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저산_사철가_사시풍경( 동초 김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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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26. 10. 2020
  • 이산저산_사철가[四節歌]
    동초 김연수 명창(1907 ~ 1974. 3. 9), 고수: 이정업 명인
    이산 저산 꽃이 피면 삼림풍경(森林風景) 너른 곳
    만자천홍(萬紫千紅) 그림병풍 앵가접무(鶯歌蝶舞) 좋은 풍류
    세월 간줄을 모르게 되니 분명코 봄일러라.
    봄은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더라.
    나도 어제는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네.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한들 쓸 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네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 승화시라
    옛부터 일렀으니, 작반등산(作伴登山) 탁족(濯足)놀이며
    피서임천(臨川)에 목욕구경
    여름이 가고 가을이된들 또한 경개 없을 손가
    상엽홍어 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라 중양추색 용산음(重陽秋色龍山飮)과
    한로상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잖는 황국단풍은 어떠허며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면 낙목한천 찬바람에
    천산비조 끊어지고 만경인종 없어질적
    백설이 펄펄 휘날리면 월백 설백 천지백 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일레라.
    그렁저렁 겨울이 가면
    어느덧 또하나 연세는 더 허는디
    봄은 찾아 왔다고 즐기더라.
    봄은 갔다가 연년이 오건만
    이내 청춘은 한 번 가고 다시 올 줄을 모르는가.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인생이 비록 백년을 산대도
    인수순약격석화(人壽瞬若擊石火)요 공수래 공수거를
    짐작허시는 이가 몇몇인고
    노세, 젊어 놀아, 늙어지면은 못노나니라.
    놀아도 너무 허망이 허면 늙어지면서 후회되리니
    바쁠 때 일하고 한가할 때 틈타서
    좋은 승지도 구경하며 할 일을 하면서 놀아보자.
    아래는 이 곡의 원래 창시자인 김연수 명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드라마틱한 녹음 당시의 상황을 정리한 것인데 읽어볼 만 합니다.
    =-=-=-=-=-=-=-=-=-=-=-=-=-=
    50∼60년대의 판소리계를 석권하던 김연수 명창이 지어 부른 단가, 사철가의 내용입니다. 사계절을 주제로 한 음악 하면 으레 우리는 비발디의 악곡 사계를 연상하지, 여기 김연수의 노래를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지요.
    아니 김연수의 사철가를 떠올리기는커녕 사철가라는 우리의 노래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게 우리의 실정입니다. 얼른 생각해 보아도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비단 외국의 예만이 아니라 우리의 시가(詩歌) 중에도 사계절을 읊조린 작품이 적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김연수 명창의 사철가는 인생론적인 애상을 짙게 풍겨 주어 단연 우리의 심금을 적셔 주는 엄지의 위치에 선다고 합니다. 창해일속(滄海一粟)과 같은 인생은 비록 백 년을 산다고 해도 영원한 세월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석화(擊石火)의 순간,
    즉 번쩍이는 부싯돌의 순간과 같다고 전제하면서 계속 인생행로의 덧없음을 노래해 가는 저의는 인생을 허무주의적 페이소스로 체험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월백설백(月白雪白) 천지백(天地白)하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라고 자탄한 사설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사철가는 인생과 자연의 관조적 합일을 바탕으로 우리의 숙명적 유한성을 담담하게 객관화한 데 더욱 공감되는 감흥이 있습니다.
    이 같은 애상적 *포에지가 김연수 특유의 구성진 음악적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면서 한결 적절한 비애미를 짜 내고 있는 노래가 곧 사철가입니다. (*포에지 poésie : 시(詩)의 세계가 갖는 정취)
    사실 단가 사철가는 김연수의 '백조의 노래'입니다. 백조가 죽을 때는 마지막 노래를 남긴다는 전설처럼 김연수 명창은 죽기 전 이 사철가를 세상에 남겼습니다. 그가 작고하기 얼마 전 당시 동양 방송 PD로 근무하던 필자는 김연수 명창을 모시고 방송 녹음을 했습니다.
    그때 그가 고수 이정업의 반주로 판소리 몇 대목과 함께 불러 준 노래가 사철가입니다. 오랜만에 녹음하러 온 그의 모습은 다른 때와는 달리 초췌했습니다. 녹음이 끝난 후 그는 전에 없던 주문을 해 왔습니다. 방금 녹음한 사철가를 조용히 다시 들어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녹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쁘다고 총총히 돌아가던 여느 때에 비하면 이변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조용한 사무실 한구석에 녹음기를 틀어 놓고 방금 녹음한 사철가를 육중한 침묵과 함께 들었습니다. 사무실의 창살에는 희뿌연 석양이 쏟아지고 방송국 옆을 지나는 서소문 길 공항로에는 부질없이 분주하게 차량들이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이 비록 백 년을 산대도 인수순약 격석화요, 공수래 공수거를 짐작하시는 이가 몇몇인가'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예 명창의 눈은 지그시 감겼고, 병색으로 창백해진 표정에는 깊은 우수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철가가 끝나자 두 명인의 콤비는 말도 없이 사무실 문을 나섰습니다.
    얼마 후에 김연수 명창은 유명을 달리했고, 명창이 작고한 그 다음해에 당대의 명 고수 이정업 옹 역시 '저승에 가서도 북 반주를 해 달라'던 명창의 권을 좇아서인지 끝내 타계하고 말았습니다.
    사철가의 노래가 더욱 우수의 정념을 더해 주는 것은 바로 이처럼 '김연수 명창의 백조의 노래'였다는 간절한 사연이 묻어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명희(전 국립국악원장)

Komentáře • 23

  • @user-ru4vl8vs2h
    @user-ru4vl8vs2h Před 6 měsíci

    동초 김연수 국창님
    듣고나면 인생 무상함과 사계절을통해 희노애락 깊은 소리
    공경합니다 김연수국창님
    소리의힘 대단한
    어르신입니다

  • @user-ep7nb2ff3f
    @user-ep7nb2ff3f Před 3 lety +5

    훌륭한 사계절 에 인생살이가 철철 묻어 듣노라니 저절로 어깨춤이 덩실덩실 찐짱 짱 👍

    • @mgonee
      @mgonee  Před 3 lety

      예. 사철가는 자꾸 들어도 질리지가 않고, 오히려 깊은 맛이 더 우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 @user-zw7cs1bv5z
    @user-zw7cs1bv5z Před 3 lety +8

    정말 힘 있으면서도 내면 깊이 인생의 맛이 녹아있는 목소리입니다 처음으로 김연수선샘 목소리를 집중해서 들어보네요

    • @mgonee
      @mgonee  Před 3 lety +2

      예. 다른 분들의 사철가를 여럿 들어 보았지만, 김연수 선생님의 사철가를 최고로 생각합니다.

    • @user-zw7cs1bv5z
      @user-zw7cs1bv5z Před 3 lety +1

      @@mgonee
      맞습니다 사철가 좋아해서 여러 명창들의 노래로 들었는데 김선생님 사철가가 확실히 ᆢ

    • @user-lr8zx7mb6q
      @user-lr8zx7mb6q Před 8 měsíci

      너무 정확한 소릿가락은 한편으로는 범접하기 어려워지는 난점이 있기도 하네요

  • @Drowingmind
    @Drowingmind Před 2 lety +3

    동초선생님 소리를 들어보다니.. 최고입니다♥♥♥♥♥♥♥♥♥

  • @user-oy9dv7gl3g
    @user-oy9dv7gl3g Před 2 lety +2

    알고 있던 가사랑 또 다르네요.
    동초 선생님 소리가 힘이 넘치고, 좋으십니다.
    감사합니다.

  • @Lotuswhite2911
    @Lotuswhite2911 Před 3 lety +3

    wonderfull~

  • @user-ml6fc9gi3g
    @user-ml6fc9gi3g Před 2 lety +1

    참말로 힘있는 소리가 감동을 줍니다.

  • @sojourner6699
    @sojourner6699 Před 3 lety +4

    너무 좋습니다. 눈물이 다 나네요.

    • @mgonee
      @mgonee  Před 3 lety +2

      애써 영상 만들어 올린 보람 있네요. ^^

  • @user-hf4lf5pb9e
    @user-hf4lf5pb9e Před rokem

    귀한사철가을접하게해주셔감사합니다

  • @user-mg8uu8in9c
    @user-mg8uu8in9c Před rokem

    와우~~ 우리소리란 이런 맛이군요!!

  • @user-yd7sl8rv2g
    @user-yd7sl8rv2g Před 2 lety +2

  • @joe2412
    @joe2412 Před 3 lety +1

    7빠

  • @user-tl6rd9hr6n
    @user-tl6rd9hr6n Před rokem

    金 演 洙 :
    1907(융희 1年)∼1974年. 호(號)는 동초(東超). 전라남도 고흥 출신으로 14세까지 한학(漢學)을 수학하고 고흥보통심상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상경하여 중동중학교(中東中學校)에서 수학하였고, 졸업 후 고향 고흥에서 농삿일에 전념하던 중 판소리에 흥미를 느껴 축음기로 7년간 독학(獨學)하였다.
    그 뒤 당시 순천군수 집에 머물고 있던 명창 유성준(劉聖俊)으로부터 「수궁가」전편을 배웠고, 상경하여 송만갑(宋萬甲)에게서 「흥보가」와 「심청가」 전편을, 정정열(丁貞烈)로부터 「적벽가」·「춘향가」 전편을 배웠다.
    1935년 조선성악연구회 (朝鮮聲樂硏究會)에 가입하였고, 1937년에는 이사로 선임되었으며, 조선창극좌(朝鮮唱劇座) 대표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일본 빅타레코드사 에서 판소리 다섯마당 중 중요 대목을 30여 매의 음반에 담았다. 1940년 조선창극단 설립을 비롯, 1945년 김연수창극단, 1950년 우리국악단을 설립하였으며, 1957년 대한국악원장을 거쳐 1962년 초대국립창극단 단장에 임명되었다.
    「심청가」·「적벽가」에 뛰어났으며 창극 「심청가」의 심봉사역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는 판소리계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지식인으로 판소리 노랫말의 잘못을 고쳐 이면과 표현이 정확하고, 격조에 맞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판소리 노랫말 정리에 힘썼다.
    그리하여 정확한 장단과 주석을 붙인『창본 춘향가』가 1967년 출판되었고, 죽은 뒤 1974년에 문화재관리국에 의하여 『김연수 창본唱本』이라는 이름으로 「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가 출판되었다. 1964년 되었다.
    1959년 국악공로상, 1966년 제5회 공보부 국악상, 1968년 국악공로상(국무총리상), 1972년 국민포장을 수상하였다.
    그의 제자로는 성순종(成順鍾)·김동준(金東俊)·오정숙(吳貞淑)·박봉선(朴奉仙)·박옥진(朴玉珍) 등이 있으며, 그 중 한농선(韓弄仙)에 의하여 「수궁가」와 「심청가」가 전해지고, 성창순(成昌順)에 의해 「심청가」가 전해지고 있다.

  • @user-qo5cq4pu1j
    @user-qo5cq4pu1j Před 2 lety +1

    음감이 있으면 동초선생님 사철가는 우리소리 끝입니다.
    소리도 소리지만, 내용이 기가막히게 인생의 사철을 노래합니다...

  • @user-lr8zx7mb6q
    @user-lr8zx7mb6q Před 8 měsíci

    김연수 선생은 정신 차리고 들어야..... 지금 막걸리 먹고 있는데....

  • @user-im7uq8su4u
    @user-im7uq8su4u Před 2 lety +5

    지금 판소리 하는 사람들 반성 많이 해야 합니다. 이상하게 부르는 사람들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