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본기(2) / 은나라를 창업한 탕임금과 이윤 / 사마천 사기 / 은나라 왕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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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27. 08. 2024
  • 인문학 고전 사마천 사기 은본기(殷本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문학 TV 고경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마천 사기 은본기(殷本紀)에 들어가기에 앞서 은나라의 유물 갑골문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사마천 사기 은본기 내용으로 들어가서 은나라를 세운 탕임금과 그의 조력자 이윤에 대한 이야기와 은나라 왕조의 계보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은나라 창업을 이룬 탕왕 이야기
    은(상나라) 나라는 BC1600년~BC1046년 약 600년을 이어온 왕국입니다. 은나라는 사마천 사기 역사책에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역사에서 지난번 영상에서 말씀 드리 바와 같이 갑골문자가 새겨진 유물이 발굴되면서 전설이 아닌 실존했던 왕조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은나라는 중국 최초로 역사적 근거를 갖게 되는 실체가 확인된 나라가 되겠습니다. 원래 은나라는 ‘상나라’라고 불려져야 타당합니다만 상나라가 은허라는 지역을 상나라의 도읍으로 삼은 기원전 1300년 이후 은나라라고도 불려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상나라, 은나라는 같은 왕조를 의미하게 되는 거죠. 오늘 이 시간에는 은 왕조인 탕 임금부터 은을 멸망에 이르게 한 주왕까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는데요 먼저 창업을 이룬 탕 임금의 조상부터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2) 상(은)나라를 세운 탕임금의 조상 설(契)
    탕 임금의 13대 조상은 순임금, 우임금 때 활동했던 설이라는 사람입니다. 설(契)은 오제 본기에서 나왔던 제곡의 둘째 부인인 간적(簡狄)이라는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하루는 어머니 간적이 목욕을 하러 갔다가 제비가 떨어뜨린 알을 받아 삼켜 잉태하여 설을 낳았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설(契)은 장성하여 하나라 우(禹) 임금의 치수사업을 도와서 공을 세웠고, 그 이전 순(舜) 임금 때에는 순임금이 설에게 사도(司徒: 교육부 장관)를 맡겨 백성들을 가르치고 교화하게 했습니다. 순임금 때 설이 공을 쌓자 순임금이 설에게 상(商) 땅을 봉하고 자씨(子氏)라는 성을 내려줍니다. 그래서 상나라가 유래되었고 설은 은(殷) 나라를 세운 탕 임금의 시조가 되는 겁니다. 그 뒤로 13대 설의 후손으로 천을(天乙)이 후대를 이었는데, 이가 바로 성탕(成湯)입니다. 탕은 선왕(先王)이었던 제곡을 추종하여 옛 박(亳) (현 산동성 조현(曹縣) 남쪽 20km 지점. 옛날 하왕조의 도읍지) 땅을 도읍으로 정합니다.
    3) 탕이 하나라를 정벌하고 상나라를 건국하는 이야기
    탕은 하왕조의 제후 중 하나인 갈백(葛伯)이 제사를 올리지 않자 ‘맑은 물에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듯이 백성을 보면 그 나라의 맑은지 어둔지를 알아볼 수 있다며 이웃 제후국인 갈백의 지역을 가장 먼저 정벌합니다. 이때 탕을 따르던 이윤이 나서며 탕의 행동과 언행을 두둔하며 응원합니다.
    -. 훌륭한 창업자에게는 걸출한 조력자가 있는 법 (이윤)
    이윤(伊尹)은 탕(湯) 임금을 도와 하(夏) 나라의 마지막 왕 걸왕(桀王)을 토벌한 상(商) 나라의 창업공신입니다. 원래는 탕 임금의 부인 유신씨(有辛氏)의 잉신(媵臣 : 제후들의 딸이 시집갈 때 데리고 가는 남자 몸종)이 되어 정(鼎:원형 솥)과 조(俎:음식을 닮는 그릇))를 메고 탕에게 갔다가 탕 임금에 의해 발탁되어 상나라의 국정을 맡게 된 인물입니다. 이윤은 이후 탕 임금이 하나라를 멸하고 상왕조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고, 후에 탕 임금의 뒤를 이은 임금도 보좌했고 계속해서 탕 임금의 직계 손자인 태갑(太甲)을 왕으로 옹립하여 올바른 정치와 법도에 대해 가르쳤지만 태갑이 정치를 포학하게 하고 탕왕이 세운 법도를 어지럽히자 이윤은 태갑을 쫓아내고 스스로 섭정의 자리에 올라 상나라를 다스리다가 3년 후에 태갑이 자기의 과오를 뉘우치자 그때서 이윤이 다시 태갑을 맞아들여 왕위에 복위시켰던 그러한 인물입니다. 이윤은 태갑의 뒤를 이은 옥정(沃丁) 임금 때 죽습니다.
    이윤은 음식의 맛을 예로 들어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여 탕이 왕도(王道)를 실행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혹은 이윤이 처사였는데, 탕이 이윤을 맞아들이기 위해 사람을 보냈으나, 다섯 번이나 거절한 뒤에야 비로소 탕의 초빙을 맞아들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때 이윤은 탕의 신하가 되어 탕에게 군주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소왕(素王) 스타일 (높은 덕으로 존경을 받아 추대되었음에도 제왕의 자리에 오르지 않은 성인)과
    구주(九主)(아홉 가지 군주 스타일)
    1.법군(法君) :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군주
    2. 전군(專君) : 독단적인 군주
    3. 수군(授君) : 다른 사람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군주
    4. 노군(勞君) : 스스로 힘써 천하를 위해 노력하는 군주
    5. 등군(等君) : 논공행상을 균등하게 잘하는 군주
    6. 기군(寄君) : 백성들은 고행하는데 그 위에 교만하게 군림하여 패망을 자초하는 군주
    7. 파군(破君) : 나라를 망하게 한 군주
    8. 고군(固君) : 성지(城池)를 굳건하게 쌓을 뿐 덕을 베풀지 않은 군주
    9. 삼세사군(三世社君) : 어린 나이에 군위에 오른 군주)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에 감동한 탕은 이윤을 등용하여 국정을 담당하게 합니다. 사실 이윤은 그전에 탕을 떠나서 하나라로 갔다가 하나라 걸왕이 이미 부패했음을 목격하고 다시 박(亳)으로 돌아왔습니다.
    -. 훌륭한 창업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탕
    탕이 교외로 나갔는데 사방에 그물을 치고 하늘에 대고 「날아다니는 모든 새들을 전부 다 내 그물로 들어오게 해 주소서! 」하며 기원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탕이 「어허! 이런. 한꺼번에 다 잡으려고 하다니!」하고는 탕이 그 사람에게 한 면만 남기고 세 면의 그물을 거두게 하고서 다음과 같이 축원하도록 시킵니다.
    「왼쪽으로 가려고 하는 새는 왼쪽으로 가게 하고,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 새는 오른쪽으로 가게 하소서. 말 안 듣는 새만 내 그물에 걸리게 하소서.」….
    당시 하나라의 제후들은 탕의 이러한 소식을 듣고 「지극한 탕의 덕이 금수(禽獸)에까지 이르렀구나!」라고 하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 탕이 하나라 걸왕을 몰아내기 위한 당위성 이야기
    당시 하나라의 걸왕(桀王)이 주색에 빠져 포악한 정치를 행하자 제후국인 곤오씨(昆吾氏:지금의 허난 성 복양시(濮陽市) )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탕이 군사를 일으켜 제후들을 인솔하고 이윤과 함께 직접 도끼를 들고 곤오를 정벌한 후에 계속해서 걸왕까지 정벌하려고 하면서 군사들과 제후들을 향해 말했다.
    「자, 여러분! 모두 이리 와서 내 말을 자세히 들으시오. 내가 감히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꾀하려고 함이 아니라, 하나라의 걸왕이 너무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오. 하걸을 정벌하려는 나에 대해 원망하지 마시오 나는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여 하나라를 감히 정벌하지 않을 수 없소. 하늘은 나에게 죄를 너무 많이 저지른 하걸을 벌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오. 지금 여러분 가운데 농사짓기도 바쁜 이 시기에 무슨 전쟁이냐 또는 걸왕이 뭔 죄를 지었다느냐? 하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걸과 그 신하들은 큰 공사들을 일으켜 징발된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백성들의 재산을 가혹하게 착취했소. 그 결과 하나라 백성들은 나태해지고 서로 불복하게 되었소. 마침내 백성들은 『저 태양은 언제나 지려는고? 나는 차라리 저 태왕과 함께 사라지리라!』라고 불만을 말하기 시작했소. 하나라의 덕이 이와 같이 무너졌으므로 지금 내가 정벌하고자 함이오. 그대들이 하늘의 징벌을 대신하도록 나를 도와준다면, 그대들에게 큰 상이 돌아가게 하겠소. 내 말을 믿어 주시오. 나는 결코 약속을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오. 만일 그대들이 나의 말에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들에게 징벌을 내리고, 결코 너그럽게 대하지 않겠소.」
    결국 하나라 걸왕은 상의 탕과 싸워 패하고 명조(鳴條)로 달아나자 하나라 군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무너졌다. 이윤이 제후들을 향해 하나라를 정벌한 탕의 공적을 제후들에게 공포했다. 이로써 제후들은 모두 탕의 명을 받들어 귀의했다. 상탕이 천자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안정시켰다.
    -. 승리한 상나라 탕왕의 왕권 굳히기 작업
    탕왕이 본국인 박(亳)으로 돌아와 3월에 동쪽 교외에 나가서 여러 제후국의 군주들에게 선포했다.
    「백성들을 위하여 노력하지 않거나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내 그대들을 징벌할 것이니 원망하지 말라!」
    왕이 또 일렀다.
    「옛날 하우(夏禹)와 고요(皐陶:법무장관)는 오랫동안 밖에서 일하며 백성에게 많은 공을 세워서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소. 이들은 동쪽의 장강(長江), 북쪽의 제수(濟水), 서쪽의 황하, 남쪽의 회수(淮水) 등 사독(四瀆)을 잘 흐르도록 다스려 만민이 이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소. 또한 후직(后稷)이 파종하는 방법을 전해주어 농민들이 백곡을 경작하게 되었소. 이들 삼공(三公)은 모두 백성을 위한 일에 공로를 세웠기에 그들의 후대가 모두 나라를 얻을 수 있었소. 옛날 치우(蚩尤)와 그의 대부가 난을 일으켰으나 하늘이 그들을 돕지 않았던 선례가 있소. 선왕들의 말씀을 따르는 데 힘써야만 하오」
    왕이 또한 일렀다.
    「정도(正道)를 행하지 않으면 그대들의 나라가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겠으니, 그때 가서 나를 원망하지 말라!」
    탕이 역법(曆法)을 개정하고, 복색(服色)을 바꾸어 백색을 숭상하였으며 조회를 낮에 하기로 결정했다.
    4) 탕 이후의 은나라 왕위 계승과 은 왕조의 성쇠이야기
    #은나라_탕임금 #은나라왕조_계보 #탕임금과_이윤

Komentáře • 63

  • @Okay9838
    @Okay9838 Před rokem +1

    감사합니다 😊😊😊😊

  • @user-ie5vr1bt3r
    @user-ie5vr1bt3r Před 6 měsíci

    👍👍👍👍👍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Před 3 lety +5

    와 교수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 @user-yb5qf1gt5m
    @user-yb5qf1gt5m Před 5 měsíci +1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kingkaart6802
    @kingkaart6802 Před 4 lety +7

    낭낭한 목소리로 흐르는 듯한 역사의 전개는 들을수록 빠져들어 다음이야기가 기대됩니다.
    특히 사기의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풀어지는 이야기는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Yeokg
      @Yeokg  Před 4 lety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user-gj9xl2pn7n
    @user-gj9xl2pn7n Před 4 lety +8

    유익한 강의 감사 드립니다.

    • @Yeokg
      @Yeokg  Před 4 lety

      감사합니다

  • @bayonjung9886
    @bayonjung9886 Před 3 lety +4

    👍👍👍노주공세가 주공단 이야기 보다가
    복습하는 의미로 은본기2편부터 주본기까지보고 다시 주공단 이야기로 갈려고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

    • @Yeokg
      @Yeokg  Před 3 lety

      감사합니다 😊

  • @antimoon5273
    @antimoon5273 Před 4 lety +5

    유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Yeokg
      @Yeokg  Před 4 lety

      감사합니다

  • @THOMAS-ep5pl
    @THOMAS-ep5pl Před 4 lety +9

    선생님 강의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요즘 선생님 덕분에 선진,전국시대에 부쩍 관심이 많이가서 중드 대진제국을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 @Yeokg
      @Yeokg  Před 4 lety +1

      감사합니다. 즐거움 가득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 @alyciawang2892
    @alyciawang2892 Před rokem +1

    교수 님 감사합니다

  • @user-fy1qg9nb7p
    @user-fy1qg9nb7p Před 4 lety +3

    복습하는미음으로 경청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

    • @Yeokg
      @Yeokg  Před 4 lety

      감사합니다

  • @user-up4xc4xb8k
    @user-up4xc4xb8k Před 2 lety +2

    감사합니다.
    매번 보고있는데 감사 말씀을 한번도 못했습니다.
    맨번 잘 듣고 감사합니다

    • @Yeokg
      @Yeokg  Před 2 lety

      고맙습니다. 즐겨 찾아주세요.

  • @acritaslee3203
    @acritaslee3203 Před 2 lety +2

    감사합니다 선생님 ㅎㅎㅎ

    • @Yeokg
      @Yeokg  Před 2 lety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 @user-oq7qr6mz2q
    @user-oq7qr6mz2q Před 3 lety +3

    재밌네요♡감사합니다

    • @Yeokg
      @Yeokg  Před 3 lety

      감사합니다 😊

  • @YoungsupBaeehnneo
    @YoungsupBaeehnneo Před 4 lety +6

    감사합니다.

    • @Yeokg
      @Yeokg  Před 4 lety

      감사합니다

  • @samuelnick3379
    @samuelnick3379 Před rokem +1

    컴퓨터 공학인데도 보는영상 내내 재밌네요 좋은강의 감사합니다

    • @Yeokg
      @Yeokg  Před rokem

      네 고맙습니다

  • @Sunnypedia
    @Sunnypedia Před 4 lety +4

    저는 서양정치철학 전공이지만, 최근 동양철학에도 관심이 많이 갑니다ㅡ 우연히 좋은 채널을 발견하게 되어 기뻐요! 앞으로 많이 배울게요 😃 유익한 내용 기대합니다.

    • @Yeokg
      @Yeokg  Před 4 lety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만드시길 바랍니다.

    • @thesanctuary225
      @thesanctuary225 Před 4 lety

      서양철학도 철학인가요?
      너무 수준이 낮지 않나요?
      철학은 역시 동양철학이죠.^^

  • @user-gy4xb5mt8u
    @user-gy4xb5mt8u Před 4 lety +5

    저 까마득한 시절에 저렇게 세세하게 임금들의 유형을 나누어 정리할만큼의 표본이 있었다는건 이미 그 전에도 기록이 전해지지 않은 임금들과 스토리가 상당히 많이 있었나 봅니다 ㅠㅠ

  • @user-eu4mw3gg3x
    @user-eu4mw3gg3x Před 2 lety +1

    0:50 BC1600~BC1046
    1:30 BC1300년 은허로 수도를 옮긴 후 부터 상나라를 은나라라고 부르게 되었음

    • @Yeokg
      @Yeokg  Před 2 lety

      감사합니다 😊

  • @THOMAS-ep5pl
    @THOMAS-ep5pl Před 4 lety +3

    부열 같은 경우는 노예등용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줄이려고 무정이 헐리우드액션을 하는 수를 낸것이겠죠? 부호의 묘가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도 해보니까. 정말 완벽하게 발굴되었다네요. 감사합니다.

    • @Yeokg
      @Yeokg  Před 4 lety

      네 저도 감사합니다 😊

  • @user-my3sl4wj2e
    @user-my3sl4wj2e Před 4 lety +5

    흥미 있는 중국고대사 입니다.감사 합니다.

    • @Yeokg
      @Yeokg  Před 4 lety

      감사합니다

  • @jefflee4566
    @jefflee4566 Před 4 lety +3

    이 당시의 상나라 하나라가 천자란 개념으로 스스로를 칭할수 있었는지요? 우리의 환웅이나 단군시대와의 비교할 수있는 시대인지 궁금합니다.

    • @ysng-yz7xe
      @ysng-yz7xe Před 3 lety

      중국역사는 고조선의 역사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2000년전
      의 요하의 홍산문화가 있었고
      그 홍산문화를 고조선이 이어받은 유물 유적이 나타납니다

    • @user-xb5bh1gy1i
      @user-xb5bh1gy1i Před 2 lety

      사기에 황제헌원은 환웅의 운사 라고 나와 있답니다.

  • @user-hr4di4vz3f
    @user-hr4di4vz3f Před 2 lety +1

    선생님 은나라 계보는 어느책에서 찾을 수 있나요?

    • @Yeokg
      @Yeokg  Před 2 lety

      계보는 인터넷 자료에서 검색했습니다. 또한 사기본기 내용에 차례로 정리되어 기록되었습니다.

  • @user-vh8uh2xt2x
    @user-vh8uh2xt2x Před 4 lety +2

    2020🍹2🍸11
    굿.🍷🍾🍮🍭🍧.

  • @thesanctuary225
    @thesanctuary225 Před 4 lety +6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 한반도에 정착해서 살고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

  • @user-hk8ef8ik3t
    @user-hk8ef8ik3t Před 4 lety +2

    상왕조 하왕조는 실존한 나라인가요?

    • @Yeokg
      @Yeokg  Před 4 lety

      상왕조는 유물로 입증된 역사입니다.
      하왕조는 후대 역사가의 기록으로만 남았는데 아직 증거가 될 유물이 없어서....

    • @sweetfan3250
      @sweetfan3250 Před 3 lety

      중국 상고역사는 동이의 역사죠.은.상.주는 그런것 아닌가요.한 무제는 한족통일이고.삼황오제는 우리 역사라 알고 있지요.요.순임금.오제또한

    • @user-ne4wo4ir4v
      @user-ne4wo4ir4v Před měsícem

      상나라는 갑골문과 은허 발굴로 실존했던 나라라는게 밝혀졌지만 하나라는 아직입니다

  • @y2k2000y2k
    @y2k2000y2k Před 2 lety +1

    탕 임금과 이윤의 관계 설정에만 집중하고 걸과 탕의 교체기에 군사적 움직임은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홍범구주의 전수자인 부루태자 그리고 흘단단군의 군사적 움직임속에 흉노란 나라가 언급되지만 현재의 서안 지역 서쪽지역에 빈 기 라는 관청이
    들어서는 기록으로 봐서는 하 은 의 교체기는 고조선의 역활이 가장 큰것이고 이 군사적 역활로 국가가 교체 되었다면 하 은 이라는 나라는
    고조선의 분국임을 나타내는것 아닌가.은나라가 무슨 제후국들이 있어서 하나라를 친단 말인가.구이족 군사외에 낙랑이 함께 기록되어 있고
    또 하나의 국가가 있지만 지금 기억이 안나서 올릴수는 없지만 은나라의 성립이 이떻게 이윤의 공로로만 끝날수가 있나.고조선의 군사적 움직임을
    감추기위해 흉노란 종족을 끼워 넣었지만 걸을 정벌하고 부루태자의 홍범구주의 전수와 또 빈 기라는 관청이 설치된것은 고조선의 역활이다.
    흉노란 종족이 마치 구이의 군사를 일으킨것처럼 착각되지만 이후의 역활에서 보면 고조선임을 분명하게 알수가 있는것 아닌가.
    이러한 사실들이 역사교육에서 계속 빠지고 일어나는 현상이 전방후원분으로 인한 한반도 남부의 임나일본부설을 계속 가능케하고 왜곡질이 계속
    일어나는것 아닌가.한반도 남부에서의 전방후원분의 발견이 일본의 고분들보다 앞선 시기에 것으로 밝혀짐으로서 임나일본부설이 깨진것인데 최근에
    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임나일본부설이 버젓이 전시되는게 말이 되겠나.일본의 유적과 유물 그리고 남아있는 사찰들이 오히려 열도가 삼국의 분국
    임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게 아닌가.
    ○丙午/遣藝文館學士韓尙質如京師, 以朝鮮、和寧, 請更國號。 奏曰: "陪臣趙琳回自京師, 欽齎到禮部咨。 欽奉聖旨節該: ‘高麗果能順天道合人心, 以(妥) 東夷之民, 不生邊釁, 則使命往來, 實彼國之福也。 文書到日, 國更何號, 星馳來報。’ 欽此切念小邦王氏之裔瑤, 昏迷不道, 自底於亡, 一國臣民, 推戴臣權監國事。 驚惶戰栗, 措躬無地間, 欽蒙聖慈許臣權知國事, 仍問國號, 臣與國人感喜尤切。 臣竊思惟, 有國立號, 誠非小臣所敢擅便。 謹將朝鮮、和寧等號, 聞達天聰, 伏望取自聖裁。"
    初上欲遣使, 難其人, 尙質自請曰: "臣雖乏專對之才, 敢不敬承上命, 以効寸忠!" 上說。
    이기록은 우리가 가진 기록이고 이 기록은 왜곡되어 후학들에게 가르쳐지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진 내용이다.
    조선이란 국호를 어느 나라로부터 누구로부터 어디에서 받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한다.
    이 기록을 두고 강단과 학계 교육부가 진실을 말해 줄수가 있을까?
    경도(京都) 경성(京城)이란것은 일반명칭인 수도로서 어디인지를 쉽게 가늠할수는 없지만 경사(京師)는 움직일수가 없는 고유명사이다.지역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는 단 하나의 이름이다.우리가 가진 기록이나 중국측이 가진 기록으로 단 하나의 이름이고 단 한곳의 지역이다.
    동음이어. 한자가가진 특성중 하나가 같은 소리여도 고유한 이름엔 같은 글자를 쓸수가 없다는점이 가장 큰 특색이지 않은가.

    • @user-oo7xy8ez9u
      @user-oo7xy8ez9u Před rokem

      구려와 같은 시기에 기억되지 않는 나라는 아마도 동호인것 같른데 어떠신지요? 그리고, 그 아래에 쓰린 경사관련 한문 원전은 혹시 이씨 조선의 실록 같은데 왜 여기 실어놨는지?

    • @y2k2000y2k
      @y2k2000y2k Před rokem

      전체적인 취지는 현재 우리와 전혀 다른 별개의 나라라는 관점에서 중국을 말하고 있는 역사관을 지적하고 싶은겁니다.
      한걸은탕 교체기에 이윤의 역활이 군사라는 참모역활이겠지만 구이족 군사의 움직임과 빈 기 관청 설치는 하나의 사건들의 연장선들입니다.
      그러면 하 은(상)은 당연히 고조선의 분국으로 볼수밖에 없는 하나라 은(상)나라입니다.
      이런 관점을 대륙에 시선을 두라고 말하는것이고 대표적으로 조선이 명나라로부터 조선이란 국호를 하사 받았다는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기록을 보여줌으로서 고려와 조선이 한반도가 아닌 대륙임을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관련 기록들 어디에도 하사 받았다는 그런 측면의 기록들은 없습니다.조선이란 국호가 합의로 장해졌다는건 기록들을 뒤져 보면 알수가 있습니다.
      기존의 역사는 폐기 되어야만 합니다.
      경도와 경성 경사를 말했지만
      경사는 중국측 기록들이나 일본측 기록 그리고 우리가 가진 기록으로는 한곳을 가리킬 뿐이라고 봅니다.
      다음은 기존의 한반도 강역고로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것이지만 청나라이고 만주국이였던 19세기 당시를 볼수있습니다.
      이것이 조선임을 말 할려고 기록을 찿아 보는 것입니다.
      태조실록 1권, 총서 49번째기사동북면을 공격하고 나하추 등이 있는 곳에 방을 붙여 기새인첩목아의 행방을 탐문하다
      奇賽因帖木兒, 本國微臣, 昵近天庭, 過蒙殊恩, 位至一品, 義同休戚。 天子蒙塵于外, 義當左右先後, 効死勿去。 爾乃背恩忘義, 竄身東寧府, 挾讎本國, 潛圖不軌。 年前國家, 遣兵追襲, 逃不血刃, 又不赴於行在, 退保東寧城, 與金伯顔平章等, 結爲心腹, 松甫里、法禿河、阿尙介等處, 團結軍馬, 又欲侵害本國, 罪在不原。 故今擧義兵以問, 乃其賽因帖木兒、金伯顔等誘脅小民, 堅壁逆命。 哨馬前鋒, 生擒金伯顔外哈刺波豆、德左不花高達魯花赤、大都摠管等大小頭目, 盡行勦捕, 賽因帖木兒, 又復在逃。 仰賽因帖木兒去接各寨, 卽便捕捉飛報。 如有隱匿不首者, 鑑在東寧。
      기새인첩목아(奇賽仁帖木兒)는 본국(本國)의 미천한 신하로서 황제의 조정에 친근(親近)하여 별다른 은혜를 지나치게 입어 관위(官位)가 1품(品)에 이르렀으니, 의리상 나라와 함께 기쁨과 근심을 같이해야 될 것이며, 천자(天子)가 밖에 피난(避亂)했으니, 의리상 마땅히 전후 좌우에서 보좌하여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고 가버리지 않아야 될 것인데, 그는 은혜를 저버리고 의리를 잊고서 동녕부(東寧府)에 몸을 도망쳐 와서, 본국(本國)에 원수를 가지고 몰래 모반(謀反)을 도모하고 있다. 두서너 해 전에 국가에서 군사를 보내어 뒤쫓아 습격했으나, 도망하여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았는데, 또 행재소(行在所)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물러와 동녕성(東寧城)을 지키면서, 김백안(金伯顔) 평장(平章) 등과 결탁하여 심복(心腹)이 되어 송보리(松甫里)·법독하(法禿河)·아상개(阿尙介) 등지에서 군사와 말을 단결(團結)시켜 또 본국을 침해하고자 하니, 죄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지금 의병(義兵)을 일으켜 문죄(問罪)하니, 그 새인첩목아(賽仁帖木兒)와 김백안(金伯顔) 등은 소민(小民)들을 유혹 협박하고 성벽을 굳게 지켜 명령을 거역[逆命]하므로, 초마(哨馬) 전봉(前鋒)이 김백안 외에 합라파두(哈剌波豆)·덕좌불화(德左不花)와 고다루가치(高達魯花赤)와 대도총관(大都摠管) 등 대소 두목(大小頭目)을 모두 잡아 죽였으나, 새인첩목아는 또 다시 도망 중에 있으니, 새인첩목아가 가서 접(接)하는 각채(各寨)에서는 즉시 잡아서 빨리 보고할 것이며, 만약 이를 숨기고 자수(自首)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감계(鑑戒)가 동녕부(東寧府)에 있을 것이다."
      하였다.
      東寧城戰鬥
      播報
      鎖定
      上傳視頻
      東寧城戰鬥,1933年9月9日在東寧縣城發生的戰鬥。
      1933年9月9日,中國共產黨領導的吉林省汪清、琿春反日遊擊隊聯合救國軍吳義成部,反日山林隊金山、三俠等部共2000餘人攻打東寧縣城(今屬黑龍江省)。 東寧城有日軍500餘人和部分偽軍防守,城四周築有炮臺,城外挖有水溝,並設有鐵絲網,工事比較堅固。 淩晨3時許,由汪清、琿春反日遊擊隊與共產黨員史忠恆率領的救國軍抗日遊擊總隊第3團(後編入東北抗日聯軍第2軍)組成的「炸彈隊」首先攻入城內,但因攻城部隊指揮不統一,山林隊及救國軍在守城日偽軍的猛烈反擊下受阻,有的向後撤離。 攻入城內的部隊孤軍作戰,至中午12時,被迫撤出戰鬥。 此次戰鬥斃傷日偽軍40餘人。
      發行者:中國軍事百科全書編審室 [1]
      동녕성 전투
      신문을 방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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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년 9월 9일, 둥닝성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1933년 9월 9일,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지린성 왕칭과 훈춘 반일 게릴라 합동 구국군 우이청부, 반일산림대 진산, 삼협 등 총 2000여 명이 동닝현 성(현재 헤이룽장성)을 공격했다. 동닝성은 일본군 500여 명과 일부 위군 수비, 성 주변에 포대 건설, 성 밖의 물골 발굴, 철조망 설치, 요새가 비교적 견고하다. 새벽 3시경 왕칭, 훈춘 반일 빨치산, 공산당원 시충항이 이끄는 구국군 항일유격총대 3연대(이후 동북항일 연합군 2군에 편입)로 구성된 폭탄대가 먼저 성 안으로 들어왔지만 공성부대 지휘가 맞지 않아 산림대와 구국군은 수성일위군의 맹렬한 반격에 막혀 뒤로 철수했다. 도시에 침입한 군대는 낮 12시까지 전투에서 철수해야 했다. 이번 전투는 일본 위군 40여 명을 사살했다.
      발행인: 중국 군사 백과 사전 편집실 [1]
      1928年的东宁城老照片,宁古塔以东,海参崴以西
      本组照片刊发于《亚细亚大观》,日本摄影师拍摄于1928年。东宁于清末设治,以其地居宁古塔东部而得名。日文图片说明:东宁别名三岔口,东部与俄国接壤,是一个重要的商贸城。离珲春东北约270里,绥芬河南约140里,宁古塔约400里。图为在中俄边境遥望东宁城。
      번역 ::무
      (((1928년 일본 사진작가가 촬영한 아시아 대관에 실렸습니다. 동녕은 청나라 말기에 통치를 하여 그 땅이 닝구탑의 동쪽에 거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출처::백도백과
      이 기록과 관련된 수많은 기록들을 찿다보면 기존의 역사인 압록강 이남 한반도 조선이 도저히 점유 할수 없는 곳입니다.
      화(華) 와 이(夷)를 통일하고 또한 원을 흡수 통합 했다는걸 여러 기록들로 확인할수 있습니다.
      원을 흡수했다고 하니 미친소리로 들으시겠지만 문연각을 통하면 그런 결론을 자연스럽게 내릴수밖에 없습니다.
      문연각 기록물은 현재 대만에 있는것으로 압니다.이 문연각을 조선시기 내내 왕과 신하들이 기록물을 가지고 예법과 현실 정치를 하고자 들먹이는
      걸 확인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기록속에 이 모든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장황하게 여러가지를 쏟아 냈지만 직접 찿아보면 충분히 이해 하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