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9살짜리 아들하고 같이 보는데 진로를 전쟁사연구로 잡고 유럽에서 공부하고 싶다네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뭘 구체적으로 하고 싶다 얘기한게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요즘은 따로 혼자 책읽고 제법 제게 설명도 해주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네요.이런 상황이니 토전사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어른도 많이 배우고 자녀와 공감대도 생기고 자녀의 견해도 넓혀주는 일석 삼조 프로그램!! 장수하길!!!!
역사 에서 밥먹고 살려면 최소한 서울대는 나와야 하니 서울대 갈 실력을 기르게 하시고 서양사의 경우는 유학이 필수 인데 돈이 한두푼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 뒷 감당할 재력을 비축해 두시는 것이 중요! 자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이 바닥만큼 학연 따지는 곳이 드물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특히 국영수)해서 꼭 서울대를 가라고 권해드립니디. 물론 거기 안가도 되는 길은 있지만 그 만큼 고생을 덜 합니다.
외국에 사신다면 대한민국 내에서 역사로 생계를 유지 하려는 지 외국에서 생계를 유지 하려는 지 먼저 결정하고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일단 국내에서는 외국 명문 역사학과 출신 이라도 국내 명문대 석사 출신에게 밀리는 상황! 또한 대학교 자체 가 인문사회 계열에 외국 학과 출신을 멸시?에 가까운 대접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하세요!
전근대 정주민족 국가의 군대가 평화시기가 길어지면 다 결국에 똑같은 한계를 가지게되는 것 같네요. 금나라도 중원들어갔다가 결국그렇게 변하고 몽골에게 멸망했고, 몽골도 중원에서 원나라를 세웠다가 말기에 같은 문제가 발생하서 중원에서 물러나고, 마지막 청나라 팔기군조차 같은 문제가 발생하니 말이죠;; 도쿠가와 막부도 말기에는 마찬가지였고요..... 하긴 그러고 보니 EU국가중에 제대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국가가 없는 걸 보면 전근대 국가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이런 어려운 내용들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주시는 것에 정말 감사드리고 계속해서 좋은방송 기대하겠습니다.
왜 한국사 전쟁 이야기가 다른 나라의 전쟁 이야기보다 재미가, 정확히는 생동감이 떨어질까를 늘 막연하게나마 고민했었는데 오늘 그 답을 찾았네요. 기록이 부족하다. 당연히 머리 속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전쟁과 그렇지 않은 전쟁은 차이가 많을 수밖에요. 늘 잘 보고 있습니다.
단병접전은 힘도 체격도 중요 하지만 난 오늘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이 없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1차대전을 지나 2차대전을 거쳐 한국전쟁 때 까지 총만 쏘는게 아니라 착검 하고 백병전을 벌였다는거 한데 이건 보통멘탈 가지고는 힘듬 그렇다고 안하면 안되는것이 라이언일병구하기의 멜리시 처럼 심장에 칼이 꽂혀서 디지게 되죠
토전사 서양전쟁편만 봤다가 동양 부분을 이제서야 보기 시작했는데 제가 왜 동양사를 피했었(?)는지 알겠네요ㅎㅎ그림이 없어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 내용을 글자로만 외운 학교 국사 공부가 힘들었었나봐요.ㅎㅎ 토전사 통해 조금 더 이해하고 역사공부를 좋아할 수 있네요.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토전사 왜 폐지했나요ㅡㅡ)
8:50 당시 활 하나 만드는데는 몇 달이 아니라 거의 2년이 걸렸음. 다른 재료는 대부분 국내에서 구해졌고 심지어 민어부레를 쓴 이유도 민어가 부레도 크고 너무 흔한 생선이어서 그랬다라는 썰도 있을 정도였고 힘줄도 황소의 힘줄을 더 선호했다고 함 다만 그놈의 뿔이...... 참고로 현대 미국의 한 유명 메이커가 만드는 장궁도 현대식 장비와 기술을 총 동원해도 9달이 걸린다고 함.
@조짐의 미학.. 현재 확인된 전통활은 각궁.죽궁.장궁뿐이고 이중에 전투용으로 쓸수 있는 활은 각궁임 물론 다른 활도 사용됐지만 무과출신인 사람이 경우는 각궁만 썻고 죽궁이나 장궁의 경우는 취재시험 합격자중 가난한 사람이 몰래 눈치보며 썻다고 함 참고로 지금 대구지방은 원래 삼국시대때부터 늙거나 병걸리거나 아니면 부상병들.신병들의 훈련장으로 사용됐고 그때 있던 병사들이 죽궁을 사용했다고 함 그리고 다른 지방엔 그런식의 훈련받은 병사들은 장궁을 사용했고... 한마디로 조선시대에 적어도 취재시험을 합격한 정규군중이 전투중엔 각궁외엔 사용하지 않았음.
뭔가 어긋난 느낌이랄까? 분명 여러 자료랑 토전사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선이란 나라가 건국 초기부터 분명히 군을 포함한 사회의 모든 면을 바꿀려고 한 점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 한데 또 그럴수록 한계가 보인다는 점 말입니다 박사님들 말씀대로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본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농업국가가 가지는 한계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속적인 훈련이나 교체가 필요한데 농업이 주축인 국가에서 막 아무때나 병사를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재정이 튼튼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된 지원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된 것도 아니여서 백성들 스스로의 자비로 하는 것이니 그걸 좋게 바라보지도 않았을테니....... 게다가 후기로 갈수록 군 경시 문화도 생겨지니 조선도 조선 나름의 고충이 있네요 항상 즐겨 보고 있습니다
당시 노비들만 동원해도 10만명은 우습게 만들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병혁파를 한것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사병들은 노비의 신분이었는데 이른 관병으로 흡수한것이지요. 이들 사병은 실전에 능한 정예병이었고 이들이 여진정벌에 동원되었습니다. 이때가 조선시대를 통틀이 가장 군사력이 강할때입니다. 이후 사병의 양성을 금지하게 됨으로써 일반노비만을 두게 하였고 세조시대에 와서는 백병전연습까지 금지하고 모든 사가(민간인집)에 창,칼을 소지할수 없게 하였습니다. 이 두가지가 조선의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각지역의 영주와 그밑의 사병들이 전쟁에서 큰 도움이 되었고 고려시대만 해도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임진왜란의 동원된 대부분이 영주들의 개인사병임을 생각해보면 조선이 전체를 관군화하려는 시도는 매우 선진적이지만 이것은 이상일뿐 현실에 맞지 않았음이 분명한것이지요. 반역이 두려워 사병제도를 철폐함으로써 국가가 직접 관군을 육성해야했고 이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수 없었던것이 군사력약화의 가장 큼 원인이었습니다. 조선이란 나라 자체가 이성계가 개인사병을 거느리고 사대부와 결탁하여 정계에 진출했기 때문에 사병이 있는 가문을 역으로 두려워할수밖에 없었지요. 만약 사병제도를 그냥 두었다면 어쩌면 또다른 역성혁명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조선의 군사력이 크게 약해지지는 않았을겁니다. 각 지방마다 가문마다 사병이 존재하게 되므로써 임진년의 왜군의 침입초기에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겠지요. 현대처럼 모든 군사력을 국가에서 관리하는것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지만 비현실적인것인데 조선의 유학자들은 너무 이상적이었던거지요.
활은 아무리 강해봤자 사람이 팔로당길 수 있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중장갑화가 되면 활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여진족을 주로 상대했던 조선의 경우를 보면 갑옷도 없이 맨몸에 말타고 활이나 쏘던 조선 초기 여진족들은 조선이 충분히 활로 상대 가능했고 그래서 여진족을 주로 상대하던 조선의 대응전략도 궁시와 기병중심으로 변해갑니다. 그게 효율적이니까요. 조선초기 의무적으로 편성되던충격기병들도 이런 세태가 지속되자 임란시기가 되면 기병들이 창과 칼쓰는 법을 잊었다고 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집니다. 이런 궁시위주의 전술에 여지족들도 점차 대응해 여진족들도 갑주를 갖추기 시작하는데 중국에서 갑옷을사와 갑웃을 두르게 되자 활이 소용없어졌고 총통밖에 상대할 방법이 없으니 큰일이라고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렇게 갑옷을 두르고 화살비를 뚫고 조선군 전열로 난입해 헤집으려 하고 조선은 어떻게든 그전에 격멸하려는 것이 조선중기 여진족과의 전투양상이었습니다.
조선의 세율은 1할 정도였다 하죠.당시의 다른나라들은3~4할 정도였다고 하고요.조선 초기와 말기는 다른나라라고 보셔도 됩니다.의외로 조선 초기엔 국력도 쎈편이었구요.뭐 하면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중국에서 견제 할 정도로요.조선이 워낙 털린 역사가 많아서 은근히 무시하는데 조선 초기엔 확살하게 강국이었습니다.재정좋고 군사 강하고.
음 어느나라 어떤 정권에서도 역성혁명이나 새로운 나라 새울때 세율을 낮춥니다 그 이유인즉슨 민심을 잡기 위해서인데 이성계는 조선 건국시 고려왕들을 죽인것도 모잘라서 나라에서 최고로 추앙받던 정몽주와 최영을 죽이죠 민심은 바닥을 쳤고 그 걸 회복할려고 세율을 내립겁니다 물론 다른나라 왕조들도 내렷다가 올릴때 조선은 애당초 왕들도 검소한 나라엿고 초장기때는 백성들 착취 부정부패등을 엄하게 처벌하엿기에 그 세율이 내려간게 오래간거였죠 나라의 재정이 가장 많이 소모되는게 첫번째가 전쟁 두번째가 대규모 토목공사입니다 그리고 고려말 부정부패와 요동정벌등 무리한 재정소모로 이미 국고는 바닥나잇어서 조선초기에 관리들 녹봉이 어마무시하게 작고 궁궐도 작게 지어서 그나마 어느정도 채워놓은거에요 그나라의 재정상태를 알고싶으면 전쟁시 병력동원규모를 보면 알수잇습니다 조선초기에 만명넘어가는 군사를 동원한건 딱 두번있엇죠 대마도와 여진정벌 어느 책에서 보니 저 2번하고나니 한동안 재정이 안좋앗엇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군사력이라 태조때는 군사력이 강한건 사실입니다 군사들 대부분이 역전의 용사들이엿으니 하지만 태종때부터는 여진이 슬슬기어나오더만 곧잘 털립니다 그래서 빡쳐서 정벌햇던거엿구요 그리고 중국의 견제라.. 중국은 당시 주변나라 조선 일본 몽골 토번 인도 베트남 타이 다 견제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때는 원나라의 후신인 북원이 명나라내내 괴롭히고 심지어 황제까지 포로로 잡혀버리는 일이 발생하는데 게다가 조선이랑까지 손잡으면 골치아프게 되어버리고 하니 견제를 햇던거죠 조선이 아무리 강력해진들 명나라가 병력우르르 끌고나오면 조선은 순식간에 순삭됩니다 조선이 약하진않앗으나 강하지도않앗어요
@@user-ni5bo3nr5q 세금이 적은 나라엿지 없는 나라라 안그랫음 ^^ 듣기 평가를 못하나 이런것이랑 같은 하늘아래 사는 사람이 불쌍해지네 ㅋㅋㅋㅋ 세금 없는나라가 어캐잇니 ㅋㅋㅋㅋㅋ 조선초기록만 해도 세금 옮기는 배 조운선이 털렷네 어쩌네 기록이 나오는데 ㅋㅋㅋㅋ
@@user-ni5bo3nr5q 응 임용한 박사가 "조선초는 세금이 낮았어요 다른국가에서 번거에 50프로를 걷어갓으면 조선은 10~20수준이였어요 그래서 경복궁도 간소하게 짓고 관리들 녹봉은 정말 거의없는수준이였어요 그래서 관리들이 나중에 먹고 살기 힘드니 세금올리고 갈취하고 햿던 원인이되었어요"라고 했다 멍청아 물론 너말대로 임용한 교수가 없다했을순잇겟지만 적은수준을 표현할라고 쓴말일테고 그리고 그리 말했다해도 팩트 체킹을 해야지 ㅋㅋㅋㅋ 나라에서 군사들 먹일 쌀은 하늘에서 뚝떨어지냐 ㅋㅋㅋㅋㅋㅋ 화포나 화약은 뚝 떨어져? 군선은?ㅋㅋㅋㅋ 그런거 다 세금으로 하는거야 어휴 ㅋㅋㅋ 기초상식이없는놈이 누굴 지적질해 ㅋ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9살짜리 아들하고 같이 보는데 진로를 전쟁사연구로 잡고 유럽에서 공부하고 싶다네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뭘 구체적으로 하고 싶다 얘기한게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요즘은 따로 혼자 책읽고 제법 제게 설명도 해주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네요.이런 상황이니 토전사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어른도 많이 배우고 자녀와 공감대도 생기고 자녀의 견해도 넓혀주는 일석 삼조 프로그램!! 장수하길!!!!
멋집니다!!
역사 에서 밥먹고 살려면 최소한 서울대는 나와야 하니 서울대 갈 실력을 기르게 하시고 서양사의 경우는 유학이 필수 인데 돈이 한두푼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 뒷 감당할 재력을 비축해 두시는 것이 중요!
자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이 바닥만큼 학연 따지는 곳이 드물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특히 국영수)해서 꼭 서울대를 가라고 권해드립니디.
물론 거기 안가도 되는 길은 있지만 그 만큼 고생을 덜 합니다.
13무명씨 앗. 그렇군요. 조언감사드립니다. 참고할께요. 오늘은 아들놈이 갈리폴리이야기를 들려주네용. 저희가 외국 살다보니 아무래도 근대전쟁에 더 관심이 가나 봅니다. 그래도 일단 이렇게 관심사가 생긴 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기특해하는 상황이네요. 하하하하
외국에 사신다면 대한민국 내에서 역사로 생계를 유지 하려는 지 외국에서 생계를 유지 하려는 지 먼저 결정하고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일단 국내에서는 외국 명문 역사학과 출신 이라도 국내 명문대 석사 출신에게 밀리는 상황! 또한 대학교 자체 가 인문사회 계열에 외국 학과 출신을 멸시?에 가까운 대접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하세요!
유학도 중요한데 언어가 더 중요합니다 특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어나 그리스어가 필수인 학문이기도 하지요
샤를, 어제저녁 뭐 봤어! 제목만 말해다오 ㅋㅋㅋ
샤를세환에 이은 새로운 별명 야동세환(YS) 역시 기자님 클라스 크으~~~~~~
기자님 이거 읽으면 우시면서 이불킥 하실듯... ㅠㅠ
편집되겠지 하고 안심하셨다가 울컥!!!
야동세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저거 편집 안해주나ㅠㅠ 너무하네 ㅋㅋㅋㅋ
Maxim Schuneider 일부러 효과음까지 넣었음
토전사 정말 최고의 프로그램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봤으면 좋겠네요.
적어도 남초 커뮤니티서는 많이 언급도 되고 호평입니다. 다해이라고 할까요?
폐지됨 ㅡㅡ
이거 보고나면 수능 한국사가 정말 쉬워진다던데
수능 한국사는 개씹 쉬운 수준임
교수님의 전문 분야이다보니 토크의 깊이가 장난아니네요…정말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셨음에도 제 머리로는 한번에 이해가
안돼서 한 10번은 반복해서 봐야겠습니다 ㅎㅎ
오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군사 제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적절한 언어유희(?)
로 시청자들의 집중도를 높인 기자님의 암기 교육법! 노래로 외우는 것 보다
더 효과가 탁월해서, 기자님 덕분에 '강무'에 대한 내용은 앞으로 절대로 잊어
버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핫)
최고의 프로그램 레알 진짜 최고
하아..;;진짜 너무 재밌다..1화부터 차근차근 정주행중인데 정말 네분과 국방TV에 감사드립니다 !^^
전근대 정주민족 국가의 군대가 평화시기가 길어지면 다 결국에 똑같은 한계를 가지게되는 것 같네요. 금나라도 중원들어갔다가 결국그렇게 변하고 몽골에게 멸망했고, 몽골도 중원에서 원나라를 세웠다가 말기에 같은 문제가 발생하서 중원에서 물러나고, 마지막 청나라 팔기군조차 같은 문제가 발생하니 말이죠;; 도쿠가와 막부도 말기에는 마찬가지였고요..... 하긴 그러고 보니 EU국가중에 제대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국가가 없는 걸 보면 전근대 국가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이런 어려운 내용들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주시는 것에 정말 감사드리고 계속해서 좋은방송 기대하겠습니다.
답글 다신 분 덕분에 저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한국이고 중국이고 외적에게 망한예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장군이나 반란에 나라가 멸망당함. 명나라도 청나라때문이 아니라 농민반란에 망하고 이미 한국 중국 지도층에게 외적은 문제가 아니였음.
후조선도 6.25 말고는 전쟁을 해 본적이 없어서 재앙입니다...
하다못해 연편도포격때 북폭을 해야 했는데...
EU국가 전체가 굴리는 전차 총합이 대한민국 육군 의 7군단이 굴리는 전차보다 작다고 하죠.
정말 박사님께서는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깔끔하게 말씀을 잘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중국 역사에서 진시황의 천하통일에 뒤이어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초한전쟁에 관해 다뤄주신다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본방보고..재방보고..유튜브까지 챙겨서 보네요..역사는 달달 외우는게 아니고 이해'를 하는거다
5:57 야동세환 ㅋㅋㅋㅋㅋㅋㅋ
연휴기간 내내 보다가 어제 정주행 완료하고 하~ 이제 어쩌지..하고 있었는데 마침 딱!!! 잘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월요일에 올라올줄알았는데 바로 칼업로드 ㄷㄷ 감사합니다 ㅎㅎ
ㄴㄴ 이거 일주일 전거임
나 어렸을때 H I J K L M N/O P Q R S T U/V W X Y Z 우리 모두 다함께 영어 공부 합시다 이거였음
살아있는 지식인. 통찰력이 대단한 박사님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토전사 화이팅!
이번 화도 잘봤습니다. 조선은 기록의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자료가 많이 없는 게 참 아쉽네요. 네분 모두 감사합니다.
1:30 물갈이 1:58 편재 2:30 갑사 3:27 5위체제 5:15 결과. 5:46 점점 안되는 실전훈련 5:58 ㅋㅋ 6:13 강무. 7:07 알아서 준비해라 8:02 각궁 생산 09:49 야외기동훈련 11:45 양계지방 12:25 진법 훈련 15:09 힘들어 17:17 군사기록 부족 19:04 시험과 관련된 과목의 공부는 자발적으로 싫어하는게 당연함,시험과 무관한 '교양지식'이 재미있지. 19:54 오행출진가. 21:31 패배해도 망하지 않는다 23:14 선수비 후공격. 25:00 정도전의 '한계'. 27:36 적이 쳐들어오면. 28:47 근접전 29:31 변화무쌍한 지형 30:54 '공격 지향적' 군대. 32:31 '변계량'. 34:38, 36:01 명언. 38:36 술. 40:36 여진 상황. 42:48 조선-여진 갈등 44:28 건주여진(먼터무,어허출)
추석연휴끝나고 목욜에 올려주셨군요 잘볼게요
국방부도 공무원입니다.
퇴근하고보는 꿀맛
항상 임용한 박사님말씀하시길 .... 자주국방 ....명심하자 ..
그리고 축구 선수 손흥민의 군면제를 누구보다 응원을 하죠.
저는 몇년도 어디 외우고 이런게 그냥 재밌던데요 ㅎ 사람마다 다릅니다 역사좋아하면 이런것도 다 재밌어요
샤를세환님 노래 잘하심..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토전사 잘보고있습니다 ♡♡
기자님 리듬이 레미제라블이네요
왜 한국사 전쟁 이야기가 다른 나라의 전쟁 이야기보다 재미가, 정확히는 생동감이 떨어질까를 늘 막연하게나마 고민했었는데 오늘 그 답을 찾았네요. 기록이 부족하다. 당연히 머리 속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전쟁과 그렇지 않은 전쟁은 차이가 많을 수밖에요. 늘 잘 보고 있습니다.
단병접전은 힘도 체격도 중요 하지만 난 오늘 죽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이 없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1차대전을 지나 2차대전을 거쳐 한국전쟁 때 까지 총만 쏘는게 아니라 착검 하고 백병전을 벌였다는거
한데 이건 보통멘탈 가지고는 힘듬
그렇다고 안하면 안되는것이
라이언일병구하기의 멜리시 처럼 심장에 칼이 꽂혀서 디지게 되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넘나 재밌는것
05:59 기자님 충성충성 ^^7
잘보고 있습니다.
역시 세환기자님!!! 제목처럼 새군대만 새울수 없나봅니다...
다음주도 너무 기대된다 ㅎㅎ
와!
토멘사다!
잘보겠습니다
05:59 야동세환ㅋㅋㅋㅋ
지금도 봅니다.
실록은 그렇게 남겼는데 이런기록은 없다는게 아쉽네요
요 며칠 정신 없이 재밌게 보고 있는데...이런 컨테츠에 광고가 없네...지금 알았음.
토전사 서양전쟁편만 봤다가 동양 부분을 이제서야 보기 시작했는데 제가 왜 동양사를 피했었(?)는지 알겠네요ㅎㅎ그림이 없어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 내용을 글자로만 외운 학교 국사 공부가 힘들었었나봐요.ㅎㅎ 토전사 통해 조금 더 이해하고 역사공부를 좋아할 수 있네요.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토전사 왜 폐지했나요ㅡㅡ)
유서깊은 키보드 배틀
이 프로그램 다시 방송해줘요
볼 빵빵 윤아나 귀욥~~ㅋㅋ
확실히 이거 보고 있으면 시간은 잘간다. ㅎㅎㅎㅎㅎ
인생프로그램!!^^
없어져서 너무 안타깝네요...
재밌서요 지금 다시방송해줘요
이프로그램은 학교교육영샹으로도 쓰여야
아 진짜 지금이라도 역사 연구 기록 열심히 남겨서 후손들 연구할때 도움줘야지
토전사 모든 맴버들 화이팅~
연휴 끝나고 바로 올라오는거 보소 ㄷㄷ
연휴끝나고 바로보고 있는데ㅋㅋ 댓글이 5년전 댓글..ㄷㄷㄷ
이걸 이젠 못 본다고?!!
오늘도 너무 잘 봤어요ㅎㅎ 일주일 두번 해주시면 좋겠다.. 기다리다 지쳐요ㅠ
연휴 잘보네셨나요?
20:03 , 5:56 기자님 하이라이트
5위 설명이 이해가 안돼서 찾아보니 말로만 하기엔 너무 복잡하네요 ㅋㅋㅋ
5:58 야동세환
ㅁㅊ새끼 ㅋㅋ
나이 50에 야동세환이란 별명이 붙다니...
야동기자님 잘봤습니다ㅋ
져도 망하진 않는다... 그 만큼 가드가 중요하다는 뜻인 듯. 단병접전에 취약한 보병들에게 진형유지의 중요성 강조..
토크멘터리도 용산 전쟁기념관이나 광화문 이런데서 오프라인 행사 좀 했으면!
와 오랜만에 시청했습니다. 윤지연 아나운서 이마까니까 시원시원 하니 좋습니다
와~~쉰난다~~ 업뎃이다~~
8:50 당시 활 하나 만드는데는 몇 달이 아니라 거의 2년이 걸렸음.
다른 재료는 대부분 국내에서 구해졌고 심지어 민어부레를 쓴 이유도 민어가 부레도 크고 너무 흔한 생선이어서 그랬다라는 썰도 있을 정도였고 힘줄도 황소의 힘줄을 더 선호했다고 함 다만 그놈의 뿔이......
참고로 현대 미국의 한 유명 메이커가 만드는 장궁도 현대식 장비와 기술을 총 동원해도 9달이 걸린다고 함.
@조짐의 미학..
현재 확인된 전통활은 각궁.죽궁.장궁뿐이고 이중에 전투용으로 쓸수 있는 활은 각궁임
물론 다른 활도 사용됐지만 무과출신인 사람이 경우는 각궁만 썻고 죽궁이나 장궁의 경우는 취재시험 합격자중 가난한 사람이 몰래 눈치보며 썻다고 함
참고로 지금 대구지방은 원래 삼국시대때부터 늙거나 병걸리거나 아니면 부상병들.신병들의 훈련장으로 사용됐고 그때 있던 병사들이 죽궁을 사용했다고 함
그리고 다른 지방엔 그런식의 훈련받은 병사들은 장궁을 사용했고...
한마디로 조선시대에 적어도 취재시험을 합격한 정규군중이 전투중엔 각궁외엔 사용하지 않았음.
허준씨가 잘 지적해줬는데 한국사 교과과정 자체가 지금도 정치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요즘 유명하다는 한국사 강사들도 정치성향을 강조하니 한국사를 제대로 모르는 청소년들이 더 늘어나고 있지. 많은 책 그리고 다양한 성향의 책을 읽고 본인 스스로 고민하는 수 밖에 없다..
업로드 감사합니다ㅎ 그런데 후삼국 시대 전쟁은 안하시나요? 우리나라 역사는 시간순대로 다루신다고 하셨는데 후삼국시대는 안다루고 넘어가셔서요 ㅎㅎ
밥 싸오는 이야기 완전 꽁트네 ㅋㅋㅋㅋㅋㅋㅋㅋ
구독하는 이유
베트남전도 다뤄주세요.
조선하면 큰소리칠수있는단어가 그냥, 훈민정음, 세종대왕, 북벌 (두만강이내수복 ) 통칭-세종대왕.사실 조선의역사는 세종대왕이 하드캐리.
이순신
월남전 해주세용~~^^♡♡
국방티비 어플다운받으세요 다음화 바로 볼수있음
추석 땜에 잊고 있었던 토전사. 왠지 보너스 같은 느낌?ㅋ
조선역사가 침략만 당해서 넘 답답하긴한데 토전사를 보고나서 조선 나름대로 노력을 한것을 알겠네요
정병에 대해서 훈련부족에 오합지졸이라고 생각했는데
예비군가서 저도 모르게 "이걸 왜 해"
투덜거리 저를 보게되네요.
우와 저도 야동세환님이랑 가치 야동기전훈련 하고 시퍼요
11:54 향토 방위의 노래 생각나네...
일하며~ 싸우우고~ 싸우며 일하세~
기자님 좋은건 같이봐요~ ㅋㅋㅋㅋㅋㅋ
야전기동!!!!!!!!
뭔가 어긋난 느낌이랄까? 분명 여러 자료랑 토전사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선이란 나라가 건국 초기부터 분명히 군을 포함한 사회의 모든 면을 바꿀려고 한 점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 한데 또 그럴수록 한계가 보인다는 점 말입니다 박사님들 말씀대로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본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농업국가가 가지는 한계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속적인 훈련이나 교체가 필요한데 농업이 주축인 국가에서 막 아무때나 병사를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재정이 튼튼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된 지원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된 것도 아니여서 백성들 스스로의 자비로 하는 것이니 그걸 좋게 바라보지도 않았을테니....... 게다가 후기로 갈수록 군 경시 문화도 생겨지니 조선도 조선 나름의 고충이 있네요 항상 즐겨 보고 있습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인해 나태해지고 고이다 못해 썩어 문들어진 자기 자신과 가문에 이익되는 일만을 하는 조선의 무능한 신하들(충신도 있었지만)이 왕의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 지속적인 외세에 침략을 초래했다고 봄.
@@bajio890 ㅠㅠ
송낙진 고인물이죠..
어쩔수 없음..
어느 국가든 썩고
왕조가 교체되는거죠..
가오나시 오랜세월 중국에 의한 보호와 사대주의속에서 고이고 나태해져버린거죠.. 일본은 임진왜란 전부터 서방과 교류를 하고 있었고 깨어난거죠.. 단순히 어떤 세력이나 어떤 사람의 잘못이라기보단 역사적인 맥락에서 해석해야된다고 생각해요
당시 노비들만 동원해도 10만명은 우습게 만들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병혁파를 한것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사병들은 노비의 신분이었는데 이른 관병으로 흡수한것이지요. 이들 사병은 실전에 능한 정예병이었고
이들이 여진정벌에 동원되었습니다. 이때가 조선시대를 통틀이 가장 군사력이 강할때입니다.
이후 사병의 양성을 금지하게 됨으로써 일반노비만을 두게 하였고 세조시대에 와서는 백병전연습까지 금지하고
모든 사가(민간인집)에 창,칼을 소지할수 없게 하였습니다.
이 두가지가 조선의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각지역의 영주와 그밑의 사병들이 전쟁에서 큰 도움이 되었고 고려시대만 해도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일본의 경우도 임진왜란의 동원된 대부분이 영주들의 개인사병임을 생각해보면
조선이 전체를 관군화하려는 시도는 매우 선진적이지만 이것은 이상일뿐 현실에 맞지 않았음이 분명한것이지요.
반역이 두려워 사병제도를 철폐함으로써 국가가 직접 관군을 육성해야했고 이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수
없었던것이 군사력약화의 가장 큼 원인이었습니다.
조선이란 나라 자체가 이성계가 개인사병을 거느리고 사대부와 결탁하여 정계에 진출했기 때문에
사병이 있는 가문을 역으로 두려워할수밖에 없었지요.
만약 사병제도를 그냥 두었다면 어쩌면 또다른 역성혁명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조선의 군사력이
크게 약해지지는 않았을겁니다. 각 지방마다 가문마다 사병이 존재하게 되므로써 임진년의 왜군의 침입초기에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겠지요.
현대처럼 모든 군사력을 국가에서 관리하는것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지만 비현실적인것인데 조선의 유학자들은
너무 이상적이었던거지요.
졸라재밌음 중동전보고 구독후 일상생활내려놈
샤를세환기자님의 새 별명 탄생을 축하드립니다!!!!!(무기고 어디갔어ㅠ)
옛날엔 정병 일만정도만 제대로 훈련시켜도 강군됬었겠군요?
기자님은 오행출진가를 레미제라블의 인민의 노래(people song)에 맞춰부르네요
역시 우리는 평화를 정말로 사랑한거야 암 그렇고 말고...
직장인의 일주일을 살아가게 하는 방송
다음회에 간도문제가 잠깐 나올수도 있겠군요
27:30 I agree with your assessment of Jeong Do-jeon, Professor Im!
무경총요에 잘 나와있는데요...
20만 가자
이제 지워라
활은 아무리 강해봤자 사람이 팔로당길 수 있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중장갑화가 되면 활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여진족을 주로 상대했던 조선의 경우를 보면 갑옷도 없이 맨몸에 말타고 활이나 쏘던 조선 초기 여진족들은 조선이 충분히 활로 상대 가능했고 그래서 여진족을 주로 상대하던 조선의 대응전략도 궁시와 기병중심으로 변해갑니다. 그게 효율적이니까요. 조선초기 의무적으로 편성되던충격기병들도 이런 세태가 지속되자 임란시기가 되면 기병들이 창과 칼쓰는 법을 잊었다고 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집니다.
이런 궁시위주의 전술에 여지족들도 점차 대응해 여진족들도 갑주를 갖추기 시작하는데 중국에서 갑옷을사와 갑웃을 두르게 되자 활이 소용없어졌고 총통밖에 상대할 방법이 없으니 큰일이라고 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렇게 갑옷을 두르고 화살비를 뚫고 조선군 전열로 난입해 헤집으려 하고 조선은 어떻게든 그전에 격멸하려는 것이 조선중기 여진족과의 전투양상이었습니다.
님이 실망했다고 쓴글이 지워진것 같은데.
진법에 대한 구성을 알려 줄수 았음요?
@@user-bz3rc3lz1x 무슨 실망이고 뭘 삭제했다는건지 모르겠네요. 그런 댓글 단 바 없습니다.
@@user-kd7fu7qI5z
없다뇨 ㅋㅋㅋ
지금 다른분하고 계속 쓸데없는 글을 논쟁 중이 잖아요 ㅋㅋㅋ
@@user-bz3rc3lz1x 실망어쩌고 한 댓글 단 바 없습니다.
@@user-kd7fu7qI5z
ㅈㅅ...
태그를 잘 못봄...
아...군사기록은 왜이렇게 없는지 ㅠ.ㅠ
흥선대원군이 정도전을 복권시켜줬습니다.
고종때이긴하지만 고종이한것은 아닙니다.
주말야동 토크멘터리 전쟁사~
허긴 진법 지금도 생각해보면 사단 군단 3각편제에 기동로 확보와 보호 무기만 바뀐거지 방식이 바뀐건 아니구나
조선의 세율은 1할 정도였다 하죠.당시의 다른나라들은3~4할 정도였다고 하고요.조선 초기와 말기는 다른나라라고 보셔도 됩니다.의외로 조선 초기엔 국력도 쎈편이었구요.뭐 하면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중국에서 견제 할 정도로요.조선이 워낙 털린 역사가 많아서 은근히 무시하는데 조선 초기엔 확살하게 강국이었습니다.재정좋고 군사 강하고.
음 어느나라 어떤 정권에서도 역성혁명이나 새로운 나라 새울때 세율을 낮춥니다 그 이유인즉슨 민심을 잡기 위해서인데
이성계는 조선 건국시 고려왕들을 죽인것도 모잘라서 나라에서 최고로 추앙받던 정몽주와 최영을 죽이죠 민심은 바닥을 쳤고 그 걸 회복할려고 세율을 내립겁니다
물론 다른나라 왕조들도 내렷다가 올릴때 조선은 애당초 왕들도 검소한 나라엿고 초장기때는 백성들 착취 부정부패등을 엄하게 처벌하엿기에 그 세율이 내려간게 오래간거였죠
나라의 재정이 가장 많이 소모되는게 첫번째가 전쟁
두번째가 대규모 토목공사입니다
그리고 고려말 부정부패와 요동정벌등 무리한 재정소모로 이미 국고는 바닥나잇어서 조선초기에 관리들 녹봉이 어마무시하게 작고 궁궐도 작게 지어서 그나마 어느정도 채워놓은거에요
그나라의 재정상태를 알고싶으면 전쟁시 병력동원규모를 보면 알수잇습니다
조선초기에 만명넘어가는 군사를 동원한건 딱 두번있엇죠 대마도와 여진정벌
어느 책에서 보니 저 2번하고나니 한동안 재정이 안좋앗엇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군사력이라
태조때는 군사력이 강한건 사실입니다
군사들 대부분이 역전의 용사들이엿으니
하지만 태종때부터는 여진이 슬슬기어나오더만
곧잘 털립니다 그래서 빡쳐서 정벌햇던거엿구요
그리고 중국의 견제라.. 중국은 당시 주변나라 조선 일본 몽골 토번 인도 베트남 타이 다 견제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때는 원나라의 후신인 북원이 명나라내내 괴롭히고 심지어 황제까지 포로로 잡혀버리는 일이 발생하는데
게다가 조선이랑까지 손잡으면 골치아프게 되어버리고
하니 견제를 햇던거죠
조선이 아무리 강력해진들 명나라가 병력우르르 끌고나오면 조선은 순식간에 순삭됩니다
조선이 약하진않앗으나 강하지도않앗어요
음~영상 제대로 안보고 사는 것들이 많은듯~
1편만 봐도 조선은 세금이 없는 나라라고 분명히 나오는데 세금이 어쩌고 저쩌고....
이런것들이 품평을 하니 갑자기 조선이 막 불쌍해지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user-ni5bo3nr5q 세금이 적은 나라엿지 없는 나라라 안그랫음 ^^ 듣기 평가를 못하나 이런것이랑 같은 하늘아래 사는 사람이 불쌍해지네 ㅋㅋㅋㅋ 세금 없는나라가 어캐잇니 ㅋㅋㅋㅋㅋ 조선초기록만 해도 세금 옮기는 배 조운선이 털렷네 어쩌네 기록이 나오는데 ㅋㅋㅋㅋ
@@younglocks0704
1편 다시 보고와~
@@user-ni5bo3nr5q 응 임용한 박사가 "조선초는 세금이 낮았어요 다른국가에서 번거에 50프로를 걷어갓으면 조선은 10~20수준이였어요 그래서 경복궁도 간소하게 짓고 관리들 녹봉은 정말 거의없는수준이였어요 그래서 관리들이 나중에 먹고 살기 힘드니 세금올리고 갈취하고 햿던 원인이되었어요"라고 했다 멍청아 물론 너말대로 임용한 교수가 없다했을순잇겟지만 적은수준을 표현할라고 쓴말일테고 그리고 그리 말했다해도 팩트 체킹을 해야지 ㅋㅋㅋㅋ
나라에서 군사들 먹일 쌀은 하늘에서 뚝떨어지냐 ㅋㅋㅋㅋㅋㅋ
화포나 화약은 뚝 떨어져? 군선은?ㅋㅋㅋㅋ 그런거 다 세금으로 하는거야 어휴 ㅋㅋㅋ 기초상식이없는놈이 누굴 지적질해 ㅋ
6:10 샤를 기자님의 취미
천하게 생각했으니 기록을 안남겼겠지.. 지금와서 조선도자기 고려청자 어쩌고하지만 그당시 도공중에 이름남아있는사람 하나라도 있나? 정작 일본끌려간 도공들은 이름도 남고 사당도 세워줬던데
그래서 조선으로 안돌아 도공이 꽤 되었다조 ㅎㅎ
물건은 귀히 여기면서, 정작 그거 만든 사람은 막대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