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ᄏᄏᄏᄏᄏ 대명을 ㅋㅋ 거리는 것부터 그대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듯 하네.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님을 언제쯤 깨달을까? 지금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후도 결국 미국의 음모인 것을. 우리의 한국전쟁의 발발원인을 되짚어보면 납득할 수 있는 것인데, 그저 아둔한 머리로 현상만 보는구나. 그 현상은 원인이 있어서 나오는 것인줄을 알아야지. 생선을 싼 봉지에서 생선냄새가 나고, 향을 싼 봉지에서 향이 나듯이.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님이 말한 드라마 대조영 왕건 등등 의 드라마는 대하드라마에서 방영한것입니다 창사기념 100주년 60주년 드라마 라고 적힌것은 작가의 관점에서 시청률을 위한것이고 대하 드라마 라고 적힌것은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사실을 각색하여 시청자에게 알려주는 관점이 되겠습니다 님이 시청하신 대조영 왕건 이순신 정도전 등등의 드라마는 모두 대하 드라마가 붙습니다 거기에 비해 허준 이산 대장금은 사극이 아니라 시청자를 위한 시청률을 위한 드라마 라고 보시면 됩니다
"청화수" 라는 유투버의 궁예를 봤더니 저도 궁예영웅설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봐야겠지만 그렇게 폭군이 아니라 진정으로 민초를 생각하고 기득권이였던 호족들을 너무 급작스럽게 쳐내려다가 쿠데타에 당한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ㅎㅎ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요
@@자담-v2b 뭐..제가 꼭 맞다 궁예는 폭군이 아니다! 라는 의미는 아니구요 ㅎㅎ 굳이 폭군이 아니더라도 신하들 귀족층의 기득권을 뺏으려 든다면 탄핵당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궁예가 세금을 엄청 늘렸는데(6/10) 이 것이 사실 대토지를 소유한 호족을 대상이고 실제 조그많에 땅 가지고 농사하는 백성을 크게 다를게 없다고도 합니다. 이건 여담인데 사기에서는 궁예가 도망쳐 나와서 민가를 떠돌다 민초들한테 맞아 죽었다고 나올텐데 궁예가 죽었다는 철원지역에는 전설이나 설화로 내려오는 궁예이야기가 긍정적인 평가가 많습니다 물론 성군일수도 있다이며 반박하는 자료들이 빈약한 것 맞으니 '일수도있지않을까' 정도로 봐주시면 되요 :)
고려사에 궁예를 폭군으로 역사에 기재 한것은 아무리 왕이 좀 불면했다 하더라도 왕건은 시쳇말로 쿠테타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고대나 현재나 무릇 쿠테타에 의해 권력을 쟁취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패튼이 바로 전임정권때 잘못된것을 더욱 부풀려서 쿠테타의 당위성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러했다 그러닌까 고려사를 다는 믿을수 없겠지만 궁예가 자기의 처와 두자식들을 잔인하게 죽인것은 그 어떤 변명이나 명분을 말한다고 해서 궁예의 과오를 덮을수 없다 궁예출생의 비밀을 신라왕가의 핏줄이라는것도 믿을수가 없는 일이지 역사드라마는 향상 역사라는 뼈에 살점을 더덕더덕 붙혀서 흥미를 끌게 만드는게 역사드라마닌까
선생님의 강의 영상을 보면서 대조영와 태조 왕건의 모습이 연속으로 나올 때 같은 배우 최수종님이 등장하시니 약간 어색하면서도 재미있네요. ^^ 역사의 기록은 모든 나라를 통틀어서 승자의 기록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언급하신 (궁예 영웅설)이 너무 궁금하네요. 다음 영상을 기대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역사서의 기록으로 증명된다고 해서 그것만이 모두 진실은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역사교육은 그저 지나가 버린 과거사나 들여다 보는 단지 시험문제의 정답이나 맞추기 위한 그런 단순한 암기과목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역사 교육은 과거에 조상들이 지나왔던 길을 돌이켜보면서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나아가야할 미래를 설정할수 있는 미래를 향한 통찰력을 갖추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역사교육을 지향하는 황현필 한국사를 보고있는 것입니다.
@@aa87740521 일본 역사 왜곡은 내용은 같은데 일본입장애서 역사를 쓴거고 김부식도 신라인입장에서 고려사룰 쓴거겠죠 역사는 승자에 기록이다는 말은 공산주의자둘이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뜯어고치려는 목적에서 역사룰 부정하려고 역사는 숭자에 기록이라는 소문을 퍼뜨린다고 생각함
@@aa87740521 김일성이 북한입장에서는 위대한수령인데 북한입장에서는 사실이죠 근데 남한에서는 침약자 (남북이 각자 정부를 수립했다고하지만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지못한 정부였기때문에 이건남침이아니라 쿠테타 내전한거죠 ) 역사적 최악에인물인데 그럼 왜곡한건가? 남한입장에서는 사실을 기록한거죠
궁예처럼 남을 통제하려는 심리는 어린시절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부모밑에서 성장하지 못한 경우에 형성된다고 해요. 일찍부터 인생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는걸 배우므로 늘 불안해 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통제력을 가지려고 하죠. 그들은 더 많은 통제력을 가질수록 불안정한 인간 관계에서 상처를 덜 받는다고 확신하거든요.
권력에 취하면 사람이 변하게 되죠. 승자의 기록이기에 감안하고 봐야하지만, 분명 뭔가 문제가 있었던 건 어느 정도 사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반이 약해서 불안했을 수도 있고, 점점 자신감을 잃었을 수도 있기에...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것처럼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창업도 굉장한 일이고, 민간에서는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것도 있다고 알고 있어, 분명 대단한 인물이자 우리 역사에서 독특한 이력을 남긴 이라 생각합니다.
태조 왕건 재방할 때마다 검색해서 와서 다시 봄. 역사를 사극으로 배웠다고 할 순 없잖아. 정말로 그 시절 사람들이 악당이었나, 모자란 사람이었나, 배신을 한 건가 하면서. 명예 만큼은 지켜주고 싶음. 이흔암도 그랬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 . 그리고 역사학사는 그 기록을 다시 해석하는 모습에 감동함
후삼국시대 역시 한반도가 아니라 현재 중국 영토에 존재했습니다 고려시대 역시 중국이 본거지였으나 원나라때 요동까지 밀리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현재 간도와 한반도로 좁아진 것입니다 현근대사는 깔게 없는 황선생님이지만 고대사 중세사는 식민사학 강단사학자들과 다를게 1도 없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어렸을 때, 드라마 속의 궁예가 굉장히 호인이었다가 광인으로 변하는 걸 보곤,충격이었습니다.근데, ,같은 역사서는 없으니 의심이 들긴했었죠.후삼국 당대인들의 후삼국에 대한역사...항상, 뭘 보더라도, 다른 얘긴 없이, 궁예=폭군 등식이어서, 는 맞는얘긴가 싶기도 했고요.어떤 말씀을 하실 진 모르겠으나, 기대가 됩니다.궁예성군설...은 아니겠으나, 뭔가 다른 이견을 말씀하실 것도 같습니다.
진심 심각한 질문이요 또다른 역사 체널인 청화수라는 곳에서 본 내용인데요 주몽의 ‘몽’자가 어리석을 몽 이고 국왕에게 쓰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당시 고구려인들이 직접 기록한 광개토 대왕비에는 추모라고 표현했지 주몽은 고구려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중국인들의 표현이라고 하는데 몽골을 어리석을 몽을 써서 몽고라고 비하 했던것 처럼 주몽이 그런 표현 이었다면 일이 커지는거 아닌가요 주몽 드라마 완전 글로벌 방영 됐자나요 ㅡㅡ 우리가 주몽이라고 부르는게 맞는 건지 궁금하네요
드라마 방영 당시에도 비판 받긴 했으나 그 당시나 지금이나 '추모' 보다 '주몽'이 대중에 더 익숙하고 그 동안 많이 써왔죠. 이미 굳어진 단어를 단기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민간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기에 방송이나 교과서 등 공적인 분야에서 차츰 알리다 보면 나중에는 추모가 더 익숙해지겠죠.
@@epsdm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지금의 우리를 빵즈라고 부르고 빵즈라는 드라마를 만들어 수출하고 자부심 가지며 사는데 빵즈가 아니고 한국이래 라는 반응에 그래도 빵즈가 익숙하니 한국이라고 민간에게 차츰 알려지겠지 라고 말하면 어떨것 같습니까? 중요한건 저 퀘스천이 진실이냐 아니냐 혹은 역사학자들은 주몽에대한 한자의 뜻을 알고 있는데 묵인해 왔냐 아닐까요
지금부터라도 '추모'라고 표현하는게 옳습니다! 주몽이라는 말에 익숙해진 이유는 삼국사기때문인데(조선시대 여러 역사서에도 주몽이라고 표기) 삼국사기에는 심지어 고구려시조를 동명왕(부여시조)이라고 기록하고 있죠 그리고 주몽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또 하나는 연남생묘지명입니다. 연남생은 연개소문의 장남으로 연개소문에 이어 막리지가 되는 인물로 지방순시를 나간사이 동생인 연남건과 연남산의 반란으로 당으로 망명하여 고구려가 멸망할때 고구려의 길잡이가 된 인물로 매국노입니다. 연남생이 당나라에서 죽고 당나라에서 묘지명을 기록했으니 여기도 주몽이란 표현을 씁니다. '둔하고어리석다'라는 뜻의 주몽인것이죠 쪽팔리네요. mbc에서 주몽으로 드라마를 방영한게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만약 궁예가 폭군이었다면 드라마처럼 독화살에 맞아서 그 독기 때문에 미쳐서 폭군이 되었다기보다는 처음엔 분명 개혁적 영웅으로 시작했던 그에게 반감을 품은 기득권 세력에서 모종의 암살을 시도하려다가 미수에 그쳤고, 그 일이 심한 트라우마가 되어서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편집증적 망상에 빠지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황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궁예는 흙수저 중의 흙수저라서 기반도 없는 사람이었으니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 그 아슬아슬함과 불안감을 더 크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네요
ㅋㅋㅋㅋ 작가적 시선에서 보면 이건 그냥 작가적 글쓰기임. 정말 궁예가 관심법이 있었다면 저게 통했을리 만무하고. 결국 승자의 기록인 역사서에서 (토나옴) 왕건을 뭔가 그럴듯하게 포장하려고 하는데 나도 보이는데 그걸 못보는 무지몽맹한 인간들이 많으니 이 나라가 이꼴이겠지요. 선생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정도 선에서 이런 강의를 해주셔서요
선생님 오늘 친구 조선족 와이프 하고 대화 할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분들도 저희와 같은 같은 나라 사람 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같은 말을 쓸 뿐이지 국가는 중국 이라면서 우리는 같은 말을 쓸 뿐이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언어를 같이 쓰면 민족이 같아서 우리는 국가보다 민족이 더 중요하다 했더니.. 말만 같지 우리는 중국이다...중국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이다... 해서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동북공정...그냥 교육이 우리와 너무 틀려서 그냥 중국...그냥 중국인 이라고... 중국사람 이라고 해서 너무 슬프고 선생님 말씀처럼 반론도 해봤는데.. 그냥 만주쪽에 살던 한국말을 하는 중국 사람이라고 그냥 중국 사람 이라고 해서 너무 슬펐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분을 너와내가 같은 민족이고 같은 사람이라고 설득 할수 있을까요?
유비가 호족관리 실패해서 서주를 말아먹고 그 후로 촉나라 먹을때까지 20년을 식객으로 전 중국을 떠돌면서 호족 관리를 잘 해야한다는걸 느끼고 인사를 정말 깔끔하게 했더라고요. 유비는 그래도 전 중국을 떠돌며 재기에 성공했지만 불행하게도 궁예는 그런 식으로 재기하기엔 땅도 좁고 참 어려운 위치였을 것 같습니다..
@@aa87740521 땅이 좁다는건 유비처럼 도망다니며 재기할 공간이 없었단 거고 궁예는 사실상 천출이라 호족관리가 훨씬 어려웠죠. 왕건은 앞서 말했듯 본인이 호족이라 호족 관리를 굉장히 잘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랑 청주였나? 거기 진압엔 애를 먹어서 10년가량 후백제보다 약했고요.
@@jaeminryou9831 그러니까 제 말은 한반도가 중국대륙처럼 넓어서 궁예가 도망다니기에 좋은 땅이라고 하여도 어딜 가더라도 그곳 호족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재기할수 있는데 지방 호족들이 호족들의 적이되서 도망다니는 궁예를 왕으로 세워주고 싶을까요? 궁에를 왕으로 세워주면 나중에 관심법으로 자신들을 죽일지도 모르는데... ㅋㅋ 유비는 한나라의 황족으로서 황제의 숙부라는 명분이 있었는데 님의 말처럼 천출이라는 궁예가 유비와 어떻게 비교대상이 됩니까? 그러니까 궁예는 본래부터 왕건의 도움 없이는 삼국통일을 할만한 능력이 안되는 인물이었다는 그런 말입니다. 지방에 작은 나라를 세우는 것도 그 지역 호족들의 힘이 필요했던 당시로서는 삼국통일과 같은 전체 호족세력의 대통합은 지방호족들의 협력없이는 절대적으로 안되는 통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궁예는 호족출신의 대표격인 왕건에 비해서 애시당초부터 그 능력의 한계가 있었다는 그런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든지 저렇게 돌려서 말하든지 간에 천출인 궁예가 호족들의 대표격인 왕건에 비해서 능력이 안된다는건 팩트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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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zcams.com/play/PL0lEEgMCRI85-VVGTURzLeq2HnA61wafG.html
감사합니다
역대 사극드라마 최고의 왕(배우)
1. 용의 눈물 - 태조 이성계(김무생)
2. 용의 눈물 - 태종 이방원(유동근)
3. 태조 왕건 - 궁예(김영철) - 이 드라마는 태조 왕건인데 보면 드라마 이름이 궁예가 어울림...ㅋㅋㅋ
항상 응원합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 ❤️
사대에 쩐 신라에서
자주국가를 만들고자 고군분투했던
궁예왕의 열정이 느껴집니다.
2022년 대한민국도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층의 몽니로 역사적 퇴행을
걷고 있는 현재를 볼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슴다..
황쌤의 높은 강의력에 감사하고
파이팅!!
대한민국 역사학자 압도적넘버1
황현필스승님
@ᄏᄏᄏᄏᄏ 대명을 ㅋㅋ 거리는 것부터 그대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듯 하네.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님을 언제쯤 깨달을까? 지금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후도 결국 미국의 음모인 것을. 우리의 한국전쟁의 발발원인을 되짚어보면 납득할 수 있는 것인데, 그저 아둔한 머리로 현상만 보는구나. 그 현상은 원인이 있어서 나오는 것인줄을 알아야지. 생선을 싼 봉지에서 생선냄새가 나고, 향을 싼 봉지에서 향이 나듯이.
@ᄏᄏᄏᄏᄏ 원론적으론 북한 김일성이일으킨건 맞지만 미국과 소련이 분단을 만들어서 입니다 분단이되지 않았다면 전쟁은 없었을껍니다 내전은 일어났을수도 있겠지만요 가정은 의미없지만 가장큰 원인을 봐야죠
황연필 선생님 너무 좋습니다 ㅋㅋ 모든 영상 역주행하면서 좋아요 남기며 공부중입니다 현필 선생님 더위 조심하시고 화이팅!
연필?
pencil?
이순신의 바다 구입했음. 아직 읽기 전이나 자료가 많아 머리에 쏙쏙 들어올 듯^^
어떻게 저리 방개한 역사들을 주르르륵 다 꿰고 계실까 강의 볼 때마다 신기함..
최수종 대조영,왕건 다나오는 자료네여~
오늘도 강의 감사합니다.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님이 말한 드라마 대조영 왕건 등등 의 드라마는 대하드라마에서 방영한것입니다
창사기념 100주년 60주년 드라마 라고 적힌것은 작가의 관점에서 시청률을 위한것이고
대하 드라마 라고 적힌것은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사실을 각색하여
시청자에게 알려주는 관점이 되겠습니다
님이 시청하신
대조영 왕건 이순신 정도전 등등의 드라마는 모두 대하 드라마가 붙습니다
거기에 비해 허준 이산 대장금은 사극이 아니라
시청자를 위한 시청률을 위한 드라마 라고 보시면 됩니다
"청화수" 라는 유투버의 궁예를 봤더니 저도 궁예영웅설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봐야겠지만 그렇게 폭군이 아니라 진정으로 민초를 생각하고 기득권이였던 호족들을 너무 급작스럽게 쳐내려다가 쿠데타에 당한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ㅎㅎ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요
나라를 세우면 쳐내야할 인물들이 많죠 백제가 그걸 못해서 왕건에게 당한거죠 이성계때는 이방원이 했고
@@user-hb4ub2gi7x 너무 다 쳐내려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ㅎㅎ
궁예가 영웅인건 맞죠 영웅이 폭군이 될수도 있는겁니다 폭군이아니였으면 왕건한터 제거됬겠습니까?
@@자담-v2b 뭐..제가 꼭 맞다 궁예는 폭군이 아니다! 라는 의미는 아니구요 ㅎㅎ 굳이 폭군이 아니더라도 신하들 귀족층의 기득권을 뺏으려 든다면 탄핵당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궁예가 세금을 엄청 늘렸는데(6/10) 이 것이 사실 대토지를 소유한 호족을 대상이고 실제 조그많에 땅 가지고 농사하는 백성을 크게 다를게 없다고도 합니다.
이건 여담인데 사기에서는 궁예가 도망쳐 나와서 민가를 떠돌다 민초들한테 맞아 죽었다고 나올텐데 궁예가 죽었다는 철원지역에는 전설이나 설화로 내려오는 궁예이야기가 긍정적인 평가가 많습니다 물론 성군일수도 있다이며 반박하는 자료들이 빈약한 것 맞으니 '일수도있지않을까' 정도로 봐주시면 되요 :)
저도 청화수님 구독자인데 반갑네요. 역사를 여러방면으로 생각해보게되서 유익해요.
궁예에 대해 다시 알아보는 시간이라서 정말 좋았습니다.
드라마 속 궁예를 보니 재방송을 다시 찾고 싶어지네요. ㅎㅎ
오늘도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궁예의 재발견은[슬픈 궁예] 라는 책 보고 정말 감명 받은 기억이 있어요.
고려사에 궁예를 폭군으로 역사에 기재 한것은 아무리 왕이 좀 불면했다 하더라도 왕건은 시쳇말로 쿠테타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고대나 현재나 무릇 쿠테타에 의해 권력을 쟁취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패튼이 바로 전임정권때 잘못된것을 더욱 부풀려서 쿠테타의 당위성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러했다
그러닌까 고려사를 다는 믿을수 없겠지만 궁예가 자기의 처와 두자식들을 잔인하게 죽인것은 그 어떤 변명이나 명분을 말한다고 해서 궁예의 과오를 덮을수 없다
궁예출생의 비밀을 신라왕가의 핏줄이라는것도 믿을수가 없는 일이지 역사드라마는 향상 역사라는 뼈에 살점을 더덕더덕 붙혀서 흥미를 끌게 만드는게 역사드라마닌까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폐하 살려주시옵소서....
마군이가 끼었구나~
❤️❤️
"4달라~"
쪼라따
존경합니다
간만에 흥미진진 해졌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저도 궁예 좋아요
강원도 철원엔 아직도 태봉이란 지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궁예는 정치적으로 실패했을뿐 백성들에게는 좋은 왕이었어요 :)
잘 배워 갑니다! 황현필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강의 영상을 보면서 대조영와 태조 왕건의 모습이 연속으로 나올 때 같은 배우 최수종님이 등장하시니 약간 어색하면서도 재미있네요. ^^ 역사의 기록은 모든 나라를 통틀어서 승자의
기록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언급하신 (궁예 영웅설)이 너무 궁금하네요. 다음 영상을 기대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항상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보네요
♡♡♡
이 시대에도 한분 계시지요
검찰출신 백성들과 용산으로 천도하고 선제공격으로 북벌 하시겠다는 미륵보다 공정하신 궁석열
눈은 두개지만 애꾸보다 시야가 좁습니다
궁예는 적어도 미륵불정치라는 본인이 주도한 노력이라도 있는데 지금 이 글을 적는 지금 도어스테핑때도 자기는 무능력해서 짜져있을거니 스타장관을 내세워서 꿀빨겠다는거 보고 기가찬다ㅡ애미
아주 적절한 표현이십니다 ㅎㅎㅎ
미친건 똑같죠 나라를 망치는 바보고요
ㅋㅋㅋㅋㅋ
황현필샘 감사합니다❤❤❤
보훈처장 이란 작자가 이승만을 음지에서 양지로 모셔야 한답니다..
도대체 이나라는 어디로 가려는 걸까요?
황쌤의 말씀이 필요한 순간입니다.ㅠ
옳습니다
빨간티 ㅎㄹ 어울림. 황선생님 패션 유튜브해도 백만 갑니다. 옷을 가장 옷 답게 입는. ㅎㅎ
역사 ! 황현필 샘 ~^^
즐독 하고있어요^^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역사서의 기록으로 증명된다고 해서
그것만이 모두 진실은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역사교육은
그저 지나가 버린 과거사나 들여다 보는
단지 시험문제의 정답이나 맞추기 위한
그런 단순한 암기과목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역사 교육은
과거에 조상들이 지나왔던 길을 돌이켜보면서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나아가야할 미래를 설정할수 있는
미래를 향한 통찰력을 갖추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역사교육을 지향하는
황현필 한국사를 보고있는 것입니다.
궁예가 어려서 힘들게 살았다면 얻어맞기도했다고봐야죠 그러면 힘이 써지면 충분히 폭군이되죠 역사는 승자에 기록이라는 말은 언론 자유가없는 공산귝가에서 가눙함
@@자담-v2b 난독이세요?
고대의 기록을 말하는건데 무슨 공산국가?
고려가 공산국가?
승자의 편에서 삼국사를 기록한 김부식은 공산주의자?
역사왜곡을 하는 일본은? ㅋㅋㅋ
@@aa87740521 일본 역사 왜곡은 내용은 같은데 일본입장애서 역사를 쓴거고 김부식도 신라인입장에서 고려사룰 쓴거겠죠 역사는 승자에 기록이다는 말은 공산주의자둘이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뜯어고치려는 목적에서 역사룰 부정하려고 역사는 숭자에 기록이라는 소문을 퍼뜨린다고 생각함
@@aa87740521 김일성이 북한입장에서는 위대한수령인데 북한입장에서는 사실이죠 근데 남한에서는 침약자 (남북이 각자 정부를 수립했다고하지만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지못한 정부였기때문에 이건남침이아니라 쿠테타 내전한거죠 ) 역사적 최악에인물인데 그럼 왜곡한건가? 남한입장에서는 사실을 기록한거죠
@@aa87740521 근데 중공에서 고구려역사를 지들꺼라한건 어느나라입장문제가아니라 완전 지들 정치목적으로 고구려영토룰 지들 땅으로 만들려고 역사를 뜯어고친거죠
제주도 다녀오신후로 많이 타셨네요^^ 부럽습니다ㅎㅎㅎ 오늘 내용도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궁예처럼 남을 통제하려는 심리는 어린시절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부모밑에서 성장하지 못한 경우에 형성된다고 해요. 일찍부터 인생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는걸 배우므로 늘 불안해 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통제력을 가지려고 하죠. 그들은 더 많은 통제력을 가질수록 불안정한 인간 관계에서 상처를 덜 받는다고 확신하거든요.
드라마에서본 궁예는 정신질환이 있었던게아닌가
싶었는데 선생님 말씀에도 비슷한 내용이있군요.
다음시간 기다려집니다.
어떤 영웅설이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있었든게x 있었던 게o
자막 감사해유~~
김영철 배우님이 워낙 국민 뇌리에 남을 정도로 연기를 잘하셔서 ㅋㅋ 이미지가 너무 굳어버렸죠
안성에 태봉시기에 만들어진 궁예미륵상이 있죠 ㅎㅎ 동자승일때 안성 칠장사에 있었다고 어릴적 소풍갔을때 본기억이 있네요
좋아요!
감사합니다!
현필쌤~~사랑해요 ㅋㅋㅋ♡♡
잘 보았어요. 쌤~ 강의 준비하신다고 고생 많습니다!
권력에 취하면 사람이 변하게 되죠.
승자의 기록이기에 감안하고 봐야하지만, 분명 뭔가 문제가 있었던 건 어느 정도 사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반이 약해서 불안했을 수도 있고, 점점 자신감을 잃었을 수도 있기에...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것처럼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창업도 굉장한 일이고, 민간에서는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것도 있다고 알고 있어, 분명 대단한 인물이자 우리 역사에서 독특한 이력을 남긴 이라 생각합니다.
붉은앙마 황현필^^
임용한박사님께도 비슷한내용의 강의를 들은적이 있어서 반갑네요
역사적으로 가장 평가절하된 인물을 꼽으라면 저도 고민없이 궁예를 꼽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고평가된 인물은 왕건, 이성계를 꼽고요....
하지만 어쩔수 없는 것이 역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인정 할수 밖에 없지요..
궁예의 참모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네요.
태조 왕건 재방할 때마다 검색해서 와서 다시 봄.
역사를 사극으로 배웠다고 할 순 없잖아. 정말로 그 시절 사람들이 악당이었나, 모자란 사람이었나, 배신을 한 건가 하면서.
명예 만큼은 지켜주고 싶음. 이흔암도 그랬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 . 그리고 역사학사는 그 기록을 다시 해석하는 모습에 감동함
짐은 미륵이니라..
12척으로 현실타계는 이순신장군이 돌아와도 못 막는다! 제발 50 척만이라도 냉겨놔라! 떨열아!!
유부녀잡아먹는 만공동생 ! 화개장터에서 무슨짓을 하고있나?
👍
역시나 황샘은 짱이다!!
누구인가? 누가 궁예 영웅설을 얘기하였는가?
참으로 기특하도다.
고종, 순종, 최수종은 발해도 세우고, 고려도 세우고, 바다도 제패하고, 참 열일하심ㅋ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깐요..
왕건의 정치적 명분과 고려의 정당성을 따지자면 궁예를 깍아내려야죠..
그 방식은 지금의 정치에서도 쓰는 방식이고..
새로운 역사를 또 한번 알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대조영에서 왕건으로 넘어가는 사진보는데 어색함이 없네요ㅋㅋㅋ
영상 잘 봤습니다.
사실 궁예 같은 인물은 우리나라 직장에도 많은데,
더 미치거나 조금 덜 미치거나의 차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 중에 제가 단연코 원픽하는 인물은 궁예입니다.
궁예에 대한 콘텐츠 많이 부탁드려요
지금의 언론을 생각하면 그 당시의 궁예는 아마 기득권 타파를 위한 매우 혁신적인 인물이었을거라 생각됩니다
궁예의 기반은 민초들이고
결과적으로 기득권에 패배해 기득권에 의해 역사의 광인으로...
동의합니당
정말 재밌더요~👍👍
다음 영상 너무 기대되네요.^^
역사는 객관이면서 다양한 시선으로 봐야합니다
신돈 광해군에 이어
궁예!
기대하겠습니다.
황선생님 고려의 남쪽에서는 귤이 나왔고, 북쪽에서는 석유가 생산됐다는데 설명하는 땅덩어리가 너무 좁은 것 같네요....
0:03 응애
궁예가 고려를 세웠죠
결과적으로 왕건이 반역했으니 관심법을 실제로 행했던게 맞지 않습니까? 눈을 감고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던게 왕건이 배신하는 날을 점지하고 있던게 아닐랑가 싶습니다.
쌤 울화가 치밀어서 미치겠네요~ '문체부, 옛 청와대 본관 쓰인 조선총독관저 건물 모형 복원 추진'
LG Objet Collection 공간인테리어 가전 LG전자 10분
다 봤어요
후삼국시대 역시 한반도가 아니라 현재 중국 영토에 존재했습니다 고려시대 역시 중국이 본거지였으나 원나라때 요동까지 밀리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현재 간도와 한반도로 좁아진 것입니다 현근대사는 깔게 없는 황선생님이지만 고대사 중세사는 식민사학 강단사학자들과 다를게 1도 없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기침소리 그라샤☆
어렸을 때, 드라마 속의 궁예가 굉장히 호인이었다가 광인으로 변하는 걸 보곤,충격이었습니다.근데, ,같은 역사서는 없으니 의심이 들긴했었죠.후삼국 당대인들의 후삼국에 대한역사...항상, 뭘 보더라도, 다른 얘긴 없이, 궁예=폭군 등식이어서, 는 맞는얘긴가 싶기도 했고요.어떤 말씀을 하실 진 모르겠으나, 기대가 됩니다.궁예성군설...은 아니겠으나, 뭔가 다른 이견을 말씀하실 것도 같습니다.
오오~ 발해와 고려를 개국한 분들의 얼굴이 매우 비슷하다니 역시 운명의 힘이 느껴지는 군효
아름다울 려가
나라 이름에 쓰면 리로 읽는다 하는데
원래 고구려 명칭 자체가
한자를 빌려 쓴거라
리로 굳이 중국식 발음으로 읽어야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진심 심각한 질문이요
또다른 역사 체널인 청화수라는 곳에서 본 내용인데요
주몽의 ‘몽’자가 어리석을 몽 이고 국왕에게 쓰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당시 고구려인들이 직접 기록한 광개토 대왕비에는 추모라고 표현했지
주몽은 고구려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중국인들의 표현이라고 하는데
몽골을 어리석을 몽을 써서 몽고라고 비하 했던것 처럼 주몽이 그런 표현 이었다면
일이 커지는거 아닌가요 주몽 드라마 완전 글로벌 방영 됐자나요 ㅡㅡ
우리가 주몽이라고 부르는게 맞는 건지 궁금하네요
드라마 방영 당시에도 비판 받긴 했으나 그 당시나 지금이나 '추모' 보다 '주몽'이 대중에 더 익숙하고 그 동안 많이 써왔죠. 이미 굳어진 단어를 단기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민간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기에 방송이나 교과서 등 공적인 분야에서 차츰 알리다 보면 나중에는 추모가 더 익숙해지겠죠.
@@epsdm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지금의 우리를 빵즈라고 부르고
빵즈라는 드라마를 만들어 수출하고
자부심 가지며 사는데
빵즈가 아니고 한국이래 라는 반응에
그래도 빵즈가 익숙하니 한국이라고
민간에게 차츰 알려지겠지 라고 말하면
어떨것 같습니까?
중요한건 저 퀘스천이 진실이냐 아니냐
혹은 역사학자들은 주몽에대한 한자의 뜻을
알고 있는데 묵인해 왔냐 아닐까요
@@drafj6412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죠. 그걸 인지하고 바꾸면 될 일. 반대로 얘기하면 원래 우리가 쓰던게 잊혀질만큼 소홀히한 선조의 잘못도 되죠. 그렇게 중요한거면 잘 기록하고 보존했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지금부터라도 '추모'라고 표현하는게 옳습니다!
주몽이라는 말에 익숙해진 이유는 삼국사기때문인데(조선시대 여러 역사서에도 주몽이라고 표기) 삼국사기에는 심지어 고구려시조를 동명왕(부여시조)이라고 기록하고 있죠
그리고 주몽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또 하나는 연남생묘지명입니다. 연남생은 연개소문의 장남으로 연개소문에 이어 막리지가 되는 인물로 지방순시를 나간사이 동생인 연남건과 연남산의 반란으로 당으로 망명하여 고구려가 멸망할때 고구려의 길잡이가 된 인물로 매국노입니다.
연남생이 당나라에서 죽고 당나라에서 묘지명을 기록했으니 여기도 주몽이란 표현을 씁니다. '둔하고어리석다'라는 뜻의 주몽인것이죠
쪽팔리네요. mbc에서 주몽으로 드라마를 방영한게
추모, 철먼 , 주몽 등 이건 음차문자이고 뜻은 금성이라는 뜻 입니다.
금성은 신의 아들이라는 뜻이구요.
태조 왕건보다 궁예가 생각나는 그 드라마...😅😅😅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만약 궁예가 폭군이었다면 드라마처럼 독화살에 맞아서 그 독기 때문에 미쳐서 폭군이 되었다기보다는
처음엔 분명 개혁적 영웅으로 시작했던 그에게 반감을 품은 기득권 세력에서 모종의 암살을 시도하려다가 미수에 그쳤고, 그 일이 심한 트라우마가 되어서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편집증적 망상에 빠지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황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궁예는 흙수저 중의 흙수저라서 기반도 없는 사람이었으니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갔을 때 그 아슬아슬함과 불안감을 더 크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네요
선생님 이번에 한산 영화 개봉인데
궁예는 사실 김영철이였다는 설은 확실한것으로 보입니다
궁예는 김영철 연기가 압권이라 이후 누가 연기하게될지 궁금해...ㅎㅎ
다음편이 더기대되네요ㅎ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철원에 도읍을 삼은 다음 기침소리 내면 때려죽이는 입지적인 인물!!!
당시발음으로 고려를 발음하면 커우리아? 라는 발음이라꼬 한걸 본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본거라 신빙성은 좀 떨어집니다 한번 시간되시면 알아볼만한것 같습니다
하륜이야기도해주세요
ㅋㅋㅋㅋ 작가적 시선에서 보면 이건 그냥 작가적 글쓰기임. 정말 궁예가 관심법이 있었다면 저게 통했을리 만무하고. 결국 승자의 기록인 역사서에서 (토나옴) 왕건을 뭔가 그럴듯하게 포장하려고 하는데 나도 보이는데 그걸 못보는 무지몽맹한 인간들이 많으니 이 나라가 이꼴이겠지요. 선생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정도 선에서 이런 강의를 해주셔서요
드라마도 어릴때 봐서 그냥 주입식으로 궁예는 관심법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그냥 예단을 했던 것 같습니다
13:35 일부로 => 일부러
잘 보고 있습니다.
그 미치광이가 제 탄생 했어요 . 괴롭고 참담합니다
선생님 오늘
친구 조선족 와이프 하고 대화 할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분들도 저희와 같은 같은 나라 사람 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같은 말을 쓸 뿐이지 국가는 중국 이라면서 우리는 같은 말을 쓸 뿐이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언어를 같이 쓰면 민족이 같아서 우리는 국가보다 민족이 더 중요하다 했더니..
말만 같지 우리는 중국이다...중국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이다...
해서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동북공정...그냥 교육이 우리와 너무 틀려서 그냥 중국...그냥 중국인 이라고...
중국사람 이라고 해서 너무 슬프고 선생님 말씀처럼 반론도 해봤는데..
그냥 만주쪽에 살던 한국말을 하는 중국 사람이라고 그냥 중국 사람 이라고 해서 너무 슬펐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분을 너와내가 같은 민족이고 같은 사람이라고 설득 할수 있을까요?
왕이 권력을 이용해 명분없이 한사람이라도 죽이면 폭군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그것을 조금이나마 지울수 있는건 후세에 남길만한 업적인것뿐이지.
유비가 호족관리 실패해서 서주를 말아먹고 그 후로 촉나라 먹을때까지 20년을 식객으로 전 중국을 떠돌면서 호족 관리를 잘 해야한다는걸 느끼고 인사를 정말 깔끔하게 했더라고요. 유비는 그래도 전 중국을 떠돌며 재기에 성공했지만 불행하게도 궁예는 그런 식으로 재기하기엔 땅도 좁고 참 어려운 위치였을 것 같습니다..
땅이 좁아서 못한게 아니라
궁예는 애초부터 호족관리를 잘할만한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왕건세력에게 당한 겁니다.
왕건도 호족관리가 어려웠을텐데 왕건은 삼국통일을 했지 않습니까?
@@aa87740521 땅이 좁다는건 유비처럼 도망다니며 재기할 공간이 없었단 거고 궁예는 사실상 천출이라 호족관리가 훨씬 어려웠죠. 왕건은 앞서 말했듯 본인이 호족이라 호족 관리를 굉장히 잘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주랑 청주였나? 거기 진압엔 애를 먹어서 10년가량 후백제보다 약했고요.
@@jaeminryou9831
그러니까 제 말은 한반도가 중국대륙처럼 넓어서 궁예가 도망다니기에 좋은 땅이라고 하여도
어딜 가더라도 그곳 호족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재기할수 있는데
지방 호족들이 호족들의 적이되서 도망다니는 궁예를 왕으로 세워주고 싶을까요?
궁에를 왕으로 세워주면 나중에 관심법으로 자신들을 죽일지도 모르는데... ㅋㅋ
유비는 한나라의 황족으로서 황제의 숙부라는 명분이 있었는데
님의 말처럼 천출이라는 궁예가 유비와 어떻게 비교대상이 됩니까?
그러니까 궁예는 본래부터 왕건의 도움 없이는 삼국통일을 할만한 능력이 안되는 인물이었다는 그런 말입니다.
지방에 작은 나라를 세우는 것도 그 지역 호족들의 힘이 필요했던 당시로서는
삼국통일과 같은 전체 호족세력의 대통합은
지방호족들의 협력없이는 절대적으로 안되는 통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궁예는 호족출신의 대표격인 왕건에 비해서 애시당초부터 그 능력의 한계가 있었다는 그런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든지 저렇게 돌려서 말하든지 간에
천출인 궁예가 호족들의 대표격인 왕건에 비해서 능력이 안된다는건 팩트가 아닙니까?
궁예가 다 만들어 놓은걸 왕건님이 뒤치기한거지 뭐 결국 이기는쪽이 역사를 쓰겠지 그래도 고려는 그 이름답게 나름 찬란한 역사를 이어왔다고 생각함 몽골과의 전쟁이 아니었음 진짜로 고구려 고토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었다
불에 달군 쇠 절구공이를 죄없는 마누라 음부에 찔러 넣어서 죽였다니 세상 미친 폭군도 이런 폭군이 다 있겠는가?!
어짜피 역사는 승자의 역사 ........ 진짜폭군이었는지는 그때 그시절을 갈수없기에 모른다
승리자인 왕건세력의 기록인
궁예에 대한 기록을 얼마나
믿읗 수 있겠는지요?????
궁예도 가정교육을 잘 받았으면 왕건이 왕에 올랐을지
작계건이 아니라 작제건!
이사람 누군가 했더니 옛날에 6.25전쟁을 미국이 만들었다는 사람이네 ㅋㅋㅋㅋ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패서지역과 강원도 이남은 대략적인 세력이 나오는데...평안도족과 강원도 북부 위쪽으로는 어떤세력이 지배 했을까요? 여진이 장악 했나요?
궁예 대왕의 민중 평등 사상으로 신분을 타파하려 하였으니 이에 기득권인 불교계와 호족들이 술에 약을 지속적으로 타 먹여 정신을 혼미하게 해서 반란에 문제가 없게 하였겠지요 !
발해와 고려를 세운...최수종 그는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