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 김광철님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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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21. 08. 2024
  • 1953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구술자가 7살 때 작고, 어머니는 해녀 생활로 1남 2녀를 키우셨다. 제주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1972년 부산 동아대학교 사학과에 진학했다. 3학년 때 사학과 학생회장으로 문리과대학 학생협의회 발족을 주도했으며, 가을 총학생회장 부당 징계에 항의하는 도서관 농성을 주도했다. 77년 동아대 대학원 사학과 석사, 79년 박사 과정으로 진학했다. 동시에 동아대 내 ‘고전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부마항쟁 당시 17일 오전 동아대 교내 시위에 참여하여 학교 밑 동아서점까지 시위를 하다 귀교, 이날 오후에는 남포동 극장가에서 시위에 참여했다. 부영극장에서 시위를 시작하여 충무동로터리, 토성중학교, 부산대병원, 법원 도청 등을 지나 다시 부영극장으로 진행하고 밤 11시경 귀가했다. 18일 계엄령 이후 동아대 캠퍼스 안에 군대가 진주하면서 군용천막을 치고 학교를 감시했다.
    80년 봄 동아대는 대 사회투쟁은 없었지만 학생회건설 논의가 활발했고, 다른 학교보다 빨리 민주학생회를 출범시켰다. 81년에는 창원대 사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창원대 학원민주화에 힘썼다. 진보적 교수들의 책읽기 모임을 결성했고, 87년 5월에는 교수 시국 선언을 주도했다. 그리고 마산 6월 항쟁에 적극 참여했으며, 그 후 전교조 건설 운동, 민교협 건설, 교수협의회, 총장직선제 성립을 주도했다. 1992년 3월 동아대 사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동아대 내 민주화에 힘썼다. 특히 총장직선제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외 부울경 민교협회장, 전국 민교협 공동회장을 역임했다. 부마항쟁의 조사연구는 이제 시작단계에 있으며, 더 많은 참여자와 자료를 발굴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그렇게 되어야만 국가나 정부에서 부마항쟁에 대해 전향적인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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