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 2강 인간의 죄보다 큰 은혜 | 조정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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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21. 08. 2024
  • ✍ 강의노트
    0:00 도입(Intro) 은혜의 삶으로
    죄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묵상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런 삶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죄의 심각성을 모르면 예수님을 이해할 길이 없다. 예수님이 끌어안고 죽은 죄의 본질은 무엇인가? 옳고 그르고를 판단하는 버릇, 습관, 사고체계, 삶의 방식 그걸 모두 다 끌어안고 죽었다는 것.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옳고 그르고의 판단으로부터 자유해져야 된다. 죄를 주님께서 해결해 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나를 판단자의 입장으로 끌고가지 않는 게 구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묻기로 작정하면 우리는 살아남을 자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은혜를 선포하셨다. 은혜의 삶으로 접어들어야 우리의 신앙은 참다운 길로 접어든다. 여전히 죄인.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품어주고 있다’라는 이 사실을 우라가 기억하기 때문에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간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주고 또 줄 뿐. 그러니까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왔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 하나도 하나님께 열납 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게 은혜의 공식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것.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로부터 영원히 계속해서 반복해서 우리를 새롭게 하고 우리를 채워주시는 사건이다. 영생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부터 영생을 살기 시작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옯겼고 이 모든 것들이 값없이 공로 없이 내 노력 없이 이루어진 이 은혜의 사건을 날마다 기억하고 찬양하고 그리고 전하고 노래하며 사는 것이다.
    2:14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 강의의 주제는 ‘죄와 은혜’이다. 첫 번째 강의에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Meta religion , No milage) 생명으로 사랑으로 경험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8)
    사랑은 놀라운 능력, 생명... 하나님이 그 생명을 값없이 주신 것을 복음이라고 하였고 그 생명을 우리가 받을 때 은혜로 받는 다고 하는 것이다. 그 은혜로 받은 생명이 오기 위해서는 장벽이 제거 되어야 하는데 그 장벽을 ‘죄’라고 부른다. 죄의 장벽이 걷혀야 생명을 받는다.
    죄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원죄란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된 상태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인데 나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하는 태도를 ‘죄’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 죄인인가? 그렇다. 당사자로서는 기분 나쁘더라도 사실이다. 위로가 있다면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이다. 다만 용서받은 것을 아는 죄인과 아직 용서받지 않은 죄인,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죄인이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속 세상이 전부인 죄인들은 동굴 밖 세상을 알지 못한다. 동굴 밖을 경험한 전도자가 아무리 알려주어도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만으로 삶의 지평이 달라지고 이렇게 자유로워지는데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같아지려고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실낙원하게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처럼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7)
    그런데,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죽지 않고 900세가 넘게 오래 살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영적인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영적인 죽음을 가져오는 행위(=아버지를 부인하는 것)을 ‘죄’라고 하는 것이다.
    조목사와 아들과의 관계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관계이다. 나무가 아무리 잎이 생생해도 밑둥이 잘려지면 죽은 것이다. 횟집 수조의 생선은 이미 죽은 것이다.
    9:56 끊어진 관계를 연결하는 것을 ‘은혜“라고 한다.
    끊어진 관계를 다시 연결하는 것을 은혜라고 한다. 구원이란 생명을 되찾는 것. 관계를 회복하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질 때 이루어지는 일 - 아들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간증
    하나님과의 관계(수직)가 회복되어야 사람들 간의 관계(수평)도 회복 된다. 밸런스(균형)가 생기는 것.
    하나님이 우리가 그럴 수 있도록 베풀어주시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인데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을 ‘은혜(Grace)’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하신다. 스스로를 증거 하신다.
    - 보스턴 신학교 시절 받은 은혜의 간증 : 고난 중 베풀어주신 세밀한 손길. 특히 추어탕으로 은혜를 보여주신 하나님
    은혜란 자격 없는 자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호의이다. 그 일방적인 호의(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기절할 만한 일이 생긴다.
    22:03 We are saved by Grace through faith
    죄를 해결할 만한 것은 없지만, 예수님이 내 죄의 값을 치루셨다는 것을 믿기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믿음을 통해서 구원은 온다.
    We are saved by Grace through faith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2:8)
    그 믿음과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 세상에서의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 가성비가 아닌 하나님의 무제한에 접속된 영원과 무한의 삶으로 자유로 가는 길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 나이들어 목사의 길을 가며 아내가 받은 은혜. 구원받고 은혜가 오면 생기는 역발상.
    은혜가 고통을 면제해주지 않는다. 더 큰 고통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더더 큰 은혜가 온다.
    진짜 사랑하면 자녀를 쉽게 돈으로 키우지 않는다. 고생을 통해 훈육한다. - 아들을 훈련시키는 큰 식당사장의 훈육. 하나님은 값싸게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사랑보다 더 큰 은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은혜를 소개하기 위해..
    29:48 죄의 문제는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but 은혜가 오면 감사가 온다.
    은혜를 받으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인간은 스스로 해결할 길이 없다. 인간은 뼛속 깊이 자기중심적이다. 언론 생활 하며 깨달은 인간의 두 가지 말은 남욕하기, 자기자랑 : 뼛 속깊이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감사가 없다. - 신앙을 받아들인 어머니의 감사
    은혜가 오면 감사가 온다. 불만족한 조건이 기억나지 않는다.
    시편 23편 (왕의 지명수배자로 쫓겨 다니던 다윗의 시)
    아름다운 시, 여기에 신앙의 모든 비밀이 다 들어있다.
    죄 문제만 해결되면 하나님이 내게 다가오시기만 하게 되면 다 이루어진다.
    신앙이 주는 굉장한 변화, 순교할 만큼 좋아지는 것. 사랑으로 결단하고 헌신할 뿐
    은혜가 오면 족쇄, 편견, 선입견 율법 제한 으로부터 온전히 풀려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SIN: Self-interest Nature 자기 사랑이 곧 죄다
    죄인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어른이 될 수 없다.
    38:58 구원은 자기밖에 모르는 천박한 삶의 기준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이다.
    구원이란 자아, 자아중독, 자기밖에 모르는 천박한 삶의 기준으로부터 가벼운 쾌락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이다.
    삶의 격을 높이기 위해서 인간의 고결한 본성을 되찾기 위하여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다. 그 분 안에서 우리는 정결함을 얻게 된다. 사도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 죽이러 다니던 사람이었으나 예수를 만나고 나니 ‘죄인 중 괴수’ 라고 스스로를 고백하게 되었다. 예수라는 빛이 들어오면 죄가 보이기 시작한다.
    예수님이 사랑으로 덮어주고 가려주니까, 그 은혜를 누리기 시작하니 사랑의 빚진 자가 되니 세상 어떤 성취보다 좋다. 이 좋은 것을 어떻게 소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기쁨의 맛을 보고 이 기쁨의 격을 알게 되면 어떻게 소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은혜를 내가 먼저 차고 넘치게 누려야 하는 것이다. 내 잔이 차고 넘치나이다. My cup overflows!!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좋아하신다. 우리와 일대일의 인격적 관계로 만나기를 원하신다.
    이 진짜를 한 번 맛보면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48:22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신앙으로 살아가야 한다.
    신앙은 하루분이다.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신앙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그 분 앞에서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신앙을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는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신앙이라고 한다.
    세상은 온통 위선(죄의 특성-가리는 것)이지만 신앙은, 은혜를 받게 되면 진실해진다.
    이런 은혜를 받게 되시길 소망한다.
    은혜를 받게 되면 공감능력이 생긴다. 타인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진짜 사람이 된다.
    은혜 받은 사람, 죄를 용서 받은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특징.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15)
    남의 기쁨까지 내 기쁨으로 느끼면 세상은 기쁨으로 가득해진다. 큰 공동체가 되는 것.
    세상의 모든 이들이 얼굴의 모자이크가 되면 예수의 얼굴이 되는 그림이 있다.
    아버지를 모른는 예수님의 자녀들에게 먼저 아버지를 인식한 사람들이 이 은혜를 삶으로 증언해야 하는 것.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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