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황실의 화원이며 행궁인 이화원에는 곤명호와 만수산이 있다. 인수전, 낙수당, 장랑, 배운전, 석방 등과 곤명호 주변 풍경을 둘러본다[베이징(북경)지역 여행13]고산봉채널

Sdílet
Vložit
  • čas přidán 8. 09. 2024
  • #베이징#이화원#지리오결#풍수지리#북경
    이 영상은 지리오결의 이론을 정립하는데 필요한 풍수지리 연구 자료로 수집한 것 중 그 일부내용들이다.
    베이징 이화원은 중국 청나라의 황실 화원이자 행궁이다. 원래 명칭은 청의원이었다. 1750년에 건설된 후 1860년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버렸으나 1888년에 재건된 후 지금의 이화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화원은 만수산과 곤명호로 이루어졌다. 이화원 안에는 다양한 형식의 궁전과 원림, 그리고 고대 건축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인수전(仁壽殿)
    1750년 건륭제가 지을 때는 근정전이라고 하였으나, 광서제 때 재건하면서 논어의 “인자수(仁者壽)”의 뜻을 빌어 인수전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태후와 광서제는 이곳에서 정무를 돌보며 외국 사절을 접견하였다. 인수전은 이화원에서 정무를 보는 주축이 되는 건물이다. 인수전 주변을 살펴본다. 인수전 앞에는 청동으로 주조한 용과 봉황, 그리고 향로와 항아리가 있다.
    덕화원(德和園)
    덕화원에는 경극 무대인 대희루, 서태후가 관람하는 이락전과 희랑, 서태후가 휴식을 취하는 곳인 경선당 등의 건물이 있다.
    낙수당(樂壽堂)
    낙수당은 원래 건륭황제가 모후를 모시고 곤명호의 절경을 감상하던 곳이라고 한다. 낙수당의 명칭은 논어의 “지자락, 인자수(知者樂 仁者壽)”라는 구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낙수당은 1886년에 재건축된 북경의 전통 이진 사합원 건축 양식이다.
    패가석(敗家石)이라고 하는 청지수(靑芝岫)는 명나라 관료 미만종(米萬鐘)이 북경의 방산에서 옮기다 비용 문제 때문에 버린 것을 청나라 건륭제가 이곳으로 옮기고 ‘청지수’라는 이름을 지었다. 중국 최대의 원림치석이라고 한다.
    장랑(長廊)
    장랑은 건륭제가 어머니 효성헌황후의 산책을 돕기 위해 만든 것이었으나 소실된 것을 재건한 것이다. 낙수당 요월문에서 석장정까지 273칸이며, 대들보와 비어있는 공간에는 인물, 산수, 화초, 조류 등 각종 채색화 8천여 폭이 그려져있다고 한다.
    배운전(排雲殿)
    배운전 명칭은 “신선이 구름을 헤치고 나오니(神仙排雲出) 보이는 것은 금과 은으로 된 대였노라(但見金銀臺)”라는 시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운휘옥우패방(雲輝玉宇牌坊)은 만수산의 전산 중앙건축군의 중심선 기점이다. 곤명호 쪽은 많은 별들이 수호하는 신선의 땅이라는 의미의 성공요추(星拱瑤樞)라는 현판이 있다.
    어조헌(魚藻軒)
    어조헌 부근에서 국학대사 왕국유가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가 폐위되자 자진하였다. 왕국유는 중국근대 역사상 마지막 문학사상가로 고전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학자이기도 하다.
    청안방(淸晏舫)
    석방(石舫)은 거석을 다듬어 만든 배 모양의 2층 건물이다. 서태후가 선체를 서양식으로 바꾼 후 “강물이 맑고 바다가 평화롭다(河淸海晏)”는 의미를 취하여 청안방(淸晏舫)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곤명호의 경치를 감상하고, 청나라의 통치가 공고함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Komentář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