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전 우주의 기운이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었음. ㅋ 응씨배 생기기 직전에 이창호가 나오면서 한국에 바둑 붐을 일으켰고 바둑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상태였음 ㅋ 그런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덤도 네집반에서 다섯집 반으로 한국만 독자적으로 바꾸는 중이었고. ㅋ 그런 상황에서 응씨배같이 덤을 크게 주는 대회가 열렸다는게 여러모로 한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음. ㅋ
좋은 곳이 두 곳 이어도 빈 삼각으로 두어서 이겼으니 빈 삼각으로 두어서 이긴 게 맞습니다. 정말 해설을 이상하게 하시네요? 밥을 먹는 도구가 수저 와 젓가락이 있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었지만 수저로 먹어도 되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먹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이게 사범이 한 말입니다.
시대를 풍미하던 인걸도, 어느 덧 백발이 성성하니..김성룡사범님께서도 좋은 추억들 차곡 차곡..
Hi
감사합니다.
빈삼각 묘수 중에 대회의 규묘와 역사적인 가치를 고려했을 때 최고의 묘수입니다.
저 당시의 빈삼각 묘수가 대단했던 건 당시에는 빈삼각이 절대 금기시하던 분위기여서 대단했던 겁니다. 발상의 전환이 이뤄진 거죠.
모양 만들땐 안좋은 형태지만 전투중엔 빈삼각이라고 안좋은게 아니다 라고 인식이 바뀌는데 일조햇을 듯
모양 만들땐 안좋은 형태지만 전투중엔 빈삼각이라고 안좋은게 아니다 라고 인식이 바뀌는데 일조햇을 듯
여틍 묘수를 발견 한다는것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어떤 나라의 기사든..
아!!~~ 네웨이핑과 고바야시와 조훈현님이 동갑!!~~ 이럴수가!!~~
당시에는 전 우주의 기운이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었음. ㅋ 응씨배 생기기 직전에 이창호가 나오면서 한국에 바둑 붐을 일으켰고 바둑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상태였음 ㅋ 그런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덤도 네집반에서 다섯집 반으로 한국만 독자적으로 바꾸는 중이었고. ㅋ 그런 상황에서 응씨배같이 덤을 크게 주는 대회가 열렸다는게 여러모로 한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음. ㅋ
저때 덤이 고작 4.5집이엇나요 왜케 적엇지??
@@NokDu12 저때쯤 부터 계속 늘어난거죠.
해방때만 해도 덤이 없는 대회도 많았어요
기력이 낮은 사람에게는 사실상 유일한 한수가 고수한테는 전설의 묘수가 되는구나...
내눈에는 1감이 저자린데(인터넷3급)
15:54
아마추어에겐 저 두개의 빈삼각 수는 오히려 일감 처럼 쉬어이는데 ㅋㅋ
좌변에 왜 두칸 뛰지 않고 눈목으로 둔거지
가토 마사오 9단이 한말이 생각나내요 다른기사의 바둑은 한 번만 보면 이해할수 있지만 이창호 9단 바둑은 세번을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수법이나 이런건 금방 배웁니다.
중요한건 엔진이지..
저는 신진서 박정환=유창혁
서론이 4분을 넘어가네요
구독좀 합시다~
조훈현? ㅎ ㅎ
미통닥조훈현?
됐고...........사람이 되어라
좋은 곳이 두 곳 이어도 빈 삼각으로 두어서 이겼으니 빈 삼각으로 두어서 이긴 게 맞습니다. 정말 해설을 이상하게 하시네요? 밥을 먹는 도구가 수저 와 젓가락이 있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었지만 수저로 먹어도 되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먹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이게 사범이 한 말입니다.
다들 잘 이해 하는데요. 비유가 이상하긴 하지만 같은 비유를 해드리자면 숟가락과 젓가락이 둘다 있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밥먹은것을 갖다가 젓가락이 있기때매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라고 말할 수 없다 라는 뜻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