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팀의 서글픈 스타 장명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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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čas přidán 8. 09. 2024
- 1983년 6월 7일, 8일, 9일.
그 사흘 동안 벌어졌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을 자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잔뜩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렸다가 한 순간에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듯한,
새로운 종류의 당혹감과 절망감.
장명부와 임호균이라는 빛바랜 흑백사진 속
두 투수의 얼굴과 겹쳐 떠올려야 할 그 사흘간의 시간, 말입니다.
야구의 추억 : 한국 프로야구의 영웅들
이번 편의 주인공은 ‘꼴찌 팀의 서글픈 스타’, 장명부 선수입니다.
인천 팬들에게 진정한 프로야구의 출발점은 1983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승률 1할 대에 머물렀던 치욕적인 꼴찌전설에도 불구하고,
1983년 봄 자유공원 한쪽에 벌여놓은 어린이회원 모집 창구에는 길게 장사진이 쳐졌습니다.
거리에는 큼지막한 별을 이마에 붙여놓은
삼미 슈퍼스타즈 모자와 재킷 차림의 아이들이 붐벼 댔습니다.
지난 해,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자책점 0’으로 평균자책점 왕에 오른 임호균과 김봉연을 대신해 1루를 지킨 김진우 없이 치러졌던 1982년의 프로야구는 ‘원천무효’라고,
이제야 진정한 대결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인천 팬들은 목이 터지도록 외쳐댔습니다.
게다가 팀에는 생각지 않았던 원군들이 이어졌습니다.
OB 베어스에서 양보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멤버인 정구선 선수와 이선웅 선수가 있었고,
인하대 출신의 강속구 투수 김상기 선수도 낯익은 이름이었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억대’의 몸값으로 모셔왔다는
일본 프로야구의 15승 투수 장명부 선수와
역시 일본 프로야구 3할 타자 이영구 선수가 새로 가세했습니다.
원년에 단 한 명도 없었던 국가대표 출신들이 무려 네 명으로 늘어 난데다가,
박철순과 백인천 이상의 위력을 기대하게 했던
‘해외파’ 본류들이 합세한 선수명단은 몇 번이고 반복해 읽기만 해도
인천 팬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습니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장명부 선수가 일본 야구에서 15승을 구가하던 전성기를 지나
1982년 단 3승으로 추락한 ‘퇴물’이었다는 점과,
이영구 선수의 기록으로 팬 북에 명시되어있던 .333의
일본 프로무대의 타율이 무려 10년간 경험한 3번의 기회에서 때린
단 한 개의 안타를 의미한다는 사실 같은 거 말입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김진우 선수와 정구선 선수는 곧장 홈런과 타점 부문 순위표에 이름을 올리며
팬들에게 신문 스포츠면 읽는 재미를 선물했고,
‘날으는 돈가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이선웅 선수도
시즌을 마무리할 즈음엔 2할2푼대로 주저앉게 되지만
시즌 초에는 붙박이 3번으로 나서며 3할대를 오르내리는 타격을 선보였습니다.
이영구 선수 역시 일본에서 기록했다던 3할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2할 8푼대를 꾸준히 유지해 ‘김재박의 라이벌’로까지 불리며
‘공수겸비형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으니까요.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명부 형님 저승에서는 편안하게 쉬세요
우리나라 야구가 프로의 맛을 알게해준사람이 장명부죠. 장명부는 kbo의 개척자죠
장명부한테 그렇게 참교육을 당하고도 1991년 일한수퍼게임에서 당하는 꼴이란 ㅉㅉㅉ
장명부와 임호균 두 명이 팀 100경기 약 900이닝 중 660이닝을 던졌군요. 너무 했다.
기록을 분석하고 상대 팀 훈련장에도 찾아가 시구를 하며 탐색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천재 투수 그의 죽음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당시 삼미 사장의 1억 주겠다는 허언이 그를 몰락의 길로 가게만들고 그의 어깨를 망친 장본인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대한민국의 영원한 30승투수 그렇지만, 이 30승 투수는 더 이상, 아니 영원히 나와선 안된다
2시즌을 합쳐도 만들기 힘든기록
30경기 200이닝 30승 0패 1.00 이런거 아니면 진짜 나오면 안될기록...
미국에선162승도충분히가능하다
우리나란132승가능
@@user-yv1pk4mx9u 한시즌에요?
@@user-yv1pk4mx9u 아니 팀승이 아니라 선발투수승이요
83년 삼미 유니폼이 지금 야구유니폼보다 더 예쁜게 실화냐
팀 전력이 받춰졌으면 선동렬도 쌈싸먹었을 선수..
일본 프로야구 시절 동영상 보니 직구 평균 구속이 146km(최고구속은 150km 이상)정도에 제구와 완급조절은 매덕스급. 일본타자들을 장난감 갖고 놀듯 하더라.
장명부 선수의 주근깨..김진우 선수 얼굴의 점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ㅎㅎ
삼미 슈퍼스타즈...내 생애에 영원히 잊지 못할 그라운드의 슈퍼스타 입니다🥰1983년도 빼고는 언제나 최하위권을 맴돌았고 1985년도 개막전 승리이후 17연패를 당하다 4월 30일 MBC청룡(LG Twins)와의 경기에서 최계훈의 호투와 양승관의 결승타로 지긋지긋한 연패의 사슬을 끊었을때 KS우승이라도 한것처럼 세상을 다가진 느낌이었더랬습니다😍기쁨도 잠시 다음날 청보그룹에 매각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진한 아쉬움을 감내하며 오랜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는 가슴 쩡한 느낌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합니다😂영화를 보며 치밀어 오르는 감동을 억누를 길이 없었던 기억이 나네여🙂그때가 정말 그립습니다🙃
17연패가 아니라 18연패임. 롯데와의 개막전 승리...이후 18연패...부산 구덕 야구장 ㅋㅋㅋ
당시 최고였지~~
불멸의 기록~
너구리 장명부
삼미의 1983년 종합3위돌풍은 장명부 어깨와 선수생명 갈아넣어 이룬 돌풍입니다.전기리그 삼미가 우승할뻔한 시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당시 전기리그 우승했어야했는데 아쉽게 놓쳐 인천야구팀 우승은 15년 미뤄졌습니다
임호균은 정말 유일한 인천 출신의 야구스타였는데. 국가대표 7년을 한 유일한 인천출신 선수였는데. 1982년 늘 삼미가 질 때마다 해설자가 언급했던 "임호균이 삼미에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을 것이다." 그래서 임호균이 누군가 찾아봤던 기억. 1981년 한국전력에서 15승 1패 방어율 1.56 같은 팀에 최동원이 있었는데 15승 6패 방어율 2.25. 프로에는 27세에 늦은 나이에 들어와 그닥 성적이 뛰어나지는 않았는데 늘 국가대표 트로이카 김시진, 최동원, 임호균.
근데 김시진, 최동원은 알아도 임호균은 잘 모른다. 2인자였기 때문.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그리고항상최약팀에서만 뛰었던 불운한에이스.진정한에이스였죠.
야수들의 뒷받침이없는팀에서 이런성적은 최고의에이스죠.
울나라 그당시천하무적 최최최강팀 해태를상대로.앞으로도 절대깨질수없는 .전무후무한 73구 최소투구완봉승..야수실책없었으면 노히트노런감이었죠
어마어마한기록이쥬..
국가대표 원조 소방수 마무리 전문투수!^^
자책점왕이 아니라 방어율왕상이었죠. 물론 약체들 상대로 한 경기였지만 호주전에서 최동원이 열라 터지고 다음 날 연장전에서 (일본과 경기 있던 날) 임호균이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결국에는 한국이 우승할 수 있었죠. 이것도 2인자의 설움. 한국의 우승은 임호균이 1등 공신이었는데 사람들은 몰라요 ㅋㅋㅋ
지금은 방어율왕이라는 표현을 쓰지않습니다.
@@user-be9nw2hd4u 그럼 지금은 자책점왕이라는 표현을 쓰나요 ㅋㅋㅋ
@@Luke-oq7tc 평균자책점이라고 하죠.
@@user-be9nw2hd4u 그 때 상 이름이 방어율왕상이라고요.
미친시절 이었지요...선수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落ち葉は秋風を恨まない 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까지 썼으면 완벽했는데
떨어지는 낙엽는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최동원과 더블어 불꽃이란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선수!!
어디내놔도 절대 손색이 없을만큼 참으로 잘만든 한편의 다큐멘터리 네요..
나레이션도 참 멋지네요..
더우기 난 인천 토박이라서 참 고마운 마음이 드네요..
장명부 선수가 슈퍼스타가 아닌 다른팀에 있었다면 30승 이상도 했지 않을까요
無二一球(무이일구) 오직 바라본 투수...그가 바라본..그 어께가 힘든 후배한테 ..힘이 됩니다..
추억의 야구 이야기 비교적 제가 알던 사실에 부응하듯 잘 표현해 주셨네요 ^^ 잘 보고갑니다.
그럼요. 약속을 철석같이 지키고 거짓말쟁이는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는 알본에서 성장한 장명부선수에겐 빈말이라도 약속을 지켰어야지. ㅠㅠ
그런 삼미그룹 IMF때 망해버렸죠.
너구리 장명부
참으로 비운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 네요
참으로 안타깝고
현재 한국 프로야구 발전사에 반짝이는 혜성였네요
1983년 삼미와 해태 경기였을 텐데 그 때는 선발 구원 마무리 이런 게 없고 마구잡이로 할 때라 임호균이 한 번 구원으로 나왔는데 인천 관객들이 엄청난 환호성과 함께 "임호균!"을 연호하던 생각이 남. MBC로 봤었는데 "아 임호균이 인천 사람들에게는 정말 절대적인 존재구나." 라고 생각.
저와 잘아는 분이신데 인품도 좋으신 분이십니다
당시 감독들 지금 진정성있는 죄의식을 갖고는 있을가요? 최동원 그리 살인적으로 코시에서 굴린 감독은 아주 웃으면서 당시 시대탓이라고 즐거운 추억처럼 인터뷰하던데 참 ..
아무 객관성, 합리성, 계획성도 없고 그냥 당장만 넘기자는 대충주의 딱 후진국 마인드..
그냥 따뜻한 정만 강조하면 다인가싶네요. 그나마 장명부는 교포라 말도 안통하고 차별까지 당했으니 어지보면 도박에 빠진거 이해는 감.
대한민국의 정 문화로 한 개인의 인생을 문개뜨리려는 장명부 선수 너무 불쌍합니다.
참고로최동원망가뜨린그감독은 염종석팔꿈치와어깨도갈아버리고 심지어2001년에이승호의어깨를갈아버림!
91년 쌍방울이 8구단으로 리그에 참여 하면서
126경기 , 주 6연전이 시행 되어 종전 에이스 혹사야구에서 이광환의 5선발 과 "선발-중간-마무리" 투수 분업화와 김용희 감독의 선발 투수 예고제가 시행되고 정착 되어 오늘날의 체계가 잡힌 것
4:12 멘탈좋은 심수창인가 ㄷㄷ
진짜~~
몬스터,
괴물투수의 원조다,ㅋㅋㅋ
정말 혹사에 희생양이네요ㅠㅠ 안타깝습니다ㅜㅜ
장명부 대단했던 투수임은 분명합니다....
한국 야구 역사에 가장 흥미로운 선수가 장명부 아닌가 싶네요.
대한민국의 어르신들, 초창기의 선배들의 정신은 지금 의 젊은 세대들이 배워야 한다. 최동원, 장명부를 비롯한 사람이기를 거부한 위대한 프로야구 선수들 절대 잊을수 없는 영웅입니다
6:17 6월을 유궐이 아니라 유월로 읽어야해요
도원구장..... 그립다. 그걸 부시고 축구장을 만들다니...
삼미가 혹사면 아니였으면 계속 볼수있었을건데.....대단한 선수였는데
다시는 나와서는 안돼는 기록 30승 차라리30승 안했으면 오래오래선수생활 더 할수 있었다 30승후 구단에서 보너스 지급안한걸로 알고 있었는데 지킬지못한 약속을 하지 말든가
매주 감사함돠^^
역사에 가정은 성립하지 않는다지만 적절히 몸관리를 하고 1억까지는 아니더라도 몇천만원 정도 포상금을 지급했다면 좀더 오래 선수 생명을 유지하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슬픔도 고통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SK 와이번스는 팀명을 SK 수퍼스타스로 고치고 유니폼도 수퍼스타스로 바꿔라. 장명부 영구결번시키고 그러면 팬들의 충성도도 훨씬 올라간다. 와이번스가 뭐얌...
Sk가 성골 인천출신은 아니니 쌍방울 수퍼스타즈는 어떤지;; 농담으로 들어주세요^^
초등학교 3학년때 삼미 응원했던 기억이 나네요. 장명부 선수는 정말 대단했었습니다ㅎ
이분 저희 감독님 김인식 당시 mbc 선수에게 3연속 사사구 던지셨죠
재밌게 보고 있어용~
83년 전기리그 때 삼미 김진영 감독 심판 폭행으로 구속 당하지만 않았으면 전기리그 삼미 우승하고 후기리그 때 MBC 청룡 우승 했으면 당시 코시...볼만 했을 텐데.. ㅋㅋㅋㅋㅋ
여기서 잠깐!!!
삼미 김진우 선수는 1루수가 아니었고 포수였습니다
장명부 선수을 당신 혀끝에 이방이란 말때문에 그당시때 숨어서 보낼것 같네요.
잘하면 장훈선수처럼 우리나라사람
그런 의식은 버리고 삽시다
장명부 선수는 당신 말 처럼 이방인
이것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너구리 장명부 레전드
영상자료가 없나 이왕이면 영상까지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좋았을텐데 좀답답했네요~
야구단 사장의 허언때문에기록된성적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화:장명부 수:임호균 목:장명부 금:임호균 토:장명부 일:장명부 이런식으로출전
그리고우리나라보다도앞선야구를하였기때문에 우리선수를위해 많이전수할려고노력하였지요
장명부:떨어지는 가을바람은 낙엽을 원망하지 않아
삼미슈퍼스타즈 원년 팬클럽에 5천원 내고 가입했었는데 크~~~
3승 밖에 못한 '퇴물'이었다는 점
82년-박철순, 83년- 장명부, 84년- 최동원 끝!!
삼미사장 못됐구만. 농담이라니? 프로는 곧 실력인데
저도 기억합니다. 삼미하고 해태가 1.2위 였나요? 그 어린나이에도 이 3연전이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관심있게 봤었죠.
장명부..멋쩌부러 !!!
어떤 회장이 장명부 한테 30승 하면 1억 주겠다 라고 말해서 장명부는 30승을 달성 했는데 막장 회장이 30승을 달성 한걸 당황해서 장난이라고 말했다 너무하다 장명부는 힘들게 400이닝 까지 했거 30승도 힘들게 땄는데 회장놈 때문에
우리 아랫집 살았는데... 진짜 레알 사람 좋았는데..... 어쩌다. 단지내 전기세 기록 세우고 이사가셨다는.... 이사떡 대신 탕수육으로 돌렸다는 ...ㅋㅋㅋ
1983년 60경기 427.1이닝 36완투 30승 16패. 이게진짜말이나되는지? 저때장명부선수는완봉승한다음날에 구원등판을하는일더잦았다함. 더구나장명부선수는저때34살. 당시에는노장소리듣는연령이었음. 이러니이듬해부터그후유증으로퍼지는거임. 제발안깨졌으면하는장명부의기록임! 그대가는선수생명이끝장난다!
박찬호..김병현..등등 ...코리안 특급..인데 뒤 타격이 안 받혀주니까 ...승리 못 한경우도 많은 데..꼭 누가 이렇다는 것은 ...?
육월이 아니라 유월이라고 발음하세요 혹시 시월도 십월로 발음하진 않죠?
장명부는 돈독이 너무 심해서 도박을 할만도 같음 ㅋ
ㅠㅠㅠㅠㅠㅠㅠㅠ 장명부님
육월이아니라 유월입니다
혹사...
30승하면1억준대서 30승햇더니 1억못받았지 결국84부턴 태업한건지 팔에무리가간건지 별다른활약하지못했죠
아니꼴지팀인데30승ㄷㄷ
1:24 평균자책점이라는 엉터리 용어 쓰지 말고 방어율이라고 하는 원래 용어를 써라
육월이 아니고 유월로 읽어야 합니다.
육월이 아니고 유월입니다... 정확한 발음을...
군대에서 ㅁr카롱ㅌiㅂl 보고 bj누니오 팬됐었는데 ㄷㄷㄷ 그분이라면 수위 보장이죠
지난해가 아니라 전년도
말이 그렇지 故人한테 이런 걸..그리고 장명부 투수 가 ..다른 팀 이면 ..이럴겁니까?..장투수도 강한 타격팀..뒤에 있었으면 힘이 생겼죠
ㅁr카롱ㅌiㅂl 어플 다운 받아서 보는거 맞죠? bj누니오님꺼 한번보려고 하는데..ㅋㅋ
약물부작용으로 안타깝게..
삼미슈퍼스타즈의. 감사용선수도해주세여
한시즌100승이상투수가빨리나왓으면
타자는10할에500홈런500도루
육월이 아니고 유월
글쎄요~ 경기매너는 그닥....
인천이기에.기회를주지않는거다
쓰레기동네인천.대한민국에서절대적으로없어져야할도시이며.그도시인간마져도없어져야된다고본다
다들공감~~
저 인천살고 한점 부끄럼없이 살고 남에게 피해안주며 열심히 살아가는데 사라져야 한다니 ㅠㅠ
공감 없다 ㅅㅂ너마
육월? ㅋ