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축귀사역"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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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21. 08. 2024
  • 『신사참배백서 1권』도서구입 : mall.godpeople...
    ★필독★
    꼭 읽어보세요!
    해결되지 않은 죄악 신사참배, 그 진실을 밝힌다.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한국교회여 신사참배의 죄악을 회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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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성경적인 신비주의는 분별하여 배격하여야 하지만, 성경적인 신유사역은 장려되고 촉진되어야 합니다
    1920년대 초 한국교회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삼일운동에도 불구하고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실망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사회주의로 기울어지고, 또 다른 사람들은 서구에서 들어온 신신학(新神學)을 수용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김익두 목사의 신유사역은 기독교가 단지 형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 결과 1920년대 초반의 부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실 김익두 목사의 신유사역은 갑자기 출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악령을 추방하고, 질병을 고치는 신유사역을 열심히 해왔습니다.
    베어드(Richard H. Baird) 선교사는 축귀(逐鬼) 이적이 초기 한국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한 동인이었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침투해 들어가 한국의 전통과 예리하게 싸우던 초창기에 축귀는 교회의 중요한 활동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신약성경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으며 이것으로 인해서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의료선교사로 내한했던 알렌 역시 Things Korean(1908)에서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이 축귀와 신유 이적으로 크게 확장될 수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신유 이적의 일례로서 언더우드 선교사가 경기도 안산에서 중증 안면 부종 환자를 치료하고 인가귀도를 실천한 사실이 Korea Mission Field 에
    “Prayer Cure”(1907)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또한 신자 홍승하가 제물포(인천)에서 귀신들려 고생하던 이경필의 아내를 치유한 일이 『예수교신보』에 기사화된 사례도 있습니다.
    김익두 목사의 신유운동은 영적인 세력과의 싸움이었으며, 기독교의 생동력을 입증하는 것이었고, 가난한 대중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1910년대의 침체상태를 극복하고 1920년대의 새로운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192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신유운동은 식어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외적으로는 사회주의 계열의 공격이 심화되어 김익두 목사의 신유운동을 미신이라고 공격하였고, 기독교회 내적으로는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추구하기 보다는 농촌계몽운동과 같은 간접선교의 방법을 선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1920년대 후반 한국교회는 다시금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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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entáře • 2

  • @THE_CROSS_CHANNEL
    @THE_CROSS_CHANNEL  Před 2 měsíci +1

    『신사참배백서 1권』도서구입 : mall.godpeople.com/?G=9791198704306
    ★필독★
    꼭 읽어보세요!
    해결되지 않은 죄악 신사참배, 그 진실을 밝힌다.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한국교회여 신사참배의 죄악을 회개하라!

  • @jakim1360
    @jakim1360 Před 2 měsíci

    실망으로 설명해 를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