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보고드림] 조선 의병이 관군보다 일본군보다 더 강했던 이유 feat 곽재우 고경명 김덕령 조헌 영규 정인홍 김천일 김면 이정암 휴정 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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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2. 04. 2024
  • 그들은 특권층이었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천한 것들이나 하는 짓이고 그들은 우아하게 공자왈 맹자왈만 읊으면 되었습니다.
    병역의무도 없었습니다. 그런 건 천한 백성들의 몫이었지요.
    그들은 조선시대 양반이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받는 각종 특혜에 다양한 권리를 누리며 벼슬을 얻고 땅을 늘리고 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귀족은 의무를 진다는 프랑스어 표현입니다.
    평소에는 대우받으며 우아하게 사는 귀족도 전쟁이 나는 등 나라가 위태로워지면 목숨 걸고 싸워 백성을 지키는 것이, 귀족의 의무이자 권리이며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양반들은 나라에 위기가 오면 과연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을까요?
    1592년 4월 13일(음력) 임진왜란이 터졌습니다.
    조선의 국방력은 막강하다고 믿었습니다. 수백만 군사의 수나라를 막아냈고 그 강력했던 당나라도 물리쳤던 고구려의 후예였습니다. 세계 최강 몽골군에게도 굴복하지 않았던 고려의 후예였습니다.
    거기에 최무선의 화약개발, 세종대왕의 화포개발로 무기도 강력했습니다.
    그깟 노략질이나 일삼던 일본따위야 한방에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본군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먼저 부산을 장악하더니
    이후부터는 관군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으며 수도 한양을 단 20일 만에 무혈입성하였습니다.
    양반들은 달아나기 바빴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개뿔... 달리기 하나는 백성들보다 더 잘했습니다.
    장수들도 그랬습니다.
    육지를 지키는 자는 멀쩡한 성과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고, 바다를 지키는 자는 멀쩡한 함선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공자왈 맹자왈을 우아하게 떠들던 양반들은 전국시대(1467~1573)100년이 넘도록 단련된 일본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정복하는 것은 당연하고 문제는 어떻게 명나라를 집어삼킬 것인가를 고민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에는 의병이 있었습니다.

Komentáře • 537

  • @user-rb6zr6uh7s
    @user-rb6zr6uh7s Před 3 měsíci +16

    서민은 이민도 도망도 못간다 가고 싶어도 돈이 없다 가족을 지킬려면 직접 싸우는 방법 뿐이다 간절한것 뿐이다
    지금도 가장 간절한것은 국민이다

  • @oe1118
    @oe1118 Před 2 měsíci +36

    지금도 마찬가지. 병역면제자가 대똥, 국개의원이 되는 세상. 어떤 사유이든 병역면제자는 공직자가 되면 안됩니다.

    • @lis9937
      @lis9937 Před 2 měsíci +4

      당연한 말씀입니다.

  • @cjsshql
    @cjsshql Před 2 měsíci +16

    옜날이나. 지금이나 나라 살리는건. 국민들이네.

  • @batuu2601
    @batuu2601 Před 3 měsíci +103

    선조가 의병 토사구팽해서
    병자호란때는 의병에 적극 가담하지 않음

    • @roaringlion9083
      @roaringlion9083 Před 3 měsíci

      의병 토사구팽한적 없음
      오히려 대부분의 의병장들이 전직 관료내지 재지사족들이라 시간이 지나면 관직 내려주고 관군으로 재편입시킴(애초 의병진의 병력 자체가 대부분 정상적인 체제였으면 관군으로 소집되었을 인적자원이었음)
      선조가 죽인건 김덕령이랑 이산겸뿐인데 이 인물들은 죄다 역모에 연루된 케이스임
      진짜 했냐가 문제가 아니라 전근대 시대에 한번도 아니라 여러차례 역모세력의 입에 오르내렸다는건 상당히 큰문제임
      김덕령은 한번도 아닌 대형역모에 두번이나 이름이 거론되었던 케이스고 더 큰문제는 이산겸과 김덕령 둘은 제대로 된 전공이 하나도 없다는데 있음
      역모세력이 이름 거론한 나머지 유명 의병장들은 전공도 뚜렷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선조도 처벌하지 않음
      병자년에도 여러 의병사례가 있고 임진왜란과 달리 그 숫자가 적어보이는건 청군의 기동전략에 조선정부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항복했기 때문에 의병이 일어나고 자시고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임

    • @zzang-mathis
      @zzang-mathis Před 3 měsíci +10

      의병장 누구를 토사구팽했나요?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 단 한명도 없고 대부분의 의병장들 관군 체제나 중앙 관직 받으면서 이후에도 크게 활약하거나 재야의 명사로 천수 누렸습니다
      그리고 병자호란은 의병이 활약할 여지가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전쟁 개시 일주일만에 왕이 포위되었고 모든 전쟁이 근왕으로 목표가 정해져 버린 상황에서 어떻게 의병이 활약합니까

    • @user-vl5cz5rn4g
      @user-vl5cz5rn4g Před 3 měsíci +1

      ​@@zzang-mathis의병장 이산겸. 김덕령. 선조에 의해 죽임을 당함.

    • @batuu2601
      @batuu2601 Před 3 měsíci +10

      @@zzang-mathis 김덕령 곽재우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Před 3 měsíci

      ​​​@@zzang-mathis
      참고로 의병장만이 아닌
      이순신이나 당시 공군을 세운 장수들이 찬밥 신세죠
      호종공신, 선무공신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박진이 명나라 장수에게 대접이 소홀하단 이유로 맞아 죽어도
      박진이 무례하다 라며 명나라 장수를 두둔한일도
      한창 전쟁때 안그래도 바쁜데 지 권력 챙기겠다고
      분조로 나뉘어 열일중인 세자 견제하겠다고
      선위쇼를 하는것도 그렇고

  • @user-lk1ib9uw9m
    @user-lk1ib9uw9m Před 3 měsíci +33

    나라에 바라는것 없이
    싸웠던 의병이였지만
    핍박받는것을
    바라는것은 아니였다는 ㅠㅠ

  • @dsk3038
    @dsk3038 Před 3 měsíci +77

    의병 의병장에 대한 보상과 대우를 해줬다면..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지않았겠죠..
    풍신수길도 침공전 미리 간자들을 풀어 훈련상태 병력 민심등을 알아보고..
    자신들이 항상 그랬듯..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면 알아서 굴복하고 조선왕에 대항할것이라는 착각을 일으켰지요..

  • @user-byuljeonnam
    @user-byuljeonnam Před 3 měsíci +143

    조선은 임진왜란, 적어도 호란 끝나고 왕조가 교체되는게 맞았음. 전란을 겪어도 지배층이 반성없고 뻔뻔하기 이를데 없으니...

    • @jpark5828
      @jpark5828 Před 3 měsíci

      진작 망했어야 할 조선

    • @user-hl7vb6jh6z
      @user-hl7vb6jh6z Před 2 měsíci

      6.25처럼??

    • @user-nr9pr3wc2m
      @user-nr9pr3wc2m Před 2 měsíci

      지금도 뭐 ㅎㅎ

    • @joongj8282
      @joongj8282 Před 2 měsíci

      애초에 성리학을 주류로 삼은게 잘못됬다고봄
      아니면 유교탈래반인 전국의 서원들의 세력인 사림이 못컷어야함..서원철폐를. 진작했어야
      조선을 말아 먹은것은 사실 인조와 사림들이라고봄

    • @user-uy4od1pf2y
      @user-uy4od1pf2y Před 2 měsíci

      그렇진 않죠 단편적인 일반화의 오류라 이를 수 있겠습니당

  • @user-nk5jn7ov8m
    @user-nk5jn7ov8m Před 3 měsíci +14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인이 양아치라는건 똑 같네

  • @user-mw5od1hu5c
    @user-mw5od1hu5c Před 3 měsíci +38

    그러다가 일본한테 나라가 넘어갔지...이세상에 영원한건 없지요...양지가 음지되고 음지가 양지되고...미국도 언젠가 영국 되는날 오지요...요샌 이양반 저양반 양반이 욕이 되어버린 세상이지요

    • @jhshin9413
      @jhshin9413 Před 3 měsíci +4

      영국은 아일랜드보다 경제능력이 약하고 미국하고는 국력과 경제력에서 비교사 안됩니다.
      브렉시트로 결식어린이가 많아서
      유니세프 지원받는 나라.

    • @6sinegohwan336
      @6sinegohwan336 Před 3 měsíci +2

      미국은 땅이 너무 사기라서... 오려나..?

    • @jy7213
      @jy7213 Před 2 měsíci

      로마제국, 그리스 제국, 포르투갈 제국, 스페인제국, 몽고제국, 오토만 제국, 프랑스제국, 네덜란드 제국, 대영제국, 일본제국, 나치 독일 ..... 공통점은 새 영토를 정복하고 식민지를 운영해서 흥했고 군사력이 약해지고 영토를 빼앗기면서 쇠퇴한 겁니다. 미국이 영토를 빼앗길 일 있나요? ㅋㅋㅋ 식량은 넘치고 석유 천연가스 광물 등 자원도 넘치고 인재는 세계에서 계속 모여들고 인구는 꾸준히 성장하고 과학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군사력도 아무도 넘볼 수 없고 NATO, 일본, 한국, 호주 등을 동맹으로 가진 나라인데?

  • @user-oi8qd6of4p
    @user-oi8qd6of4p Před 3 měsíci +83

    북관대첩을 승리로 이끌어 가토기요마사를 물리치신 의병장 정문부장군의 12대손입니다
    오늘 영상은 가슴에 울림이 있습니다
    영상을 보다가 울컥하는 마음이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 @kingjaekyu
      @kingjaekyu Před 3 měsíci +6

      가토를 얼려서 죽일뻔한 정문부 장군요? 대단합니다

    • @sukyoung1111
      @sukyoung1111 Před 3 měsíci +2

      저는 울었습니다ㅜㅜ 대단하십니다!

    • @user-go6by9cc1m
      @user-go6by9cc1m Před 3 měsíci +2

      멋지십니다 크ㅡ 존경받아 마땅한

    • @user-kw2wl4jj9g
      @user-kw2wl4jj9g Před 3 měsíci

      쿨럭~~ 가토 기요마사요? 그 흉악한 인간을요?
      대단하십니다.

    • @user-nb5lm2vl
      @user-nb5lm2vl Před 3 měsíci +2

      정문부 장군은 그냥 위대하신분이 아님 친일파 흡수및 척살하고 여진족을 물리치고 왜군 8천을 전략 전술로 물리침 통솔 과 전략으로는 이순신과 비견됨

  • @user-yu1co6ll2u
    @user-yu1co6ll2u Před 3 měsíci +10

    현실적으로 의병은 지방 양반이 자기집 노비를 데리고 나가서 싸운 것이었습니다

    • @seok720429
      @seok720429 Před 3 měsíci +1

      그래서 곽재우도 재산을 탕진했죠

  • @js2850
    @js2850 Před 3 měsíci +12

    만약 조선이라는 의병에 대한 대우가 문제였지만 그것이 오늘 날 625 참전 용사에게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프네요....ㅠㅠ 정말 우리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시고 목숨까지 바치신 분들을 생각하게 하네요

  • @user-rk9kl8lc9h
    @user-rk9kl8lc9h Před 3 měsíci +103

    김덕령은 너무 불쌍합니다

    • @user-ww9tk9hp4o
      @user-ww9tk9hp4o Před 3 měsíci +26

      드라마 (징비록)에서 김덕령(조인표)배우가 민란에 관련돼서 고문을 받으면서 했던말이 (내 장부로 태어나서 일본군을 많이 못죽인게 죄)라고 했을때 슬프면서 무능한 전쟁이후 (재조지은)이나 외치는 무능한 조선정부 원망 많이 했어요😢

    • @j.c.s7762
      @j.c.s7762 Před 3 měsíci +8

      사실 선조는 김덕령을 살리고싶어했죠 서인들이 공격하는 입장이고 동인이 비호하는 입장인데 동인의 영수인 류성룡이 구명에 나섰다면 살았을수도 있는데 류성룡조차 죄를 물어야한다고하니 비호해야할 동인전체가 입다물고 있다가 못버티고 사망 ㄷㄷ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Před 3 měsíci +8

      ​@@j.c.s7762
      친히 국문을 한게 그 졸군인데 살리려 했다니 말이 안되죠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Před 3 měsíci +8

      어디 김덕령뿐일까요

    • @j.c.s7762
      @j.c.s7762 Před 3 měsíci +1

      @@user-ol9gk8bt7e 조선왕조실록에 선조의 말이 나옵니다 찾아보세요

  • @user-jf2tg2vc7e
    @user-jf2tg2vc7e Před 3 měsíci +10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

  • @yaegereren8154
    @yaegereren8154 Před 3 měsíci +2

    오늘의 생활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kidultvideo1504
    @kidultvideo1504 Před 2 měsíci +3

    구독합니다.
    나레이션으로 선생님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 구독합니다. 😊

  • @user-xo6wq8wr3x
    @user-xo6wq8wr3x Před 3 měsíci +14

    잘볼께요^^ 조선의병이 임진왜란때에는 일본을 잘 막아내었습니다만 구한말때에는 일본에게 졌죠 의병들은 나중에 만주와 요동과 연해주로 건너가서 독립군들이 되었죠

    • @jy7213
      @jy7213 Před 2 měsíci

      청나라가 임오군란때 군대 끌고와서 조선에 상주시키면서 속국 관계를 공식 명문화하고 조선왕 지위는 청의 북양대신과 동급으로 정하고 청이 재판 관할권을 차지하고 주권과 외교권 박탈, 조선 대신들을 멋대로 갈아치우고 고종을 압박하여 미국 대통령에게 조선이 청에 조공을 바치는 속방이라는 '속방조회문'을 보내게 했죠. 청나라가 조선의 주권을 박탈한 것에 분노해서 일어난 의병 있었나요? 청이 유학파들을 귀국 즉시 속속 처형하며 조선의 개화를 막은 반면 일본은 개화를 많이 도와줬죠.

    • @jy7213
      @jy7213 Před 2 měsíci

      독립군은 1919년에 조직되어서 청산리 전투, 봉오동전투등에서 잠시 반짝하고 1921년 자유시 참변 후 사실상 소멸되었죠. 그후 만주에서 무장항일투쟁은 중국공산당 지휘로 일어난거고 중대규모 이하 작은 병력의 공산당 게릴라로 활동한거고. 1919-1921년 독립군도 공산주의를 위해 싸운 빨치산의 성격이 상당하다고 봅니다. 청산리 전투, 봉오동전투의 영웅들 홍범도,김좌진 등은 양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강도, 약탈, 살인등 수많은 만행으로 악명이 높았고 홍범도는 자신의 일기에 부자들을 이유도 없이 죽이고 재물을 빼앗은 것을 자랑스러운듯 자세히 기록해 놨습니다. 독립투사들 행위가 과장되고 미화된 부분이 많고요 물론 독립에도 전혀 기여하지 못했죠. 주로 정신승리에 도움된다 할까요. 일제시대때 이렇다한 반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죠. 인도에선 굵직한 반란이 다수 일어났는데.

    • @user-dx9oy9mp9g
      @user-dx9oy9mp9g Před 2 měsíci

      구한말때는 기관총이라는 무기가 있어서.... 의병과 정규군의 전투력 차이가 임진난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상태였습니다.

    • @jy7213
      @jy7213 Před 2 měsíci

      독립군은 1919년에 조직되어서 청산리 전투, 봉오동전투등에서 잠시 반짝하고 1921년 자유시 참변 후 사실상 소멸되었죠. 그후 만주에서 무장항일투쟁은 중국공산당 지휘로 일어난거고 중대규모 이하 작은 병력의 공산당 게릴라로 활동한거고. 1919-1921년 독립군도 공산주의를 위해 싸운 빨치산의 성격이 상당하다고 봅니다.

  • @user-fq2uz4bx8g
    @user-fq2uz4bx8g Před 3 měsíci +9

    4:09 초 세 의병장은 전주성 전투가 아닌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 @qwertzuiop5
    @qwertzuiop5 Před 3 měsíci +6

    지금도 변한게 없네요

  • @lightdark1188
    @lightdark1188 Před 3 měsíci +7

    조선은 세율이 낮았습니다.
    귀족연합의 고려보다 관료주의 조선이었으니까요
    백성은 귀족과 조정에 세를 주었던 고려보다
    조정에만 세를 납부하는 조선이 살기 수월했을겁니다.
    고려때만 해도 대략 70~80%를 세금으로 떼갔습니다.
    그러다 권문세족들이 몰락하자 이들에 대한 세금이 사라졌고
    오직 조정에만 세를 바치는 30%정도만 납부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죠
    일본은 여전히 봉건제 국가였고 70% 이상의 세를 납부했습니다.
    저라도 곡괭이 들고 일어났을거 같습니다.
    아무리
    조선이란 나라가 ㅈ까타도
    당시 일본 보단 덜 ㅈ깥았거든요

    • @seok720429
      @seok720429 Před 3 měsíci

      왜군들이 점령지의 조선백성들에게 특별히 50%의 세율을 적용해 주겠다고하니 백성들이 어리둥절 했다고하죠

    • @gomymi637
      @gomymi637 Před 2 měsíci +2

      당시 일본평민은 거의 농노수준였음. 이분말에 적극동의.문명도 당시조선이 전반적으로 우월해ㅛ음.

    • @gomymi637
      @gomymi637 Před 2 měsíci

      당시 일본평민은 거의 농노수준였음. 이분말에 적극동의.문명도 당시조선이 전반적으로 우월해ㅛ음.

    • @user-lv7xv6fc2u
      @user-lv7xv6fc2u Před měsícem

      세금을 수취하기전에, 먼저, 소득과 재산을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농업이 산업의 중심이었던 에도시대는, 그 조사를 '검지'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쌀의 수확량, 여타 작물의 수확등을 쌀가격으로 변환한 것을 합계하여 계산하였습니다.
      '코쿠다카'라는 단위로 표시하였습니다.
      현대의 농가는, 소득의 조사(신고)를 1년마다 행합니다. 그러나 에도시대는 제각각이었습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17세기 전반에 1회뿐이였던 지역도 많았습니다.
      즉, 에도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200년전의 마을의 수입과 재산을 근거로 과세된 지역이 많이 있었습니다.
      200년도 더 전의 수입의 40~50%라니, 꽤 가벼운 세금이지요.
      막부의 영지에서는 1700년경, 실질세율 28%
      1800년경에 20%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라이 하쿠세키는 실질세율을 약 28%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8대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와, 세액을 비율로 하지않고 정액으로 하는 '정면법'등을 시행하여, 연공징수의 증가를 목표로 하였으나,
      실질세율은 35%가 고작으로, 요시무네가 죽은 뒤에는, 다시 30% 이하로 내려갔습니다.
      논밭에 90%나 세금이 물려진 마을도 있었습니다만, 이 마을의 중심산업인 해운과 과수원은 무과세 대상이었습니다.
      (무사정권이 감세해주었다는것보다, 농민측이 산업을 바꾸어 절세(탈세?)한 것입니다.)
      당연히, 막부와 각 번들은, '검지'의 재실시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렇지만, '검지'를 반대하는 백성들의 봉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일단 한번 봉기가 일어나면, 마을을 관리하는 무사측의 책임자가 책임을 추궁당하거나,
      평판이 안좋아져 출세에 지장이 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검지'의 강행은 어려웠던 것입니다.
      18세기정도부터 현금수입을 추구하여, 농민들은 면화나 담배등 상품작물의 재배에 힘쓰게 됩니다.
      농민들은, 당연하게도 자신들의 상품작물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했습니다.
      이 상황을 눈치챈 각 번들은, 상품작물을 농민으로부터 강제적으로 값싸게 매입하여, 오사카등의 대도시에서 매매하여 번의 재정을 확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전매제'라고 합니다.
      당연히 이 '전매제'에 반대하는 봉기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유형의 봉기가 에도시대 후반에 일어났던 봉기중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부유한 농민은, 가난함을 강조하는 글쓰기를 어렸을때부터 연습하여, 어른이 되어서 마을의 대표가 되면, 그것을
      대관에게 제출하였습니다.
      대관도 거짓말인걸 알면서도, 봉기를 방지하는 것과, 자신의 평판문제때문에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문서가 후세에 전해져, '가난한 농민상'이란 이미지를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 외에 자생가능한 감자나 잡곡을 많이 심어서 저장해두면 기근등은 일어나지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현금수입을 추구하기때문에, 돈이 벌리지 않는 일은 기피하게되는 법입니다.
      츠가루의 기근은, 풍작을 예상해서 저장미를 팔아 큰돈을 벌었을때에, 시원한 여름이 찾아와서 식량부족이 되었습니다.
      농민은 금화를 쥐고 죽어갔습니다.
      카이의 기근은, 면화재배만으로 돈을 벌었지만, 면가격이 폭락하여 파산하여 굶어죽은 농민도 많았습니다.
      정치가 가혹했다라기보다는, 서투른 화폐경제, 시장경제에 말려든 비극이라고 해야되겠죠

  • @user-jx8yz5gn3e
    @user-jx8yz5gn3e Před 2 měsíci +2

    죽음을 알고도 나라를 위하는 조헌 영규
    누구는 어리석다 할수도 있지만 그런 행동을 할수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user-fw2hl5vc6n
    @user-fw2hl5vc6n Před 3 měsíci

    동기부여와 실전경험치.

  • @shalessandro
    @shalessandro Před 3 měsíci +26

    이 나라 한국은 국민들의 민족성 자체가 뭔일이 터져야..... 사태를 수습하여 깨우치는게 대부분인데요.... 지금 한국도 똑같습니다.

    • @user-ob9kw2xf3r
      @user-ob9kw2xf3r Před 3 měsíci +2

      공감합니다... 윤석열 탄핵하고 이재명님을 필두로 한미연합훈련 폐지 중한 반도체 정보교류, 의대증원 정책폐지 해야합니다. 윤석열 탄핵

    • @gahyunkim2301
      @gahyunkim2301 Před 3 měsíci +4

      암만 나라가 미워도 일터지면 앞장서서 전쟁터 갈 사나이들 많습니다. 내 명의로 된 땅 하나 없어도 내가 살고 자라온 나라인데 누가 침략하는걸 보고만 있을순 없죠.

    • @shalessandro
      @shalessandro Před 2 měsíci +2

      ​@@gahyunkim2301 글킨하지만..... 사회적인 인식을 너무 간과하여 바꾸지 않는게 현실이죠 결론적으로 역사에서 다들 알고 있다시피 백제 의자왕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왕권을 강화하여 호족들을 무자비하게 탄압을 한것도 모자라 나,당 연합군의 사비성으로 쳐들어오기 전에 대비를 하지도 않고 그냥 사치와 향략으로 결국 충신인 성충의 말을 듣지 않아 옥에 가두어 버리고 배척하여 결국은 나,당(신라,당나라)연합군이 탄현에서 기벌포를 거치고 황산벌에서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 5만과 계 백이 이끄는 백제군의 5천과 싸운후 결국은 계 백의 이끄는 백제군 5천이 김유신의 이끄는 신라군 5만의 군대랑 3번싸워서 이겼으나.....
      신라의 화랑(관 창)이 계백과 1대1로 겨루고 사망하자 신라의 군대는 사기 오르는데요 즉 백제군은 패하고 결국 계 백은 전사를 하게 되죠 그 다음 신라군은 소정방의 이끄는 당나라군과 합세후 나,당 연합군은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시켜 결국 백제가 웅진성의 성주(예식진)의 항복으로 인해서 나,당 연합군에게 망하고 말았죠..... 결론적으로 이 나라 국민들은 뭔일이 터져야 제도를 바꾸는 민족인데요 그만큼 민족성이 깨어있지 못하는것입니다. 그냥 알면서도 사회의 문제점에 심각성을 그만큼 모르면서 간과하여 방관을 하도록 한심하다는 증거죠.....

    • @shalessandro
      @shalessandro Před 2 měsíci +2

      ​@@user-ob9kw2xf3r일리는 있는데...... 지금 현재 나라를 더 망국으로 치솟아서 병자호란 처럼 더 막장을 저지르는것의 국힘당이 아니라 민주당인거 모르십니까 ?????

    • @user-cv5sb3bc1o
      @user-cv5sb3bc1o Před měsícem

      @@gahyunkim2301 긍까 일터지기 전에 예방을 못 한다는 거잖아요 ㅋㅋㅋ

  • @soullohen
    @soullohen Před 3 měsíci +4

    당시 선조와 조정은 의병과 의병장들이 그대로 군벌로 변할 것을 우려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견제해왔고.. 이게 왜란 이후의 전쟁에서 의병들이 잘 일어서지 않았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후 구한말, 국권이 침탈 된 이후 다시금 의병들이 일어났지만 역시 일제의 대대적인 토벌 작전과 자유시 참변이란 사실상의 내분으로 명맥이 끊겨버립니다ㅠ

    • @seok720429
      @seok720429 Před 3 měsíci

      그건 억측입니다
      지금은 그들을 의병이라 부르지만, 당시엔 근왕군이라 했습니다
      성리학을 공부한 선비들이 대부분 의병장으로 활동했구요
      당시 조정에서는 의병들이 군벌화 되는걸 걱정한적 없구요, 단지 의병을 가장한 도적떼들이 창궐해서 그걸 처리하는게 문제엿죠
      왜란후 대부분의 의병장은 공신록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곽재우 같이 성깔있는 의병장을 수령으로 임명해 줬더니만 자기 성격에 안맞다고 사퇴상소를 올리고 집에 가버린거죠
      아니 임금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집에 가버리면 중죄가 될터인데, 그걸 대신들이 커버쳐줍니다;;

  • @jhy.902
    @jhy.902 Před 3 měsíci +6

    그때도 유교의 사상대문에 의병대장이 모친상을 당하자 부하들 팽개치고 고향으로 달려가 상복입고 상을 치렀다는 일썰..

    • @user-bu5rs5vp5o
      @user-bu5rs5vp5o Před 2 měsíci

      반대로 유교의 충효와 멸사봉공 사상때문에 유생이나 서민이나 의기투합하여 다 들고 일어난거..흑백논리에 빠지지 마세요.

  • @user-rk9kl8lc9h
    @user-rk9kl8lc9h Před 3 měsíci +9

    4분18초에 전주성은 진주성을 잘못말한듯합니다

  • @nevermind5488
    @nevermind5488 Před 3 měsíci +18

    하지만 의병을 일으키고 지휘한것도 양반

    • @user-cf4dd6pj2d
      @user-cf4dd6pj2d Před 3 měsíci +4

      그럴 수 밖에 없음. 병역의 의무가 있는 자들은 관군으로 끌려가야 했고, 행정력이 무너진 곳의 복구된 부분에서 관군 복구를 할 수 있는 경험이 있는 자들은 양반이 유일했기 때문임. 그리고, 솔직히 의병숫자를 보면 양반들이 많다고 볼 수 없는게 승려들도 많았고 이건 그나마 지역적 네트워크가 잘 살아있는 조직과 그 조직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지(사찰)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던거. 의병을 이끈 의병장은 근거지와 네트워크를 유지할 재력이 있는 양반이 유리했기 때문에 많았던 거.

    • @user-bl8cb5ck5h
      @user-bl8cb5ck5h Před 2 měsíci +1

      ​@@user-cf4dd6pj2d 당시 양반은 법으로 부역 군역 세금이 면제인 나라다~.~
      민초들이 지켰고 민초들이 죽었다

    • @user-hl7vb6jh6z
      @user-hl7vb6jh6z Před 2 měsíci

      죽어간 백성과 군졸들의 이름은 없다

    • @AI_NOIN_Music
      @AI_NOIN_Music Před měsícem

      @@user-bl8cb5ck5h 일단 돈이 없으면 의병도 못일으킴
      당장 의병들 먹을 양식과 무기부터 어떻게 구하겠음?
      그렇다고 관청을 털면 그냥 도적때 되는거고
      그렇기에 돈 좀 있고 지역에서 콧바람 좀 쌘 양반들이 의병들을 일으킬수 밖에 없었음

    • @AI_NOIN_Music
      @AI_NOIN_Music Před měsícem

      ​​@@user-bl8cb5ck5h게다가 양반의 교양으로 병서를 공부하며 군사학을 배운 양반들이 많았기에 전략,전술적인 안목도 있는 이들도 많았고

  • @2345pok
    @2345pok Před 3 měsíci +7

    곽재우장군님 넘 불쌍 왜란끝나고 의병들 버림받았지..

  • @user-ko8ln7jz9l
    @user-ko8ln7jz9l Před 3 měsíci +2

    ❤👍

  • @user-cf4dd6pj2d
    @user-cf4dd6pj2d Před 3 měsíci +5

    중간에 슬쩍 호란때 의병이 안일어난거 뺌. 이미 왜란때 경험으로 의병해봐야 득이 없으니 일어나지 않은거지...

  • @user-uy1bz6jc8q
    @user-uy1bz6jc8q Před 3 měsíci +7

    그래서 이순신장군의
    전사에대해
    여러가지설도
    존재하나봅니다

  • @user-zn1dm6pe7d
    @user-zn1dm6pe7d Před 3 měsíci +3

    현시대 전쟁나서 의병이 생긴다면
    그 의병들은 예비군이네

  • @hansunmoon7037
    @hansunmoon7037 Před 3 měsíci +2

    뭔가 하고 싶은 메세지...., 있으신듯.

  • @deogsu3621
    @deogsu3621 Před 3 měsíci +6

    선조 그가왕이란게 열받게합니다.
    몽둥이로 선조를 찜질하고싶다.

    • @user-bu5rs5vp5o
      @user-bu5rs5vp5o Před 2 měsíci

      그 선조가 일개 군관이던 이순신을 몇계급 특진시켜서 총사령관을 시킵니다. 이런 안목과 결단은 아무나 할수 있는게 아닙니다.

  • @user-vq2bh3pf3q
    @user-vq2bh3pf3q Před 3 měsíci +4

    그래도 저때는 선진 전쟁기술이라 해도 격차가 크지 않았고 냉병기 비중도 컸으니 정규군이 붕괴한 상황에서도 손실을 강요해 피해를 누적시킬 수 있었던듯.

  • @mil_duck
    @mil_duck Před 3 měsíci +3

    근데 애초에 의병하고 군사가 되었던 사람들은 지방 사족들인데다가 애초에 귀족들은 말타기 활쏘기 무예 등등 문무를 다 갖춰야 했어서 전투력은 평민들을 압도했죠

  • @shisco5021
    @shisco5021 Před 3 měsíci +3

    정규군은 게릴라전을 하지 않았지
    치욕스러운 형태라서
    의병은 정규군이 아니었으니
    게릴라전을 하더라도 ....
    정규군은 죽더라도 그런 전투는 용납하지 않아..

  • @studiogarrisona
    @studiogarrisona Před 3 měsíci +6

    조선의 숨겨진 영웅들이다

  • @stuffcool6707
    @stuffcool6707 Před 3 měsíci +8

    근데 의병장들은 양반 아님?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Před 3 měsíci +2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이야기하는 영상이 많이 없어서
    이 채널은 꽤 유익한 정보를 주는 채널이고 특히나 최근에는 무인정변을 보고 있기에
    그 시기를 대략적으로 가늠하게 되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영상은 의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제목에도 그 의병이 강한 이유를 말해서
    제도나 무기등 우국충정같은 감상적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가 나올줄 알고 기대했는데 약간 아쉽습니다

  • @yunggaleeable
    @yunggaleeable Před 3 měsíci +3

    지금도 똑같다.

  • @user-xs4hd4oe4l
    @user-xs4hd4oe4l Před 3 měsíci +13

    일제시대 어느 목사는 신사참배에 앞장섰다가 해방이 되자 남한으로 내려와서 이북에서 내려온 깡패들을 모아 양민들을 죽창으로 ㅡㅡㅡㅡ

    • @jhshin9413
      @jhshin9413 Před 3 měsíci

      한국판 홍위병 서북청년회.

  • @seanuhm1500
    @seanuhm1500 Před 19 dny

    우리나라 참 희한한 나라네

  • @s1ntr0llsh3ck2
    @s1ntr0llsh3ck2 Před 2 měsíci +2

    2:21 사실 나라가 해준 것은 없지만 당시에는 일본보다 세율이 많이 낮았어서...

  • @lokinocmrperfaq4two175
    @lokinocmrperfaq4two175 Před 2 měsíci

    정규군 장군들과 양반들이 자기몫을 못하고 전쟁시작과동시에 다도망간 역사에 먆이화가나고, 전쟁때마다 항상 백성들을 핍박 과 이용에 대상으로만 대햇던 나라, ㄱ리고 그 나라에 왕족, 정치, 군부 사람들 과 상위층만 을위해돌아가던 근대화전에 나라를 지키기위해서 싸워줫던 의병님들에 아그리고 625때 의병대 와 학도군분들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 글고 이 비됴도잘봣어요 크리에이터님

  • @agm1144
    @agm1144 Před 3 měsíci +3

    조헌은 그렇게 막무가내는 아니였습니다.
    충정도 및 전라도의 여러 장수들과 협력하여 대규모 연합군을 결성하여 금산성을 탈환한다는 최소한의 상식은 갖춘 구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위한 각 장수들과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금산성을 탈환해야할 전술적 정치적 당위성은 차고 넘쳤지만, 현실적으로 고경명의 패배로 인해 금산성 공격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았고, 지금은 일본군 전력이 우세하니 공세가 아니라 수세를 취할 때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였습니다.
    장수들의 합의를 끌어내는데 실패하자 조헌은 자신이 먼저 금산성 공세에 나서면 협공을 논의했던 다른 장수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주리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알려진 것과 달리 조헌과 영규의 부대는 금산성을 공격했던게 아니라 금산성에서 조금 떨어진 지형에 진을 치고 일본군과 대치했습니다.
    조헌-영규의 부대를 발견한 일본군은 조선군의 대공세가 벌어진 것인줄 알고 처음엔 성문을 굳게 닫고 있었지만 사방으로 척후를 보내보니 조헌-영규의 2천에 못미치는 병력이 전부라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야음을 틈타 성문을 열고 나와 조헌-영규의 진형을 삽시간에 포위했습니다.
    조선군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본군의 야간 전술 보행에 제대로 당한 조헌-영규였지만 포위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멸할 때까지 항전했고 조헌-영규 부대원 대부분이 전사하여 조선에서 충의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 @user-mi7th2no1y
    @user-mi7th2no1y Před 3 měsíci +4

    저러니일본편에서 싸운사람도있었지

  • @user-hc6lk5ky7p
    @user-hc6lk5ky7p Před 2 měsíci +1

    끝까지 친일청산 애국지사복권을 해야 나라의 도덕이 바로선다

  • @user-ip9yu7lp1q
    @user-ip9yu7lp1q Před 3 měsíci +3

    😮😢😢🎉🎉

  • @user-ui1lt7sh5u
    @user-ui1lt7sh5u Před 2 měsíci

    국민들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세계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명석함과 용맹함, 근면함과 단결력은 강대국들이 두려워하고 부러워 할만 합니다.

  • @nimo3414
    @nimo3414 Před 3 měsíci +2

    일본군은 100년간의 내전에서 살아남은 정예병들어있고 신무기 조총까지 동원했고 수많은 이름난 장군들이 있었다.
    조선군은 그런 일본군을 상대로 전쟁시작 후 4개월만 밀렸을 뿐이다. 전쟁준비가 안되어 있었고 15만 군사나 되는 대군의 기습을 당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예비대까지 죄다 동원했으므로 군사는 더 증가했다.
    하지만 그 이후 모든 전투에서 조선군이 주도했고 대부분의 전투에서 군사수가 10배나 많은 일본군들을 상대로 싸워서 이겼다.
    웅치 전투, 이치전투, 행주산성 전투, 연안성 전투, 진주성 전투 등 모든 전투에 일본군은 10배의 군사를 동원했지만 패하고 말았다.
    이 모든 전투는 조선군이 주도했다. 조선군의 전과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 @PrettyT-rex
    @PrettyT-rex Před 3 měsíci +3

    어떻게든 자신의 억지논리를 주장하기 위해 왜란 당시 활약했던 관군 장수들은 애써 외면하고ㅋㅋㅋㅋㅋㅋㅋ

  • @user-nw9dr9ib7q
    @user-nw9dr9ib7q Před 3 měsíci +3

    아~테스형 아~테스형

  • @shiningi8525
    @shiningi8525 Před 3 měsíci +1

    원래 조선의 양반들은 초기에는 그 수고 적었을 뿐만 아니라. 자손대대로 양반인게 아니라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길에 나가거나 집안이 아주 잘살거나 하지 않으면
    집에서 글공부만 하다가 집안이 궁핍해지면 생계를 위해서 양반을 버리고 장사를 하거나 다른직업으로 전향하기도 하면서 양반층이란게 유동적이였는데.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집권하는데 공을세운 자들을 우대해 주면서 그들의 자식들까지 벼슬을 세습 할수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는 훈구층이 생기면서 썪기시작했던거고.
    의병 문제도. 열등감 덩어리였던 선조가 자기 권력을 위해서 전쟁후 논공행상에서 의병들을 폄하하고 제대로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서 모든 민심이 돌아서게 되고.
    병자호란때는 전국의 백성들이 침묵하고 눈감아 버렸기 때문에 대대적인 의병운동이나 이런것도 없었고. 인조가 성에 갇혀 죽니사니 해도 니들만의 리그라고 선을 긋고 만 계기가 되었던겨죠.
    결국 조선이란 나라를 근본부터 썪어빠지게 만든 가장 큰 해악들. 민족의 암적인 임금들이
    조카죽이고 훈구파란 세습 양반층이란 거대 세력을 출범시킨 세조. 오직 열등감 덩어리에 정신병자였던 선조.
    머리나쁜데 눈치조차 없는게 힘도 없어서 신하들 말에 벌벌 기면서 안 일어나도 될 전쟁으로 나라를 전쟁터로 만드는건 물론
    신하들이 힘을 모으면 왕을 가지고 노는건 물론 죽일수도 있겠다는 확신을 심어준 인조.
    자기 권력지키고 부귀영화 누릴려고 중전이 일본 낭인들에게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것도 외면한건 물론 나라를 망하게 하고도 남탓만 미친듯이한 실질적인 한일합방의 주역 매국노 고종

  • @user-hg4og9nx1l
    @user-hg4og9nx1l Před 3 měsíci +2

    지금도 국민 절반은 군인이야... 더러운 역사..

  • @user-fr4rr6ew8w
    @user-fr4rr6ew8w Před 3 měsíci +3

    김희철은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장수중 하나입니다.

  • @juntalk4
    @juntalk4 Před 2 měsíci

    무한반복

  • @user-go5zi6hn1c
    @user-go5zi6hn1c Před měsícem +1

    적의 후방에 규모와 위치를 특정할수없는 게릴라 병력이란.. 아무것도 안해도 그냥 존재 그 자체로 적에게는 엄청난 타격이지..

  • @user-oc1hc9rl7z
    @user-oc1hc9rl7z Před 2 měsíci

    팩스토리님 역사를 기반으로 영상 만들어 주셔 감사합니다.
    하지만 진짜 역사를 알고 영상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다시 한번 글 올립니다. 유튜브에 책보고 채널 가셔서 고려의 강역 및 우리 삼국의 강역을 한번 참고 하시면 매우 유익한 정보일 거에요

  • @user-fi2ey5gs6h
    @user-fi2ey5gs6h Před 3 měsíci +4

    남명 조식의.후예들 덕 뿐입니다.

  • @user-zn3yr1wp8d
    @user-zn3yr1wp8d Před 3 měsíci +3

    5:34 묘청 오랜만이네 영규로 환생했구나
    차라리 사병제도를 부활시켜서 국력을 강화시키는것도 좋지만 결국 왕권에 위혐이 되니까 안되고
    진짜로 의병들이 저렇게 고생해도 30년뒤에 병자호란으로 더욱더 피폐해지고 경신대기근 까지 일어나니 진짜로 망하지 않는게 더 신기함

  • @6sinegohwan336
    @6sinegohwan336 Před 3 měsíci

    군사제도 때문에 임진란 때 크게 고생했다고 봅니다. 당시 군사제도가 소규모 침략에 맞추어져 있어 20만의 대규모 침략에는 적합하지도 않고, 백병전을 정예 기병을 제외하면 소홀히 했기에 발생한 일이죠..

  • @user-ho3dr4uo9c
    @user-ho3dr4uo9c Před 2 měsíci

    그 이후도 지금도 변한건 하나도 없네요

  • @user-vf1sz5pm4e
    @user-vf1sz5pm4e Před 3 měsíci +2

    중간에,.. 전주성이 아니라 진주성요. ㅎ

  • @nohkw88
    @nohkw88 Před 3 měsíci +3

    의병들에게 명예직이라도 벼슬도 주고 부역도 면해주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자기 편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죠.

    • @zzang-mathis
      @zzang-mathis Před 3 měsíci +3

      대부분 그렇게 했습니다. 임란 이후 선무 공신이 거의 1만명 가까이인데, 대부분 그 공신들이 누구겠어요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Před 3 měsíci +1

      삼치 문약 조선에 너무 많은걸 바라시네요
      이순신도 국문해서 백의종군시키는 나라에 뭘더 바랍니까
      작금의 대한민국도 매한가지.......... 에휴

    • @seok720429
      @seok720429 Před 3 měsíci

      @@user-ol9gk8bt7e 역사를 팩트로 보시길...
      선조때 이순신을 괜히 파면시킨거 아닙니다
      1.사후선 3척이 소실되고 병사들이 죽었는데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는걸 선조가 커버쳐줌
      2.남해를 순시중인 광해군이 이순신에게 만나자고 사람을 보냈는데 이순신이 바쁘다며 거절함
      3.육군이 왜군영에 불지른걸 이순신은 자신의 부하들이 한거라 거짓보고함
      4.남원에서 징집중이던 이순신의 부하가 그곳 병방을 죽인일로 백성들 원망이 자자하다는 상소가 올라옴
      5.원균이 아들을 공훈명단에 거짓으로 올렸다며 모함하다가 체찰사 이덕형에게 걸림
      그러다가
      다대포를 출발해서 서생포로 가는 가등청정을 공격하라는 조정을 명을 거부하다 체포된거임
      그동안의 공이 있기에 그나마 백의종군 시킨거임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Před 3 měsíci

      ​​​@@seok720429
      팩트라...................
      2.은 그게 이 주제와 무슨 연관이고
      3., 4., 5.는 금시초문에
      만약 역사기록이 있다면 진작에 알려졌을 텐데 없죠
      진짜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출처는 어떻게 되는지?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Před 3 měsíci

      ​@@seok720429
      또한 하성군이 이순신을 파직시킨 상황은
      왜군의 반간계와 원균의 모함, 그리고 하성군 본인의 졸렬함과 권력만 지키려는 옹졸함이 빚은 사건이죠
      원균을 치켜세우다 이순신이 파직되어 원균이 큰소리만 치지 명령대로 못 움직이고 적을 공격 못하니
      권율이 원균을 곤장치고 하성군조차 쉴드를 쳐주지 않아 공격하다 칠천량에선 패배하고
      하성군이
      이것은 실로 하늘이 돕지 못해서다
      란 망언을 내뱉죠
      본인이 이순신 파직시키고 원균에게 명령해서 공격하라 했으면서
      이제와서 하늘을 탓한다?
      어처구니가 없죠

  • @goldeneagle3647
    @goldeneagle3647 Před 3 měsíci +4

    전쟁 당시 일본군은 '왕을 빠르게 잡는다' 는 일념으로 한양을 향해 고속으로 전진했고, 그 빠른 속도에 조정도 관군도 제대로 대응할수없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조선의 방비 시스템이 후달려서 그런게 아니라 일본군이 비정상적으로 빠른거였어요. 흔히들 의병과 수군이 다 했고 관군은 뭐 하나 한거없다고 착각하지만, 관군에게 정비할 시간이 주어지자 의병도 관군지휘로 들어가 대부분의 승리는 관군이 했습니다. 의병과 관군은 뚜렷하게 나뉜 조직이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전국시대 경험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글자 하나 제대로 못읽는 백성들이 어떻게 게릴라로 치고 빠지면서 피해누적할수 있었을까요? 조선시대 선비가 무슨 책만 읽는 책벌레인줄 아는데 활도 잘쏴야하고, 전법에도 능통해야 하고, 지리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등 모든 면에서 육각형 만렙을 찍어야지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선비, 양반이었습니다. 의병의 지휘관은 양반들이었고 사람들이 "책만 읽고 현실은 모르는 놈들" 이라고 취급했던 양반의 지식으로 할 수 있는 게릴라였고, 전법이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지휘라는건. 영상에서는 백성들이 자기가 사는 곳 지리를 잘 알고 있어서 그거 이용했다고 하는데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의병으로 모인 사람들에게 통솔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양반이었으니 말이죠.
    후반부에 이몽학의 난이 나오는데, 이몽학은 어리석고 아무런 재능이 없었던 인물이었고 성격도 포악하고 불량하기까지 해서 호적에서 파일 정도로 망나니였습니다. 그런 놈이 백성들을 선동해서 몽둥이를 들게 하고 계를 꾸렸습니다. 김덕령도 억울하게 죽은것처럼 나오는데 안그래도 군졸폭행과 사적제재에 의한 살인을 일으켜서 문제 많은 사람이었던걸 선조가 '그래도 능력은 좋은 놈' 이라서 살려둔거 역모에 언루되고 나서야 체포됬고, 그마저도 선조가 안죽이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앞선 군졸폭행과 사적살인이 문제되서 결국 죽인겁니다. 이몽학은 죽어도 할말 없는 사람이었고 김덕령은 워낙에 이름이 유명하니 반란 수괴들이 사람 끌어모으는 수단으로 도용된겁니다. 누명을 쓴거야 억울하지만 군졸폭행, 사적제재는 하나도 억울할거없습니다 자초한거니까요.
    그리고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양반도 잘 지킨 덕목입니다. 조선은 유교와 성리학이 통치이념으로 소프트웨어에 깔린 나라고, 특히 유교는 '군자라면 군자다워야 한다' 를 강조하니, 의병장들 대다수가 양반이었다는 것과 선조가 등신짓하는거 돌려까면서 맥일 정도로 양반들은 동시대 다른 지배계층에 비하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의심병자에 책임감마저 없던 선조가 등신이었던거지 '양반은 전부 개새끼다' 라고 하기엔 비약이 너무 심함. 조선만큼 논공행상 빡시게 한 나라는 없고, 실제로 많은 의병자들이 철저하게 추려낸 공에 따라서 그에 걸맞는 상을 받았습니다. 조선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앞뒤 꽉 막힌 유교탈레반 국가가 아니에요. 그런 국가였으면 500년 동안 존속못했습니다;;

  • @grantpark6828
    @grantpark6828 Před 3 měsíci +10

    의병도 대부분 양반들이었 습니다

    • @user-bu5rs5vp5o
      @user-bu5rs5vp5o Před 2 měsíci +1

      의병을 조직하고 주도한게 대다수 양반들이었죠.

  • @chamusik173
    @chamusik173 Před 3 měsíci +1

    의병들도 기려야하지만 더 자세히 임진왜란을 들여다보면 승병이 의병들 보다 훨씬 잘 싸웠음... 곽재우 같은 경우는 너무 능력이 좋은 특이 케이스임...

    • @seok720429
      @seok720429 Před 3 měsíci

      곽재우의 의병은 초기엔 50명에 불과했으나 경상도 초유사 김성일이 곽재우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그를 지원해주어 수천의 의병들이
      곽재우 밑으로 모이게 해주었죠

  • @user-rk9kl8lc9h
    @user-rk9kl8lc9h Před 3 měsíci +13

    우리민족은 나라에 받은게 없어도ㅠ나라가 어려우면 목숨을 아까워하지않고 싸우는 신기한 민족입니다

    • @eum2429
      @eum2429 Před 3 měsíci +9

      나라가 힘들어서 싸웠겠습니까? 가족들 살릴려고 죽자고 싸웠겠죠

    • @user-ty3hf2bj7j
      @user-ty3hf2bj7j Před 3 měsíci +12

      의병은 딴게 없습니다. 내가 안지키면 내 가족이 죽고 적에게 내 마누라가 강간당하고 내 자식들이 노예로 끌려가는데 안지키고 배기겠습니까?

    • @user-tu5pi8cw3v
      @user-tu5pi8cw3v Před 3 měsíci +3

      다른 나라도 똑같다 별 개 다 신기하네 국뽕도 정신병이지

    • @jhshin9413
      @jhshin9413 Před 3 měsíci

      양반들은 가족도 버리고 도망가고
      신하들은 왕 선조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의병활동한 양반은 소수였음.
      군사훈련도 안받고 글만 외운
      양반은 일본군과 전투하기 힘듬.
      평민들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해서 싸워야
      될 처지였음.
      스코틀랜드도 평민들이 무기들고
      잉글랜드와 싸움.

    • @user-ru8ps1dr8p
      @user-ru8ps1dr8p Před 2 měsíci

      조선 의병들은 모두 성리학으로 무장한 양반이었고, 오히려 백성들은 도적떼나 되어서 전간기에 골치덩어리였죠. 백성, 민초 미화는 하지 맙시다

  • @ray73kim
    @ray73kim Před 2 měsíci +1

    이순신도 힘이 너무 강해지니 의심해서 그 힘을 뺏은 인간이 선조이니 뭐. 지 살려고 명나라로 도망갈 생각만 하던 인간이 참. 조선은 기득권을 지닌 놈들이 썩어도 너무 썩었었다.

    • @gomymi637
      @gomymi637 Před 2 měsíci

      그당시 조선의 인재가 가장많고 드러나던 시기임. 조선이 문재가 아니라. 선조가 문제였음. 탕평책이란 명목으로 신하들 이간질하고 요심많은 놈들 이용하고 국체를 약화시킨건 애초 왕권명분이 약한 선조였음. 런승조.런승만.지금윤썩렬 같은이가 결국 나라를 망침. 지금은 이명박.바그네 윤썩렬 뽑는 어리석은 2찍이 더 문제.

  • @user-ol9gk8bt7e
    @user-ol9gk8bt7e Před 3 měsíci +3

    일각에선 의병이 평시에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복무한 예비군 성격이 강하기에 전투력이 나쁘지 않다라 하던데
    그게 진짜인지 궁금하고 무기체계나 지휘일선등 연구할게 많은데
    툭하면 그들의 우국충정이나 나라에게 혜택이 없으면서 자진해서 의병이 되었다
    이런 감상적인 말들만 해서 답답합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거든요

  • @user-on1cc1mp7z
    @user-on1cc1mp7z Před 3 měsíci

    왜란의 조선 양반, 백성들의 모습과 지금 대한민국은 별다른 차이가 없는거같아...

  • @Fight81
    @Fight81 Před 3 měsíci +1

    조선시대부터 이 나라는 희생하면 뒤통수 맞아

  • @user-gu8fj8ck6s
    @user-gu8fj8ck6s Před 3 měsíci

    벼슬길에 오른 양반이 공자왈 맹자왈 하는것도 있었지만 야인으로 살아가면서 유학을 공부하고 수련하는 도인이 많았어요. 죽을 줄 알고 싸우는 근원은 다들 정신적으로 반드시 해야 할것을 염두해 두고 살아갔습니다 아니면 짐승과 다를바없기에 불교도 마찬가지.

  • @hersmoon
    @hersmoon Před měsícem

    😢 노블레스 오블리지를 실천할수 있는 리더를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 @user-di9hr5xn9r
    @user-di9hr5xn9r Před 3 měsíci +12

    저 당시 백성들이 불쌍할 뿐이죠😭

    • @NightN6
      @NightN6 Před 3 měsíci +2

      지금도 별다를 바 없음. 강제로 끌고가고 만 40 될때 까지 안보의무 지어주면서 보상도 따로 없고 ㅋ 정도 차이만 있을뿐 이 한반도는 별 달라진게 없음.

  • @docter.yangban
    @docter.yangban Před 3 měsíci +4

    사산대사가 아니고 서산대사 ㅎㅎ

  • @KillTaejong
    @KillTaejong Před 3 měsíci +8

    고려에는 양규, 조선에는 영규....

    • @facstory
      @facstory  Před 3 měsíci +3

      즈은하아~~그리웠나이다ㅜㅜ

    • @KillTaejong
      @KillTaejong Před 3 měsíci

      @@facstory 제가 그리웠던 것 치고는 여전히 이상한 자가 덧글란에 상주하고 있군요. 제5공화국만 좋아하는, 그리고 일본을 우리의 남매라고 주장하는 그 이상한 자 말입니다. 이런 자가 활개치고 있는 곳에 덧글을 남기고 싶을까요?

    • @goldeneagle3647
      @goldeneagle3647 Před 3 měsíci

      ​@@KillTaejong저도 눈꼴시렵긴 하지만 계속 저리 굴다가 차단이나 먹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 @Zong-taku-gay
      @Zong-taku-gay Před měsícem

      ​@@KillTaejong사극이 더 비정상 아니노?
      그리고 일본은 남매 맞잖아

    • @Zong-taku-gay
      @Zong-taku-gay Před 26 dny

      ​@@KillTaejong제5공화국 모르니?
      사극게이야?

  • @user-ty5sq5vd3w
    @user-ty5sq5vd3w Před 3 měsíci

    잃을게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두려움도 일본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을 것이고 비록 체계적 군사훈련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 전투력 또한 보통 생각하는 의병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을 것입니다

  • @kwangilan4636
    @kwangilan4636 Před 3 měsíci +3

    승병 대단했네요~~. 기독교는 일제 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나요? 조선이전에는 기독교를 몰랐겠네요. 그럼 지옥갔나? 극락갔나?

    • @jhshin9413
      @jhshin9413 Před 3 měsíci +1

      조선후반기에 천주교(기독교)가
      들어왔습니다.
      1786년 정약용의 형 정약종이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아닌 정조때 천주교
      신자 늘어났고 정약종의 아들은 1801년 순교합니다.
      한국최초의 천주교 신부 김대건은
      1846년 사망했습니다.
      국사교과서에도 나오지만
      조선말기 천주교 탄압이 심했습니다.
      중국은 1576년 마카오에 천주교 교구가 생겼습니다.

    • @jhshin9413
      @jhshin9413 Před 3 měsíci +2

      조선시대 1786년 정약종이 천주교 세례를 받아서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김대건 신부는
      1836년 프랑스 신부 피에르한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천주교(기독교)는 일제 강점기가
      아닌 정조시대에 들어왔습니다

  • @user-wq4cd5ux5y
    @user-wq4cd5ux5y Před 2 měsíci

    조헌 "그래도 나는 가야합니다."
    영규 "어쩔 수 없군요. 끝까지 가봅시다."
    이 상황에 이 소리가 보통사람들이 할 수 있는 소리냐고...
    상황인식이 안되는게 아니라 그냥 해야되니까 한다...
    제일 어려운걸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함

  • @user-sn8rd9jc2p
    @user-sn8rd9jc2p Před 2 měsíci +3

    저 의병들이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나 봐라
    무능한 저 선조 치가 떨린다
    덕분에 병자호란 때 의병 얘기 나오던가

  • @kjj8580
    @kjj8580 Před 2 měsíci +1

    역시 헬조선

  • @deborahpark430
    @deborahpark430 Před 3 měsíci +7

    그래서 후손들은 이제 자녀를 안 낳기로 했습니다.
    다 학습된 결과지요.

  • @user-qu6cr8ug1z
    @user-qu6cr8ug1z Před 3 měsíci +2

    😱😱😱😱😱😱😱😱😱😱😱😱😱😱😱

  • @user-of4pf4c
    @user-of4pf4c Před 3 měsíci +1

    4:10 고종후 최경회 김천일 전주성에서 전사한게 아니라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하지 않아나? 황진도 포함

    • @S24UltraTG
      @S24UltraTG Před 2 měsíci

      맞아요~ 2차 진주성전투!!!

  • @Sedff-xm8pq
    @Sedff-xm8pq Před 3 měsíci +2

    지금 터지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 @elfyuna
    @elfyuna Před 3 měsíci

    재산을 투자까지했는데 아쉬움😢

  • @user-vw1pr5dt3n
    @user-vw1pr5dt3n Před 3 měsíci

    현재 북한 상황을 보면 의병도 옛말인 것 같네요.

  • @seo845
    @seo845 Před měsícem

    병자호란때는 청군이 다른 지역 무시하고 오직 왕이 있는 수도권 지역으로만 진격했음. 임진왜란 같는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에 가까웟음.

  • @ruddystylo2615
    @ruddystylo2615 Před 2 měsíci

    원래 조선사람들 쌈박질 잘합니다. 지휘관, 지휘체계가 박살나서 그렇지. 카타나 뺏고 각궁있는데, 이순신 같은 장군 5명만 있었어도 왜 평정하고 만주벌판까지 재미봅니다.

  • @user-cs2ls5py7n
    @user-cs2ls5py7n Před 3 měsíci +1

    선조가 ……
    히스테리 가 너무 컸지 !!

  • @yongbinsong9676
    @yongbinsong9676 Před 3 měsíci +2

    사산대사가 아니라 서산대사.

  • @임성환-q8j
    @임성환-q8j Před 3 měsíci

    선조때문에 병자호란 때는 의병이 거의 없었다는 팩트!

  • @tompark2251
    @tompark2251 Před měsícem

    평소 농사로 단련된 근육. 등산으로 단련된 근육.

  • @sinmoonsik5721
    @sinmoonsik5721 Před 3 měsíci

    우두머리가 죽으면 빡쳐서 더 잘싸우는 전투민족

  • @CRCheol
    @CRCheol Před 3 měsíci +3

    옛날 선조분들에게 다 감사하고 현재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부끄럽네요
    이 좁은 나라에서 좌파우파 지역감정에 헬조선이니 뭐니 하면서 어찌보면 가장 살기 좋은 시대인데..반성하게 되네요

  • @user-pp3xg6fl5b
    @user-pp3xg6fl5b Před 3 měsíci +2

    이래서 병자호란때 탈탈 털린거지 기득권들은 권리를 위해서 나라도 팔 놈들이 많은것도 사실 구한말때만 봐도......

  • @taehyunhwang5919
    @taehyunhwang5919 Před 3 měsíci

    의심많은 선조의 한계이지
    당파싸움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조선 조정의 한계

  • @jindol9526
    @jindol9526 Před 3 měsíci +3

    의병의 수뇌부 대부분이 양반들 중심이 이었고 자신 고을에 사는 자기 친인척들, 농민, 노비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군 규율을 적용해 준관군에 해당하는 전투력을 가진 경우가 많았음. 대부분 관직에서 물러났거나 과거를 봤던 자들이었고 이들은 나중에 관군에 재편성되어서 활동했음 의병으로 쭉 간게 아니라 뭐 이젠 인터넷에 조금만 쳐도 주루룩 나오는 정보를 다 틀리고 있네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세요 영상 만드는 거 참 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