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한국사 I 104 을사늑약과 헤이그 특사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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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čas přidán 6. 09. 2024
  • 일본은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켜 군사강점상태를 만들고 보호국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의 주권을 박탈하기 시작한다. 1905년 11월, 일본의 외교감독권과 내정간섭권을 인정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된다. 고종의 승인 없이 다섯 명의 대신들만 참석한 가운데 이뤄졌다. 1907년, 고종은 덕수궁 중명전에서 이위종, 이상설, 이준에게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친서를 전달한다. 당시 고종이 만난 세 명의 신하들은 특사 자격으로 네덜란드 헤이그로 향한다. 1907년 6월, 헤이그에서는 전 세계 45개국이 모이는 제 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3인의 특사는 을사늑약의 무효와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각국 대표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러나 특사 일행이 헤이그에 도착했을 때는 만국평화회의가 개막한지 이미 열흘이나 지난 뒤였다. 각국 대표들의 회담이 열리고 있었지만 대한제국 특사의 자리는 없었다.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정식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회의장 안에 들어가는 것조차 거부됐다. 단 한 명의 아군도 얻지 못한 특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세계 언론을 향해 대한제국의 현실을 호소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해 7월, 특사 중 한 사람이었던 이준은 헤이그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을사늑약의_부당성#이위종_이상설_이준_헤이그_특사_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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