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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and Dutch Talking about Eunuchs, Slaves and Feudalism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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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13. 09. 2021
  • Jacco is my new-found friend from Holland, but living in Korea. He heard of a house that was once the house of a eunuch -- and we went to check it out. And he had questions for me about Korean slavery, and whether there was feudalism in Korea, or not. There wasn’t. Jacco plugged his podcast, NK News Podcast.

Komentáře • 109

  • @user-hc4xr7mc6v
    @user-hc4xr7mc6v Před 2 lety +52

    이분은 ㄹㅇ 우리만 알긴 좀 아까운데 유퀴즈에서 한번 섭외했으면 좋겠다.

    • @ericyoon956
      @ericyoon956 Před 2 lety +1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는 해외 유명 방송국, 세계사 교과서, 국제기구, 대학교 등이 한국을 '중국과 일본이라는 고래 사이에 낀 새우'로 묘사하고 있다면서 "이를 바로잡는 동시에 긍정적인 한국의 역사를 알려 나가겠다"고 17일 밝혔다. 미국의 명문대학인 컬럼비아대가 운영하는 교육 사이트도 한국을 '새우'로 묘사했고, 미국과 아시아의 이해증진을 목적으로 설립한 아시아소사이어티 사이트는 "한국인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속담처럼 종종 자신들을 강대국의 희생양으로 묘사한다"는 내용을 싣고 있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이런 비하적 표현을 방치한다면 세계인들은 한국을 약소국으로 여기고, 한국 역사도 독립성과 주체성을 갖지 못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를 대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인은 자기 비하에 빠진 못난 나라에 사는 열등한 국민으로 비출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런 편견은 21세기 한국 역시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지 못하고 주변 강대국의 의지로 휘둘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낳게 한다"며 "한국의 역사가 '고래 사이에 낀 새우'라 비유할 만큼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는 약소국, 무능력한 국가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역사 속 다양한 사례를 찾아 적극적으로 세계에 알려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user-lb4ih6vy9f
    @user-lb4ih6vy9f Před 2 lety +11

    저도 교수님 때문에 새로운 역사를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 @yesno9065
    @yesno9065 Před 2 lety +36

    대화에서 서로 공감하는 포인트는 봉건과 근대로 나누는 (일제에 의한)서구 방식의 역사 해석과는 달리, 사실은 조선 이전부터 문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중앙 행정 시스템을 완료한 한국의 역사는 봉건과 근대로 구분하는 방식을 넘어 이미 국가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는 의미 같아요. 조선이 망한 건 부패 때문이지 국가 형태가 후져서가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드림

    •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Před 2 lety +12

      네, 부패 때문이고 무능한 왕족 도. 고종은 어디가지나 IQ 낮아요.

    • @study5801
      @study5801 Před 2 lety +2

      조선은 유럽이 17세기에나 완성했던 중앙집권체제를 이미 천년이상 유지하였기에 양반계급을 유지하는데 고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 변화가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극보수화.
      갈라파고스의 섬 안에서 자신들의 계급의 단물만 빨다가 서구의 산업혁명이후의 물질 문명의 핵폭탄을 맞아 조선은 멸망했다.
      조선보다 먼저 개항을 했던 일본이 요즘 갈라파고스섬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리고 영상의 내시집을 길가다 자주 보면서 늘 궁금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ericyoon956
      @ericyoon956 Před 2 lety +5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는 해외 유명 방송국, 세계사 교과서, 국제기구, 대학교 등이 한국을 '중국과 일본이라는 고래 사이에 낀 새우'로 묘사하고 있다면서 "이를 바로잡는 동시에 긍정적인 한국의 역사를 알려 나가겠다"고 17일 밝혔다. 미국의 명문대학인 컬럼비아대가 운영하는 교육 사이트도 한국을 '새우'로 묘사했고, 미국과 아시아의 이해증진을 목적으로 설립한 아시아소사이어티 사이트는 "한국인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속담처럼 종종 자신들을 강대국의 희생양으로 묘사한다"는 내용을 싣고 있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이런 비하적 표현을 방치한다면 세계인들은 한국을 약소국으로 여기고, 한국 역사도 독립성과 주체성을 갖지 못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를 대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인은 자기 비하에 빠진 못난 나라에 사는 열등한 국민으로 비출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런 편견은 21세기 한국 역시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지 못하고 주변 강대국의 의지로 휘둘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낳게 한다"며 "한국의 역사가 '고래 사이에 낀 새우'라 비유할 만큼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는 약소국, 무능력한 국가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역사 속 다양한 사례를 찾아 적극적으로 세계에 알려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user-op1cg4xz5o
    @user-op1cg4xz5o Před 2 lety +16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 @belief6214
    @belief6214 Před 2 lety +6

    넘 감사드린다는 말밖에 .. 교수님처럼 바르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셔서 한국역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대해 지대한 관심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위 자료 흥미로웠습니다 ^^

  • @moltobello8311
    @moltobello8311 Před 2 lety +5

    사랑합니다 교수님~ 항상 건강하세요

  • @pdwplag6133
    @pdwplag6133 Před 2 lety +22

    사실 조선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족보에는 성별 상관없이 출생순서로 이름이 기록되었죠. 그리고 조선시대 환관, 즉 내시들도 가족을 꾸리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사고로 성불구자가 된 아이를 양자로 들여서 대를 이었지요

    • @ericyoon956
      @ericyoon956 Před 2 lety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는 해외 유명 방송국, 세계사 교과서, 국제기구, 대학교 등이 한국을 '중국과 일본이라는 고래 사이에 낀 새우'로 묘사하고 있다면서 "이를 바로잡는 동시에 긍정적인 한국의 역사를 알려 나가겠다"고 17일 밝혔다. 미국의 명문대학인 컬럼비아대가 운영하는 교육 사이트도 한국을 '새우'로 묘사했고, 미국과 아시아의 이해증진을 목적으로 설립한 아시아소사이어티 사이트는 "한국인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속담처럼 종종 자신들을 강대국의 희생양으로 묘사한다"는 내용을 싣고 있다.
      박기태 반크 단장은 "이런 비하적 표현을 방치한다면 세계인들은 한국을 약소국으로 여기고, 한국 역사도 독립성과 주체성을 갖지 못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를 대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인은 자기 비하에 빠진 못난 나라에 사는 열등한 국민으로 비출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런 편견은 21세기 한국 역시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지 못하고 주변 강대국의 의지로 휘둘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낳게 한다"며 "한국의 역사가 '고래 사이에 낀 새우'라 비유할 만큼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는 약소국, 무능력한 국가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역사 속 다양한 사례를 찾아 적극적으로 세계에 알려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tridish7383
    @tridish7383 Před 2 lety +5

    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즐거운 추석 되세요!!!

  • @user-kd2cc1tz8l
    @user-kd2cc1tz8l Před 2 lety +1

    Dr. Peterson, through your CZcams channel, I am also learning good English terms. ❤️

  • @user-li9nk6jp6t
    @user-li9nk6jp6t Před 2 lety +5

    한국사람보다 역사 더 많이 아셔서 몸들바를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으로써 부끄럽고 죄송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 👍👍👍👍👍👍👍🇰🇷🇰🇷🇰🇷🇰🇷🇰🇷🇰🇷🇰🇷💜💜💜💜💜💜💜

  • @user-ok4df1vx9g
    @user-ok4df1vx9g Před 2 lety +3

    교수님 ~~영상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 @youngb953
    @youngb953 Před 2 lety +6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 @user-vj3ri4fc9z
    @user-vj3ri4fc9z Před 2 lety +4

    선리플 후감상
    믿고 보는 교수님 영상입니다~

  • @egt6623
    @egt6623 Před 2 lety +8

    피터슨 교수님, 전생 어느 시점에는 분명 이 나라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오늘 게스트로 오신 네덜란드 제코님도 반갑습니다.
    강의, 항상 잘 듣고 있습니다.

    •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Před 2 lety +8

      내 개인 생각에는 세종왕때 신하였다고....

    • @egt6623
      @egt6623 Před 2 lety +3

      @@TheFrogOutsidetheWell
      WOW, 집현전 학사....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 @oksunbank8721
    @oksunbank8721 Před 2 lety +1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 @romeoalfa1598
    @romeoalfa1598 Před 2 lety +25

    한국인인 내가 외국교수님을 통해서 한국역사를 새롭게 배우는게... ㅠㅡㅜ

  • @Kim-fd2su
    @Kim-fd2su Před 2 lety +1

    잘보구있습니다~
    교수님 응원합니다.

  • @BangtanBlondes
    @BangtanBlondes Před 2 lety +1

    오늘도 배우고 갑니다 감사해요 :)!

  • @user-li9nk6jp6t
    @user-li9nk6jp6t Před 2 lety +3

    👍👍👍👍👍👍👍💜💜💜💜💜💜💜

  • @mooninsen
    @mooninsen Před 2 lety +2

    반갑습니다 교수님 많을걸 배워갑니다

  • @WorldReserveCurrency
    @WorldReserveCurrency Před 2 lety +6

    Very interesting discussion as always... thank you Professor.

  • @user-tm7fr4hs3o
    @user-tm7fr4hs3o Před 2 lety +6

    봉건주의가 유럽이아닌 일본에서부터 나온 이론이군요.

  • @waynek1389
    @waynek1389 Před 2 lety +1

    25분 동안 즐겁게 시청했습니다. 40대 후반 한국인이지만 많이 배웁니다. 두 분 감사합니다.

  • @sujinlee2701
    @sujinlee2701 Před 2 lety +1

    5분 경에 나오는 저 한옥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여기에서 듣게 되네요. 출퇴근길에 자주 지나다니면서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 @abegopatlqkf
    @abegopatlqkf Před 2 lety +1

    교수님 존경합니다!

  • @SongDaYeong
    @SongDaYeong Před 2 lety +3

    사실 한국에서 봉건주의를 대입하자면 들어맞는게 하나도 없잖아요? 각 고을을 다스리는 건 나라에서 파견한 관리였지, 자신의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양반이 아니였고. 무슨 공작이나 백작 같이, 양반들 간의 계급도 없었고. 그걸 생각하면, 어떤 의미로 봉건제를 가르쳤던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와 판문점에서 통역하신분이라니! 교수님이 조선 마지막 내시를 만나셨다고 했을때도 놀랐었지만, 뭔가 한국전쟁은 아주 오래된 일처럼 느껴져서, 그때 통역하셨던 분이 아직도 정정하시다는게 뭔가 놀라워욬ㅋㅋㅋㅋ

  • @willowryu5960
    @willowryu5960 Před 2 lety +17

    봉건이란 '봉(feud)을 기반으로 세운(建)' 의미입니다. 봉건제는 유물사관의 산물입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경제나 생산의 하부구조(infrastructure) 위에 정치, 법,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상부구조(suprastructure)가 결정되어진다는 것인데... 봉은 장원이라는 생산적 하부구조에 상부구조인 정치 등이 세워지는 체계를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나라는 봉을 기반으로 한 생산체제와 그 위의 상부구조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없지요. 중앙집권이 안 되는 후진 정치체제가 바로 봉건제이지요...경제학사 관점에서 보는 제도는 고대노예제, 봉건농노제, 근대자본제 흐름이고...이러한 역사흐름에서 다음 단계가 무산계급(프롤레타리아트)의 공산제가 나와야 한다고 본게 막스의 유물사관이지요...일본은 앞 부분의 유럽식 유물사관을 차용하여 자기네 역사를 포장하면서 주변국을 폄하했던 것이요.

    • @user-mk1rb4nb9m
      @user-mk1rb4nb9m Před 2 lety +2

      무엇보다 중앙집중식 정치체제가 되려면 중앙의 힘이 지방 구석구석까지 닿아야하는데
      이건 전국에 행정력이 미칠수 있도록 사회기반이 깔려야하는 일이지요
      보통 그러면 경비가 많이들고 그걸 벌어들이기위해 세금이 높아지기 마련인데
      그러면 또 반란이 일어나기 쉽게 되고 말이죠 생각보다 성립시키기가 어렵지요

    • @user-bm9jh4vg9w
      @user-bm9jh4vg9w Před 2 lety +1

      @@user-mk1rb4nb9m 그렇게 예산이 많이 들어도 이를 해결할 증세에는 소극적이었죠. 국가 수입의 상당량을 환곡이라는 보험에 넣었기 때문에 실제 사용가능한 세율은 더 낮았죠. 아무리 전쟁을 잘하지 않는 나라라도 이런식이면 변화에 대처하기 힘든 단점이 있기도 합니다. 조선이란 나라가 민생안정에 목숨을 걸었던 나라이기도 했지만요.

    • @user-mk1rb4nb9m
      @user-mk1rb4nb9m Před 2 lety

      @@user-bm9jh4vg9w 사실 나중에 와서나 변화가 빨라진거지 건국초기시절만 하더라도 별 변화할 꺼리가 없지 않나요?

    • @user-bm9jh4vg9w
      @user-bm9jh4vg9w Před 2 lety

      @@user-mk1rb4nb9m 여몽전쟁, 홍건적과 왜구를 거치면서 전국이 초토화 되면서 나라와 사회에 여러 문제가 나타 납니다.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게 고려말~조선초의 지상과제였습니다. 당장 사람이 먹고 살 해답을 내놔야 하는데 그런쪽으로 가는건 중국, 북한이 내정을 포기하고 핵무기개발에 목을 메는 행위랑 같은 것이죠.
      조선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내세워 농장주들의 땅을 회수해서 자영농을 육성했습니다. 사병을 거느리고 있는 농장주들의 농지를 회수하고 사병을 혁파하는건 그 시대에서 할수 있는 특단의 조치입니다.
      조선사회의 변화가 가속화된 계기는 경신대기근을 거치면서 대량의 환곡미가 시중에 풀린 것과 대동법을 시행한 것이죠. 물류가 폭발한 겁니다.

  • @KimDeKhan
    @KimDeKhan Před 2 lety +1

    🙏🙏🙏

  • @ROK_KenBell
    @ROK_KenBell Před 2 lety +6

    안녕하세요 교수님.
    조선은 시대상 구분을 하자면, 왕정시대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예제도와 노비제도는 조금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한반도 고대왕조의 노비제도는 미국의 흑인노예제도와 차이가 있고, 오히려 이집트의 노예제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노비가 되는 경우는
    1.전쟁포로
    2.죄인 (역모등으로 몰락한 양반의 자손. 이것도 연좌제로 9족을 멸한 이후겠지요.)
    3.경제적 어려움에 의한 자발적 노비.
    4.강제적으로 잡아다가 노비를 만든 경우는 없었던것 같아요. (*이건 보편적으로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현대사회에 와가지고 현대판 염전노예라고 보도가 되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미국의 흑인노예제도하고 한국의 노비제도를 조금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보고요.
    또 하나는 이게 생산하는 작물하고 산업혁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물로만 비교하면 목화VS쌀이지요. (*솔직히 노예제도나 노비제도나 혐오스럽기는 마찮가지 입니다. 다만, 당시의 시대상과 경제도 고려를 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들이 구한말에 조선에 와서 바라보는 시각을 보면, 봉건시대의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왕이 주도권을 쥐고 정치를 하는 왕정시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조선을 깎아 내려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자신들은 서구화된 문명인이니까..문제는 봉건시대에서 왕정시대 건너뛰고 그렇게 간거죠.
    고종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고종이란 인물은 상당히 애매합니다. 난해하고요. (*고종이 역사의 흐름상 가장무능한 왕인것은 맞아요. 그런데 IQ가 낮다고 보기에는 학식이 풍부한 인물이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금물인데, 만약에 신미양요가 안 일어나고, 그 당시에 미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우리가 입헌군주제를 도입하고, 백성이 대표를 뽑아 정치를 하는 형태로 발전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리고 역사책을 들여다 보면 볼수록, 어떤 문제점들에 봉착을 하면 이게 당시에 시대상을 반영하면 좋다 나쁘다라고 단순하게 결론짓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노비제도에의 변천에 대해서 아는대로 이야기 하자면,
    노비제도 > 머슴 식모 > 가사도우미 뭐 이렇게 바껴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훨씬더 인본주의적으로 변천해 간듯합니다.
    아주 고대사회 삼국시대 이전에는 노예제도가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대한민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없어진것 같아요. 그리고 북한은 체제의 우월성 강조하기 위해서는 이런부분을 더욱 부각시키는 연구들을 했겠죠.
    그리고 제가 마지막으로 동네머슴으로 살았던 분의 인생을 보면, 어릴때는 성족부락(마을)에서 고아로 이집 저집 일을 해주면서 끼니를 해결하셨다고 해요. 그러다가 그 동네서 장가를 드시고,
    경제적 도움을 위해서 베트남전쟁에 참전을 하셨어요. 다만 이분이 있던 작전지역이 고엽제 살포지역이었던 거지요.
    이분은 베트남전 끝나고 고향에 돌아오셨을때, 고엽제 후유증을 평생을 앉고 가신거에요. 물론 나중에는 국가유공자 지정까지 받으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분이 겪는 고통이 사라지는건 아니었죠.
    이분만큼이나 고통받으신분들이 이분 가족분들이지요.
    이건 누구의 잘못이라고 보기도 힘든 케이스죠.(*이 부분 명확하게 말씀드리자면, 당시에 미국에서 베트남에 파병한것도, 그리고 고엽제를 사용한것도, 또 작전지역에 미군이나 한국군이 있었던것도 필연이란거죠. 이 필연만큼이나 중요한 필연중 하나는 미국내에서 있던 반전시위도 그런거고요. 개인적으로 베트남전과 냉전시대에 관해서도 책을 좀 취미로 보는데. 베트남전쟁이 없었던 냉전시대라면, 핵전쟁도 일어났을수 있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켜보는 사람도 고통스럽더라고요.
    진짜로 교수님 영상을 보게되면, 생각을 많이하게 되고, 많이 배워갑니다.

    • @thovennep8223
      @thovennep8223 Před 2 lety +1

      Good point!

    •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Před 2 lety +2

      Thank you for your very nice, thoughtful comment. And the compliment at the end. I'm glad you enjoy my videos -- thank you for your support.

  • @HM-nn4lc
    @HM-nn4lc Před 2 lety +5

    This information is new and not an exaggeration to say "shocking information" to me. As you said, I am over 40, and what I learned in Korean History class all the way through high school(required subject until the 12th grade, high school senior year) is just like you said. I agree and believe in what you said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Soft power vs hard power."

  • @robwyyi
    @robwyyi Před 2 lety +1

    My experience has been when I explain to others about slavery in Korea. it’s denied and diminished as I could not know because I wasn’t educated in South Korea.

  • @bat_gay
    @bat_gay Před 2 lety +7

    조선시대 때 노비의 비율이 40%를 넘게된건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살림을 잃은 양민들이 노비가 되서 그런걸로 알고있는데 임진왜란, 병자호란 시기는 조선 중기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Před 2 lety +1

      네, 내 보기에는 조선 전/후 만 하면 안돼요. 중기에도 중요한 일들 있었어요.

    • @bat_gay
      @bat_gay Před 2 lety +8

      @@TheFrogOutsidetheWell 17세기때 전쟁을 겪고 노비 비율이 확 오른걸 보고 조선 전체 기간동안 노비가 국민의 40%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걸 일본제국이 해방시켜준거라고 주장하는 식민사관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이 참 어이가 없기도 해요

    • @user-bm9jh4vg9w
      @user-bm9jh4vg9w Před 2 lety +1

      그전에 연산군이라는 폭군의 영향이 컸습니다. 공납으로 평민들의 재산을 무제한으로 수탈을 했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많은 자영농들이 파산했습니다. 중종~명종때는 손쓰기 힘들었고 선조시기는 그 폐단을 정화하는 시기였는데 임진왜란으로 펑...

  • @ed-od9sd
    @ed-od9sd Před 2 lety +1

    물건이다 이분. 천연기념물

  • @donghyunlee2158
    @donghyunlee2158 Před 2 lety +1

    신기하게 두분다 한국인 같이 생겼음 ㅋㅋ(전생에 조선 양반 출신 같음)

  • @f112111
    @f112111 Před 2 lety +2

    갑오경장이후 노비라는 신분은 사라지고 머슴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죠
    그 시절, 노비 삶,머슴살이 관련 글을 찾아보시면 많은 글을 보실수 있습니다.
    신분이 없어지고 머슴살이도 괜찮았는지 몰락한 양반가 자재들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 @user-pi2sm5kj3l
      @user-pi2sm5kj3l Před 2 lety

      사실 머슴살이는 고려 시대는 용작 조선 시대에는 고공이라는 이름으로 있던 걸로 알아요

    • @f112111
      @f112111 Před 2 lety +1

      @@user-pi2sm5kj3l 그렇군요 한 수 배워갑니다

  • @user-hq7hi2sl2o
    @user-hq7hi2sl2o Před 2 lety +7

    노비와 봉건 주의 있었어요 네달란드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어요 노예 제도 있어서요 네달 란 드 교수 님이 모르는 게 있었군요 한국은 더 많이 알려주세요 개구리 교수 님

    • @user-hq7hi2sl2o
      @user-hq7hi2sl2o Před 2 lety +2

      네달란드와 한국과 미국 진짜 더 통합 하면 좋겠어요

    • @yesno9065
      @yesno9065 Před 2 lety +3

      대화에서 서로 공감하는 포인트는 봉건과 근대로 나누는 (일제에 의한)서구 방식의 역사 해석과는 달리, 사실은 조선 이전부터 문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중앙 행정 시스템을 완료한 한국의 역사는 봉건과 근대로 구분하는 방식을 넘어 이미 국가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는 의미 같아요. 조선이 망한 건 부패 때문이지 국가 형태가 후져서가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드림

  • @J-Jung
    @J-Jung Před 2 lety +4

    서양 중세 봉건제도 귀족 기사 농노
    계층으로 운영 됐습니다.
    19세기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남아공도
    20세기 독립 혹은 그후에도 여전히
    노예와 같은 삶과 인종차별을 겪어야했죠.
    미국에서도 노예제 때문에 19세기에
    남북전쟁이 있었으며 20세기는 물론
    21세기인 현재까지도 흑인과 동양인
    혹은 유색인종에대한 인종차별이 만연하죠.
    심지어 그런 흑인들조차 동양인을 혐오
    인도에도 여전히 대부분 카스트제도의
    흔적들이 남아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높은 수준의 과학의 발전은 가속되고 있지만
    인류의 미숙함은 현재도 여전합니다.
    미개함이나 야만이란 표현을 쓰지 않은
    이유를 혹시 아시겠습니까?
    인종차별적 우월주의적 식민주의적
    표현일 것이기에
    (무엇이 진정 미개함이고 야만인 것인가)
    종교를 빙자한 현대 노예들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등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20세기초부터
    가끔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종말론 집단자살 사건도 있었고요.
    외화 콜로니아도 사이비 종교집단
    감금 노예 착취 사건 실화 영화 입니다.
    교수님 영상 잘 봤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thovennep8223
      @thovennep8223 Před 2 lety +1

      세계 인류사 어디에나 있었던 사실이죠.. 지금도 동유럽이나 남미에서는 범죄와 관련되어 빈번히 발생하고 ㅜㅜ

  • @seojinyang8713
    @seojinyang8713 Před 2 lety +1

    으아아아악 봉건주의가 있다고 배우는 것도 일제강점기의 잔재라니 너무 슬퍼요 ㅠㅠ

  • @sunnym296
    @sunnym296 Před 2 lety +1

    세계사 시간에 유럽의 봉건제에 대해 배웠을 때 그 이전에 조선을 봉건왕조라 무분별하게 불려졌던 사실이 상충되어서 쉽게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었어요. 이후 봉건제와 중앙집권제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게되면서 왜 조선을 봉건왕조라 말했던 경우가 있었는지 몰랐는데 이유를 오늘에야 알게되네요.
    말씀하신대로 삼국시대 각 왕조에서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받아들여 통치이념을 확립하면서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을 잡고 왕조는 바뀌어도 중앙집권국가의 형태는 계속 유지하죠.
    조선 시대 인구의 40%는 노비였다며 조선을 비난하는 글들을 본적이 있어요. 제가 배운 교육에서는 세금 문제때문에 양민을 늘렸으면 늘렸지 노비가 늘어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않았거든요. 조선초기 비율이라면 고려 무신정권수립 이후 혼란했던 시기와 맞물려 노비의 수가 급증했던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AA_cowgomoo
    @AA_cowgomoo Před 2 lety +1

    My mom said when her mom (my grandma) got married she brought along a horse and a servant girl. My grandpa's family sold off the horse and sent servant girl home since they could not afford to feed another mouth. There definitely class system in Korea's near past. Can't really clearly say slavery but there were e lower class servants who worked with compensation being just a meal and roof over their head going back about a century.
    Mom also said there were older former servant folks who called her lady (agassi) and bowed to her in her town. That was 1950's-60's. Very recent Korean history. Definitely big societal improvements in short time.

  • @thovennep8223
    @thovennep8223 Před 2 lety +2

    czcams.com/video/-qxHPkzeELQ/video.html
    교수님.. 도올교수님의 이강의 흠미있으실꺼 같아 공유합니다 ㅎㅎ

  • @jbskor9001
    @jbskor9001 Před 2 lety

    이 지구상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모르는 사람이 99퍼센트인 시절에 대한민국에 기여해 주시고 연구하여 세계에 알려주신 그 크신 은혜를 어찌 보답하겠습니까. 오로지 교수님의 건강을 비는 것 밖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ㅠㅠㅠ

  • @user-kq7dn3wm4o
    @user-kq7dn3wm4o Před 2 lety +1

    서양노예와 우리나라 노예제도가 차이점이 체계적인 운영과 기여자라고 생각됩니다.^^

  • @user-kt2yy9di1w
    @user-kt2yy9di1w Před 2 lety +2

    항 상 건 강 하 십 시 요

  • @user-mk1rb4nb9m
    @user-mk1rb4nb9m Před 2 lety +1

    흠...... 혹시 내시는 알이 없으니까, 불알 에서 알을 빼서 불이되고, 불이니까 火가 되어서 화자가 된걸까요?

  • @UtubeXucks
    @UtubeXucks Před 2 lety +1

    8:56 XD dutch humor

  • @umdarkssa6001
    @umdarkssa6001 Před 2 lety +8

    조선의 노예제는 사실상 정조임금이 해방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던 공노비를 자신의 자식인 순조가 해방시켜 줬으니까요
    공노비가 해방되면서 조선사회는 천민들도 이제 해방되는건 시간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Před 2 lety +4

      맞습니다. 공노 먼저 해방했지요. 사노, 사비는 늦어요.

    • @user-mk1rb4nb9m
      @user-mk1rb4nb9m Před 2 lety +1

      @@TheFrogOutsidetheWell 지금 현대에도 어떤 제도를 시행해야할때
      민간기업들이 하지 않으면 정부기관들이 먼저 시범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예를들어 육아휴직같은 제도도 정부기관부터 시행해서 대기업들은 따르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중소기업들은 실질적으로 잘 시행하지 않고 있지요)
      그때에도 공노비가 사노비들보다 먼저 해방된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순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 @user-mk1rb4nb9m
    @user-mk1rb4nb9m Před 2 lety

    봉건주의라........정지역의 자치권을 부여하고 대신 군역을 지게 하는것인데
    우리나라는 지방의 토호들은 있었어도 봉건이라 부를만한게 있었는지는 좀 의문이긴 합니다
    삼국시대정도에는 좀 있었을까요?
    고려때에도 조선때에도 지방의 유력자, 호족들은 있어왔고 그들이 어느정도 경제적, 군사적 힘을 가진 경우는 있지만
    그걸 중앙정부로부터 온전히 인정받고 자치를 했던건 아닌것같거든요

    • @user-pi2sm5kj3l
      @user-pi2sm5kj3l Před 2 lety +1

      없었죠 봉건주의 그 기준 자체가 사실 유럽을 벗어나면 맞지 않는 곳이 더 많을 걸요 한국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고딩 때 배운 기억이 있어요

  • @brucelee6424
    @brucelee6424 Před 2 lety

    한반도의 오랜 노예제도(노비)에 대해서는 한국의 정규 역사 교육에서 배우고 있으며,
    역사 드라마에서도 흔히 다루어 지기 때문에, 따로 학자들이 다루지 않는다고 해도,
    한국사람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역사입니다.
    하지만 명확하지 않는 점은 실제 "실질적으로 완전히 노비제가도 폐지된 시점과 개혁을 단행한 주체 세력이 누구인지"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부터 스스로 "노비제도 개혁"과 이후, "노비제도 폐지"의 노력이 있어 왔으나, 실질적으로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고종"때 "공사노비 폐지"를 했다고 하지만,
    엄연히, 대한제국의 "내시"와 "궁녀"들 또한 신분이 다르긴 하지만, "노예"나 다름 없는 삶이 었으니 불완전한 개혁이었다고 판단됩니다.
    더구나, 제 외가는 마을 지주였고 많은 노비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릴 적 어머니에게 그 마을에서 제일 좋아 보이는 집에는 노비였던 사람이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사노비"는 35년간의 일제강점기를 거친 이후에야 완전히 철폐 되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드는 의문이, 실질적으로 노비들이 해방된 것은 결국, 일본제국에 의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혹시, 교수님은 어떤 개혁주체에 의해, 정확히 언제쯤에 완전히 실질적인 사노비 해방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관련해서 봤던 자료들이 있으신지도 궁금하네요.

  • @tekkyun
    @tekkyun Před 2 lety

    안타깝게도 노비는 아직도 존재하죠.

  • @JasonHKim67
    @JasonHKim67 Před 2 lety

    진짜 선비이십니다. 요즘엔 선비를 안좋은 의미로 쓰기도 하는데 like 꼰대 of 꼰대.
    어제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동영상 볼때마다 식견에 감탄이 나오네요.
    궁금한 것이 고려는 봉건제도가 반쯤 있었다고 보십니까? 태조는 영주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혼인을 했고 현종만 해도 몽진하다 죽을뻔 한 일도 있고 마지막에는 이성계가 정권을 찬탈할 수 있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참 무인정권도 있었고요.

    •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Před 2 lety +1

      봉건제도에 대한 영상을 몇 편 찍어봤는데 한국은 봉건시대가 별로 없었지만 일본 사람들을 보면 '봉건제 시기'가 많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물론 일본 사람들은 자신의 봉건제를 유럽의 위대한 전통과 병행한다고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한국은 배제되고 무시당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신라 후기, 고려 초기 이후 봉건제를 버리고 시험으로 관리를 모집하는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살인적인 일본의 사무라이/봉건 제도보다 훨씬 더 문명화되었습니다. 제 다른 비디오를 보세요. 저는 그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I've done some videos on feudalism, and my perspective is that Korea did not have a significant period of feudalism, but that many people had "feudalism-envy" from looking at the Japanese. And of course, the Japanese like to brag about their feudalism as a parallel to the great traditions of Europe -- and Korea was left out, and looked down upon. In reality, Korea left feudalism behind after the late Silla, early Goryeo period and created an centralized state that recruited officials by an exam -- much more civilized than the samurai/feudal system of the murderous Japanese. Look at some of my other videos -- I talk about that in some detail.

    • @JasonHKim67
      @JasonHKim67 Před 2 lety

      @@TheFrogOutsidetheWell 영상 보니 "봉건주의" 라고는 생각이 안들지만 사병(private military)은 확실히 존재 했었다는 생각은 듭니다.
      중앙집권의 우수성, 확실히 유럽에서도 후대에 생긴 제도이니 봉건시대보다는 훨 나은 제도였네요.
      무지몽매한 일반인에게 자세히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 @user-xj1vu7om1l
    @user-xj1vu7om1l Před 2 lety

    19:11 신안 염전노예가 여기서도 나오네ㄷㄷ 부끄럽다 진짜

  • @crt8609
    @crt8609 Před 2 lety

    한국에서 노비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노예가 아니었죠...사실 정치적으로나 전쟁등으로 노예로 전락한 지배계층의 후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훌륭한 인적 자원들이 많아서 현재 평등주의 사회로 가고 있는것일수도

  • @user-pi2sm5kj3l
    @user-pi2sm5kj3l Před 2 lety +9

    ?? 선생님 제가 이 채널을 좋아하지만 다소 오류? 오해? 잘못된 인식이 영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만...
    영어로 쓰고 싶지만ㅠㅠ
    일단 소금 농장 사건 언급은 매우 충격적인데...
    사실 저는 노비와 노예는 개념이 다르다고 생각해 구별 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소금 농장 사건은 노예 혹은 노예제와는 명백히 다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예와 노예제의 중요 특성은 시장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매매의 대상으로서 사회 내에서 제도화 되어 있는, 다시 말해 시스템의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금 농장 사건은 그런 시장이 형성된 게 아니라
    소금 농장에서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 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납치 강금 학대 착취를 한 명백한 범죄로써 말그대로 당사들은 납치 사건의 피해자로 여겨져야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노예라고 간혹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 건 그들이 단순히 노예가 아니라 충격적 사건에 대한 거친 인식과 사건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인터넷 기사 특유의 잘못된 표현 등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노비제와 연관해서 언급되는 건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마치 성범죄 피해자를 (성)노예제와 함께 언급하는 것만큼 잘못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적어도 그사건은 영상에서 보다 더 설명이 되었거나 피했어야 하는 언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번 째는 노비 수 40프로 언급인데요 당시 정확한 숫자나 비율이 완벽한 팩트로 아직 결론 나지는 않았으나
    일제 시대 일본의 연구 자료에도
    숙종(1690) 37 프로 대
    영조(1729) 26 프로 대
    정조(1783) 5 프로 대
    철종(1858) 1.5 프로 대
    나오는 걸 봤을 때, 조선 시대의 노비 비율은 굉장히 유동적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40프로다 라고 말하는 건 오해의 소지를 남기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삼국시대 부터 한국의 노예제를 이야기 하셨지만 사실 저희는 고조선 때부터 노비가 있었을 것으로 배우는 게 사실입니다 고조선 연대가 불명확한 지점들이 있음을 감안해 삼국시대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지만
    고조선의 팔조법에 노비가 언급되는 것을 저희는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한국인이 노비 노예를 이야기 하는 게 싫은 게 아니라 노비와 노예를 동일시 하기에는 다소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동일시 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는 게 더 사실에 가깝다 생각합니다
    사실 노비 문제에 예민한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본과 식민사관이 세종을 포함한 조선 역사 자체를 폄하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는 재료이기도 해서져
    노비제가 오래된 만큼 노비의 형태가 다양했는데 노비의 다수를 차지하는 외거노비 같은 경우는 양인(일반인, 자유인(선비(양반) 역시 양인에 속함)과 그 생활 양태가 비슷했을 것으로 봅니다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당시 조선이 농본제 국가였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비는 단순히 노예제의 한 형태라고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이 지점들인데 노비의 형태가 중세 농노, 소작농의 형태와 겹치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노비는 노예제이자 극빈층의 사회 내로 포섭하기 위한 일종의 기형적 제도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면 노예 개념의 보편적 인식에는 분명 포로의 형태도 있으나 오로지 착취 대상과 형태로써 사회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는 측면이고 그런 점에서 역시 노비제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숙종 당시 노비의 수가 40프로 가까이 가는 이유도 저희는 전 세계를 휘몰아 쳤던 빙하기애서 비롯된 여러 대기근들과 일련의 사건들로 조선의 경제가 완전히 파탄이 나버렸고 농사를 지을 곳이 없던 사람들, 스스로 경제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노비가 되어 생계를 유지하려 했다 배우고 있습니다.
    사실 노예라는 게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나라와 문명 문화에서 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한 가지 개념만으로 세계의 모든 노예제를 관통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로 한국의 노비제 역시 단순히 보편적 노예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선생님이 영상에서 언급한 ‘맑스 등의 유물론적 사관의 오류’의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유물론 사관의 기본적인 역사의 발달 단계는 유럽을 벗어나면 일치하기 어려운 예시가 많듯, 문화적 현상에서 나타나는 각 개별적 차이들을 존중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노비제가 그렇다 해도 지금 기준에서 잘못된 비인도적 제도임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으나
    한국인이 단순히 노비를 언급하기 싫어한다는 표현은 한국의 역사 교육에 오해가 있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머슴(?) 역시 노비와는 다른 건데....
    물론 선생님도 다 아시는 내용이라고는 생각하나 짧은 영상에 많은 걸 넣으시려다 보니 생긴 일이고 다만 오해 소지가 있는 부분에 설명을 덧붙이고 싶었습니다

    • @thovennep8223
      @thovennep8223 Před 2 lety +2

      완전 동의!

    • @user-pi2sm5kj3l
      @user-pi2sm5kj3l Před 2 lety +1

      @@thovennep8223 긴데 다 읽으셨나 봐요 ㅎㅎ ㄱㅅㄱㅅ

    • @thovennep8223
      @thovennep8223 Před 2 lety +2

      @@user-pi2sm5kj3l 관심도 있지만.. 간혹 교수님 말씀에 갸우뚱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님께서 아주 요약을 잘해주셔서.. ㅎㅎ 감사합니다!

    • @user-ft3jk1qo2e
      @user-ft3jk1qo2e Před 2 lety +2

      님 말도 맞는데
      우리가 노비역사를 연구도 다루는것도 기피하는건 사실이지요
      노비와 노예가 다르다는 디테일까지 일일이 열거할수 있을정도로 지금기준으로 그런 비윤리적 문화가 엄연하게 존재했다 정도로 이해하면되지요

    •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Před 2 lety +2

      Thank you for your note. Frankly, when a see a really long note, I think "Oh no!, someone is pushing their own agenda about Dangun or something." But in this case your note was long but very helpful. I mostly agree with you, and yes, in the shortness of a CZcams presentation we cannot treat slavery in detail. Therefore, I am grateful for your note and I think that it advances the discussion, not leading us on a long, irrelevant sidetrack. I have done a CZcams on slavery before that covers some of these questions, and I want to do one in the future on the line between yangban and commoners was hard (could not move through easily in cases of social mobility and marriage), but the line between commoners and slaves was soft -- there was much intermarriage between free commoners and slaves. If a commoner woman or a slave woman were to marry a yangban man, it would only be as a secondary wife (a concubine); never would a commoner/slave woman be a legitimate wife. Still, I think the simple response that I often get from a Korean audience that a "nobi" is different from a "slave" is a naive and inaccurate, ethnocentric point of view. But on the plus side, although I see US Southern slavery and Korean slavery as more similar than different (대동소이), to Korea's great credit, it solved it's slavery issue more peacefully than was the case with the American Civil War. Korean slavery fell apart organically through market forces. Although, I think the argument can be made that in large measure, the Korean War was a resolution of the slave-holding tradition of Korea. The communists appealed to those of former slaves status, and those sympathetic to the injustice of traditional society, whereas the southern side appealed more to the former slave owners. So, in Korea, too, the final administration of the slave society was resolved in war as was the case in the US, (역시 대동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