관련된 얘기였습니다. 그럼 이성계는 당시 여름이 아니면 출전에 동의할수 있다는 생각이었을까요? 그리고 최영은 나름 경력이 출중한 장수인데 왜 꼭 그때 출전을 강행해야만 했을까요?

    • @kunufelix
      @kunufelix Před 18 dny +2

      군사행동은 타이밍이 핵심이고 장마가 심하지 않은 여름도 있으니 가능하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 @user-ny9yn7zx5q
      @user-ny9yn7zx5q Před 17 dny

      @@dowpark4347
      최영장군은 젊었을때 원나라 요청으로 중국에 가서 난을 진압한 경력이 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다 믿을수가 없어요
      숨겨진 내용이 많을거로 추측합니다
      위화도회군때 최영이 문하시중이고 이성계는 수문하시중이죠
      간단히 최영장군 후계자입니다
      최영입장에선 하나회에 당한겁니다

    • @user-sz1li9ig1w
      @user-sz1li9ig1w Před 17 dny +1

      실제로 4불가론 이후 타협안으로 가을 추수하고 군사를 일으키자고 주장합니다만 그 의견은 반려당합니다

    • @user-sz1li9ig1w
      @user-sz1li9ig1w Před 17 dny +1

      이 타협안을 반려하며 이전에 요동정벌을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숙청당한 이자송의 예를 들었는데 이로 인해 이성계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의 입장에 놓였다고 판단하게 된 것 같습니다

  • @tv-et7iq
    @tv-et7iq Před 15 dny +1

    저는 최영 장군이 왜 그런 악수를 두었는지 제일 궁금하더군요. 정세를 생각하면 뭔 짓을 해도 결국 패배하는 승리만 거둘텐데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싶네요...

  • @truth1472
    @truth1472 Před 18 dny +24

    여름에 5월이면 양력인지 음력인지는 모르지만 한참 바쁠 시기입니다.
    벼농사는 해마다 보를 쌓아서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보는 해마다 무너지고 다시 쌓아야 합니다.
    봇도랑도 풀을 베어 주고 파 줘야 물이 원활하게 흐릅니다.
    활이 물에 젖었을 때는 활은 무용지물이고 심하면 버려야 하고요.
    이성계를 쳐 내기 위한 전쟁으로 생각됩니다.

    • @user-ov5zm5rz3v
      @user-ov5zm5rz3v Před 18 dny +7

      정확하게는 '가서 죽어주면 국립묘지에 묻어주마!'이겠지요.

    • @truth1472
      @truth1472 Před 18 dny +2

      ​@@user-ov5zm5rz3v
      패전을 하면 참수겠죠.

    • @j.c.s7762
      @j.c.s7762 Před 18 dny +1

      제생각도 신진사대부들이 민심을 얻고 밀어주고있던 이성계의 세력이 점점 커지는것에 대해 기존 질서를 잡고있던 권문세족들은 당연히 불안해할수밖에없고 그들이 백성들에게 착취해서 내는 세금을 받고 지탱해오는 고려왕실도 마찬가지고 결국은 아무리 첨렴하다해도 그 권문세족들의 대표로 고려를 지탱해주고있는 최영 세력들이 왕실과 뜻을 같이하여 반대를 무릎쓰고 강행한게 요동정벌이라고 봅니다 성공하던 실패하던 최영과 왕실은 정치적으로 손해볼게 없는 상황이라 밀어붙혔다고봐요

    • @user-bx1xl7gl5b
      @user-bx1xl7gl5b Před 17 dny +3

      그렇다기엔 원래 요동정벌 총사령관은 최영이었어서..

    • @truth1472
      @truth1472 Před 17 dny +1

      ​@user-bx1xl7gl5b
      야전 사령관이 아니었죠.
      그냥 개성에 있는 사령관.

  • @user-dc3st7zh7d
    @user-dc3st7zh7d Před 17 dny +2

    이성계는 정벌불가의 이유를 4가지나 제시하지만 결국은 국력의 부족한가지네, 국가규모가 작은 문제도 있지만 만주족이 명을 점령한 예는 규모만이 다가 아니라는 예시인데 그러나 만주족이 명을 점령할때는 명기 무너지는시기이고 요동정벌은 명이 갓태어나 국력이 일어서던 시기다 시대적 타이밍이 다른측면이 있겠죠.그리고 고려말은 성리학이 이땅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던시기라 중국을 공격한다는건 성리학적 세게관에선 순리가 아니었을 겁니다.
    여름이라 농사가 문제라는 이유는 그러나 봄가을은 더 바쁜 특히 벼농사는 더 바쁜시기라 군사동원 자체를 부정하는 의미이고 왜구문제는 충분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 2개전선은 무리라는 뜻이 겠죠. 무기관련해선 정벌을 하려면 각궁말고도 여러 종류의 무기를 충분한 수량 확보해야 하지만 고려가 그럴 의사는 없었던 듯하고 모두 종합해보면 국력의 문제로 귀결되네요.
    그러나 그 보다 상위의 문제는 이성계는 왕이 되기를 원했기에 정벌이 성공한다 해도 고려가 강해지는걸 이성계는 원치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4불가론은 단순히 요동정벌에 대한 분석에 그친게 아니고 이후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가 운영과 사상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보입니다.

  • @ypagm
    @ypagm Před 18 dny +2

    고려말 현 상황에서 지속적인 보급및 운송과 병력 지원이 가능하면 될 지 모르겠지만 자연환경과 여러가지 상황,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기에 좀 어려움이 있을 듯 합니다.
    왜구가 침입해서 막는다고 해도 의도치않게 양면전선?될 수 있었어 요동으로 가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 @epdlqlem1234
    @epdlqlem1234 Před 18 dny +3

    박사님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자본의 증가로 인한 계층 간 이동이 활발해지게 되면 고대, 중세적 세계관의 질서라는 것이 무너지고 결국 후한 말 같은 상황이 재현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을 비슷한 시기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에서 자유무역을 금지하고 쇄국으로 나간 여러 이유 중 하나로 봐도 될까요?
    국가의 지형 정보가 털려서 국방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던가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었겠지만요.

    • @kaiserthum
      @kaiserthum Před 18 dny +2

      계층간 이동을 우려했다기 보다는, 무역은 주로 변방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중앙의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1. 통제하기 위함. 이고, (명나라는 조공무역으로 물자를 통제함으로써 기미정책을 했습니다. 조선도 마찬가지)
      중앙의 세력에 도전하는 것도 주로 변방의 세력이기 때문에, 신분제의 공고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2. 반란을 막기 위함. 이라고 보는게 맞죠.
      3. 왜구등 침입으로 인해, 해안도시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므로, 해금령을 통해 애초에 접근하는 선박을 막기위함도 있고요. 무역선과 도시약탈하러오는 해적선을 구별하고 대응하기 힘드니.

    • @user-kd7fu7qI5z
      @user-kd7fu7qI5z Před 18 dny

      중국 해금은 중국물산을 가지고 주변국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수단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물산을 통제하고 조금씩 나눠주면서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 @user-freetibet
      @user-freetibet Před 18 dny

      당장 프랑스혁명만 봐도 루이14세가 열심히 키워준 파리 부르주아와 그들의 성장으로 발생한 도시 빈민(상퀼로트)들이 세금 너무 많다고 들고일어난게 시작이니까요.
      원래 사람이란 게 배고플땐 배부르길 원하고 배부르면 잘난체도 하고싶어지고 그러는게 본성인데 상업이 배고픈 자들을 배부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 @user-sw1lj9qh5y
      @user-sw1lj9qh5y Před 17 dny

      고대중세시대에 무역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사는 땅에는 근본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너무 치명적이라
      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무역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유목민들은 철과 같은 금속, 비단, 소금과 같은 생필품이나 전략물자를 스스로 보급하기가 어려웠기때문에 정주민족과 무역을 하거나
      상대가 너무 값을 높게부르던지 소통을 거부하면 약탈을 자행한것이죠
      반대로 자국 내에 물건이 풍부했던 통일 중국 같은 경우는 부족한 물건이나 기술을 얻으려 무역을 할 필요가 없었고
      단지 상대방을 길들이거나 외교의 목적으로만 무역을 사용하게되니 쇄국정책이 기본으로 깔리게 된 것이겠죠
      특히 유목민족이 중국을 통일했던 당 청나라는 지배층이 바다에 더욱 관심이 없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죠

  • @user-qz1ex5nq7x
    @user-qz1ex5nq7x Před 5 dny

    군사를 일으켜 요동으로 가기보단 고구려 때 연변장성을 복원해서, 훈춘과 연길 지역을 확실하게 고려의 영토로 편입하고, 여력이 되면 닝안 방면까지 개척하는게 나았을듯

  • @user-hr6kz4ji8c
    @user-hr6kz4ji8c Před 2 dny

    머리속에 빨리 집가서 벼농사 해야하는데 국가는 전쟁 하라고 만 하니 전쟁하기 너무 싫었을것 같습니다.

  • @user-nb5mn9po9w
    @user-nb5mn9po9w Před 18 dny +1

    농사에 대해서 보충설명을 하자면...
    그 시기 조선엔 태양력을 농사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요즘엔 모의 냉해 방지를 위한 준비가 되기 때문에 3,4월에 벼농사를 시작하지만 그 시대엔 4,5월 농사를 시작합니다.
    요즘엔 논의 잡풀을 제그하는 제초제가 있지만 그시대엔 일일이 인력을 사용하여 잡풀을 제그 해야 됩니다.(최소 1주일 주기로 제그해야됨.)
    어떤 이는 일당백으로 싸워서 이긴 전적을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싸울 자신이 있고? 싸우고 싶어? 싸웠을까요?
    그렇게 싸우지 않으면 어차피 죽는 것은 같으니깐 싸운거지요...
    그렇게 싸워야 생존의 확율이 높아지깐...
    만약 일본제국주의가 임진왜란 때처럼 순수 군사력으로 밀고 왔다면 일제 강점기가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임진왜란때도 일반 민가만 건딜지 않았다면 의병이니 뭐니 그런일은 일어 나지 않았을 겁니다.
    태평양 전을 일으키고 물자가 딸려 한반도의 생활이 힘들어지니 조선 해방전에 적극 동참을 했지,,, 태평양 전만 아니었다면....ㅋㅋㅋ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뀔 때 일반 민가에서 몇이나 관심을 가졌을까요?
    그시대 하늘만 바라 보며 농사 짓는 농부에겐 정치에 대해서 관심 가질 여력이 없어요. 바빠서...
    12,1,2월엔 땔감 준비해야 되고 3,4,5월엔 작년에 무너진 논둑 개보수 해야 되고 6,7,8은 농사 지어야 되고 9,10,11은 추수 해야 되는데...
    요즘 같으면 장비가 좋아 빨리 끝낼 수 있지만...그 시대엔 모든 것이 인력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가용 해야 됨.

  • @deviprayer
    @deviprayer Před 10 dny

    요동에는 고려에서 이주한 홍씨, 왕씨 들이 많이 살고 있었어요.

  • @Benedicat_me_Dominus.
    @Benedicat_me_Dominus. Před 18 dny +3

    이성계의 4불가론은 나름 타당하지만 그래도 최영이 밀어부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다음편이 기대됨)? 일단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1.일단 이성계의 용비어천가에서 보여준 활약이 진짜라면 어떻게든 해줄거라 믿어서
    2. 최영은 장사성의 난 때 중국(원)에 파견되어 실제로 반란군(홍건적)과 싸워본 적이 있고 제주도에서 몽골인(묵호) 때려잡은 적도 있어 적들이 x밥으로 보여서
    3. 최영의 중원에서의 싸움 경험 때문에 단기결전이 아닌거 아니까 성계가 미리미리 차근차근 가면(빨리 심양 가란건 본적 없는데 그랬나요?) 얼추 가을 되면서 보급도 맞출 수 있을 듯해서
    4. 왜구는 황산/진포대첩 때 밟아놔서 또다시 빠르게 준동할리 없다고 생각해서
    5. 2에서 말했듯이 적들이 x밥으로 보이는데 아직 요동에 잔존하는 고려인들의 협조를 기대할 수 있다면?
    6.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무슨 오랜 친구(망년지우)처럼 나오지만 동북면 가별초를 거느린 이성계가 제2의 최충헌이 될까봐 경계했고 이성계 사병들을 소모시키려고
    7. 이성계가 뭔가 위험한 소리하는 신진사대부(정몽주)들이랑 어울리고 자꾸 권신의 기운이 느껴지니까 (4불가론의 말이 맞다해도) 역심을 품고 있는지 테스트 해보려고
    8. 아교가 어쩌고 전염병이 저쩌고 했지만 아무래도 북방은 더위가 심각하지 않을거라 판단해서, 공민왕 때의 요동정벌도 대충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으니 이성계가 같잖은 핑계 대는거라 보일지도
    9. 농사가 어쩌고저쩌고 했지만 서민들은 조가 주식으로 조밥(좁쌀밥) 지어먹는데 조는 맛은 더럽게 없지만 농사난이도가 쌀보다 한참 아래고, 쌀조차도 이앙법이 아닌 직파법으로 농사, 따라서 조밥으로 군량미 쓸건데 농사가지고 물고늘어지는건 핑계로 봤을지도
    10. 여러 이유로 어쨌든 보낼 수 있고 어차피 자기도 현장 가니까 상황봐서 갈지말지 그때 생각해도 된다고 여겨서
    이런 이유로 "진행시켜"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최영이 원래 총대장으로 직접 가려고 했다는데 x신 찐x인 우왕이 최영 바짓가랑이 잡고 가지 말라고 애원해서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대체적으로 고려왕들은 신하들 눈치를 많이 봤다지만 우왕은 너무 자질없는 쫄보가 아닐련지 모르겠네요.

  • @CuminBro
    @CuminBro Před 16 dny

    한여름날 산악훈련하면 우의를 입어도 온몸이 땀이며 이슬이며 습기며 비며 젖어 쩔고 밥을 타와도 짬내가 진동하고 벌레쏘이고 병걸리기 딱이죠 지금보면.. 근데 긴장헤서인지 병은 안걸려왔네요~~ㅎㅎ

  • @kunufelix
    @kunufelix Před 18 dny +1

    몽골 간섭기에 요동 지방은 고려 왕족 출신을 심양왕으로 세워 다스릴 정도로 고려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라 내부에서 내응하면 가능하고 워낙 민족 구성이 복잡한 지역이라서 명나라에게는 계륵일 수 있겠지만...베트남 침공을 수차례 했던 전력과 영락제의 몽골 고원 친정을 생각하면 포기하지 않을 것임. 버티면 대몽항쟁 시즌 2이고 지면 삼전도보다 더 심한 굴욕이 기다릴 것.

  • @howoobi
    @howoobi Před 11 dny +4

    할수 없다는 사람은 못할 이유만 찾고,
    할수 있다는 사람은 가능한 방법을 찾는다

    • @SuperWonder
      @SuperWonder Před 11 dny

      나치 독일이랑 일본제국의 장성들은 모조리 의지박약이여서 연합군에게 털린거 아니잖아요.

  • @user-hg3fc6bs4y
    @user-hg3fc6bs4y Před 18 dny +4

    주원장 성격상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걸 용납 못할건데

    • @buckston201
      @buckston201 Před 16 dny

      설령 주원장시대에 넘어갔다고 해도 중국의 특성상 만주나 요동지역에 자신들을 위협할만한 세력이 있는걸 두눈뜨고 못보는 성향이라 반드시 전쟁이 벌어지게 되어 있음

  • @user-oo8gn4wj1y
    @user-oo8gn4wj1y Před 13 dny

    최영장군 당시조정에는
    4불가론의 실상을 몰랐을까요?

  • @pjyun5021
    @pjyun5021 Před 17 dny +1

    위화도 회군을 경영학적 측면으로 보면 그 예로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을때 미,일본기업의 위세는 상황제체로 보면 위화도회군때와는 비슷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 이후 일본대지진으로 반도체 공장이 파괴된후 삼상D램 반도체가 떡상후 지금의 삼성전자가 됐죠.. 이러한 예로 보면 역사적 사후에 대한 분석은 분석일뿐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뿐입니다 ..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에 요동정벌을 외쳐도 국력자체가 없는데,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 하물며 삼성전자는 용인에서 돼지사육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 @buckston201
      @buckston201 Před 16 dny +2

      어짜피 5만으로 빈집털이 했다고 해도 결국은 유지할 능력이 안됐던터라 오히려 명나라에게 역으로 잡아먹힐 가능성이 농후했죠

  • @decabird1738
    @decabird1738 Před 18 dny +2

    중국의 여러 통일제국들도 요동을 완전히 삼키고 소화한 전적이 거의 없으니 그바닥 현실을 아는 장수라면 계절에 상관없이 요동정벌이 헛짓거리라고 생각할지도

  • @TheWoseven
    @TheWoseven Před 18 dny +2

    당시 요동정벌에 동원된 군사가 5만여명이었습니다. 습격 등의 효과로 전투에 이겨 일시적인 점령은 가능했을겁니다. 시기적으로 1388년 원나라가 망하고 북원까지 완전히 망한것이 1410년이 당시 시점에서 17~8년정도 여유가 있었군요. 그런데, 우리가 먼저 침략한것이니 명나라는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했을겁니다. 그렇다면, 명나라가 20년이 지나면 우리나라를 침공했겠군요. 물론, 최영장군은 호족세력을 억누르거나 제거하고 우왕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을겁니다. 그것이 나라를 안정적으로 부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을겁니다. 하지만, 원정군이 요동에 남아 명나라를 막아낼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다 죽을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결론적으로 정통성이 취약했던 왕을 흔들 수 있는 무력을 가진 강력한 정적의 제거였을것이고, 나중 문제는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항복해도 문제가 없을것이고. 당시 백성은 왕의 부산물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왕에 대한 충성이었을겁니다. 그런데, 통제가 어려운 무력세력에 대한 명분이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미 우왕에 대한 정통성(공민왕의 자식이냐)시비가 있는 상황에서 왕권을 지켜 왕조를 유지하려면, 시기, 전력 등의 상황을 고려한 장기전략을 짤 여유가 없었을겁니다.

  • @user-ew8qj7ow6i
    @user-ew8qj7ow6i Před 18 dny +8

    4불가론의 모든 중심엔 출진한 장군들과 병사들의 입장을 대입해보면 다 이해가됨.
    결국 뻘과 산을 필두로 이 모든걸 내가 책임지고 평생을 피비린내나는 전쟁과 암살의 위협에 노출되어 살아야하지 않냐 이거지.
    내가 개고생해야되는데 가야해? 최영도 같이가도 참을까말까하는데 지는남고? 자급자족도 해야될껀데 거기서 병충해도 내가 해쳐가야되고 내 존심도 좀 챙겨줘를 우회적으로 썼던거 아닐까합니다.
    거부했으니 동북면간다고 치부했다 힘모아서 역적으로 몰리기전에 먼저 쳐야지 농사철때 전투준비해 당도했으면 그만큼 손해본거 내가 책임져야되는데 목숨걸고 뻘로 나가서 조개 캐오고 목채 짓고 그당시땐 고구마 감자도 없었을텐데 마캐어먹고 어휴 고려왕노무자슥 한대맞아라 이게 칡주먹이다

    • @user-ny9yn7zx5q
      @user-ny9yn7zx5q Před 18 dny +2

      다 일리있는데 최영 장군이 안가려고 한게 아니고 우왕이 신변 안전을 걱정해서 붙잡는 바람에 못갔음! 또 회군을 염려한 최영장군이 출정장수의 가족을 인질로 잡으려 했음
      이건 왕조시대엔 거의 다 그랬음. 너무 다급하게 ㅈ출진하는 바람에 소홀해서
      이방원이 도망갔다고 함.
      동사강목에 나옴. 최영장군이 패장이 되어 그렇지 조선시대 동사강목에도 만만한 무장
      으로 서술하지 않음
      동사강목 안정복도 왕조교체기라 상황파악에 한계가 있고 자신도 조선신하라 에둘러 표현함😊

  • @user-fx3kq1rn4m
    @user-fx3kq1rn4m Před 18 dny +3

    내 생각에 당시 고려정부가 요동정벌을 하기보다 대마도와 일본 규슈 지방을 손에 넣으려 했다면 역사가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요동은 방어가 힘들어서 계속 주인이 바뀌는 지역이지만 일본 열도는 섬이라 일단 한 번 점령하면 방어가 너무나 손쉽다 . 게다가 당시 고려군 전투력은 매우 막강했으니 일본 열도로 진출하면 아주 손쉽게 여러 지역을 점령했을 것이다.

    • @SayNoToChauvinism
      @SayNoToChauvinism Před 17 dny +2

      21세기 한국군도 북한 지역에 독자 상륙 작전을 제대로 수행 못하는게 현실인데
      규슈 상륙이라 ㅎㅎ

    • @junsfa90
      @junsfa90 Před 16 dny

      당시 왜구한테도 털려서 황산대첩으로 겨우겨우 어찌 수습하던 고려군이 강력하다니요..

    • @usergwhsj1
      @usergwhsj1 Před 10 dny

      당시 농경중심사회에서 대마도는 가치가 별로 없었죠. 태종 세종시대 대마도 정벌해도 당시 시대상에 가치가 별로 없으니 위력시위만 했죠...

  • @kth020303
    @kth020303 Před 18 dny

    그 당시 고려에 필요한 군사행동인가를 두고 하던 논쟁같음
    최영의 정확한 전력적목표가 뭐였는지 모르겠지만(막말로 진짜 이성계 굴복이 목표였을수도 있겠지만)
    당시로서는 할수있는 의문이었다고봄

  • @horadokoi
    @horadokoi Před 18 dny +1

    이방원이 다리기둥에 숨는 속도로 달려왔습니다

  • @user-ck5no9dq8z
    @user-ck5no9dq8z Před 14 dny +2

    고구려의 예땅을 회복할 절효의 시기? 고려말의 국력이 요동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되었나? 털어먹고 돌아오는 유목군대도 아니고?

  • @yoon2532
    @yoon2532 Před 18 dny +5

    사실 이건 전쟁터로 향하는 장군과 병사들 입장을 생각하면 확 체감이 됨.
    1. 명은 우리보다 쪽수가 훨씬 더 많고, 실력도 검증(중원 통일 + 북원 정벌)된 장군들 역시 많음.
    2. 사실상 농사 버리고 출병함. 아무리 길게 끌어도 1년 안에 우리보다 우세한 적을 상대로 완승해야 함. 사실 이겨도 나라는 파산 및 대규모 기아 확정.
    3. 그 와중에 비가 와서 활도 못 쓰는 반푼이 군대가 됨.
    이것만 따져도 이미 미래가 없는데 무슨 놈의 요동정벌을 하겠음? 알렉산더를 데리고 와도 될까 말까인데.
    나 같아도 이딴 거 시킨 우왕과 최영 모가지 따러 유턴하고 말거임 ㅋㅋ

  • @user-jk2lk2et9n
    @user-jk2lk2et9n Před 17 dny

    역사를 대하는 태도 시각 이런것도 세대차이 많이 나는거같아요

  • @Burlington-xb5ss
    @Burlington-xb5ss Před 18 dny +38

    이전에 임 박사님이 말씀하셨죠. 명나라 요동 병력만 15만명이었다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이길 수가 없죠.

    • @carbidecarbide7126
      @carbidecarbide7126 Před 18 dny +8

      청일전쟁은 24만의 일본군은 63만의 청군을 적은피해만 입고 격파하죠

    • @JNAtest
      @JNAtest Před 18 dny +32

      @@carbidecarbide7126 근대화한 군대와 전근대스러운 군대의 싸움을 전근대 냉병기대 전근대 냉병기의 싸움에 비교하는 것에서부터 역알못 인증하는 꼴

    • @carbidecarbide7126
      @carbidecarbide7126 Před 18 dny +8

      @@JNAtest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 헨리5세는 6000명의 잉글랜드군으로 2만명의 프랑스군에게 대승을 거둡니다.

    • @JNAtest
      @JNAtest Před 18 dny +17

      @@carbidecarbide7126 6000명에서 2만명은 해볼만 하죠. 출중한 전술가만 있다면야. 근데 이성계 같은 백전노장이 봤던것은 내전과 대몽골전선으로 정병화한 명의 북방군대에요. 심지어 10배 가까이 차이나는 규모! 명에 훌륭한 전술가들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고 중요한건 도박하는 것보단 안전한 것을 선택하는게 상식적인 것. 님이 이성계가 아니라고 함부로 이성계의 판단을 비하하는 것은 우습다고 봅니다.

    • @carbidecarbide7126
      @carbidecarbide7126 Před 18 dny

      @@JNAtest 그냥 자길 써준 고려왕을 배신한 찬탈자지 쎗바닥 줠라기네. 누르하치는 이미 조총이 상용화된 조선군과 명군을 적은 만주족들만 데리고 다 깨부고 다녔어. 끝끝내 이자성의난으로 망한 명나라지만 오삼계가 이끌던 군인으로 해볼만했음 그렇게 항복안하지 프라이드가 있는데. 누르하치 홍타이지가 소국운운하면서 빌빌거렸음 중화제국 청나라가 나올 수 있을까?

  • @ISAIAH-KOR
    @ISAIAH-KOR Před 18 dny +3

    멀리서 듣는데 위화도 회군이 '위아 더 해군'으로 들려서 달려왔습니다! ❤

  • @hotworkkim
    @hotworkkim Před 18 dny

    요동정벌이 없었다면 조선은 없었을까요? 이성계는 처음부터 왕위에 욕심이 있던걸까요 회군하고 권력을 쥐니 왕위에 욕심이 생겼던걸까요

    • @user-ny9yn7zx5q
      @user-ny9yn7zx5q Před 17 dny +1

      @@hotworkkim
      동사강목에 염흥방 임견미를
      숙청할때 이천명이상 죽었는데
      안정복이 이럽니다
      이는 태조와 이 세력이 병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영은 그렇게까지 죽일 생각이
      아니었다고요
      이미 이 숙청후 이성계가 군권을
      확실히 쥐었다고 할 수 있어요
      꺼리는건 최영뿐입니다
      야심이 있었다는 두번째고
      이미 상황은 정리됐다고
      이성계를 견제할 세력은
      사라진겁니다
      최영도 이미 퇴직할 나이라서
      머지못해 따른 면이 있을 정도면
      요동정벌은 다목적용일수도 있습니다
      회군을 걱정해서 직접 출정하려
      하고 장수들 가족도 연금시켰는데 급박한 출정이라
      느슨한 틈을 타서
      이방원이 탈출하고 가족을 대피
      시켰다고 합니다

  • @user-kn7ib3xi4x
    @user-kn7ib3xi4x Před 18 dny +2

    영끌은 항상 워험하다

  • @buckston201
    @buckston201 Před 16 dny +5

    저당시 요동으로 들어가서 명나라와 전쟁을 벌였다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수 있었을까? 더구나 저당시는 원나라와 전쟁을 치뤄서 당시 고려로서는 감당할수 없을만큼의 병력들이 존재했었는데 그런 군대를 상대로 고작 5만을 끌고 들어가면서 요동정벌 어쩌고 했다는게 참...;;;;

    • @user-ii2bd9wi7y
      @user-ii2bd9wi7y Před 15 dny +1

      당시 국제 정세상 충분히 가능했다고 함. 명은 원을 추격하여 몽골에 깊숙히 들어갔다가 대패하였음.
      더 이상 전쟁이 불가능한 상태.
      그래서 북경을 중심으로 수비로 전환했음.

    • @poolnae7249
      @poolnae7249 Před 15 dny +1

      @@user-ii2bd9wi7y 너 같은 무식한 애들이 군대를 이끌면 망하는거임 ㅇㅇ^^

    • @shinfeinrozava9468
      @shinfeinrozava9468 Před 15 dny +1

      ​@@user-ii2bd9wi7y그건 사실이 아니구요
      명이 몽골 내륙 깊숙이 진격했다 패배한 건 1372년입니다. 명은 1380년부터 다시 공세로 전환했고 1387년에 나하추까지 항복시키고 요동 전체를 장악했습니다. 더 이상의 전쟁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건 그냥 뇌피셜이구요

    • @sweetfan3250
      @sweetfan3250 Před 14 dny

      성개가 죄선이란 괴물국가를 세워 지일가만 생각않하고 고려가 지속했다면 지금분단은 최소한 없었겠지!고려가 다시 힘키워북쪽으로 몰아낼수도 있었겠지!

    • @user-bx1xl7gl5b
      @user-bx1xl7gl5b Před 14 dny +1

      @@sweetfan3250 고려가 조선보다 나은 점이 대체 뭐길래 이러시는 거지ㅇㅅㅇ
      맨날 조선 욕하고 고려 띄워주는데 그래서 뭐가 낫냐고 하면 아무 말도 안하더라

  • @cacarote12
    @cacarote12 Před 2 dny

    모르지 위험한전쟁으로 개죽음 당하는것보다 쿠데타로 왕이 되는게 더 좋지 핑계없는무덤 없듯이 4불론그이상도 만들면...

  • @user-ux6lj3dl7k
    @user-ux6lj3dl7k Před 18 dny +6

    그냥 고려나조선은 요동장악 능력이 없었음.
    고구려정도 기병 역량도 없었고

  • @user-gs8fq3iu2x
    @user-gs8fq3iu2x Před 18 dny +3

    병력이 받쳐줘야함 예전에는 더욱더 고구려가 멸망한게 영토관리할 인구 병력이 부족

    • @user-ux6lj3dl7k
      @user-ux6lj3dl7k Před 18 dny +2

      인구가 많은 통일국가 수당과 몆십년동안 전쟁 치루면 어쩔수 없음. 영토관리는 700년 역사 국가에는 안맞아요

  • @user-pv1jo4pc9o
    @user-pv1jo4pc9o Před 18 dny +19

    이성계 킬방원한테 화살 쏘듯이 달려왔습니다

    • @user-gm4dq1yn7c
      @user-gm4dq1yn7c Před 18 dny

      태조가 아들이 아무리 마음에 안들어도 화살로 쏨?

    • @user-kd7fu7qI5z
      @user-kd7fu7qI5z Před 18 dny

      @@user-gm4dq1yn7c태종은 동생들 사랑해서 죽임??

    • @user-gm4dq1yn7c
      @user-gm4dq1yn7c Před 17 dny

      @@user-kd7fu7qI5z 배다른 동생이니..

  • @ylee3438
    @ylee3438 Před 14 dny

    지금 이 개명천지에도 중국몽을 모시자, 수령님 쇄쇄쇄 하는 놈들도 있는 세상인데 그 당시에 사대적인 생각을 한다는 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죠.

  • @user-ii2bd9wi7y
    @user-ii2bd9wi7y Před 15 dny

    지형을 보면 북경에서 요동까지 이어지는 명의 진군로는 길게 늘어져 있게 되어 보급선을 유지하기 어렵고, 북원이 아직은 위협적이었고, 조선과 싸우다가 원의 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었기에, 요동을 점령했으면 명도 인정하고 거기서 국경이 정리되었을 가능성이 높음.
    실제 문제는 여진족인데, 여진족과의 문제는 결국 두고 두고 문제가 되는 것이라 이 때 해결했으면 오히려 쉬웠음. 여진족은 분열해 있었고, 원의 세력이 약화되어 공백 상태이므로 이 때가 기회였음.
    최영 장군도 백전 노장이고 여름, 겨울, 가을 다 전쟁 해본 베테랑임. 활의 문제, 보급의 문제, 이런 걸 모르지 않았고, 무슨 군대가 여름이면 못 싸우고 그런가? 고려군이 그정도의 약골일리는 없음. 적이 여름에 쳐들어오면 아교가 풀어져서 우리는 항복해야 함. 이런 것임? 말이 안되지.

  • @co-musician640
    @co-musician640 Před 6 dny

    왜구에게도 털렸는데 요동을 어찌 정벌할 수 있었겠어요

  • @b_h_liblew4740
    @b_h_liblew4740 Před 17 dny +6

    나라가 확장정책으로 가려면 적어도 1대 이상의 태평성대가 있어야 식량과 재물이 쌓이는법, 당장 왜구와 홍건적으로 쑥대밭이 된 마당에 조용히 찌그려져서 미친듯이 전후재건 해도 나라가 살까말까 한대 전쟁이라니. 제정신이 아닌거지

    •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Před 17 dny +1

      최영이 외척이 되다보니 초심을 잃은거죠.

  • @user-mw9fo7uf7x
    @user-mw9fo7uf7x Před 15 dny

    이성계와 사대부 입장에서는 정말 열받을만 한게... 당시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리는게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문벌 귀족들이 땅이라는 땅은 죄다 빼앗아 독차지를 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백성들이 죄다 가난뱅이들이니까..이들을 동원해 군대를 조직한다는게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이들을 강제 징집하게 되면 정말로 굶어죽어야 할지도 모르죠.
    당시 왜구한테도 힘도 못쓰는 이유가 백성들이 죄다 가난뱅이들이니까 무기를 들 힘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고려거란전쟁 당시만 해도 20만 동원이 가능하던 고려가 이성계의 사병들로 겨우 왜구를 막는 상황까지 몰린것이죠.

  • @ksy7348
    @ksy7348 Před 17 dny +2

    어째 이때 지도자들이 더 책임감 있게
    보일까

  • @sfk1031
    @sfk1031 Před 18 dny

    원래 전쟁은 반대하면 출전시키지 않는데 그렇게 반대하는데 궂이 왜 출전시켰을까?
    어차피 가망없다는거 알았겠지. 그러니 반대했겠지. 이기던 지던 참수엔딩이니 아예 반역한거고

  • @lineroh1
    @lineroh1 Před 18 dny

    we are the 해군. 이야기 두번째군요.

  • @user-ii2bd9wi7y
    @user-ii2bd9wi7y Před 15 dny

    힘은 들겠지만 요동은 충분히 점령할 수 있었다. 유지할 수도 있었고.
    4불가론은 다 거짓.

    • @user-fs4ph8fw6i
      @user-fs4ph8fw6i Před 11 dny +3

      유지 절대 못함

    • @SuperWonder
      @SuperWonder Před 11 dny +2

      그랬으면 고려는 이성계한테 망하는게 아니라 주원장한테 망했겠지.

  • @guess7208
    @guess7208 Před 16 dny

    4불가론은 그냥 쿠데타 명분찾기 ㅎㅎ

    • @SuperWonder
      @SuperWonder Před 11 dny +2

      그 쿠데타 명분이라는 4불가론이 타당하니까 문제지.

  • @ali-bf6to
    @ali-bf6to Před 18 dny +13

    이성계 욕하는 사람들중에 지금 만주 정복하러 중국이랑 전쟁할거라고 하면 싸우겠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ㅎㅎ
    지금 중국이랑 전쟁하겠다 하면 미친놈 소리들을텐데 하물며 저 당시 명나라면 당시 세계관에서는 중국+미국+러시아 정도 위상이었을텐데...

    • @user-gs8fq3iu2x
      @user-gs8fq3iu2x Před 18 dny

      일본이 정명가도 했으면 바로 명나라 처발랐을듯

    • @poolnae7249
      @poolnae7249 Před 18 dny +1

      @@user-gs8fq3iu2x 좆본은 조선도 이길수있는 수준이었는데 명나라를 어캐 이기냐 일뽕아^^

    • @kaiserthum
      @kaiserthum Před 18 dny +1

      @@user-gs8fq3iu2x 실제역사에서는 일본이 처발렸죠. 일본은 20만 원정 한번으로 내분나서 망했지만, 명나라는 5번에 걸쳐 합 150만 원정을 해도 안 망했죠.

    • @user-pj1iv7hp9y
      @user-pj1iv7hp9y Před 18 dny +1

      우리가 중국을 쳐들어가서 점령하는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중국 역시 우리를 점령하는것 역시 거의 불가능함.

    • @user-hs1sg3vm6e
      @user-hs1sg3vm6e Před 18 dny +1

      명나라가 중국 통일한 직후라 명장들도 즐비했죠. 세계 2차 대전 때 미국처럼 자원 빵빵하고 생산력 미친 국가 였다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 @karls878
    @karls878 Před 17 dny +1

    여진, 몽골 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 쳤는데

  • @user-so5zg4hi2c
    @user-so5zg4hi2c Před 6 dny

    거지 쉐이 朱重八이 明을 세울 때 5만명 정도의 비정규군 홍건적 정도,
    요동정벌 때의 정규군 8만명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大军임.

  • @wooyounglim9168
    @wooyounglim9168 Před 8 dny

    이성계의 4불가론을 이렇게 파헤치는 것도 의미는 있지요.
    그런데 임용한 교수의 위치에 있는 역사학자(려말선초쪽을 전공한 국사학자 같은데)가 책임감이 있다면 위화도 회군의 정확한 위치, 요동정벌의 단초를 제공한 철령(위) 문제, 세종 당시의 6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는 윤관9성의 위치,려말선초에 우리나라가 명에게 고려 우왕 때부터 조선 태종, 세조에 걸쳐 주장한 공험진에서 철령까지라는 우리의 북방 경계, 그리고 그 중요한 고려 서경까지...
    이렇게 4불가론을 다루는 것은 그러한 중요한 문제를 방기한 무책임한 태도로 비쳐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